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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패키지게임의 마지막 명작 [화이트데이]
[화이트데이]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TV에서 [박하사탕]이란 영화를 봤다. 영화는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까지, 주인공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속살을 드러낸 작품이다. 영화 도입부에 주인공 설경구가 달리는 열차 앞으로 뛰어들며 “나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는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특이하게도 영화는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주인공은 악덕사업가, 고문경찰, 광주진압 공수부대를 거쳐 어릴 적 꿈 많은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한 인간이 순수를 찾아가는 과정을 이렇듯 담담한 시선으로 그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손노리와 [화이트데이]가 생각났다. 손노리는 한국 게임계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게임사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로 한국게임의 여명을 밝혔고, [악튜러스]로 화려한 전성기를 수놓았다.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겪으면서도 그들은 패키지 게임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남들이 다 온라인게임으로 갈 때도 끝까지 남아 패키지게임을 지켰다. [화이트데이]는 한국 게임사의 마지막 순수이자, 가장 어두웠던 시대를 밝혔던 작품이다. 지금부터 영화처럼 한국게임의 순수했던 시절을 찾아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겠다. 10년 전, 어느 잡지사 편집실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3년 개발한 게임, 1년 만에 번들로...

“98년 법인전환하면서 손노리의 게임은 절대로 번들로 내지 않을 것이라고 유저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저희 게임을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얼마 전 그 약속을 깨버리게 되었습니다. 회사의 생리상 적자를 메워야 새롭게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새로 태어날 아이의 병원비를 위해 먼저 태어난 아이에게 앵벌이를 시키고 있는 것만 같은 참담한 심정입니다.”
- 손노리 이원술 대표의 호소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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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으면 도망쳐라! [화이트데이]는 한국 호러게임의 새로운 도전이다.>



2002년 10월, 피시파워진 회의실. [화이트데이]를 번들로 계약했다는 소식에 잡지사 기자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절대 번들로 내놓지 않겠다는 손노리의 게임이 아닌가! 그것도 발매 된지 1년 밖에 안 된 [화이트데이]가 아닌가. 컴퓨터게임 잡지 <피시파워진>(제우미디어) 2002년 11월호에 [화이트데이]가 정품번들로 나왔다. 서점을 찾은 유저들은 속된 말로 멘붕에 빠졌다. 복사의 유혹도 뿌리치고 정품으로 구입한 게임이 1년 만에 잡지번들 나와 버렸으니, 그 배신감이 오죽할까.

유저들은 [화이트데이]를 번들로 넘긴 손노리와 잡지사를 비난했다. 게시판에는 정품유저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이미 불법복제로 만신창이가 된 [화이트데이]는 끝내 번들로 팔리면서 또 한 번 논란거리가 됐다. 2002년, 이미 한국 패키지게임 시장은 종말을 맞았다. 특히 잡지사들의 과도한 정품게임 번들경쟁은 패키지 게임의 종말을 앞당겼다.

패키지게임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말부터 잡지사들은 정품게임을 번들로 내놓기 시작했다. 당시 잡지사 편집장의 주된 업무는 번들게임을 계약하는 것이었다. 제대로 먹힐만한 게임을 번들로 제공해야 잡지 판매부수가 늘어난다. 그래도 처음엔 오래된 고전게임을 번들로 내놓는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잡지사 편집장들이 모여 정품게임을 번들로 내놓지 말자고 합의한 적도 있었다(물론 이런 약속은 몇 달 만에 깨졌지만).

