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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2]의 오프닝. 90년대 수많은 게이머들을 가슴 설레게 했던 바로 그 장면!


중, 고등학교 교과서 중 사회과부도란 책이 있었다. 세계 각 지역의 지리와 지형을 모아 놓은 지도책이다. 책꽂이 한구석에 꽂혀, 웬만하면 펼쳐 볼 일이 없는 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인기 없는 책을 교과서 분야 최고 베스트셀러(?)로 올려놓은 게임이 있었다. 반에서 공부 좀 하는 범생이도 국영수 교과서를 팽개치고 사회과부도에 매달렸다. 교과서를 베개 대용으로 사용했던 뒷자리 노는 친구들도 이 책을 탐독했다. 대학생 형님들까지 동생 사회과부도를 뺏어 틈만 나면 보곤 했다.

게임에 매료된 청춘들은 지역의 특산물과 정보들을 위도 경도까지 꼼꼼히 체크해 하며 책에 기록해 놓았다. ‘제네바의 특산물은’, ‘염료와 향신료의 원산지는’, ‘희망봉의 위도와 경도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세계지리를 달달 외우기 시작했다. 사정 모르는 엄마는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고 흐뭇하게 과일을 깎아 대령했다. 비주류 교과서였던 사회과부도는 [대항해시대] 최고의 매뉴얼이었다. 1993년, 그 시절 학생들은 독서실 좁은 책상 한편에서 창대한 바다를 꿈꾸었다. [대항해시대]는 ‘꿈’의 안내자였다.


역사게임에 대한 열망! 대항해시대를 열다!
앞서 [삼국지]편에서도 설명했듯, 초창기 ‘코에이’는 역사게임을 주로 만들었다. 코에이 창업자 ‘에리카와 요이치’ 사장은 세계역사를 게임으로 풀어보려는 야무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노부나가의 야망]과 [삼국지]를 통해 일본과 중국의 가장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을 게임으로 재연했다. 코에이는 좀 더 시야를 넓혀 세계 역사를 담아보기로 했다. 그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든 사건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대로 통했던 16세기 ‘대항해 시대’였다.

그 속에는 흥미로운 소재가 가득했다. 바스코 다가마의 항해, 마젤란의 세계일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 쟁탈전, 영국의 무적함대 격파까지...모험과 낭만이 가득한 시대였다. 코에이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항해시대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도대체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 광대한 시대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삼국지]는 배경이 제한되어 있는 게임이다. 넓어봐야 중국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대항해시대는 규모부터 달랐다. 전 세계가 배경이다. 전쟁이 아니라 모험을 다뤄야 한다. 전쟁은 승패로 결정되지만, 모험은 무궁무진한 변수가 있다. 그 안에는 RPG의 성장요소도 있어야 하고 어드벤처의 스토리도 들어가야 한다.

게임 콘텐츠도 고민이다. [삼국지]는 결국 천하를 통일하면 끝난다. 그러나 [대항해시대]는 다뤄야 할 게 엄청나게 많다. ‘세계일주’, '무역로 개척', ‘식민지 정복’, ‘해적퇴치’ 등 콘텐츠 양도 무궁무진하다. 이것은 차원이 다른 게임이다. 대항해시대는 단순한 전략게임으로 제단하기에는 너무나 큰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엄청난 역사를 도대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코에이 앞에는 어려운 숙제가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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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에이 대항해시대에 영감을 준 시드마이어의 [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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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1편]. [삼국지]와는 다른 항해 시뮬레이션 장르를 열었다.


혁신의 이름 ‘대항해 시대’
“이 게임(해적)은 현실성이라는 면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재미와 흥분이라는 요소로 접근했습니다. 칼싸움, 미지의 대륙에서의 탐험, 강력한 지배자, 지배자 딸과의 로맨스, 전투와 같은 요소들을 결합했죠. 이것은 시뮬레이션으로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장르였죠.”
-[해적] 개발자 시드마이어-

