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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게임이라 불리는 [블랙 앤 화이트]. 신과 인간, 종교와 철학적 담론까지 담고 있는 명작 중의 명작!>



한 어린아이가 조그만 개미집을 발견했다.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개미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나뭇가지로 개미집을 부술 수도 있고, 수 십 마리 개미들을 한꺼번에 밟아 죽일 수도 있다. 반대로 가지고 있는 빵부스러기를 먹이로 줄 수 있고, 땅을 파서 개미들이 이동통로를 마련해 줄 수도 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아이는 개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절대자이자 신의 입장에 서있다. 과연 우리 자신이 아이의 입장이라면 개미들에게 어떠한 처분을 내릴 것인가? 이런 뜬금없는 질문이 오늘 이야기할 [블랙 앤 화이트]의 핵심이다.

[블랙 앤 화이트]를 만든 ‘피터 몰리뉴’는 갓게임(God game) 장르를 창시한 인물이다. 게임에서 유저는 인류의 문명과 종교, 선과 악까지 관장하는 신(GOD)의 입장에서 플레이하게 된다. 모니터 속 개미같이 작은 인류에게 기적의 은총을 내릴 것인지, 재앙의 심판을 가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유저의 손에 달렸다. 앞서 개미집을 어떻게 가지고 놀 것인가를 고민하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이처럼 한 순간 만이라도 ‘신’이 되고픈 인간의 애처로운(?) 욕망은 창의적 아이디어와 화려한 그래픽을 만나 [블랙 앤 화이트]라는 역사상 가장 특이한 작품을 내놨다. 신의 입장에서 플레이하는 게임. ‘블랙 앤 화이트’에서 유저들은 세상을 다스리는 신이자 창조주다.


창조와 혁신의 대명사 피터 몰리뉴
누구나 혁신적인 생각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혁신을 두 번 반복하기는 힘들다. 더더구나 세번은 오죽하랴. 그런데 [블랙 앤 화이트]를 만든 ‘피터 몰리뉴’는 밥 먹듯이 혁신을 거듭해온 인물이다. 만드는 게임마다 새롭고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출세작 [파퓰러스]부터 [신디케이트], [던전키퍼], [블랙 앤 화이트], [페이블]까지, 작품 하나하나마다 시대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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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앤 화이트] 개발자 피터 몰리뉴. 출세작 [파퓰러스]부터 시작해 내놓는 작품마다 찬사를 받았다. 영국인 중 최고의 영예라는 ‘대영제국 명예훈장’까지 받았다.>



한곳에 안주하는 법 없이 늘 혁신과 창조를 추구해 온 그는 후배 개발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블리자드 부사장 랍팔도는 “피터 몰리뉴 같이 혁신적인 게임 디자인을 선보이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게임 역사상 최고의 격동기였던 90년대 피터 몰리뉴는 ‘리처드게리엇’, ‘시드마이어’와 함께 세계 3대 크리에이터로 추앙 받은 인물이다. 영국 태생인 그는 게임 크리에이터로서 대영제국 명예 훈장까지 수여받았다. 이 당시 유명 게임 크리에이터는 미국과 일본인들이 대부분인데, 영국출신 개발자로써 자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에 큰 공을 세웠다는 의미에서 훈장을 수여받은 것이다.

그가 만든 [파퓰러스]는 많은 게임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파퓰러스]는 [심시티], [스타크래프트]로 이어지는 실시간 전략게임들의 뼈대를 제공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게임들이 그가 만든 게임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엄밀히 말해 벗어날 필요가 없을 만큼 시대를 앞서갔다. 탁월한 안목은 어릴 적 호기심 많은 소년시절부터 시작됐다. 사실 그는 학창시절만 해도 게임에 관심이 없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일상적으로 스치는 평범한 물건들도 그는 그냥 놔두지 않고 관찰했다.


[파퓰러스], 신이 되고 싶은 인간을 욕망
그가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탁구게임 ‘퐁’을 처음 접하고부터다. 그는 화면에서 굴러다니는 공들이 너무 신기해서, 그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 게임기를 분해했다가 망가뜨려 버렸다. 이처럼 그는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뜯어보고 관찰하면서 사물의 원리를 파악했다. 때문에 그의 집에 있는 가전제품은 남아나질 않았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한 그는 작은 소프트웨어 가게를 차렸다. ‘타루스’라는 이름의 이 소프트웨어 가게는 피터 몰리뉴 게임인생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주로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개발로 수익을 얻은 그는 본격적으로 게임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는 회사를 ‘불프로그’로 개명했다. ‘불프로그’는 피터 몰리뉴의 별자리인 황소자리에다, 그가 특별히 좋아하는 게임 [프로그]의 이름을 합쳐 만든 사명이다. 피터 몰리뉴는 다른 사람이 감히 상상조차 못할, 새로운 형태의 게임을 만들길 원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열망하는 그것! 바로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게임이다. 이렇게 나온 작품이 그 유명한 [파퓰러스]다. 1989년 발매된 [파퓰러스]는 플레이어가 신이 되어 인간 세계를 다스린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선한 신의 입장에서, 악한 신을 숭배하는 종족을 몰아내고 세상을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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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퓰러스]. 플레이어가 신이 되어 세상을 다스리는 갓게임의 대표작.>



