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 Form

1.jpg


현실이라면 구경하기조차 어려운 슈퍼카, 우렁찬 엔진소리와 화려한 드리프트, 도로에 수 놓인 스키드 마크. 레이싱 게임은 많은 남성 게이머의 ‘로망’이다. 오락실, PC게임, 그리고 가정용 게임기에 이르기까지 레이싱 게임 장르가 없는 플랫폼이 없다. 그런데, 레이싱 게임은 게임 역사의 중요한 순간 마다 기술 발전과 함께 했던 선두주자이기도 했다.


게임의 시작과 함께 레이싱 게임이 있었다
레이싱 게임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레이싱 게임 하면 역시 자동차 경주를 연상한다. 하지만 레이싱은 꼭 자동차에 국한된 장르는 아니다. 로켓, 보트, 그리고 말(경마)에 이르기까지 속도로 경쟁하는 게임이면 무엇이든 레이싱 장르에 속한다.


2.jpg

▶ 아타리의 '스페이스 레이스'


그런 의미에서 최초의 레이싱 게임은 아타리가 1973년 내놓았던 ‘스페이스 레이스(Space Race)’라 할 수 있다. 이 게임은 우주 공간에서 로켓을 조종해 달려드는 운석과 혜성을 피해 목적지까지 누가 더 빨리 도착하나 겨루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시기 일본의 타이토도 ‘아스트로 레이스(Astro Race)’라는 비슷한 방식의 게임을 내놓았다.


이 두 게임은 ‘퐁’과 비교하면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퐁’의 흥행으로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 불이 붙자 본격적으로 레이싱 게임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퐁’이 흥행하자 두 명이 경쟁하는 아케이드 게임이 대세가 되었고, 그 중 레이싱 게임은 ‘누가 더 빨리 골인하나’라는 아주 간단한 룰로도 게이머의 경쟁심을 크게 자극하는 장르로 각광받았다.


3.jpg

▶ 타이토의 '스피드레이스' (출처: http://www.ampress.co.jp/takai_video1/vid_game_photo.html )


자동차 레이싱 게임도 곧 등장했다. 1974년, 타이토는 ‘스피드레이스(スピードレース)’라는 게임을 내놓았다. 앞서 등장한 ‘스페이스 레이스’나 ‘아스트로 레이스’가 우주를 배경으로 한 레이싱 게임이었다면, ‘스피드 레이스’는 다른 차를 피하며 코스를 달리는 ‘자동차’를 이용한 본격적인 레이싱 게임이었다. ‘스피드 레이스’에는 핸들과 페달이 장착되어 있어 더욱 실감나는 레이싱을 즐길 수 있었다.


‘스피드레이스’는 당시 일본 오락실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으로 군림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이 ‘스피드레이스’를 만든 니시카도 토모히로는 몇 년 후 역사에 남을 걸작 게임인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만들며 흥행 신화를 이어갔다. 그래도 니시카도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보다 ‘스피드레이스’가 더 마음에 든다고 회상한 바 있다.


4.jpg

▶ 아타리의 '그란 트랙 10' (출처: http://www.old-computers.com/museum/software_detail.asp?c=1254&st=2&id=421 )


공교롭게도 ‘스피드레이스’와 같은 해 아타리에서도 자동차 레이싱 게임을 내놓았다. ‘그란 트랙 10(Gran Trak 10)’이다. ‘스피드레이스’가 일직선 코스를 달리며 다른 자동차를 피하는 내용이었다면, ‘그란 트랙 10’은 화면 속 트랙을 달려 포인트를 얻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의 기계에도 핸들과 기어, 그리고 페달이 달려있었다.


일본에서의 성공 이후 미국으로 건너온 ‘스피드레이스’와, 아타리가 내놓은 ‘그란 트랙 10’은 자동차 레이싱 게임의 원형이 되었다. 그리고 이 두 게임이 그랬던 것처럼, 핸들과 기어,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까지 갖춰져 있는 ‘리얼한’ 기계 모습도 이후 자동차 레이싱 게임의 상징이 되었다.


대 레이싱 게임의 시대
‘스피드레이스’와 ‘그란 트랙 10’ 이후 레이싱 게임이 쏟아져 나왔다. 아케이드 게임의 고참인 세가도 레이싱 게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1976년, 세가는 모토크로스(Moto-Cross)를 내놓았다. 이 게임은 오토바이 레이싱 게임으로, 선배 레이싱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오토바이 핸들을 게임 기계에 붙여 사실감을 추구했다.