그러나 경쟁이 심해지면서 잡지사들은 발매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최신게임들을 번들로 내놓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 호에 2개 이상의 정품게임을 부록으로 끼워 파는 관행도 생겼다. 경쟁이 한참 심할 때는 3개 이상의 정품번들을 주는 잡지도 있었다. 잡지사는 최신게임을 번들로 계약하기 위해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수억 원을 쏟아 부었다. [디아블로], [퀘이크3], [문명4], [커맨드앤퀀커], [프린세스메이커] 같은 대작게임들도 줄줄이 번들로 나왔다. 인기게임이 번들로 나올수록 책은 잘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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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개발됐던 [화이트데이]는 발매 1년 만에 잡지번들로 나와 충격을 주었다.>



[화이트데이]를 번들로 제공한 <피시파워진> 11월호는 완판 됐다. 사람들은 잡지사들의 번들경쟁을 욕했지만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하지만 번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수록 정품게임의 구매심리가 위축됐다. 몇 달만 기다리면 번들로 나오는데 굳이 비싼돈 들여 정품을 살 이유가 없었다. 결국 잡지사의 번들경쟁은 한국 패키지게임시장을 몰락시키는 단초를 제공했다. 과도한 경쟁에 에너지를 소진한 게임잡지들도 하나둘 폐간되고, 지금은 단 한곳도 남아있지 않다. 한국 게임사의 뼈아픈 단상이다.

기자 출신인 필자가 번들의 폐해를 지적하는 이유는 당시 언론매체 또한 한국 패키지게임 몰락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해성사하는 심정으로 과거의 과오를 털어놓는 것이다.

번들로 나온 게임은 이미 상업적 가치가 끝났다고 봐야한다. 손노리는 [화이트데이]가 더 이상 팔리지 않을 것이라 판단해 게임을 번들로 내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손노리는 왜 이렇게 빨리 [화이트데이]를 번들로 넘겼을까? 다시 시간을 1년 전으로 돌려보자.


3천장 팔렸는데, 다운로드는 15만 건? 불법복제와의 전쟁!

“살 가치가 없다면 사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살 가치가 없으면 하지도 마십시오. 제작자들이 노력한 만큼 최소한의 결과라도 얻게 해주고 싶습니다. 제발 마지막 불씨는 꺼뜨리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 손노리 이원술 대표의 호소문에서 발췌

2001년 11월, 손노리는 4명의 네티즌을 경찰에 고소했다. [화이트데이]를 공유사이트에 유포시킨 혐의다. [화이트데이]는 당시 유저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작품이었다. 한국적 공포를 제대로 살린 이 게임은 제작기간 3년에 6억 원의 제작비를 투자한 대작게임이었다. 지금은 수백억을 투자한 온라인게임도 많지만, 당시 패키지게임에서 5억 원 이상의 제작비는 엄청난 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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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 광고. 손노리가 [화이트데이] 불법복제자 4명을 고소하면서 게임업계 전체에 불법복제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그러나 [화이트데이]는 발매당일에 크랙이 나왔고, 이틀 만에 심마니, 나누미 등의 공유사이트를 통해 불법복제판이 유포됐다.

손노리 측은 경악했다. 초기 판매량은 3,000장에 불과한데, 패치 다운로드 건수는 15만 건이 넘어 개발자를 허탈하게 했다. 50명 중에 1명이 정품을 사용하는 격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건 정말 심했다. 과거 불법복제는 주로 공 CD에 담아 음성적으로 유포됐는데,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대량으로 유포됐다. 속도나 규모에서 이미 통제불능의 수준까지 와버렸다.

손노리는 게임을 내놓을 때마다 불법복제의 쓴맛을 본적이 있다. 전작인 [악튜러스]도 불법복사 때문에 실패했다. 이대로 좌시할 수는 없었다. 급기야 손노리를 칼을 빼들었다. 최초 유포자 4명을 고소하고 대대적인 불법복제 근절 캠페인을 펼쳤다. 손노리는 불법복제 신고 사이트를 열었다. 다른 게임사들도 캠페인에 동참했다. 한국게임개발자협회는 손노리의 조치를 지지하고 불법복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불법복제 근절 성명서를 발표하고 불법 복제 전담반까지 신설했다. 대외적으론 사이버 수사대와 연계해 공유사이트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화이트데이]에서 시작된 불법복제와의 전쟁은 게임사 입장에선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이원술 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법적 조치로 불법복제를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복제를 당연시하는 의식’에는 변화가 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손노리가 비난의 대상이 됐다. 고발한 대상 중 미성년자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손노리는 미성년자를 고발한 인정머리 없는 업체로 낙인찍혔다. 즐겁고 유쾌한 게임으로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손노리의 이미지도 한순간에 무너졌다. 복사 유저들은 ‘자료의 공유정신’을 들먹이면서 게임사를 비난했다. 불법복제가 엄연히 죄인데도 불구하고 유저들은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게임은 그냥 복사해도 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물론 일부 의식 있는 유저들은 캠페인에 적극 동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에 그쳤다.