게임방식도 신선하다. 신이 된 플레이어는 세상의 환경만 바꿔주고 인간의 삶에는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형이나 날씨를 바꾸어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고, 때로는 번개나 천둥을 처서 인간의 죄를 징벌할 수 있다.자신의 명령에 따라 게임 속 인간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악한 신을 믿는 인간들과 전쟁을 치러야 한다.

당시 [파퓰러스]가 게임업계 끼친 파장은 엄청났다. 게임의 진행방식, 인터페이스, 그래픽까지 이후 발매된 시뮬레이션들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유저들은 자신이 신이 된다는 이 경이로운 경험에 매료됐다. [파퓰러스]는 400만장 이상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하며, 불프로그를 단숨에 메이저 개발사의 반열로 끌어올렸다. 물론 이 게임은 이후 [블랙 앤 화이트]에서 더욱 완벽한 게임성을 갖추고 재창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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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퓰러스] 시리즈는 3편까지 출시됐다.>



이어지는 주옥같은 히트작
피터 몰리뉴의 대단한 점은 그 많은 게임을 만들었는데도 무엇 하나 똑같은 게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크리에이터처럼 어느 한 작품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매번 새로운 장르, 새로운 소재,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면서 끊임없니 자기혁신을 거듭해왔다. [파퓰러스]로 대박을 친 그는 다음 작품으로 경영시뮬레이션에 도전했다. 놀이공원을 경영하는 [테마파크]로 또 한 번 역사를 바꾼 것이다. [테마파크]는 지금은 하나의 장르로 성장한 ‘타이쿤 게임’의 효시가 됐다. [레일로드 타이쿤], [롤러코스터 타이쿤], [트렌스포트 타이쿤] 등 수많은 타이쿤 게임들도 따지고 보면 [테마파크]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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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흔하디 흔한 타이쿤 게임의 원조격 타이틀인 [테마파크].>



전략게임 [신디케이트]는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국가권력을 능가하는 다국적 기업연합(신디케이트)간의 전쟁을 다룬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신디케이트 소속의 사이보그를 조작해, 상대 기업과 전투를 치러야 한다. 게임은 실시간으로 진행되며, 분대 전투의 박진감 넘치는 재미가 이 게임의 백미다. 신디케이트에서 선보인 실시간 전투는 이후 [디아블로] 같은 리얼타임 RPG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다음 작품 [매직카펫]은 아라비안나이트의 주인공처럼 마법 양탄자를 타고 모험을 펼치는 1인칭 액션게임이다.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날라 다니며 전투를 펼친다는 설정 자체가 독특하다. 총싸움 FPS에 질려 있던 유저들에게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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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특히 인기가 많았던 [신디케이트]. [디아블로]같은 실시간 액션RPG의 초석을 다졌다.>



1997년 발매된 [던전키퍼]는 피터 몰리뉴 최고의 출세작이다. 이 게임은 선과 악을 비꼬는 기발한 설정으로 발매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정의를 수호하는 용사가 아닌, 악당의 입장에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다. 보통 게임에서 주인공은 정의의 편으로 나오는데, 이 게임은 악당이 되어 영웅을 괴롭히는 방식이다. 던전에 각종 함정을 설치해 놓고, 영웅들의 공격을 막아야 한다. 선과 악이 뒤바뀐 설정과 함께, 특유의 유머와 풍자를 가미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던전키퍼]로 불프로그는 창사이례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게임의 버그가 심해 유저들의 비난을 사야했다. [던전키퍼] 개발에 모든 역량을 소진한 피터 몰리뉴는 잠시 충전의 기간을 갖은 후 차기작 개발에 돌입했다. 그는 자신이 설립한 ‘불프로그’를 그만두고 ‘라이언해드’라는 작은 회사를 차린 후 그곳에서 차기작 준비를 했다. 일찍부터 마음속에 두었던 프로젝트를 실행하려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핵심인력 20여명만 뽑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필생의 역작 [블랙 앤 화이트]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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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악당이 되어 정의를 수호하는 영웅들을 때려잡는다는 내용의 [던전키퍼]. 당시 엄청난 충격과 함께 흥행에도 대성공했다.>



