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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마리오와 맞장을 떴던 캐릭터 ‘소닉’



소닉은 역설의 캐릭터다. 현실에서 가장 느린 동물인 고슴도치가 게임에선 가장 날쌘 캐릭터로 변신했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소닉의 속도감에 전율했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장애물들을 과감하게 돌파하고, 한번 가속도가 붙으면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정신없이 달린다. 녀석의 원맨쇼를 넉 놓고 즐기다보면 어느새 쌓였던 스트레스가 봄눈 녹듯 사라진다.

소닉은 집념의 캐릭터다. 90년대 게임시장의 자웅을 놓고 닌텐도와 세가가 겨뤘던 ‘게임기 전쟁’의 주인공이다. 콧수염 난 찐빵모자 캐릭터(?)는 도저히 따라잡을 없는 극단의 속도감! 오죽하면 한국에선 ‘바람돌이’란 별명까지 붙었을까. 소닉과 마리오가 맞붙었던 91년 ‘크리스마스 혈투’는 게임 역사상 가장 멋진 승부사로 통한다. ‘마리오’에게 첫 굴욕을 안겨 주었던 바람돌이 소닉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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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닉더헤지혹]은 특유의 빠른 속도감은 유저들을 매료시켰다


고졸 출신 개발자 ‘나카 유지’의 집념

“게임은 영화가 아니라 소설입니다. 소설은 독자가 상상력을 더해가며 읽죠. 게임도 유저가 상상력을 발휘해 창조적으로 플레이 할 수 있도록 디자인해야 합니다.”
- 소닉 개발자 나카 유지-

소닉의 아버지라 불리는 ‘나카 유지’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개발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학창시절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빠져 살았다. 오사카에 살던 그는 도쿄를 제 집처럼 들락거리며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을 사 모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예 도쿄에 있는 게임회사에 취업하기로 했다. 마침 ‘세가’에서 프로그래머를 모집하고 있었다. 당시 게임 개발자는 일본 젊은이들의 선망의 직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닌텐도가 세계를 재패하면서 ‘비디오게임’은 일본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일본게임’하면 알아주던 때였다. 때문에 학벌 좋고 스팩도 화려한 인재들이 게임회사로 몰려들었다. 고졸 출신인 ‘나카 유지’는 아무리 봐도 불리했다.

그러나 천재에게 학벌 따위는 중요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20대1의 경쟁률을 뚫고 회사에 입사했다. 학벌보다는 뛰어난 프로그래밍 실력이 인정 받은 것이다. 물론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세가 경영진의 안목도 탁월했다. 그는 롤플레잉 ‘판타지스타’를 단 두 달 만에 완성해 회사를 놀라게 했다. 그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임이 진짜 게임”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화려한 기술력에 의존하기보다 참신하고 독창적인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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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닉 20주년 파티에 참석한 나카유지(왼쪽에서 첫 번째). 2006년에 세가를 나와 ‘프로페리미티드’라는 신생회사를 설립했다.

창조에 대한 그의 열망은 거의 집착에 가까웠다. 팀원들 사이에서도 그는 완벽주의자로 통한다. 평소에는 부드러운 성격이지만 일단 일을 시작하면 사람이 달라졌다. 잘못된 결과물을 가져오면 그 즉시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그래도 안 되면 설계부터 음악, 코딩까지 혼자 도맡아 했다. ‘나카 유지’와 일하기 싫어서 다른 팀으로 옮겨달라는 팀원들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한곳에만 꽂혀 있었다.

그가 찍은 상대는 ‘미야모토 시게루’와 ‘슈퍼마리오’였다. 마리오가 누군가! 미국 게임시장을 초토화 시킨 장본인이다. 캐릭터의 끝판왕(?)으로 통하는 ‘미키 마우스’도 눌러버린 거물급 캐릭터가 아닌가. 마리오 때문에 미국 캐릭터시장은 일본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그만큼 마리오의 인기는 대단했다. 마리오를 넘지 못하면 영원히 2인자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 나카 유지는 시게루의 절대적인 추종자이기도 하다. 그는 늘 자신이 존경하는 게임 크리에이터로 ‘미야모토 시게루’를 첫손가락에 꼽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분명히 넘어야 할 산이었다. 세가도 마찬가지였다. 세가가 글로벌 게임사로 성공하려면 ‘닌텐도’란 산을 반드시 넘어야 했다.