‘모토크로스’는 게임 역사에 여러 모로 남을 게임이다. 먼저, ‘모토크로스’는 기본적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있는 레이서를 등 뒤에서 바라보는 시점을 도입했다. 지금 보면 조악한 그래픽이지만, 이 시기에는 충격적인 발상이었다. 트랙에 집중할 수 있는 이 시점 덕분에 게이머는 더 속도감 있는 레이싱을 즐길 수 있었다.


또 한 가지는 레이싱 게임뿐 아니라 게임 역사에 남을 혁신이었다. 바로 ‘진동’ 기능의 도입이다. ‘모토크로스’는 게임 내에서 다른 차량과 충돌하거나 코스를 벗어나려 하면 오토바이 핸들에 진동 기능이 작동했다. 실제 오토바이를 모는 것에 비하면 조악한 수준이었지만, 게임에서 손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5.png

▶ 세가 모토크로스의 개량 버전인 FONZ


거의 모든 게임 회사가 레이싱 게임에 뛰어들었고 독특한 시도가 이어졌다. 남코는 경주용 차량끼리 대결을 벌이는 ‘RallyX’를 1980년 내놓아 히트했다. 이 게임은 ‘배경음악’의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게임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하면 전통적인 레이싱 게임은 아니지만, 다른 차를 방해하기 위해 연막탄을 뿌리는 등 경쟁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방구차’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크게 히트했다.


6.gif

▶ 남코의 'Rally X'


이어 남코는 1982년 레이싱 게임 역사에 남을 걸작을 내놓았다. 바로 ‘폴 포지션’이다. 이전까지의 레이싱 게임이 대부분 가상공간의 게임이었다면, 폴 포지션은 실존하는 차량이나 트랙을 게임 안에 반영하려 시도한 레이싱 게임이다.


남코는 ‘폴 포지션’에 매우 큰 힘을 기울였다. 기존 게임과 차원이 다른 ‘폴 포지션’의 그래픽을 감당할 전용 기판까지 만들었다. 여기에 전용 캐비닛 안에 게임 화면과 핸들, 기어,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그리고 좌석까지 한 세트로 구현해 게이머가 실감나는 레이싱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


7.jpg

▶ 남코의 '폴 포지션' (출처: http://www.andysarcade.net/personal/ )


8.png


폴 포지션은 ‘포뮬러 원’ 자동차 경주를 기반으로, 실존하는 레이싱 트랙인 ‘후지 스피드웨이’를 게임 안에 그대로 담아냈다. 실제 트랙의 배경에 서 있는 펩시나 말보로 같은 기업광고판까지 그대로 따서 게임 안에 집어넣었을 정도다. (이 광고판들은 후에 저작권 문제로 다른 광고판으로 대체된다.) 폴 포지션이라는 제목도 실제 F1 레이싱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이렇게 공을 들인 만큼 폴 포지션의 인기는 대단했다. 1983년 북미로 건너간 폴 포지션은 그 해 가장 많은 수익을 거둔 아케이드 게임으로 기록됐다. 기계 자체의 판매액만 6천만달러에 달했으며, 기계당 일주일에 평균 450달러 이상의 수익을 내는 것으로 추정됐다. 사실감을 게임 속에 담아내려는 폴 포지션은 이후 등장한 레이싱 게임들의 이정표가 되었다. 레이싱 게임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게임으로 폴 포지션이 꼽히는 이유다.


천재 개발자가 낳은 ‘행온’과 ‘아웃런’
1985년, 일본 아케이드 센터에 이상한 모양의 게임기가 등장했다. 오토바이를 떼다 발판 위에 올려 놓은 것처럼 생긴 이 게임기의 이름은 ‘행온(Hang-On)’이었다. ‘행온’과 기존의 게임기는 모양부터가 달랐다. 오토바이를 그대로 재현한 모습은 그렇다 쳐도, 게임 화면을 표시해 주는 모니터가 오토바이 위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이 이상한 생김새를 한 기기에 다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행온’에 올라타 본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실제와 비슷한 오토바이 핸들을 조작하면 그 움직임이 화면 속 오토바이 뿐 아니라 사람이 타고 있는 좌석에도 반영되어 좌우로 기울어졌다. 오토바이 위 윈드 실드 부분에 붙어 있는 모니터는 가히 신의 한 수 였다. 게임기에 올라탄 사람의 시선이 실제 오토바이를 타듯 자연스럽게 게임 화면을 쫓아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10.png

9.jpg

입소문이 금세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끝내주는 레이싱 게임이 나왔다’는 경탄이 끊이지 않았다. '행온'은 오토바이 핸들로 조작하면 사람이 타고 있는 좌석까지 함께 기울어지는 최초의 '체험형 게임'이었다. 여기에 게임 내에도 16비트 그래픽, 유사 3D 기술(일명 2.5D로 불리는) 등 당대 최신 기술이 총 동원 된 게임이었다. 세가는 오토바이 레이싱 게임 ‘행온’으로 다시 한 번 큰 명성을 얻었다.