의외의 비난에 부딪히자 업체들도 부담을 느꼈다. 캠페인에 동참한 업체들은 하나 둘 발을 빼기 시작했다. 결국 불법복제와의 전쟁은 공허한 메아리만 남긴 체 흐지부지됐다. 불법복제와의 전쟁을 주도했던 손노리도 살길을 찾아야 했다. 손노리 이원술 대표는 “마지막 불씨는 남겨두고 싶다”는 눈물의 호소문을 게시판에 올려 그때의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화이트데이]사건은 한국 PC패키지 게임의 종말을 상징한다. 어떠한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은 불법복제를 잡을 수 없다는 좌절감은 한국게임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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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의 불법복제 근절의 노력은 결국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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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만큼 불법복제의 피해가 심했던 [쯔바이]. 결국 팔콤은 한국에 패키지게임을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업체들은 불법복제가 불가능한 온라인게임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화이트데이] 이후 불법복제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2002년 발매된 [쯔바이]는 팬들이 불법복제를 하지 않겠다는 결의문까지 발표했지만, 결국 복제의 희생양이 됐다. 같은 해 나온 [던전시즈]는 정식발매와 동시에 와레즈사이트에 한글패치까지 올라와 충격을 주었다. 게임업체들은 회사의 이미지를 의식해 불법복제 관련자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정부도 뒷짐만 졌다. 결국 [화이트데이]는 출시 1년 만에 잡지번들로 팔렸다. 3년을 공들여 만든 게임이 불과 1년 만에 그 상업적 가치를 다한 것이다.

그렇다면 손노리는 왜 그토록 엄청난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화이트데이]를 지키려 했을까? 다른 게임사들이 대부분 온라인게임 쪽으로 눈을 돌리는데 왜 패키지 게임을 끝까지 고집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다시 3개월 전으로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자.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

“[화이트데이]는 한국적 정서에 기반 한 두려움를 최대한 끌어내려 노력 했습니다. 게임의 등급 심의가 ‘15세 이용가’이므로 대단히 폭력적인 장면이나 혐오스러운 표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만, 게임 곳곳에 굉장히 무섭고 두려운 장면이 많이 있기 때문에 노약자나 임신부 그리고 심장이 약해서 걱정이 되는 분들은 게임의 플레이나 관람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화이트데이 발매기념 손노리 축사

2001년 9월 손노리의 기대작 [화이트데이]가 세상에 나왔다. 게임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은 평소 좋아하던 여학생 한소영에게 화이트데이 선물을 주려고 한다. 소심한 주인공은 화이트데이 전날, 몰래 소영의 책상에 사탕을 놓아두기 위해 아무도 없는 학교에 들어간다. 그러나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학교가 폐쇄되고 주인공은 귀신에게 쫓기며 학교를 탈출해야 한다. 각각의 비밀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게임은 최악의 공포로 치닫는다. 게임은 등장인물들의 세세한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여기에 멀티 엔딩을 도입해 여러 번 플레이 해도 질리지 않게 만들었다.

RPG가 아니라서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했던 유저들도, 막상 게임을 해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화이트데이]는 외국게임에서 느낄 수 없는 한국적 공포를 보여주었다. 배경 자체도 우리 일상에서 익숙한 학교를 선택했다. 90년대 인기를 누렸던 영화 [여고괴담]에서 묘사된 괴기스런 교내분위기를 충실히 표현해냈다. 칠판귀신, 머리귀신, 발소리귀신, 화장실귀신, 여우령 등 우리에게 친숙한(?) 도시괴담 속 귀신들이 총출동 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공포 때문인지 [화이트데이]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밤에 불꺼 놓고 하면 등골이 오싹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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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화이트데이 선물로 사탕을 주려고 학교에 찾아간 주인공은 그곳에 갇히게 된다.>



