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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획은 2012년부터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에 연재되는 기획을 시대 순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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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맨(Pac-Man)]은 1980년 5월 22일 출시된 일본 남코(현 반다이 남코 게임스)사의 아케이드 게임이다. 게임 내용은 입을 살짝 벌린 모양의 주인공 ‘팩맨’을 조종해, 적 유령들의 방해를 피하며 미로에 떨어져 있는 쿠키를 주워 먹는 것이 목표다.


팩맨은 닌텐도의 [마리오] 시리즈와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1980년 출시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아케이드 게임의 황금기를 주도했으며, 제작사인 남코가 거대 게임 회사로 성공할 수 있었던 모태가 된 게임이기도 하다.



남코와 팩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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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코의 로고


팩맨을 이야기하면서 제작사인 남코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이야 [철권]이나 [테일즈] 시리즈 등으로 게이머들에게 유명한 남코지만, 첫 출발은 요코하마의 한 백화점 옥상에 시작한 작은 회사였다. 1955년 어린이용 목마 제조사로 출발한 남코는, 유원지용 시뮬레이터를 제작하면서 사업 범위를 넓혀나가기 시작한다.


한편,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흔히 말하는 오락실 게임)이 큰 성장을 거듭한다. 1972년, 세계 최초의 상업 게임으로 알려져 있는 아타리의 [퐁]이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일본 역시 타이토가 1978년 슈팅 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내놓으며 아케이드 게임의 황금기를 맞았다. 아케이드 시장의 절정기 시절에는 오락실 때문에 100엔짜리 동전 부족이 야기될 정도였으니 이 당시 아케이드 게임의 인기를 알 만 하다.


아케이드 시장의 성장과 함께 많은 회사들이 게임 시장에 뛰어든다. 남코도 그 중 하나였다. 본래 유원지 놀이기구를 제작해 돈을 벌었던 남코는, 아케이드 게임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판단이 빨랐다. 일본 시장에서 경영 어려움을 겪고 있던 미국 아타리사의 자회사인 아타리 재팬을 세가와의 경쟁 끝에, 1974년 50만달러라는 거액에 인수하면서 아케이드 게임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남코는 아타리 재팬 인수에 이어 1978년 핀볼을 비디오 게임으로 옮긴 형태의 [지비(Gee Bee)]를 내놓으며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 1979년에는 앞서 언급했던 타이토의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개량한 방식의 슈팅 게임인 [갤럭시안(Galaxian)]을 내놓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갤럭시안]은 후에 저 유명한 [갤러그]로 이어지며 남코 성장의 발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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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케이드 시장을 뒤흔든 타이토의 [스페이스 인베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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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코의 첫 성공작이자 [갤러그]의 원형인 [갤럭시안(1979)]



팩맨은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가?


남코가 ‘갤럭시안’을 내놓을 무렵, 남코 개발진의 일원이었던 이와타니 토루는 시장의 방향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시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대세였던 슈팅 게임은 남성 게이머만을 게임 센터로 끌어들이고 있었고, 이와타니 토루는 미개척 시장인 여성 게이머를 포섭하기 위해 슈팅 게임과는 다른 장르의 게임을 기획한다. 기획 초기에는 ‘여성’하면 흔히 떠오르는 패션 게임이나 러브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게임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새로운 느낌을 가진 게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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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출시된 [팩맨] 게임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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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타니 토루가 [팩맨] 개발 당시를 회상하며 피자를 먹고 있다


여러 방안을 생각하던 중, ‘무엇인가를 먹는 게임’이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귀여운 캐릭터가 무엇인가를 먹는 형식의 게임은 확실히 전에 없던 새로운 게임이었다. 슈팅 게임과의 차별성은 물론, 여성 게이머들에게도 충분히 먹힐 수 있다는 판단 하에 [팩맨]의 원형인 [Puck Man]이 개발된다. 이 ‘Puck’이라는 제목은 ‘뻐끔뻐끔 먹는다’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에서 따온 제목이다.


동그란 모양에 입을 살짝 벌린 모양인 팩맨의 모습 역시 음식에서 따온 것으로, 개발자 이와타니 토루가 피자를 먹다가 남은 피자의 모양을 우연히 보고 거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미로에 떨어진 무엇인가를 먹는다는 컨셉으로, 독특한 모양의 주인공과 귀여운 유령을 적으로 추가하면서 마침내 우리가 알고 있는 팩맨의 모양이 갖추어졌다.



