상반기 기대작으로 떠오르며 3월 출시를 앞둔 라이즈 오브 로닌이 국내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에서 사라졌다. 심의도 통과했고 한국어화도 마친 그야말로 출시 초읽기에 들어간 게임이 급작스럽게 유통사에 의해 구매불가처리가 되었다는 점은 분명 기술적인 문제가 아닌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각종 매체와 커뮤니티에서는 라이즈 오브 로닌의 구매불가 사태의 핵심에 요시다 쇼인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라이즈 오브 로닌 판매중단의 원인 ‘요시다 쇼인’

라이즈 오브 로닌은 19세기 말 에도 시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에도 시대는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가 일본을 통치한 1603년부터 메이지 유신으로 개혁파가 에도를 손에 넣으며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는 1868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특히 라이즈 오브 로닌의 배경이 되는 에도 말기에는 서양의 여러 나라들이 일본의 문호 개방을 요구하는 시기로 미국과의 미일화친조약을 시작으로 유럽 여러 나라와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게 되는 그야말로 불안정한 시기였다.

그리고 이때 등장한 인물이 훗날 일본제국주의의 핵심인물들과 현재 일본 극우의 사상적 배경을 제시한 ‘요시다 쇼인’이다.

요시다 쇼인(좌)의 ‘정한론’은 일본제국 초대 총리이자 초대 조선통감인 이토 히로부미(우)에 의해 대동아공영권(大東亜共栄圏)으로 발전하며 일본 군국주의 침략 전쟁의 사상적 배경이 된다
요시다 쇼인(좌)의 ‘정한론’은 일본제국 초대 총리이자 초대 조선통감인 이토 히로부미(우)에 의해 대동아공영권(大東亜共栄圏)으로 발전하며 일본 군국주의 침략 전쟁의 사상적 배경이 된다

요시다 쇼인은 1830년 조슈번(지금의 야마구치 현) 하기라는 곳에서 가난한 하급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참고로 조슈번은 막부 말기 도사(지금의 고치 현), 사쓰마 번(지금의 가고시마 현)과 함께 존왕양이, 막부 토벌 세력의 중심이었으며,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해 일본 총리를 지낸 아베 신조도 조슈 번을 본적으로 하고 있다.

요시다 쇼인은 29세의 나이로 사형당해 죽는데, ‘존왕양이(尊王攘夷), ‘일군만민(一君萬民)’ 사상을 설파해 천황 중심의 사회와 에도 막부 타도를 외치다 막부에 의해 처단된다.

요시다 쇼인은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로 나아가는 사상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가 감옥에서 집필한 ‘유수록(幽囚錄)’에는 “무력 준비를 서둘러 군함과 포대를 갖추고 국력을 키운 후 즉시 홋카이도를 개척해 제후를 봉건하여 캄차카, 오호츠크를 빼앗고 오키나와 왕국을 일본 영도로 흡수한 뒤 조선을 정벌해 영토를 되찾아 원래대로 속국으로 해야 한다. 북으로는 만주, 남으로는 대만과 필리핀 루손 일대 섬들을 확보해 옛날의 영화를 되찾기 위한 진취적 기세를 드러내야 한다”라고 쓰여 있다.

침략과 팽창을 주창한 요시다 쇼인의 사상은 그의 사상에 감화된 제자들에 의해 이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었다. 오키나와를 복속 시켰고 조선과 대만을 식민지로 만들었으며 만주를 침략해 ‘만주국’이라는 괴뢰국가를 수립했다.

  

핵심 개발자의 인터뷰 영상이 결정타?

이번 라이즈 오브 로닌의 발매 취소 사태의 정확한 원인은 앞서 언급했듯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소니측은 물론 개발사도 일언반구 이에 대한 확실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력한 이유로 점쳐지는 것은 디렉터 야스다 후미히코의 메이킹 영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라이즈 오브 로닌의 디렉터 야스다 후미히코는 요시다 쇼인을 "일본에서는 소크라테스에 필적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라이즈 오브 로닌의 디렉터 야스다 후미히코는 요시다 쇼인을 "일본에서는 소크라테스에 필적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라이즈 오브 로닌의 메이킹 영상에서 야스다 후미히코는 요시다 쇼인을 일본의 소크라테스로 비유하며 “라이즈 오브 로닌에서 그려내고 싶은 건 생각, 사상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옮긴다는 부분이 (대단히) 중요한 사고방식, 자세…”라며 요시다 쇼인의 사상에 감화된 모습을 보인다.

게임이라는 문화 콘텐츠는 개발자의 사상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라이즈 오브 로닌을 이끄는 디렉터의 이와 같은 생각은 게임에 고스란히 투영될 것이 분명하다.