[화이트데이]는 한국적 공포라는 대중적 재미에 작품성까지 보탰다. 특히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의 [미궁]이란 작품을 메인테마로 사용해 품격을 높였다. 가야금 현의 깊은 울림과 한국적 한을 담은 음률은 사운드트랙 하나만으로도 게임을 구입할 가치가 충분했다. 미궁은 단순한 게임 OST로 끝나지 않았다. 청소년들에게 국악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당시 [화이트데이]를 하고 나서 국악에 관심을 가진 청소년들도 많았다고 한다. 황병기 선생도 공연장에서 “요즘 애들이 신기하게도 자신의 곡을 많이 찾아 듣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인상 깊은 사운드를 남겼다.

[화이트데이]는 게임 소외계층을 위한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공포물을 싫어하는 유저들을 위해 ‘이지모드’를 선택하면 가장 무섭다고 소문난 머리귀신이 등장하지 않는다(그만큼 게임에 나오는 귀신들은 무섭기로 악명을 떨쳤다). 여기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옵션까지 마련했다. [화이트데이]는 특히 소리가 중요하다. 귀신이 다가오거나 수위가 쫓아오는 등의 긴박감 넘치는 장면들은 대부분 소리로 표현된다. 사운드를 듣지 못하면 게임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그런데 한 청각장애인이 소리를 듣지 못해 게임을 진행할 수 없다는 글을 게시판에 올렸고, 손노리는 이를 받아들여 소리의 강약을 그래픽으로 표시하는 옵션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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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정말 지겹게도 따라다니는 수위.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진저리가 쳐진다!>



손노리는 [화이트데이]의 모드로 만든 [오~재미]라는 게임도 따로 내놓았다(하프라이프의 모드 카운터스트라이크 같은 개념이다). 이 게임은 학교운동회의 ‘박 터뜨리기’ 게임을 소재로 만든 멀티플레이 게임이다. [화이트데이] 제작에 사용된 ‘왕리얼엔진’은 손노리가 직접 만든 자체개발 엔진이다.

[화이트데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인 학교를 배경으로, 국악과 호러를 가미해 색다른 한국적 공포를 빚어냈다. 그 솜씨가 워낙 훌륭해 10년이 지난 지금 플레이해도 머리카락이 쭈뼛 설 만큼 무섭다. 그렇다면 [화이트데이]의 공포는 어떻게 구상됐을까? 시간을 3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RPG 명가의 화려한 외도

“저희는 사실감 넘치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체험을 몸소 겪었습니다. 특히 학교의 공포감을 직접 느끼려고 팀원 전원이 한밤중에 학교에 몰래 숨어드는 일도 했었죠. 마침 순찰을 도는 수위 아저씨 때문에 전원이 화장실에 갇히는 해프닝도 있었죠. 그때 느꼈던 긴장감과 스릴을 유저들에게 그대로 전달해 주고 싶었습니다.”
- 손노리 화이트데이 기획자 이정술

1999년 11월, 최고의 기대작 [악튜러스]가 발매되자 게임업계는 요동쳤다. [악튜러스]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창세기전3]과 함께 당대 최고의 기대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악튜러스]와 [창세기전3]는 90년대 게임업계 라이벌 ‘손노리’와 ‘소프트맥스’의 빅매치를 성사시키며 그 열기를 더했다. 그야말로 국내 RPG 팬들에겐 즐거운 ‘비명’이 절로 나왔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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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노리와 그라비티가 공동개발한 [악튜러스]. 창세기전 시리즈와 견줄 만큼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악튜러스]는 손노리가 ‘그라비티’와 공동개발한 작품이다. 사실 손노리는 게임의 기획만 담당했고 거의 모든 부분을 ‘그라비티’가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악튜러스]와 [라그라로크]는 다음에 따로 다룰 예정이다). 당시 손노리가 주력하고 있는 [화이트데이]는 어드벤처 게임이었다. RPG 명가 손노리가 어드벤처 게임을 만든다는 건 정말 의외였다. 당시 한국은 RPG와 RTS의 전성기였다. [스타크래프트]가 초대박을 치자 수많은 국내 게임사들이 RTS 개발에 몰두했다. RPG 장르도 인기였다. ‘손노리’와 ‘소프트맥스’, 두 S사는 [스타크래프트]에게 짓밟힌 한국게임의 자존심을 살리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유쾌한 스토리와 실험적인 시스템, 아기자기한 그래픽의 한국형 RPG는 나오기만 하면 무조건 팔리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주특기인 RPG를 마다하고 비주류 장르인 어드벤처에 도전한다니, 그 자체가 어드벤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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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화이트데이] 머리귀신, 거미귀신, 아기귀신. 정말 귀신이란 귀신은 전부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머리귀신은 워낙 무서워서 ‘이지모드’에선 뺐다고 한다. 간이 약한 유저는 이지모드를 하도록.>