재미 이상의 종교 철학적 담론까지
[블랙 앤 화이트]를 만들기 전부터 피터 몰리뉴는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가 독특함과 재미를 두루 갖춘 명작들이다. 부와 명예도 누릴 만큼 누렸다. 그러나 새로운 게임에 대한 갈증은 그를 또 한 번 광야로 나서게 했다. 아무것도 아쉬울 게 없는 그가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잘나가는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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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퓰러스]에서 시작한 갓게임은 [블랙 앤 화이트]에서 최고의 완성도를 갖춘다.>



[블랙 앤 화이트]에는 그 답이 있다. 이 게임에서 그가 추구하는 건 단순한 재미 정도가 아니다. 재미있는 게임은 이전에도 숱하게 만들어왔다. [블랙 앤 화이트]는 종교와 철학, 신과 인간, 선과 악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탐구하는 게임이다. 그래선지 게임이 가진 깊이부터가 남다르다. 단순한 휘발성 재미뿐만 아니라, 인류에 대한 철학적 담론까지 담아냈다. 이를 위해 [블랙 앤 화이트]를 개발할 때 철학자를 고용하기도 했다.

게임은 3년의 개발기간을 거쳐 2001년 출시됐다. 이번에도 플레이어는 신의 입장에서 인류를 다스리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과 인간 사이에 무언가가 더 있다. 바로 플레이어의 분신 역할을 하는 ‘크리처’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커다란 동물의 형상을 한 ‘크리처’는 플레이어와 게임 속 인간들을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플레이어는 크리처를 선하게 혹은 악하게 또는 그 중간 형태로 키울 수 있다. 크리처를 다루는 방식은 마치 애완견을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에 아무 것도 모르는 크리처에게 먹는 것과 용변 보는 행동부터 학습을 시켜야 한다. 크리처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면, 그 다음에 마을사람들을 다루는 법, 기적을 일으키는 법 등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크리처의 성향은 길들이기 나름이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교육하면서 크리처의 성향을 명확하게 규정지을 수 있다. 마을 사람을 돕고 때로는 같이 놀기도 하는 착한 크리처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집을 부수고 사람을 내동댕이치고 심하면 잡아먹기까지 하는 악한 크리처가 되기도 한다. 플레이어가 나쁜 신이 되면 화면에 나타나는 손의 모양이 악마와 같이 변하고, 좋은 신이 되면 천사의 손으로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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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신이 되느냐, 악한 신이 되느냐는 전적으로 유저의 선택에 달렸다.>



기적을 베풀고, 믿음으로 보상받다
게임은 상당한 자유도의 극한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됐다. 예를 들면 이렇다. 기적을 일으켜 인간에게 곡식과 나무를 하사할 수도 있고, 여차하면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 기적을 일으킬 때마다 인간의 믿음을 얻을 수 있는데, 믿음수치(?)가 높아야 플레이어의 능력이 강해진다. 간혹 집이 없는 인간들이 신에게 집을 지어달라고 기도 할 때도 있다. 이때 기적을 일으켜 집을 지어주면 선한 신이 되고, 반대로 태풍을 일으켜 집 없는 사람들을 전부 쓸어버리면 두려움을 주는 신이 된다. 어떤 신이 되든지 그것은 전적으로 유저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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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마다 수호신 개념의 크리처들이 존재한다. 크리처는 유저가 어떻게 키우냐에 따라 성향이 달라진다.>



[블랙 앤 화이트]는 신의 능력을 체험하는 재미와 크리처를 키우는 재미를 적절히 조화한 게임이다. [파퓰러스]가 좋은 신의 입장에서 악한 신을 물리치는 내용이라면, 이 게임은 선악의 개념까지도 유저가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신은 기적을 행하고, 인간의 믿음을 먹고 성장한다. 그것이 경외와 숭배에서 나오는 믿음이든, 두려움과 공포에서 나오는 믿음이든, 어쨌든 플레이어는 전지전능한 신이다. [블랙 앤 화이트]는 국내 발매에서 초도물량이 조기에 소진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또, 가장 똑똑한 게임 인공지능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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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아이를 구해 가족에게 데려다 주면, 사람들의 당신을 찬양할 것이다!>