세상에 나온 팩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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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출시된 아케이드 버전 [팩맨]의 모습. 좌측이 북미판 [팩맨] 우측이 일본판 [Puck Man]


1980년 5월 출시된 [팩맨]은 아케이드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뭔가 때려부수는 슈팅 게임이 주를 이루던 오락실에, 귀여운 캐릭터와 독특한 게임성을 앞세운 [팩맨]은 파격적인 느낌의 게임이었다. 이와타니 토루의 생각대로 팩맨에 많은 여성 게이머가 이끌리면서 아케이드 시장은 슈팅 게임 일색에서 벗어나 한층 더 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팩맨]은 일본을 벗어나 북미에 진출하면서 더 큰 성공을 거둔다. 첫 출시 5개월만인 1980년 가을, [팩맨]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북미 게이머들에게 큰 오해를 살 수 있는 [Puck Man]이라는 제목을 [Pac-Man]이라는 이름으로 고친 후 건너갔고, 이후 ‘팩맨’이라는 이름은 원래 제목을 대체하면서 완전히 굳어지게 된다.


[팩맨]이 북미에서 거둔 인기는 일본에서의 그것을 능가했다. [팩맨]이 북미 시장에 처음 진출 한 1년동안 10만대가 넘는 양을 팔아 치우며 북미 게임계의 최강자로 군림한 것이다. [팩맨]은 게임으로서의 인기뿐 아니라, 아예 1980년대 북미 문화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였다. 아이와 어른 구별할 것 없이, 북미에서는 누구나 [팩맨]에 열광했다.


1980년대 당시 미국 ABC 방송에서 1년에 걸쳐 ‘팩맨’ 애니메이션이 방송되기도 했으며, ‘팩맨’을 테마로 한 노래가 백만장 이상 넘는 판매고를 올리고, ‘팩맨’의 모양을 딴 파스타가 판매될 정도로 [팩맨]은 북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1982년에는 [팩맨]의 최고 점수를 달성한 8살 소년에게 당시 미국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이 축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게임 역사를 바꿔놓은 [팩맨]


[팩맨]의 성공은 단순히 상업적 성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게임 역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팩맨]의 가장 큰 의의는 남성 일색이었던 게임 향유층을 여성으로까지 확대했다는 점이다. 당시 게임 시장은 [퐁]을 필두로 한 스포츠 게임이나 [스페이스 인베이더]류의 슈팅 게임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스포츠 게임과 슈팅 게임은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아무도 여성들을 게임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인 [팩맨]은 게임 역사를 새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두 번째로, [팩맨]은 반드시 무언가 부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비폭력’ 장르를 개척했다. 무언가 부숴야 하는 슈팅 게임이나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 스포츠 게임 대신, 귀여운 캐릭터가 적에게서 열심히 도망쳐야 하는 구조의 [팩맨]은 당시 게임 업계에 일대 파장을 일으켰다. 앞에서 언급했던 여성 게이머의 확대 역시 [팩맨]의 이런 독특한 게임성에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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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게임 팩에 등장한 캐릭터화 된 '팩맨'의 모습.



[팩맨]에 등장한 유령들. 이들도 큰 인기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팩맨]은 게임에서 캐릭터의 역할을 재정립했다. 앞서 언급한 [퐁]이나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그저 얼마나 더 잘 하느냐, 얼마나 더 잘 부수느냐가 게임의 목표였고 알파이자 오메가였기 때문에 캐릭터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반면, [팩맨]은 이를 극복하고 게임에서 캐릭터라는 요소가 큰 비중을 차지함을 보여주었다. 게임의 성공과 더불어 [팩맨]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각광을 받았고, [팩맨]의 후속작에서도 팩맨의 부인이나 아들 같은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인기를 이어갔다. [팩맨] 이후 큰 성공을 거둔 [마리오] 역시 게임성과 독특한 캐릭터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리오]의 아버지인 미야모토 시게루 역시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게임으로 [팩맨]을 꼽았을 정도다.



21세기의 [팩맨]


[팩맨]의 첫 등장 이후 30여년이 지난 21세기에도 [팩맨]은 살아있다. [팩맨]의 성공 이후 30년 넘게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후속작과 리메이크가 제작되고 있어 [팩맨] 시리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 동안 유지되어 온 게임 프랜차이즈’로 꼽히고 있다. 또한, 지금도 [팩맨] 점수를 겨루는 대회가 열리고 있다.


북미에서 [팩맨]은 이제 비디오 게임하면 누구나 떠올릴 정도로 하나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2009년의 조사에 따르면 북미 소비자의 94%가 [팩맨]을 알고 있다고 답해, 닌텐도의 [마리오]를 근소한 차로 누르고 북미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캐릭터로 꼽혔다. 북미 유명 운동선수가 [팩맨]을 자신의 별명으로 삼기도 할 정도다. 이외에도 [팩맨]은 적대적 M&A 방어전략의 한 종류를 일컫는 경제 용어나 커다란 입을 가진 노란 뿔개구리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현재 [팩맨]은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동전 게임기(판매량 29만대 이상)’로 등재되어 있다. 또한, 미국 워싱턴에 소재한 ‘스미스소니언 협회’가 전시하고 있는 유일한 일본 게임이기도 하다. 2010년 5월 22일에는, [팩맨] 출시 30주년을 맞아 구글에서 하루 동안 탑 페이지에서 [팩맨]을 즐길 수 있도록 구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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