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 Form
img01.jpg

수많은 실패를 딛고 변신을 거듭해온 [툼레이더]


[툼레이더]의 영화제작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의 관심은 누가 ‘라라 크로프트’ 역을 맡을 것인가에 쏠렸다. 라라 크로프트는 묘한 매력의 캐릭터다. 몸에 착 달라붙은 탱크 탑과 짧은 핫팬츠, 허리춤에 쌍권총을 차고 체조선수처럼 우아하게 공중을 활강하는 그녀는 여성의 ‘섹시함’과 남성의 ‘강인함’을 두루 갖춘 캐릭터다. 과연 어떤 배우가 이 역할을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 너무 늙었다.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 너무 식상하다. 주인공 캐스팅만 놓고 갑론을박이 거셌다.

안젤리나 졸리가 캐스팅 됐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졸리 자신도 라라 역을 맡으면서 헐리우드 최고 스타로 등극했다. [툼레이더]는 여배우의 인생을 바꾸었다. 안젤리나 졸리는 캄보디아에서 [툼레이더] 촬영을 하던 중 현지 아이들을 비참한 현실을 보고, 세계 난민들을 어려운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때부터 그녀는 유엔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세계 각지의 난민들을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주변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늘 당당하게 사는 그녀는 어느새 라라 크로프트와 닮아 있었다. 관능적인 외모 안에 약자를 돕는 따뜻한 마음도 비슷하다. 한 여배우의 가치관을 바꾼 라라 크로프트는 단순한 게임캐릭터 이상의 존재였다.


3D의 시대, 어떤 캐릭터를 만들 것인가?
90년대 초, 전 세계 게임 시장에 3D 그래픽의 물결이 몰려왔다. 자고 일어나면 화면이 바뀌어 있을 정도로 그래픽 기술이 발전했던 시기다. 기술의 발전은 많은 혁신가의 꿈을 깨웠다. 3D 폴리곤 그래픽은 시장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툼레이더]를 개발한 아이도스는 비디오 압축 기술을 개발하는 신생 회사였다. 당시 아이도스 경영진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기술은 있지만, 그것을 구현할 콘텐츠가 부족했다. 직원 중 대부분은 그래픽 전문가였고 게임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이도스는 실력 있는 게임개발사를 인수하기로 했다. 그리고 당시 평범한 회사에 불과했던 ‘코어디자인’을 인수했다. 아이도스의 기술과 코어디자인의 콘텐츠가 만나 [툼레이더]를 탄생시킨 것이다.

당시 코어디자인 개발자들은 3D 어드벤처게임을 구상하고 있었다. 주인공이 입체적인 퍼즐을 풀어가면서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가장 중요한 작업은 각 스테이지를 3D로 어떻게 구현하느냐는 것이다. 처음 게임 컨셉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같은 구성이었다. 아마존 정글이나, 이집트 피라미드 같은 미지의 장소에서 보물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각 스테이지에는 수많은 함정들과 퍼즐이 존재하고, 이것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게임이다. 제목도 무덤 ‘도굴꾼’을 뜻하는 [툼레이더]로 지었다.

게임의 전체적인 구상은 완성됐는데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바로 주인공 캐릭터다. 제작진들은 기존 액션게임에서 흔히 나오는 근육질의 남자캐릭터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식상했다. 이리 뛰고 저리 구르며 함정을 피해야 하는 게임에서 람보 같은 근육질 캐릭터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인디아나 존스의 짝퉁 캐릭터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뭔가 새로운 느낌의 캐릭터가 필요했다. 수차례 논의 끝에 아이도스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기로 했다.

당시 게임에선 맨파워가 강했다. 여자 캐릭터는 거의 부속품 취급받았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결국 제임스 본드 옆에서 눈요기거리만 제공하는 ‘본드 걸’ 신세를 면키 어려웠다. 피치공주가 아무리 예뻐도 마리오가 구해줘야 얼굴 한번 내 비칠 수 있다. [페르시아의 왕자]나 [마계촌]의 공주님들은 남자주인공의 전리품으로써 존재의미가 있다. [프린세스메이커]의 따님도 왕자와 결혼해 팔자 고치는 게 목표 아닌가. 하다못해 고슴도치 소닉도 수컷이다. 게임 속 남자는 항상 능동적이고, 여자는 늘 수동적이었다. 이런 남성 위주의 문화에서 여자를 주인공으로 쓴다는 건 그 자체가 모험이었다.