어쩌면 세가와 닌텐도의 피할 수 없는 승부는 이미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소닉은 ‘나카 유지’의 천재성과 ‘세가’의 확실한 목표의식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캐릭터였다. 80년대 끝자락을 넘기며 전 세계 게임시장에는 또 한 번의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소닉과 마리오의 피할 수 없는 한판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점프는 마리오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까칠한 고슴도치

“회사는 미키마우스 같은 마스코트를 개발하라고 지시했죠. 디자이너들이 시안을 제출했는데, 대부분 캥거루나 토끼 같이 깡충깡충 뛰는 캐릭터들이었죠. 결과적으로 다 거절당했어요. 점프는 마리오도 하니까요. 최종적으로 고슴도치 캐릭터가 채택됐지요.”
-전 세가 기술 연구소 소장 로저 헥터-

소닉의 초반 콘셉트를 보고 사람들은 경악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소닉’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캐릭터였다. 고슴도치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호감 동물이다. 거기다가 푸른색 고슴도치라니. 어딜 봐도 세련된 구석이 없는 촌스러움의 극치였다. 그러나 개발진은 과감히 고슴도치를 선택했다.

비호감 캐릭터일수록 남이 발견하지 못한 독특한 매력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소닉’은 ‘마리오’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소닉 더 헤지옥]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와 비슷한 횡스크롤 방식의 액션게임으로 개발됐다. 마리오는 버튼이 두 개라면, 소닉은 버튼이 한 개만 사용됐다. 마리오가 ‘동전’을 모은다면, 소닉은 ‘링’을 모은다. 닌텐도 개발진들은 "세가에서 슈퍼마리오를 베꼈다"며 비웃었다고 한다. 심지어 닌텐도 야마우치 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세가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재미 있는 건 세가 경영진은 야마우치 사장의 인터뷰 내용을 개발실에 크게 걸어놓고, 개발진들의 승부욕을 자극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닉의 겉모습이었다. 닌텐도가 간과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속도다. 소닉은 쉴 새 없이 화면 속을 내지른다. 장애물이 있으면 피하는 대신 몸을 둘둘 말아 돌파한다. 성격도 까칠하다. 어쩌다 머뭇거리면 팔짱을 끼고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화면 밖 플레이어를 재촉한다(이런 건방진 표정이 소닉의 트레이드마크다). 실제로 '소닉' 시리즈는 캐릭터를 계속 움직여주지 않으면 재미가 없는 게임이다. 한번 가속도가 붙으면 그 어떤 게임보다 짜릿한 속도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 빠른 움직임과 까칠한 성격은 느리고 부드러운 마리오와 확실히 달랐다. 느림의 상징인 고슴도치가 이렇게 ‘쿨’한 녀석으로 변할지, 당시 닌텐도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긴, 닌텐도의 ‘마리오’도 처음엔 촌스럽다고 놀림(?) 받았던 캐릭터가 아닌가.


“소닉을 번들로 뿌린다고? 지금 제정신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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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비트 게임기 메가드라이브(미국명 제네시스). 소닉을 번들로 제공하는 과감한 전략을 구사했다.

어쨌든 소닉과 마리오의 한판승부는 피할 수 없게 됐다. 디데이는 1991년 크리스마스 시즌. 전쟁터는 미국이다. 90년대 초반, 일본 경제는 전에 없는 엔고 현상에 시달렸다. ‘불황도 이런 불황은 처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게임사들은 일본보다 몇 배 큰 미국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미국으로 몰려든 일본 게임사들은 사활을 건 전쟁을 치러야 했다. 당시 미국을 정복한 회사는 거함 닌텐도다.

닌텐도 함선을 조종하는 선장은 최고의 캐릭터 ‘슈퍼마리오’였다. 1988년 발매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는 세계적으로 4000만장이 팔려나갔다. 도무지 대적할 상대가 없었다. 1990년, 16비트 게임기 ‘슈퍼패미콤’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그해 닌텐도는 사상 최고의 매출액을 올렸다. 세가도 16비트 게임기 ‘메가드라이브(미국명: 제네시스)’를 내놨지만 역부족이었다.

세가는 91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디데이로 잡고 역전의 카드를 준비했다. 우선 마리오에 맞설 선봉장으로 소닉을 내세웠다. 마케팅 전략도 공격적이다. 당시 세가 아메리카의 ‘톰 칼린스크’는 면도기 회사 질레트 출신의 CEO였다. 그는 “면도기를 싸게 팔아야 면도날을 팔수 있다”는 마케팅 원리를 게임에 적용했다.

먼저 기기의 가격을 189달러에서 149달러로 인하하고, 공격적인 비교 광고를 펼쳤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경악시킨 건 신작 [소닉 더 헤지옥]을 게임기 번들로 배포하자는 것이다. 칼린스케 사장은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소회했다. “이사회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썰렁했죠. 최고의 기대작을 번들로 끼워 팔겠다니? 시장 점유율 92%나 되는 닌텐도를 자극하는 비교 광고를 내겠다고? 지금 제정신입니까!”.