손노리는 여기에 한술 더 떴다. 1인칭 시점의 호러게임을 구상한 것이다. 당시 1인칭 시점의 게임(FPS)은 외국게임사의 전유물이었다.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외국회사만 만들 수 있는 장르다. 국내 게임사들은 외국에서 오픈한 엔진 소스를 사용해 게임을 개발하는 처지였다. 손노리는 외국 기술력에 의지하지 않고 ‘왕리얼 엔진’을 자체 제작했다. 왕리얼 엔진은 [화이트데이]의 긴장감을 살리는데 가장 적합한 국산엔진이다.

게임방식도 독특하게 구성했다. 일반적인 FPS의 경우 주인공이 무기를 들고 괴물을 사양하는 슈팅방식이 대부분이다. [둠], [퀘이크], [하프라이프] 같은 게임들이 대부분 슈팅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화이트데이]에선 주인공이 무기를 휘두르지 않는다. 도망치고, 피하고, 숨는 행동을 통해 호러게임이 주는 극한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개발자들은 최대한 사실적인 공포를 표현하기 위해 실제 흉가를 찾거나 오컬트 문화를 연구했다고 한다.

게임에서 주인공을 지겹게 쫓아다니는 수위 캐릭터 또한, 실제 제작진들이 야간에 학교를 체험 할 때 만났던 수위 아저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손노리는 게임기획을 마치고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RPG를 주로 개발해 왔던 손노리에게 [화이트데이]는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였다. 한국 패키지 게임시장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란 걸 그들은 확신했다. 패키지게임에 대한 신념은 [화이트데이]를 제작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그렇게 해서 3년을 개발에만 몰두했다. 이제 다시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자. 90년대 패키지게임 로망의 시대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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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각각의 인물에 따라 엔딩이 다르게 나온다.>



패키지게임 로망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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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원술 대표, 손노리 페스티벌>


“만일 미래에 모든 (게임)유통이 인터넷으로 이루어지면, 예를 들어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게임을 인터넷에서 다운 받을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오면, 패키지 시장이 더 이상 존재치 않게 되겠지요. 어쨌든 패키지게임이 완전히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손노리 이원술 사장의 <피시파워진> 인터뷰 중

필자가 처음 신입기자 명함을 달고 찾아간 곳은 서울 동교동 어딘가에 위치한 손노리 개발실이었다. 강철제국을 만든 손노리 이원술 사장을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그는 다소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갓 입사한 신입기자의 어눌한 질문을 유쾌한 농담으로 받아쳤다(이때는 정말 진땀을 흘렸다). 누구든 스스럼없이 대하는 그의 이런 모습은 ‘손노리’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그래선지 90년대 손노리는 유독 팬들이 많았다. 라이벌인 ‘소프트맥스’가 진지한 문학도를 연상시킨다면, ‘손노리’는 유쾌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오락부장(?) 같은 느낌이랄까. 당시 청소년들이 가장 닮고 싶은 게임 개발자로 이원술 대표가 늘 꼽혔다.