람보가 될 뻔 했던 라라

img02.jpg
[툼레이더] 1편. ‘라라 크로프트’라는 희대의 캐릭터를 배출했다

내부의 반발도 심했다고 한다. 람보, 제임스 본드 같은 흥행성이 보증된 캐릭터와는 달리, 검증도 안 된 여자 캐릭터를 도입하는 건 위험부담이 컸다. 여자를 주인공으로 쓴 게임이 거의 없었을 뿐더러, 잘못하면 분위기만 망칠 수 있다. 그들은 영화 쪽에서 답을 찾으려고도 했다. 1990년대 초, 영화 속 여주인공의 생존방식은 두 가지였다. 시고니 위버(에일리언)나 사라코너(터미네이터)처럼 엄청 강하거나, 샤론 스톤(원초적 본능)처럼 엄청 섹시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남자들에게 굴복할 바엔 죽음을 달라”며 절벽으로 다이빙 한 델마와 루이스 정도다. 아무리 뒤져봐도 게임에 맞는 주인공을 찾기 힘들었다.

제작진은 남자다운 캐릭터를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캐릭터가 ‘라라 크루즈(Lala Cruz)’라는 이름의 남미 여전사였다. 라라 크루즈는 람보와 같은 근육질 여성 캐릭터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기존 남성 캐릭터를 여성으로 바꾼 것에 불과했다. 좀 더 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의 여성 캐릭터가 필요했다. 게임은 거의 만들었는데, 캐릭터 때문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그들은 게임 시스템적으로 다시 접근했다.

우선 액션 어드벤처의 특성상 유연한 신체적 기술을 겸비한 캐릭터가 필요했다. 장애물을 피하고 퍼즐을 풀어나가는 게임이기 때문에 움직임이 둔한 남자보다 유연한 여성이 더 어울렸다. 그러자면 우아함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여성스러운 캐릭터라야 한다. 여기에 대중에게 익숙한 남자 캐릭터의 이미지를 끼워 맞췄다. 인디아나 존스의 지성미, 람보의 강인함, 제임스 본드의 시크한 매력까지 멋진 남자들의 요건을 모두 아우른 여성캐릭터를 창조했다. 엘리트 교육을 받은 젊고 부유한 영국 귀족이라는 독특한 개인사를 배경에 깔았다. 주인공의 이름은 ‘라라 크로프트’라고 지었다.

결국 이러한 시도는 대성공 거뒀다. 라라는 여성적 요소와 남성적 요소를 함께 가진 양성적 캐릭터다. 38-22-36(실제 공개된 라라의 몸매 사이즈)의 비현실적인 몸매는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했다. 라라의 몸매 사이즈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라라 크로프트를 제작한 캐릭터 디자이너는 자신의 여동생을 모델로 실제 여성과 비슷한 형태의 캐릭터를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실수로 마우스를 잘못 눌러 가슴 사이즈가 두 배 이상 커졌다고 한다. 다시 수정하려는데 주변 개발자들이 “지금 것이 더 좋아 보인다”며 그대로 가기로 했다. 전 세계 남성들을 설레게 만들었던 라라의 볼륨감 있는 몸매는 이렇듯 개발자의 사소한 실수로 만들어 진 것이다.

그녀는 여성인 동시에 남성적 매력도 아울렀다.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쌍권총은 홍콩 느와르의 주윤발을 연상케 한다. 이밖에 가죽장갑, 오토바이, 수류탄 등 남성성을 대변하는 아이템들을 가지고 다닌다. 성격 또한 웬만한 남성 캐릭터보다 더 능동적이고 터프하다. 여성과 남성의 매력을 적절히 배합해 기존에 없는 새로운 캐릭터가 탄생한 것이다.