놀랍게도 ‘행온’을 개발한 스즈키 유는 이전까지 제대로 게임을 만들어 본 적도 없는 초심자였다. 그는 레이싱에 푹 빠져 있었고, 세가에 입사한 김에 진짜 실감나는 레이싱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오토바이의 느낌을 더 실제에 가깝게 만든다면 사람들이 반드시 푹 빠질 것이다.’ 이것이 스즈키 유의 전략이었고 ‘행온’은 레이싱 게임은 물론 게임 역사에 이름을 남기며 성공했다.


이듬해인 1986년에는 세가의 ‘아웃런’이 등장했다. 이 아웃런도 스즈키 유의 작품이었다. 아웃런 게임 자체는 지정된 시간 내에 일정 구간을 주파하는 간단한 방식이었지만, ‘빨간 페라리에 금발 여자친구를 태우고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도로를 달린다’라는 컨셉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11.png


12.jpg

▶ 이제는 전설이 된 '아웃런'의 기계 모습. 누가 봐도 '아웃런'임을 알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여기에 스즈키 유가 디자인한 아웃런의 기계 모습도 한 몫 했다. ‘행온’처럼 스즈키 유는 아웃런에서도 ‘진짜 실감나는’ 느낌을 추구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아웃런의 ‘자동차를 닮은 기계’였다. 페라리의 운전석을 흉내 낸 운전석에, 후면이 짙은 빨간색으로 칠해진 아웃런 기계는 오락실에서 단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행온’과 ‘아웃런’의 히트로 갑자기 ‘몸으로 즐기는’ 레이싱 게임이 대세가 되었다.


아케이드에서 가정용 게임기와 PC로
1980년대 내내 레이싱 게임은 치열한 진화를 거듭했다. ‘그란 트랙 10’의 흑백 그래픽은 ‘폴 포지션’의 컬러 그래픽을 거쳐 ‘행온’과 ‘아웃런’의 실감나는 16비트 그래픽까지 발전했다. ‘폴 포지션’, ‘행온’, ‘아웃런’의 잇따른 히트 이후 레이싱 게임은 당대 게임 업계에서 가장 화려한 장르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레이싱 게임 하면 실제 운전석 비슷한 공간에 앉아 핸들과 페달을 실제로 조작하며 스피드를 즐기는 최첨단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 시기까지도 레이싱 게임은 오락실에서 주로 즐기던 게임이었다. 게임 역사의 다른 한 축인 가정용 게임기와 PC 게임 시장에서 레이싱 게임은 생각만큼 히트를 치지 못하고 있었다. 아케이드 게임 기판에 비해 다소 부족한 성능이던 가정용 게임기나 PC의 사양 문제도 있었고, 핸들과 페달이라는 ‘손 맛’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1990년대 초반이 되자 드디어 3D 기술이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게임 역사에서 본격적인 3D의 문을 열어젖힌 게임 또한 바로 레이싱 게임이었다. 핸들과 페달은 어쩔 수 없겠지만, 가정용 게임기에서도 화려한 3D 그래픽으로 레이싱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더 화려하고, 더 실감나게. 이것이 이 시기 레이싱 게임의 모토였다.


13.png




댓글 3
profile
jihoonkim
16.04.08

행온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있네요...
행온 좌석은 고정입니다... 오토바이 핸들을 돌려서 조작하는 겁니다...

자료사진에서도 좌석과 모니터 핸들이 일체형인데...

핸들을 잡고 몸을 기울일 수 없는 구조입니다...
좌석을 기울여서 플레이 하는건... 나중에 같은 세가에서 나온 MANX TT입니다

자료사진 찾아보면 아시겠지만... 망스는 모니터와 핸들이 붙어있고...좌석이 분리되어서 

핸들을 잡고 몸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
겨울안개
16.04.08

말씀하신대로 행온은 핸들을 조작하면 좌석이 좌우로 기울어지는 구조인데 잘못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지적하신 부분은 수정했고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의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profile
jihoonkim
16.04.09
네~ 다음에도 멋진 기사 기대할께요~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