코에이 개발진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게임이 나왔다. 1987년, 시드마이어가 만든 항해게임 [해적]이 발매된 것이다. [문명]의 창시자 시드마이어는 한국 팬들에게 너무나 유명한 크리에이터다. 그가 [문명] 시리즈를 만들기 전, 개발한 게임이 [해적]이다(해적 개발과정은 [문명] 편에 자세히 나와 있다). [문명]의 그늘에 가려 국내에선 주목받지 못했지만, 당시 [해적]은 수많은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준 혁신적인 작품으로 통한다. ‘시드마이어의 해적’은 코에이 개발진들에게 명쾌한 해답을 주었다. 우선 그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삼국지]의 틀을 깼다. 전략시뮬레이션의 고정된 방식을 거부하고, 복합장르의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먼저 게임방식을 혁신했다. [삼국지]의 목표는 작은 나라 군주로 시작해 천하를 정복하는 권력지향형 게임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 아랫사람들을 관리하는 수직적 관계를 요구한다. 반면 [대항해시대]는 수평적 방식의 게임이다. 자신의 선단을 꾸려 전 세계를 향해 수평으로 뻗어나가는 구조다. [삼국지]의 재미가 ‘전쟁’이라면, [대항해시대]의 재미는 ‘탐험’이다. [삼국지]가 정복을 통해 세력을 키우는 방식이라면, [대항해시대]는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다. 이렇듯 [대항해시대]는 [삼국지]에는 없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16세기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중세봉건국가의 질서가 무너진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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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1]의 주인공, 아버지가 인도양에서 풍랑을 만나 조난당하고, 주인공의 새로운 항해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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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의 공주. 포르투갈 공주와의 로맨스도 게임의 큰 재미.



바스코 다가마의 항해, 대항해시대의 닻을 올리다
“아아.. 그 감동을 어찌 필설로 형용할 수 있으랴. 대양의 거친 파도를 헤치고 교활한 해적들과 캐논 포탄을 주고받으면서, 칼과 칼을 부딪치며 지새운 밤이 몇 날 이었나. 거세게 불어오는 무역풍에 한껏 돛을 부풀리고, 까마득한 수평선을 향해 질주하는 갈레온 함대의 위용에 가슴 벅찼던 날은 또 며칠이던가.”
-네이버 블로그(오락인생)에서 발췌-

아프리카 희망봉을 발견한 바스코 다가마(실존인물)가 고국인 포르투갈로 금의환향하면서, 대항해시대의 역사는 시작된다. 1990년 발매된 [대항해시대] 1편에선 ‘레온 페레로’라는 포르투갈 탐험가가 주인공이다. 1편은 주인공이 한명이다. 아버지를 폭풍으로 잃은 ‘레온 페레로’는 하루아침에 가진 걸 모두 잃는다(페레로 가문은 대항해시대 시리즈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교역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어느 정도 부와 명성이 쌓이면 왕궁에 출입해 공주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결국 스페인 함대에 납치된 공주를 구하고 그녀와 결혼하는 엔딩을 맞게 된다.

[대항해시대] 1편은 시드마이어의 [해적]에서 많은 부분 영감을 받았다. 주인공이 각 나라를 돌며 무역을 하거나, 해적과 전투를 벌이는 시스템은 [해적]과 비슷하다. 그러나 [해적]의 배경이 카리브 해로 국한됐다면 [대항해시대]는 전 세계로 확대했다. 또, [해적]과는 달리 게임에 스토리를 가미해 보다 디테일한 재미를 살렸다. 비록 주인공이 해적을 물리치고 공주와 결혼한다는 뻔한 스토리지만, 직접 게임을 하는 유저의 감동은 남달랐다. 1편은 ‘탐험-무역-전투’로 이어지는 대항해시대 시리즈의 기본 틀을 완성했다. 비록 16칼라의 조악한 그래픽이지만, 게임을 하는 유저들은 [삼국지]에서 느끼지 못한 새로운 재미를 발견했다.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에 출시됐지만 크게 성공하진 못했다. 1편은 아쉽지만 국내에는 정식 발매되지 않고 어둠의 경로(?)에서만 유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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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2]의 등장인물. 2편은 등장인물이 6명으로 늘었다. 한 명 한 명이 버릴게 없는 최고의 캐릭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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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여자해적으로 등장한 ‘카탈리나 에란쵸’. 강력한 카리스마의 그녀는 진정한 ‘누님포스’의 원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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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전투 화면. [대항해시대]의 진정한 로망 선상 일기토! 아무리 강한 해적도 이거 한방이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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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잭 화면. 현실에서나 게임에서나 도박은 금물! 도박 때문에 게임 접는 사람 많이 봤다.