제작사는 라라를 부각시키기 위해 아예 게임에서 남자주인공을 빼버렸다. 남녀의 매력을 모두 갖춘 이 매력적인 캐릭터에게 거추장스러운 남친 따위는 필요 없었다. 모든 것이 그녀 혼자면 충분했다.


성공한 여성 캐릭터, 기네스북에 오르다
“라라 크로프트는 여성과 남성 플레이어 모두를 만족시켜주는 양성적 캐릭터로써 성공을 거둘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타고난 생물학적 성에서 벗어나 반대의 성 역할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송기원, 윤주성(컴퓨터 게임 속 여성 캐릭터의 양성적 요소에 관한 연구 논문 발췌)

[툼레이더]가 발매되자 게이머들은 열광했다. 사람들은 각진 네모 턱, 두꺼운 입술, 38사이즈의 과장된 몸매, 말보다 행동이 앞선 그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게임은 수 백 만장이 팔리며 전 세계에 라라 크로프트 열풍을 일으켰다. 그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게임 속 여성 캐릭터의 변화는 시작되고 있었다.

img03.jpg
해외에서는 [툼레이더] 관련 테마공원도 운영되고 있다.

그녀의 인기는 게임 안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라라 크로프트는 웬만한 월드스타 못지않은 유명세를 떨쳤다. <뉴스위크>, <롤링스톤>, <타임> 등 전 세계 200여개의 잡지에 표지모델로 등장했다. <타임 디지털>에선 라라 크로프트를 빌게이츠, 스티브 잡스, 조지 루카스와 함께 미국의 사이버 엘리트 5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가장 성공한 게임 여주인공으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고국인 영국에선 기사작위를 받고 사이버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사람들은 게임 캐릭터에 불과한 라라 크로프트를 실존인물처럼 대했다.


라라의 전성시대, 그리고 추락
1996년에 발매된 [툼레이더] 1편은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가 배경이다. 서커스 공중곡예 같은 아슬아슬한 액션과 어드벤처와 퍼즐을 합쳐놓은 완성도 높은 게임성으로 발매되자마자 큰 성공을 거뒀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게임 레벨 디자인은 유저들의 도전욕구를 자극했다. 게임이 너무 정교하게 설계되어 난이도가 다소 어렵게 느껴졌다. 특히 마지막 스테이지인 ‘아틀란티스’는 머리에 쥐가 날 정도의 어려운 퍼즐과 박진감 넘치는 액션으로 최고의 몰입감을 선사했다. 어려운 과정을 뚫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묘미를 제대로 살린 것이다. 이후 두 개의 스테이지가 추가된 확장팩이 따로 나와 인기를 끌었다. 에이도스는 [툼레이더]의 성공으로 260만 불의 적자를 1년 만에 1450만 불 흑자로 바꾸어 놓았다.

1997년, [툼레이더2: 시안의 단검]이 발매됐다. 1편이 지하무덤 같은 폐쇄공간이 배경이라면, 2편은 도시나 사원 같은 공간도 추가됐다. 라라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험을 하는 기존 스토리를 그대로 따랐다. 탈것도 추가되어 베니스에서 배로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압권이다. 무기와 의상이 추가됐고 동양적인 분위기의 스테이지도 등장한다. 그러나 시스템 상 전작에 비해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어 새로운 것을 원하는 유저들에게 아쉬움을 줬다. 2편 또한 전 세계 800만장 이상 팔리며 라라 크로프트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2편도 두 개의 확장팩이 따로 나왔다.

img04.jpg

[툼레이더 2]. 보트를 타고 베니스를 돌아다니는 장면이 인상 깊다.


img05.jpg
800만장 이상이 팔린 [툼레이더 2]. 시리즈의 전성기였다.