손노리는 매년 ‘손노리 페스티벌’을 개최해 유저들과 호흡을 맞췄다. 반짝이 옷을 입고 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이 대표의 모습에서 초창기 한국게임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보인다. 이때는 개발자와 유저의 관계가 지금같지 않았다. 지금처럼 공급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아닌, 게임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즐기는 친구같은 사이였다. 적어도 이 당시 손노리는 연예인에 버금가는 팬덤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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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노리의 초창기 작품 [강철제국](좌)과 [다크사이드 스토리](우). 추억의 TV프로 ‘우정의 무대’를 패러디 했다. 이렇듯 손노리 게임은 깨알같은 패러디가 가득하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를 성공시킨 손노리는 이후 [다크사이드 스토리(액션)], [강철제국(전략형 RPG)], [포가튼사가(RPG)]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게임을 내놓았다. 기존의 것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회사였다.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개발하면서 손노리 만의 메인브랜드를 개발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소프트맥스’하면 자동적으로 [창세기전]이 생각나는 것과는 달리, 손노리의 대표작 하면 일단 고민부터 든다. 그만큼 다양한 게임들을 만들어 왔다는 방증이다. 손노리 게임들은 당시 게임세대의 감성을 제대로 파고들었다. 생뚱맞게 ‘손노리맨’이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불법복제를 풍자하는 등 다양한 패러디도 손노리게임의 매력이다. 유쾌한 패러디와 장난기 넘치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손노리표 게임들은 나오는 족족 깊은 인상을 주었다. 물론 흥행에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손노리가 일구어 놓은 패키지게임의 로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90년대 중반, 온라인게임들이 등장하면서 패키지게임은 서서히 무대에서 퇴장할 준비를 해야 했다. 이원술 사장은 레벨노가다와 아이템거래 같이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는 온라인게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대신 재미있는 스토리와 색다른 발상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는 패키지게임에 애정을 쏟았다. 그는 패키지게임이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비록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 뒤처지게 됐지만, 패키지게임을 지키려는 그의 신념만은 충분히 인정받아 마땅하다. 자! 이제 종착역에 다 온 듯하다. 패키지 로망의 시대를 지나 한국게임의 가장 순수했던 시절인 1994년, 그 해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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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손노리군. 무서워 벌벌 떠는 와중에서도 ‘빵’ 터지게 한다. 손노리가 낳은 최고의 캐릭터.>



한국게임의 원년 1994, 그 순수했던 시절
1994년은 한국 게임계의 원년으로 통한다. 90년대 초는 게임 자체가 생소한 분야라 제대로 된 교육기관도 없었다. 당연히 게임전문 인력을 구하기도 힘들었다. 그 시절 대학을 졸업한 이원술 씨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사설학원인 게임스쿨에 입학했다. 앞서 [바람의 나라] 편에서 언급 했듯 한국 온라인게임의 산실이 ‘카이스트’라면, 패키지게임의 뿌리는 ‘게임스쿨’이다. 이원술은 국내 최초의 게임개발 학원인 ‘게임스쿨’ 출신 개발자다. 당시 게임스쿨의 모회사인 ‘소프트라이’는 ‘손노리’라는 프로젝트팀을 꾸리고 있었다. '박준혁', ‘박찬규’, ‘서관희’, ‘남영식’ 등 6명의 친구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팀이다. 이원술은 93년 손노리 멤버로 합류해 게임의 그래픽과 기획을 담당했다.