6명의 영웅! 대항해시대의 전성기
아마 우리가 기억하는 있는 [대항해시대]는 1993년 발매된 2편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한글화 되어 정식 발매된 2편은 한국에 [대항해시대] 열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전작이 포르투갈 한 곳만 배경이었다면, 2편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본격적으로 식민지 개척에 나섰던 1520대를 다루었다. 그만큼 게임의 스케일이 커졌다.

먼저 주인공이 6명으로 늘었다. 1편 주인공의 아들인 ‘조안 페레로’, 빨간머리 여해적 ‘카탈리나 에란초’, 이슬람 탐험가 ‘알 베자스’, 지도 제작자 ‘에르네스트 로페스’, 잉글랜드 사략선단을 이끄는 ‘오토 스피노라’, 이탈리아 탐험가 ‘피에트로 콘티’ 등 개성 강한 6명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의 얽히고설킨 모험 이야기는 이 게임의 핵심이다. 게임을 하다보면 다른 주인공과 서로 적이 되거나, 혹은 동료가 되어 협력하는 등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들은 실제 역사 속의 인물을 모델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마 [대항해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2편 캐릭터들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정말 하나라도 버릴 게 없는 역대 최고의 캐릭터들만 모아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오빠의 복수를 위해 해적이 된 ‘카탈리나 에란초’는 당시 남학생들에게 영원한 ‘누님’으로 남아있는 캐릭터다.

2편의 또 하나의 매력은 음악이다. 일본음악의 거장 칸노요코는 대양을 헤쳐 나가는 탐험가들의 기상을 아름다운 멜로디에 담았다. 특히 게임 오프닝곡(Wind Ahead)은 20년이 넘은 지금 들어도 그때의 그 감동이 여전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들어보면 넓고 잔잔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 아련하게 다가온다. [대항해시대 2]는 사운드트랙이 따로 발매됐는데, 일설에 따르면 본게임보다 더 많이 팔렸다는 소리도 있다. 그만큼 명반으로 인정받고 있다. 여러 가지 잔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마을 술집에 가면 블랙잭 같은 도박을 할 수 있는데, 무역해서 벌어온 돈을 도박에 탕진해 낭패를 본 경우도 많았다(현실이나 게임이나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 또, 전투 시 배위에서 일대일로 칼싸움을 하는 ‘해상 일기토’ 시스템도 2편의 ‘로망’이었다.

[대항해시대 2]의 여운이 워낙 강해선지 코에이는 2편을 기반으로 한 [대항해시대 외전]을 내놓는다. 1997년 발매된 [대항해시대 외전]은 전체적으로 그래픽과 인터페이스를 2편과 동일하게 맞추고 캐릭터와 스토리만 추가됐다. 외전의 주인공은 ‘밀란다 베르데’와 ‘살바도르 레이스’ 2명이다. ‘밀란다’는 주로 무역을 하는 캐릭터이고, ‘살바도르’는 전투 위주의 캐릭터다. 2편에서 불편했던 점을 말끔히 수정해 전체적으로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정식 시리즈가 아닌 관계로 게임의 볼륨 작아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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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도를 내세운 [대항해시대 3], 당시 시대를 앞선 게임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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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3]의 육상전투. 3편에는 육상전투도 추가됐다.


‘배신이냐, 혁신이냐’ [대항해시대 3]
2편의 성공으로 ‘대항해 시대’는 [삼국지]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었다. 당시 유저들에게 [삼국지]는 오래 사귀어 익숙한 연인이라면, [대항해시대]는 첫눈에 반한 첫사랑과 같았다. 게이머들은 자나 깨나 3편 발매만 손꼽아 기다렸다. 일부 성급한 유저들은 일본판 패키지를 비싼 가격에 사서 즐기기도 했다. 1997년, [대항해시대 3] 정식발매일이 확정되자 오매불망 기다려온 게이머들은 열광했다. 국내에선 패키지 사전예약이 줄을 이었다. 이때는 PC방도 고속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다. 게임매장에는 따끈따끈한(?) 시디를 먼저 사려는 게이머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엄청난 기대 속에 출시된 [대항해시대 3]는 나오자마자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멋진 캐릭터와 흥미로운 이야기 대신, 자유도가 강조됐다. 3편은 시리즈 중 최고의 자유도를 보여준다. 2편처럼 미리 정해놓은 스토리 없이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내용이 바뀐다. 주인공은 항해사가 되어서 스폰서와 계약을 맺고 각 항로를 하나하나 발견하면서 명성을 쌓아야 한다.