만약 야스다 후미히코의 메이킹 영상이 없었다면 라이즈 오브 로닌은 발매가 되었을 것이다. 허울뿐인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국내 심의까지 통과하고 발매일까지 확정한 상황에서 이를 뒤집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메이킹 영상의 심각성을 SCEK도 인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한 일본의 인식

사실 요시다 쇼인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수많은 콘텐츠에 등장했었다. 은혼에는 요시다 쇼인을 모델로 한 요시다 쇼요가 등장하며 바람의 검심에는 요시다 쇼인의 제자이자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와 함께 메이지 유신 성공의 주역이었던 카츠라 코고로(훗날 기도 다카요시)가 비중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용과 같이 유신! 극’에도 카츠라 코고로와 정한론자로 알려진 사이고 다카모리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가 등장하며 페이트 시리즈에서도 요시다 쇼인이 등장한다.

물론 이 시대를 다룸에 있어 요시다 쇼인이나 기도 다카요시, 사이고 다카모리 등이 등장하는 것은 시대적 배경을 차용한 콘텐츠에서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다만 문제는 과거사를 대하는 일본의 인식에 있다.

라이즈 오브 로닌과 같은 이유로 출시가 취소되었던 게임이 있다. 바로 용과 같이6다. 용과 같이6 역시 왜 발매가 취소되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발매 취소의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이후 해외판을 해본 유저들에 의해 그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많은 유저들은 야마토 함이 등장하는 것과 한준기와 키류의 대사 그리고 엔딩을 논란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물론 지적되는 논란이 과연 발매를 취소할 만큼 논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존재한다. 다만 논란이 정당한가 아닌가를 떠나 한준기와 키류의 대사는 다시 곱씹어 봐야 할 문제다.

“당신 덕에 진권파는 거의 궤멸되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은 다시 태어나려는 진권파에 있어 해악입니다. 제게 있어 옛날 조선을 침공한 히데요시나 당신이나 딱히 차이는 없습니다. 당신에 관한 건, 전 이미 물에 흘려 보냈습니다. 당신과 친밀 해져서, 낡은 것을 버리지 못하는 부하들에게 제 힘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궤멸된 자신의 조직을 이번 기회에 쇄신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어찌 보면 몇 대를 내려오면서 정체성의 변화를 가져온 재일 한국인들의 모습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고 주인공과 조연의 관계 정립상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키류에게 호의적인 모습으로 그려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히데요시라는 단어가 껄끄럽게 한다. 키류를 히데요시에 한국 조직인 진권파를 조선에 빗댄 것인데 이부분을 과거사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로 바꿔놓고 보면 분명 문제가 될만한 인식으로 비춰진다.

용과 같이6 역시 라이즈 오브 로닌처럼 갑자기 한국 발매가 취소되었다
용과 같이6 역시 라이즈 오브 로닌처럼 갑자기 한국 발매가 취소되었다

일본이 과거사를 대하는 태도 중 하나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일간의 과거사는 물에 흘려보낼 만큼 가벼운 과거사가 아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고 여전히 한 맺힌 삶을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한일간 과거사는 물에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똑바로 들여다보고 확실하게 단죄해야 한다. 바른 미래는 낡은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닌 낡은 것을 제대로 고쳤을 때 올 수 있다.

게임을 비롯해 문화 콘텐츠가 무서운 점은 그것을 만든 이의 생각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빠르고 자연스럽게 동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을 게임에 등장시킬 때는 논란이 되는 부분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약 요시다 쇼인이 게임에 등장한다면 존왕양이, 일군만민은 나와도 정한론에 대한 부분은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요시다 쇼인에 대해 알지 못한 채 게임만으로 요시다 쇼인을 접하게 된다면 자칫 막부라는 권력에 도전하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구국의 영웅으로 알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일본은 자신의 치부를 세탁하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전범기가 해외에서 멋진 디자인으로 통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라이즈 오브 로닌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아돌프 히틀러는 그의 저서 ‘나의 투쟁’을 통해 자신이 반유대주의, 독일 민족주의에 입각한 레오폴드 푓슈라는 역사 선생님의 수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아마도 이 역사 수업이 잔인한 홀로코스트의 단초가 되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이 단지 어느 학교의 역사 선생님에 불과하더라도 히틀러와 같은 괴물을 길러낼 수 있다.

요시다 쇼인은 29세의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유혼록을 남겼다. 그리고 그 유혼록은 150여년 후 일본 최고 지도자에 의해 다시 소환된다. 일본의 전 총리이자 일본 보수우익을 대표하는 아베는 첫 집권 때인 2006년 10월 총리관저 웹사이트에 ‘내 몸이 무사시의 들판에 묻히더라도 마음은 아마토의 혼이 되어 이 세상에 남으리’라는 유혼록 속 글귀를 올렸고 일본 총리로는 최초로 요시다 쇼인의 묘소 앞에 무릎을 꿇기도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명가도가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으로 이어졌고, 정한론을 계승한 이토 히로부미는 이를 대동아공영권으로 발전시켜 주변국을 침탈하는데 이용했다. 요시다 쇼인이 꿈꿨던 대제국 일본은 결국 1945년 8월 15일 일제 패망과 함께 물거품이 되었지만 여전히 지금도 요시다 쇼인을 숭배하는 자들은 일본을 이끄는 관료에서부터 게임을 만드는 디렉터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들은 제국의 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무서울 만큼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한낱 게임에 불과한 라이즈 오브 로닌을 경계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작권자 © 게임어바웃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