1998년에 발매된 3편은 잘나갔던 [툼레이더] 시리즈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긴 작품이다. 3편은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 파편을 발굴하는 게 목표다. 주인공은 인도, 런던, 네바다, 남극 등 전 세계를 돌며 운석파편을 구해야 한다. 세부적인 시스템도 추가됐고, 그래픽도 향상됐다. 어두운 곳에서 조명을 키거나 각종 특수효과들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게임의 배경이 넓어진 대신 사양과 난이도가 덩달아 올랐다. 안 그래도 어려운 게임으로 악명(?)을 떨쳤는데, 3편의 극악의 난이도는 유저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잘나갔던 [툼레이더] 시리즈는 3편부터 한계를 보였다. 시리즈를 너무 우려먹는다는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식 시리즈에 확장팩까지 따로 발매하는 건 아무리 봐도 지나친 상술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불평이 무색할 정도로 게임은 잘 팔렸다. 제작사 또한 바꿀 의사가 전혀 없었다. 지금도 잘 나가는데 애써 혁신을 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안일한 생각이 이후 [툼레이더] 시리즈를 나락으로 빠지게 하는 함정이 됐다. 이어 발매된 4편부터 라라의 방황이 시작됐다.

img06.jpg
[툼레이더3] 표지. 변화 없는 게임성으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는다.

img07.jpg
[툼레이더3]. 인도부터 남극까지 스케일이 가장 컸던 시리즈.


무덤 속에 들어간 라라
1999년 시리즈 4편 격인 [툼레이더: 마지막 계시록]이 발매됐다. 이번 작품부터 시리즈 번호를 따로 붙이지 않고, 부재를 붙이기 시작했다. 4편은 매년 반복되는 [툼레이더] 시리즈의 패착을 그대로 답습했다. 기술적으로나 시스템적으로나 전혀 발전이 없었다. 오히려 게임 스케일이 축소됐다. 전작이 전 세계를 배경으로 했다면, 4편은 이집트 하나에만 국한됐다. 충격적인 건 제작자가 4편에선 라라 크로프트를 죽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는 것이다. 라라가 무너지는 사원에 깔려 사라지는 4편의 엔딩은 충격을 넘어 공황상태에 빠뜨렸다. 변화를 주려면 게임 콘텐츠나 업그레이드 할 것이지, 어설프게 주인공을 죽이는 무리수를 범한 것이다. 라라의 죽음은 유저들이 [툼레이더]에 등을 돌리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2000년, 시리즈 5편 격인 [툼레이더: 크로니클스]가 발매됐지만 분위기는 예전과 달랐다. 죽은 라라의 주변인물들이 그녀와의 과거를 회상 한다는 식의 억지 스토리를 짜내서 시리즈를 이어갔다. 그래픽이나 퍼즐의 구성도 전작에 비해 떨어졌다. 유저들은 죽은 줄 알았던 라라가 5편에서 다시 살아날까 은근히 기대했는데, 게임은 아무런 답을 주지 않고 끝을 맺었다. 라라의 부활을 기대했던 유저들은 엔딩을 보고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에 또 한번 치를 떨었다.

img08.jpg
4편에선 뜬금없이 라라가 죽는 걸로 끝난다. 이때부터 [툼레이더]의 인기는 급격히 떨어진다.

img09.jpg
5편 격인 [툼레이더 크로니클]. 라라의 주변 사람들이 그녀의 과거를 회상한다는 식의 억지 설정으로 물의를 빚었다.

그리고 2003년, [툼레이더] 시리즈 최악의 실패작이 세상에 나왔다. 6편 격인 [툼레이더: 어둠의 천사]는 시리즈 전체에 먹칠을 한 타이틀이다. 얼마나 조악했으면 코어디자인 사장마저 공식석상에서 자신의 게임에 불만을 터뜨릴 정도였다(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에게 또 한번 비난을 받았다). 매력적인 그녀는 온데 간데 없고 어설픈 움직임에 난해한 조작감으로 일관된 멍청한 폴리곤 캐릭터가 되어 돌아왔다. 스토리는 더 황당했다. 4편에서 죽은 줄 알았던 라라가 아무 설명도 없이 뜬금없이 살아나와 화면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사람들은 라라가 귀신이 되어 돌아왔냐며 억지 스토리를 비아냥거렸다.