플레이어는 탐험가, 정복자, 해적 중에 하나를 골라 모험을 떠나야 한다. 게임에서 일정하게 정해진 방식은 없다. 마젤란, 콜럼버스와 같은 실제 역사적 탐험가와 항해대결을 펼칠 수 있고, 세계 각지의 유적을 발견해 나만의 백과사전을 완성할 수도 있다. 군사를 이끌고 다른 나라를 정복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탐험과 발견을 원 없이 할 수 있는 게임이다.

3편은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사실적인 게임이다. 언어 개념이 도입되어 그 나라 말을 익히지 못하면 교역을 할 수 없다. 돈을 들여 통역사를 구하거나 언어를 조합해 간신히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자신의 대를 이을 후손을 키울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주인공이 늙어서 은퇴하면 아들이 이어서 모험을 할 수 있다. 탐험 방식도 육로 개척이 추가됐다. 마르코 폴로의 실크로드 개척처럼 배를 타지 않고 육로를 통해 내륙을 탐험할 수 있다.

난이도도 높아졌다. 사실성을 살리다보니 게임이 복잡해진 것이다. 2편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180도 달라진 게임성에 어안이 벙벙했다. 캐릭터와 스토리 비중을 줄이면서 팬들로부터 ‘시리즈를 배신했다’며 원성을 샀다(필자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 당시 유저들은 게임의 자유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망망대해에 배 한 척 띄워놓은 것 같은 황당함이라고나 할까. 유저들이 원하는 건 해적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하고, 해적이 되어 오빠의 원수를 갚고, 무적함대에 맞서 나라를 구하는 영웅들의 낭만적인 이야기다. 자유도는 스토리를 받쳐주는 위한 수단일 뿐이다. 결국 혁신적인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전작만큼 성공하진 못했다.

그러나 3편의 가치는 지금에서야 인정받고 있다. 극단의 자유도를 내세운 3편은 이후 만들어진 온라인게임에 좋은 토대를 마련했다. 지금 [대항해시대 온라인]을 하는 사람들은 게임의 자유도에 대해 어떠한 불평도 늘어놓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대항해시대 3]는 확실히 시대를 앞서간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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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4]의 이벤트신. 4편은 직접 손으로 그린 화려한 일러스트가 최대 장점. 특유의 안정된 분위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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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4]의 캐릭터들. 4편은 다시 2편처럼 스토리를 강조했다. 확장팩까지 합하면 7명의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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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4] 항해 화면. 최초의 3D그래픽을 도입한 [대항해시대 4]. 사양만 높아지고 그래픽은 왠지 어설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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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의 한국 캐릭터들. 캐릭터 의상이 우리나라 것과 너무 동떨어져 논란이 많았다.


패키지 시대 마지막 항해, [대항해시대 4]
1999년 발매된 [대항해시대 4]는 자유도를 빼고 다시 시나리오를 강화했다. 게임구성은 2편과 비슷하다. 여러 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모험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뤘다. 스토리 적으로는 전작과 이어지지 않고 별개로 진행된다. 4편은 대항해시대의 달라진 패권 구도를 보여준다. 식민지시대 후반에 활약한 네덜란드, 스웨덴 같은 신흥국가들이 등장한다. 2편에서 최강을 자랑한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패하면서, 바다의 주도권은 북유럽 국가들로 넘어간다. 스웨덴이 강력한 해군국가로 성장하고, 네덜란드의 동인도 제도가 식민지 경영을 하던 시기다.

여기에 중국, 일본, 잉카 등 아시아, 남미 캐릭터들도 추가됐다. 서유럽에 국한된 게임의 배경이 북유럽과 중동을 포함해 아시아까지 확장된 것이다. 동양권에선 일본과 중국 캐릭터를 선택 할 수 있다. 주인공들은 ‘패자의 증표’를 찾기 위해 전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내용이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등장인물들의 스토리가 겹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움을 남겼다.