그의 전략은 내부의 반대에 부딪혔다. 특히 소닉 게임을 번들로 배포하자는 전략은 개발자들의 자존심을 긁었다. 하긴, 몇 년 동안 힘들여 개발한 자식같은 게임을 번들로 뿌리자는 건 크리에이터 입장에서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그런데 세가 ‘나카야마 하야오’ 사장은 달랐다. 그는 마케터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했다. 칼린스케 사장은 미국시장을 맡기려고 영입한 사람이니 믿고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결정은 탁월했다. 거함 닌텐도에 맞서려면 그 정도 모험은 감수해야 한다는 걸 나카야마 사장은 알고 있었다. 사실 닌텐도의 야마우치 사장도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미야모토 시게루’를 믿어줬기 때문에, ‘마리오’란 캐릭터가 나오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세가과 닌텐도의 리더십은 다른 듯 닮은 점이 많다.


소닉 vs 마리오 ‘크리스마스 혈투’
드디어 1991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왔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 미국 어린이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선물 1호는 게임기다(물론 요즘도 그렇지만). 그만큼 대목을 잡기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세가는 ‘소닉’과 ‘마리오’를 비교하는 광고로 선제공격을 했다. 광고문구도 도발적이었다. “소닉과 마리오가 나란히 뛰면서 경주하면 ‘소닉’은 ‘마리오’보다 확실히 빠르다.” 세가의 이 광고는 게임 마케팅에 길이 남는 ‘신의 한수’로 통한다. 칼린스케의 계획대로 [소닉 더 헤지혹]은 메가드라이브의 번들로 포함되어 팔렸다. 게임기가 출시되자 시장은 술렁거렸다. 사람들은 ‘마리오’에게 없는 매력을 ‘소닉’에서 발견했다. 슈퍼마리오와 비슷한 횡스크롤 방식이지만 속도는 훨씬 빨랐다. 마리오는 장애물을 피하지만, 소닉은 돌진해 부숴버린다.

지금까지 이런 캐릭터는 없었다. 유저들을 소닉의 속도에 열광했다. 91년 크리스마스 시즌, 세가는 거함 닌텐도를 꺾었다. [소닉 더 헤지혹]은 전 세계적으로 600만장 이상이 판매됐다. ‘메가 드라이브’ 판매율을 수십 배 올렸다. ‘마리오’는 세상 구경한지 1년도 안된 핏덩어리 캐릭터에게 굴욕을 맛봐야 했다. 세가는 마리오에 버금가는 캐릭터를 갖게 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소닉’과 ‘마리오’의 피 튀기는 경쟁은 양쪽 모두에게 도움이 됐다. 91년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슈퍼패미콤’과 ‘메가드라이브’ 합쳐 500만대가 팔렸다. 당시 일본 TV 1년 치 생산대수와 맞먹는다. 두 회사는 경쟁을 통해 시장도 넓히고 기술력도 키웠다. 이후 세계 게임시장은 온전히 ‘메이드 인 재팬’의 시대였다. 세가와 닌텐도는 ‘경쟁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며 세계로 뻗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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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닉 시리즈의 틀을 잡아준 [소닉더헤지혹2].


16비트 시대를 날다!
소닉의 족보는 복잡하다. 시리즈가 워낙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전체적으로 보면 게임기의 변화에 따라 게임성도 달라진다. 1편인 [소닉 더 헤지옥]은 16비트 게임기의 강력한 그래픽 처리 능력을 활용해 최고의 속도감을 보여주었다.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당 ‘에그맨’에 맞서 ‘카오스 에메랄드’를 모아 지구를 지키는 것이 목표다. 1편에선 소닉 특유의 액션방식이 처음 선보였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다가 적이 나타나면 몸을 말아 부딪치는 공격방식은 여전히 소닉의 전매특허다. 소닉은 마하의 속도로 달릴 수 있지만, 물을 싫어한다. 캐릭터가 물에 빠지면 속도가 느려지고 그대로 가라앉아 버린다.