문제는 성급한 개발 일정 때문에 벌어졌다. 영화 [툼레이더2] 개봉날짜에 맞춰 무리하게 일정을 앞당기다 보니 탈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여주인공의 섹스어필만 관심을 둔 경영진의 마인드에 염증을 느낀 개발자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개발에도 누수가 생겼다. 6편은 유저들의 외면 속에 흥행에 참패했다. 국내에서 더빙까지 한글화 해 발매됐지만 반응은 저조했다. 6편을 기점으로 [툼레이더]는 더 이상 잘나가는 프랜차이즈가 아닌,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라라 크로프트 말고도 매력적인 캐릭터는 차고 넘쳤다.

img10.jpg
[툼레이더] 시리즈를 나락으로 빠뜨린 어둠의 수호자(6편).

img11.jpg
한국에선 음성까지 한국말로 더빙되어 나왔다. 남은 건 우스꽝스러운 총 싸움밖에 없었다.


라라의 변신, 부활의 날갯짓!
[툼레이더]는 6편을 끝으로 당분간 유저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 사이 [툼레이더] 개발은 기존 ‘코어디자인’에서 ‘크리스탈 다이나믹스’로 넘어갔다. 6편을 보고 실망한 아이도스가 개발사를 바꿔버린 것이다.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었던 ‘크리스털 다이나믹스'에게 [툼레이더]는 새로운 기회이면서 한편으론 부담이었다. 그들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 새로운 [툼레이더]를 만들었다(실제로 코어디자인 출신 개발진들이 크리스털 다이나믹스로 다수 이동했다고 한다). 2006년 발매된 [툼레이더: 레전드]는 죽어가는 시리즈를 기사회생시킨 작품이다.

img12.jpg
제작사가 바뀐 후에 발매된 [툼레이더 레전드]. 7편째 시리즈다.

img13.jpg
기존의 각진 캐릭터에서 벗어나, 보다 사실적인 라라 크로프트로 변신했다.

‘레전드’는 조작과 시스템을 완전히 개선했다. 6편의 뻣뻣한 느낌에서 벗어나 좀 더 부드럽고 유연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라라의 변신이 화제가 됐다. 여성의 몸을 비현실적으로 표현한 전작과는 달리, ‘레전드’는 현실의 여성과 비슷한 라라가 등장했다. 가슴만 큰 폴리곤 캐릭터가 실제 현실의 인간으로 환생한 느낌이랄까. 라라가 전신성형을 하고 왔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 정도였다. 또, 퍼즐요소를 줄이고 액션에 집중했다. 전작들이 라라 혼자만의 독무대였다면 ‘레전드’부터는 다양한 주변인물들이 나와 그녀는 돕는다. ‘레전드’는 300만개 이상 팔리며 부활에 성공했다. 물론 유저들도 새롭게 변신한 라라 크로프트를 환영했다.

img14.jpg
[툼레이더: 애니버서리]. 1편의 리메이크 버전이다.

img15.jpg
1편을 충실히 복원하면서도, 퍼즐과 액션이 보다 정교하게 바뀌었다.

이후 [툼레이더]는 조금씩 제 모습을 갖춰갔다. 2007년 1편의 리메이크 작인 [툼레이더: 애니버서리]가 발매됐다. 게임의 스토리나 구성면에서 오리지널 원작을 충실히 복원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원작에선 폴리곤 덩어리 캐릭터가 나오지만, 리메이크 작은 진짜 사람다운 라라가 등장한다는 것.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준 이전과는 달리 밧줄이나 도구를 이용하는 라라의 모습이 더욱 현실감 있게 와 닿았다.