4편은 그래픽 적으로 놀라운 발전을 보여주었다. 게임화면을 일러스트가 아닌 삽화로 교체했고(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3D로 그래픽을 도입했다. 때문에 게임사양이 훨씬 높아졌다. 완성도 높은 음악도 게임의 수준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대항해시대 4]는 자유도가 극단적으로 낮아졌다. 그저 정해진 각본에 맞춰 스토리를 풀어나가면 된다. 항구수도 줄었고, 항해사를 자유롭게 등용할 수도 없다. 나름대로 참신한 부분도 많다. 예를 들어 도시의 유행을 창출할 수 있다. 해당 도시에 보석을 대량으로 팔면 그 도시는 보석이 유행하게 된다. 그러면 더 비싼 가격에 물건을 팔 수 있다. 편의성도 높였다. 좋은 항해사를 구해 배를 맡기면 자동항해가 가능하다.

[대항해시대 4]는 3편처럼 파격적인 변화를 택하지도 않고, 2편의 룰을 잘 따른 안정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변화를 원하는 유저들에겐 왠지 아쉬움이 남는 게임이다. 시장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4편이 한창 인기를 끌었던 2000년대 초반에는 ‘온라인게임’이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었다. 온라인게임의 방대한 콘텐츠에 비하면 패키지 게임은 확실히 한계가 있었다. 패키지용 대항해시대는 4편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이제 [대항해시대] 앞에는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바다가 열려있었다.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너뜨린 영국이 바다의 패권을 쥔 것처럼, [대항해시대]는 온라인이란 새로운 환경에 맞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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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3]부터 온라인까지 개발을 맡아온 테크모코에이 게임즈 다케다 토모카즈 <게임메카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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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오픈한 [대항해시대 온라인], 패키지 게임 출신으로 온라인으로 성공한 몇 안 되는 게임.


온라인의 바다를 항해하다
“편의성을 고려하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문제죠. 다만 대항해시대가 재미있는 이유는 어렵고 힘들지만 그만큼 목표 달성에 대한 성취감이 크기 때문에 (항해 할 때의)그러한 기다림의 시간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대항해시대 온라인 개발자 다케다 토모카즈(2010년 E3 행사장)

2000년대, 게임시장의 주류는 온라인게임으로 넘어갔다. 작은 CD 용량으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온라인게임의 규모는 방대해졌다. 한때 잘나갔던 명작들도 온라인으로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항해시대]의 형님뻘인 [삼국지]가 대표적인 실패사례다. [삼국지]는 세간의 기대를 받고 온라인게임으로 나왔지만 2년 만에 한국과 일본에서 서비스 종료됐다. 유저들은 전략 [삼국지]를 원했지, MMORPG [삼국지]를 원치 않았다. 패키지게임이 온라인 옷을 갈아입는 건 그만큼 힘들다. 그러나 [대항해시대]는 달랐다.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온라인 환경에 착착 적응해 갔다. 완벽하게 온라인게임의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아마 패키지 게임 중 온라인 적응에 성공한 게임은 [워크래프트]와 [대항해시대] 밖에 없을 것이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은 규모면에서 전작들을 훨씬 능가한다. 사실과 허구 사이를 적절히 오가며 방대한 양의 정보를 충실히 담아냈다. 중세 유럽의 함선은 물론, 수많은 의상과 아이템을 역사적 고증에 의해 사실적으로 재현해 놓았다. 실존했던 과거의 역사와 지리, 인물들이 게임에 그대로 등장한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조선을 대표하는 위인으로 이순신 장군이 나온다. 그래픽 또한 진일보했다. 어설픈 3D로 표현됐던 4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바다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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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온라인]의 바다. 실제 바다를 항해하는 듯한 세련된 그래픽

[대항해시대 온라인]은 기존 시리즈들의 재미를 모두 집약해 놓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게임이다. 탐험가, 군인, 상인 중 한 명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이는 3편의 시스템을 따왔다. 여기에 스토리 부분도 강화했다.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다양한 분기점이 나오는데, 이를 따라가다 보면 숨겨진 이야기들을 감상할 수 있다.