1992년 출시된 [소닉 더 헤지옥2]는 소닉 시리즈를 반석 위에 올린 게임이다. 그 해 630만장 이상 판매됐다. 이젠 소닉이 없는 16비트 게임기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였다. 2편에선 변신시스템이 추가됐다. 카오스 에메랄드 7개를 모으면 ‘슈퍼소닉’으로 변신해 일정시간 무적상태가 된다. ‘슈퍼소닉’은 당시 인기애니메이션인 ‘드래곤볼Z’의 '초 샤이언인'을 연상시켜 더 큰 인기를 끌었다. 이어 출시된 [소닉 CD]와 [소닉3]도 연이어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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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Z의 초샤이언인과 비슷한 슈퍼소닉. 무적의 능력치를 보여준다.


시리즈 5편 겪인 [소닉&너클스]는 2편과 3편을 결합해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또 [너클스] 캐릭터만 따로 플레이할 수 있는 버전도 나왔다. 원래 3편과 4편은 같은 게임으로 기획됐으나 당시 하드웨어의 용량이 부족해 부득이 따로 발매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정식 5편이 아닌 [소닉&너클즈]라는 이름으로 나온 것이다. 이 작품에서 소닉은 ‘너클스’라는 일생의 라이벌을 만난다. 에그맨의 꼬임에 빠져 소닉을 방해하는 역할로 나온 너클스는 특유의 어벙벙한 매력으로 주인공보다 더 큰 인기를 얻었다.

‘소닉’과 ‘너클스’가 속도대결을 하는 장면은 이 게임의 백미다. 4편은 ‘너클스’의 인기에 힘입어 700만장 이상 팔렸다. 이 당시 ‘나카 유지’는 소닉보다 더 혁신적인 게임인 [나이츠 인투 드림즈]를 개발했다. 하지만 너무 시대에 앞서간 나머지 흥행에는 실패했다. 16비트 시대에 최고 전성기를 누린 소닉은 ‘세가 새턴’으로 넘어가면서 잠시 슬럼프에 빠졌다. 소닉은 세가의 차세대 게임기 ‘드림캐스트’에서 다시 부활한다.


화려한 드림캐스트 시대, 그리고 몰락의 징조
1990년대 중반, 게임기 시장의 경쟁도 심해졌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가세하면서 이른바 ‘7세대 게임기 시대’가 도래했다. 시장은 닌텐도, 세가, 소니 3파전으로 전개됐다. 세가는 ‘드림캐스트’를 비장의 카드로 내놨다. 1998년, 세가는 [소닉 어드벤처]를 드림캐스트용으로 발매했다. 소닉은 드림캐스트의 강력한 성능을 입고 풀 3D로 변신했다. ‘어드벤처’란 부제에 맞게 본격적인 소닉의 세계관과 스토리가 소개됐다. 무엇보다 입체로 즐기는 소닉의 속도감은 2D와 차원이 달랐다. 주인공 소닉 외에 테일즈, 너클즈 등 6명의 캐릭터를 선택해 각각의 스타일에 맞게 플레이할 수 있다. 소닉 어드벤처는 250만장의 판매되며 드림캐스트용 게임 중 가장 많이 팔린 타이틀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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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캐스트용 풀 3D게임으로 탈바꿈한 [소닉 어드벤처].


2001년, 세가는 소닉 10주년을 기념해 야심작 [소닉 어드벤처2]를 내놨다. 이 작품은 흥행이나 게임성면에서 소닉 시리즈의 정점을 이룬 작품이다. 우선 엄청난 볼륨을 자랑한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모든 캐릭터들이 총출동한다. 이용자는 히어로 진영과 다크 진영 중 하나를 골라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다. 캐릭터마다 조작법이 달라 하면 할수록 새로운 맛이 난다. 무엇보다 최강의 캐릭터로 불리는 [섀도우 더 헤지혹]이 처음 등장해 팬들을 열광시켰다. 섀도우 더 헤지혹은 주인공 소닉을 능가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나중에는 섀도우 더 헤지혹을 주인공으로 한 게임까지 따로 나왔다). 하지만 드림캐스트의 황혼기에 나온 이 작품은 그만큼 논란도 많이 남겼다.

원작자 ‘나카 유지’가 참여하지 않으면서, 초반부터 김이 빠졌다. 또, 라이벌 닌텐도의 게임기(게임큐브)로 이식되어 소닉 골수팬들은 배신감마저 느껴야 했다(당시 이 게임을 하려고 드림캐스트를 구입한 유저도 많았다). [어드벤처2]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소닉의 추락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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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게임큐브용으로 나온 [소닉어드벤처2] 배틀. 많은 세가 팬들을 멘붕시킨 작품이다.