어느덧 팀의 리더를 맡게 된 그는 한국형 RPG게임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손노리 팀원들은 조그마한 옥탑방에 개발실을 차리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게임제작에 몰두했다. 그러나 맨손으로 시작한 초짜 개발자들에게 RPG 개발은 힘든 고난의 연속이었다. 과로로 쓰러지는 팀원이 속출했고, 이원술 대표 자신도 폐렴 때문에 고생을 했다고 한다. 이런 노력 끝에 나온 게임이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다. 1994년 발매된 [어스토니시아]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게임 패키지만 15만장이 팔려나갔다. 당시 PC패키지 게임이 15만장 팔린 것은 그야말로 대박 중에 초대박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한국게임은 마치 용이 승천 하듯 힘차게 웅비했다. [이스2 스페셜(만트라)], [일지매: 만파식적(단비시스템)], [리크니스(소프트맥스)], [그날이오면4(미리내소프트)], [슈퍼샘통(새론소프트)] 등 초창기 주옥같은 게임들이 1994년 쏟아졌다. 그런 의미에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한국게임의 봇물을 터뜨린 기념비적인 게임이다. 이후 소프트라이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툴을 이용해 [포인세티아]를 내놓았지만 조악한 게임성으로 유저들에게 외면 받았다. 1998년 손노리 팀은 소프트라이에서 독립해 정식 법인회사로 등록했다. 물론 4년간 고생했던 셋방살이 신세도 청산했다(손노리 팀은 소프트라이 산하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은 어려웠던 시절을 패키지게임에 대한 열정으로 견뎌 왔다.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간 손노리는 이후 수많은 명작을 남기며 한국게임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때가 한국 패키지게임의 가장 순수했던 시대가 아닌가 싶다.

이제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끝났다. 다시 시간을 20년 후인 현재로 되돌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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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게임의 시작을 알린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사진은 2002년 발매된 리메이크 판).>



에필로그
[화이트데이]의 좌절로 손노리는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2001년 11월, 손노리는 로커스홀딩스(현재 CJ E&M의 전신)에 편입됐지만, 2년간 별다른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결국 다시 분사한다. 이후 손노리는 둘로 갈린다. 패키지게임을 고수하려는 이원술 사장과 온라인게임에 주력하자는 서관희 이사는 결국 갈라서게 된다. 서관희 이사는 손노리에서 나와 ‘엔트리브소프트’를 창업했다. 이곳에서 그는 온라인 골프게임 [팡야]와 판타지 경마게임 [엘리샤]를 만들어 히트 쳤다.

남아있는 손노리 멤버는 GP32용으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리메이크 버전을 내놓고, 소니와 퍼스트파티 계약을 맺는 등 콘솔게임 개발에 주력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또, 구름엔터테인먼트에 합류해 [어스토니시아 온라인]을 개발했지만 좌초되고, 이원술 대표는 손노리를 떠나 CJ E&M에 합류해 게임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이원술 이사가 몸 담고 있는 턴온게임스는 모바일게임 [다함께 차차차]를 만들어 CJ E&M에 대박을 안겨줬다.


“나 돌아갈래!” 한국 패키지게임의 부활을 꿈꾸며...
누군가 필자에게 한국게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을 들라면, 그것도 딱 하나만 콕 찝어 말하라면, 난 주저 없이 [화이트데이]를 꼽는다. 눈물나는 감동을 선사한 [창세기전]도, 온라인게임의 신세계를 열어젖힌 [바람의 나라]도, 사이버 세계의 역사를 연출한 [리니지]도 [화이트데이]에 비할 수는 없다. 단순히 게임의 퀄리티를 따져서 그런 게 아니다.

[화이트데이]는 패키지시대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검증된 RPG의 길을 버리고 ‘어드벤처’에 과감히 도전했다. 마니아 성이 강한 ‘공포물’을 선택한 것도 대단한 용기다. 그러면서도 심장이 약한 유저들과 사운드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 등 게임 소외층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화이트데이]가 시작한 불법복제와의 전쟁은 비뚤어진 게임시장에 대한 마지막 ‘절규’였다. 이런 게임이 불법복제로 인해 처절히 난도질당한 채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한국게임사의 비극이다. 이렇듯 [화이트데이]는 한국 패키지 게임 10년의 역사를 압축해 놓은 게임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서랍 속 먼지가 풀풀 쌓인 [화이트데이] CD를 꺼내 플레이하곤 한다. 현란한 그래픽이 판치는 요즘 시대에도 [화이트데이]는 여전히 무섭고, 재미있고, 정겹다. 과거 패키지게임에 대한 그리움과 끝내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섞여 가슴 한 켠을 시리게 한다. ‘나,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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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여자친구 한소영에게 사탕을 주고 학교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 패키지게임의 아련한 추억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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