2008년 [툼레이더]의 새 시리즈인 언더월드가 출시됐다. 퍼즐과 액션을 적절히 조화시켜, 시리즈 중 난이도가 가장 낮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더블 타겟팅과 벽 타기 등의 다양한 액션이 추가됐고, 게임의 스케일도 커졌다. 지금까지 마니아 성향이 강했던 [툼레이더]가 대중적으로 파고드는 계기를 마련한 작품이다. 라라도 인간미 넘치는 여전사로 그려졌다. 이 작품에선 가짜 주인공과 외모가 똑같은 라라 크로프트가 등장해 관심을 모았다. 한편, ‘언더월드’는 유저들이 만든 누드패치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정식게임도 아닌 데모버전부터 누드패치가 유포되어 개발사를 당황시키기도 했다.

img16.jpg
9번째 시리즈인 [툼레이더 언더월드], 이 작품을 끝으로 [툼레이더] 시리즈는 스퀘어에닉스 손에 넘어간다.

img17.jpg
괜찮은 수작이었지만 유저가 원하는 파격적인 변신은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언더월드’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150만장 정도 팔렸지만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결과였다. 당시 미국의 경제난으로 게임시장이 위축된 것도 부진의 원인이다. 재정난에 시달린 에이도스는 대규모 인원감축에 들어갔다. [툼레이더]는 또 한 번 위기를 맞았다. 결국 에이도스는 일본 게임사 ‘스퀘어에닉스’에 인수됐다. 스퀘어에닉스는 [툼레이더] 브랜드를 확보하기 위해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툼레이더]는 일본게임사 ‘스퀘어에닉스’의 품에서 새롭게 출발했다. ‘스퀘어에닉스’에 둥지를 튼 후 디아블로 형태의 쿼터뷰 액션게임 [라라 크로프트와 빛의 수호자]가 출시됐다.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 실험적인 작품이다.

img18.jpg
디아블로 같은 쿼터뷰 시점으로 개발된 [라라크로프트와 빛의 수호자]. 툼레이더의 외전격 타이틀.


파격! 새로운 툼레이더로 돌아오다
“배트맨 시리즈는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성공적으로 변신했습니다. 이제는 ‘배트맨’보다 ‘다크나이트’로 더 유명하죠. 툼레이더도 마찬가지입니다. 차기작을 개발할 때는 정말 모든 것을 다시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이도스 CFO 로버트 브랜트(<타임> 인터뷰 중)

솔직히 필자는 [툼레이더] 시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화려한 3D그래픽에 반해 몰입했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건 라라의 섹스어필밖에 없었다. 그나마 지금은 이 나이든 누님 캐릭터에 어떠한 흥미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동안 수많은 시리즈가 나왔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오직 라라 크로프트에게만 맞춰져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텝들은 일당도 못 받는데 주연 배우 몇몇이 대부분의 출연료를 챙기는 영화판의 현실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캐릭터가 게임을 덮어버리면, 게임은 산으로 간다. [툼레이더]가 혁신의 기로에서 늘 멈칫거린 이유도 라라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게 [툼레이더]의 한계인 줄 알았다.

img19.jpg
[툼레이더]. 기존의 시리즈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라라 크로프트가 등장한다.

하지만 작년 E3에서 접한 [툼레이더] 신작의 첫인상은 나의 착각을 깨기에 충분했다. 우선 라라 크로프트가 달라졌다. 외모만 바뀐 게 아니다. 그녀의 행동과 내면의 모든 것이 완전히 딴 사람이 됐다. 넘어지고, 아파하고,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다. 낭떠러지를 구르고, 늑대에게 물리고, 악당에게 쫓기며 공포에 떨고, 상처를 움켜쥐고 비틀거리는 게임 속 그녀는 내가 알던 폴리곤 덩어리 여전사가 아니었다. 이건 변신이 아니라 파격 그 자체다.

충격을 받은 건 나뿐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툼레이더]는 작년 E3에서 가장 기대되는 게임으로 선정됐다. 이번 신작에서 라라는 자신을 버리고 주변 환경에 그녀를 맞췄다. 영국 귀족출신이란 배경도 버리고, 스토리도 완전히 새로 리부트 됐다. 3월 PS3/엑스박스용으로 발매된 [툼레이더]는 그런 점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그녀의 변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img20.jpg
거울을 보고 있는 라라 크로프트. 유저들은 그녀의 바뀐 모습을 어떻게 볼까?


댓글 0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