2002년에는 [블랙 앤 화이트]의 확장팩 ‘크리처 아일’이 발매됐다. 확장팩에선 게임의 핵심요소인 크리처 키우기가 강화됐고, 더불어 크리처의 모험을 강조했다. 마을을 관리하는 시뮬레이션적 요소보다는 크리처의 육성과 스토리를 강조한 어드벤처적인 요소를 강화했다. ‘크리처 아일’은 원작에서 다소 아쉬웠던 부분을 채워줄 확장팩의 기능으로 손색이 없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신을 바라지 않는다
2005년에는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블랙 앤 화이트 2]가 정식 발매됐다. 이번에도 신의 입장에서 인간을 통솔하는 게임방식은 변함이 없다. 2편에서 달라진 점은 그래픽이다. 전작의 투박한 그래픽에서 벗어나 게임 속 세상을 세세하게 묘사해 놓았다. 특히 저녁노을이 지는 광활한 바다의 표현은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황홀하다. 2편에도 플레이어는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다. 게임방식을 조언해 주는 도우미들도 선과 악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진다. 재미있는 건 선 쪽의 도우미는 직설적이고 바른말만 하는 대신, 악 쪽의 도우미는 온갖 감미로운 말로 유저들을 재미있게 한다(예나 지금이나 바른 말은 듣기에 거북한가보다). 크리처는 5종류가 나오는데 선과 악에 따라 그 생김새가 변한다. 악하게 키우면 몰라볼 정도로 모습이 흉포하게 변한다. 2편에선 크리처를 직접 조종해 상대방과 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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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선 착한 쪽의 도우미와 악한 쪽의 도우미를 미리 선택할 수 있다.>



1편이 워낙 뛰어나서 그런지, 2편은 전작의 느낌을 업그레이드 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물론 게임의 퀄리티는 전작을 능가하지만, 무언가 새로운 느낌을 주는 요소는 다소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점에서 2편은 시장의 반응도 저조했다. 2편의 실패로 피터 몰리뉴의 창조의 동력은 조금씩 힘을 잃어갔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듯, 그의 하락세는 1년 전 만든 ‘페이블’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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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 등장하는 호랑이 크리처. 몬스터들이 침범하면 크리처들이 나서 마을을 보호해 준다.>



두 번째 찾은 초심, 혁신의 에너지는 멈추지 않았다

“페이블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게임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 이상의 평가를 받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죠.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 과대 선전된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 피터 몰리뉴 인터뷰 중

‘피터 몰리뉴’의 차기작 소식이 전해지자 게임업계는 또 한 번 술렁였다. 롤플레잉 게임 [페이블]은 전 세계 유저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작품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피터 몰리뉴’의 이름을 달고 나온 작품들은 늘 남달랐기 때문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적인 작품이었고, 한계에 도전하는 새로운 게임이었다. 사람들은 이번에도 깜짝 놀랄만한 게임이 나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피터 몰리뉴’의 작품이 아닌가. 이렇게 쌓인 기대는 어느 순간 개발자들이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까지 올랐다. 사소한 정보도 눈덩이처럼 부풀어져 루머를 키웠다. [페이블]은 당대 최고의 자유도를 보여줄 것이라 알려졌다. 주인공의 행동에 따라 게임세상 전체가 바뀌는 극한의 자유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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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자유도를 약속했지만 결국 현실의 한계에 부딪혀야 했던 [페이블].>



게임 내에서 이성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하며, 아이도 낳을 수 있다. 주인공의 모든 행동이 소문이 되고 그것이 게임세상에 영향을 끼친다. 나이에 따라 주인공의 얼굴까지 변한다는 극한의 사실성. 마치 현실세계를 고스란히 모니터 안으로 집어넣은 것 같은, 그야말로 최고의 자유도를 기대했다. 유저들은 미리부터 열광했다. 엑스박스 유통사 ‘마이크로소프트’도 [페이블] 개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희대의 대작이 될 것이라는 것에 누구도 의심하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연 [페이블]은 기대와는 너무도 달랐다. 지금까지 기대했던 요소들이 대부분 표현되지 않았다. 물론 게임의 자유도는 높았지만, 기존 RPG에 비하면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때는 MMORPG 같은 온라인 롤플레잉들 자리 잡고 있던 시기가 아닌가. 물론 게임 자체만 놓고 보면 흠잡을 데 없이 잘 만든 게임이다. 하지만 피터 몰리뉴의 이름값을 놓고 보면 조금은 부족한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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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보여준 [페이블2]와 국내에 완벽 한글화 되어 출시된 [페이블3].>



[페이블] 발매 후 실망한 유저들은 개발사에 항의했다. 결국 피터 몰리뉴는 홈페이지에 [페이블]에 대한 사과문까지 발표하기에 이른다. 혁신은 그를 최정상의 자리에 올렸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발목을 옥죄는 덫이 됐다. 그는 [페이블3]를 발매한 후 돌연 라이언헤드를 떠나 작은 벤처회사에 들어갔다. 작년 12월, 그는 ‘22캔스’라는 회사에서 [고더스]라는 아이폰용 모바일게임을 내놓았다. 과거 잘나가는 불프로그를 그만두고 작은 회사에 들어가 [블랙 앤 화이트]를 만든 것처럼, 그는 혁신의 동력을 찾기 위해 또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간 것이다. 피터 몰리뉴의 혁신에너지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역시 명가의 선택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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