플레이어끼리 팀을 짜서 해적과 맞설 수 있고, 유적탐사, 교역, 해전 등 시리즈 고유의 장점을 맛깔나게 살렸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은 국내에 오픈해 동시접속자 10만 명을 기록하며 순항중이다. 최근엔 역사적 스토리 모드를 강화한 ‘세컨드 에이지’를 업데이트하면서 다시 한번 전성기 때 모습을 보여주고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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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온라인] 동료들과 모여 항해계획을 짜고 함께 전투도 치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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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영웅으로 나오는 이순신 장군. 젊은 꽃미남으로 나와 국내에서 화제가 됐었다.

[대항해시대]가 온라인게임으로도 잘나가는 이유는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에 있다. 온라인으로 넘어간다고 해서 과거 패키지 게임의 철학을 훼손시키지 않았다. 맵이 엄청나게 넓어졌지만 유저들은 패키지 방식 그대로 길고 지루한 항해를 감수해야 한다. 두 시간이 넘게 대서양을 건너 교역을 하고 다시 되돌아오면 눈이 충혈 되고 온몸이 뻐근하다. 항해하는 동안 꾸벅꾸벅 졸다가 암초에 부딪혀 낭패를 겪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른 게임 같으면 편의성을 위해 지루한 항해과정은 과감히 생략했을 것이다. 그러나 코에이는 타협하지 않았다. 원래 바다를 항해한다는 게 길고 지루하고, 때로는 위험천만한 모험이 아닌가. 이런 어려운 과정을 딛고 미지의 대륙을 발견했을 때의 성취감은 이 게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매력이다. 그걸 온라인게임에서 그대로 보존한 것이다. [삼국지 온라인]은 엉뚱하게 모습을 바꿔 망했지만, [대항해시대]는 패키지 그대로의 맛을 살렸다. 개발자 다케다 토모카즈는 [대항해시대]의 해외시장 진출을 ‘미지의 세계를 항해하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게임의 의미를 정확하게 짚어낸 말이다. 그의 말처럼 [대항해시대]는 수많은 풍파를 헤치며 지난 20년을 그렇게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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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를 마친 [대항해시대 온라인 세컨 에이지]. 역사적 시나리오를 추가해 패키지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이 시대 최고의 ‘힐링게임’
“게임 세상엔 장애가 없어요. 게임을 통해 마음껏 오대양을 누비는 꿈을 펼칠 수 있죠. 그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얼굴도 모르는 친구들이 나서 도와주는데 너무도 놀랍고 마음이 따뜻해 지네요. 병이 나으면 꼭 다른 누군가를 돕고 싶어요.”
-대항해시대 온라인 플레이어 김천수씨(동아일보 인터뷰 중)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열혈 플레이어 김천수씨(해와달)는 근육이 굳어지는 난치병을 20년째 앓고 있다. 그가 세상과 만나는 유일한 소통 수단은 [대항해시대 온라인]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거동조차 못하는 그는 게임 안에선 완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오대양을 누비며 교역을 하는 거상이 되거나, 무적함대를 이끌고 해적을 물리치는 군인도 될 수 있다.

유럽, 인도,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 안 가본 도시가 없다고 한다. 게임을 하면서 좋은 친구들도 만났다. 게임 속 동료들은 자발적으로 모금에 참여해 1000만원을 치료비로 보탰다. 한 한의사 친구는 5년째 꼬박꼬박 한약을 지어 보낸다고 한다. 그는 “게임 안에는 장애가 없이 모두가 동등한 게임이용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꼭 일어나 진짜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한다. 현실은 그에게 고통을 주지만, 게임은 희망을 주었다. 바로 삶에 희망이다.

사람들은 게임을 통해 현실의 상처를 치유 받는다. 또한 게임을 통해 현실의 상실을 보상 받는다. 현실이 살만하면 게임을 할 필요가 없다. 현실이 아프니까 게임을 하는 거다. 지난 20년 간 [대항해시대]의 가치는 단순한 ‘재미’로만 환산할 수 없다. 한국 게이머들에게 [대항해시대]는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입시지옥에 내몰린 학생들에게 잠시나마 상상의 쉼터를 제공 했고, 몸이 아픈 게이머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다. 가슴을 아련하게 하는 칸노요코의 음악을 남겼고, 빽빽하게 메모되어 있는 사회과부도의 추억을 남겼다. [대항해시대]는 이 시대가 낳은 최고의 ‘힐링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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