이후 세가는 [소닉 히어로즈], [소닉 어드벤처 DX], [소닉 러시] 등 다양한 시리즈를 내놨다. 이 중 소닉 히어로즈는 소닉 시리즈 사상 최초로 한글화 되어 국내에 출시됐다. 하지만 너무 많은 시리즈를 내놓은 것이 패착의 원인이다. 원작자 ‘나카 유지’가 손을 뗀 소닉 프로젝트는 시리즈 남발을 조절할 만한 힘도 의지도 없었다. 반면 ‘마리오’는 원작자 미야모토 시게루가 매 시리즈를 직접 관리했다. 지난 30년 동안 발매된 마리오 정식 시리즈는 10개 안팎이다.

이에 비해 소닉 시리즈는 정식 타이틀 수만 20개가 넘는다. 지난 20년간 일 년에 1개꼴로 시리즈가 나온 것이다. 닌텐도는 마리오를 철저히 관리했고, 세가는 소닉을 남발했다. 아무리 강력한 캐릭터라도 이 정도면 지치기 마련이다. 유저들도 더 이상 소닉의 스피드에 열광하지 않았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소닉의 액션 스타일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 액션의 주도권은 [툼레이더], [데빌메이크라이], [진삼국무쌍] 같은 쌈박한 후배들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 노장 캐릭터의 쓸쓸한 말년
2000년대 중반, 세가의 드림캐스트는 힘든 싸움을 하고 있었다. 경쟁자는 메가 히트작 ‘플레이스테이션2’였다. DVD 기능을 탑재한 PS2는 드림캐스트가 감당치 못할 만큼 막강한 흥행을 기록했다. 여기에 750억 원을 쏟아 부은 대작게임 ‘쉔무’까지 실패하면서 세가는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렸다. 결국 세가는 게임기 사업을 포기했다.

‘나카 유지’는 세가의 드림캐스트 포기를 끝까지 반대했다고 한다. 세가가 하드웨어 사업에서 손을 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팬들의 절망은 상상 이상이었다. 소니에 협박전화가 빈번했고, 일부 열성팬들이 자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드림캐스트 사업이 중단되면서 소닉은 떠돌이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다 팬들을 실망시킨 결정적 실패작이 나온다.

2006년, 소닉 15주년 기념으로 발매된 [소닉 더 헤지혹 넥스트 제네레이션즈]는 소닉 시리즈 사상 최악의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기존의 속도감은 온데간데없고 뒤죽박죽된 스토리와 엄청나게 긴 로딩시간, 그리고 황당한 버그들이 팬들을 좌절시켰다. 오죽하면 건질만한 것은 음악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일까. 이후 몇 가지 시리즈들이 더 나오지만 그저 그런 평작이거나, 과거 게임의 리메이크 버전 정도였다. 한때 마리오의 코를 납작하게 했던 강력한 캐릭터 치고 씁쓸한 말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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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시된 [마리오와 소닉의 런던올림픽]. 소닉이 마리오의 들러리 캐릭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소닉의 비상을 꿈꾸며...
얼마 전 닌텐도 위용으로 출시된 [마리오와 소닉의 런던 올림픽]이란 게임을 해보았다. 이 게임은 앙숙이었던(?) 마리오와 소닉이 런던올림픽에 참여해 탁구도 치고, 수영도 하면서 경기를 치르는 게임이다(마리오와 소닉의 콜라보레이션은 베이징 올림픽 게임부터 시작됐다). 올림픽 특수를 노린 캐릭터 게임치고는 봐줄만하다. 가족끼리 부담 없이 즐기기에도 좋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내내 내가 알고 있는 소닉은 없었다. 마리오처럼 뒤뚱뒤뚱 달리는 파란색 캐릭터만 있을 뿐이다. 아무리 봐도 이건 마리오식 액션이다. 속도가 거세당한 소닉은 마리오 옆에서 탁구공이나 받아주는 그저 그런 보조캐릭터로 전락했다. “그냥 캐릭터 게임일 뿐인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소닉과 마리오의 투쟁의 역사를 경험한 팬으로썬 뭔가 허전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견이지만 필자는 ‘마리오’보다 ‘소닉’이 좋았다. 철저히 검증된 캐릭터에 안정적인 방식을 고수한 마리오의 ‘보수성’보다, 늘 새로운 적수에 맞서 과감히 돌파하는 소닉의 ‘진취성’이 좋았다. 선택과 집중의 닌텐도보다 모험과 도전의 세가를 더 응원했다. 그러나 마리오는 아직도 전성기 그대로인데, 소닉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작년 6월, 소닉은 21주년 생일을 맞았다. 평소 같으면 거창하게 생일이벤트를 펼쳤건만, 이번엔 왠지 조용하다. 20년 전 세계를 지배한 마리오에게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며 화려하게 도약했던 그때의 소닉을 다시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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