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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전2 마지막 장면. 이올린의 품에서 숨을 거둔 흑태자의 비극적 엔딩씬은 한국 게임사의 최고 장면으로 꼽힌다.

연인에게 죽음을 맞아야 하는 흑태자 ‘칼 스타이너’, 연인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하는 팬드래건 왕녀 ‘이올린’. 이들은 연인 사이지만, 한편으로는 서로를 증오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운명을 타고났다. 결국 흑태자는 이올린의 칼에 쓰러지고, 그녀의 품에서 고단한 인생의 마지막 숨을 내쉰다.

“.....고맙소 이올린.”

이올린은 싸늘해진 그를 품에 안고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노을이 붉게 물든 폭풍도. 주인공 남녀의 비극적 운명으로 [창세기전2]는 마침내 끝을 맺는다. 이처럼 [창세기전2]의 마지막 장면은 국내 게임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이다. 엔딩이 주는 감동과 여운은 [창세기전]을 당대 최고게임으로 만들었다.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 설렘. [창세기전]은 한국RPG의 상징적인 게임이자, 그 어떤 명작도 표현할 수 없는 한국적 한의 정서를 담은 작품이다.


한국게임의 봄, 역사는 한 명의 고등학생으로부터 시작됐다
[창세기전]을 논하기 전, 한국 게임의 ‘창세기’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국이 지금처럼 게임 강국이 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게임을 미래 혁신산업으로 보고 적극 육성했던 외국과는 달리, 한국사회는 게임에 대해 상당히 배타적이었다. 심하게 말하면 게임 자체를 사회악으로 보는 인식이 강했다. 오락실은 문제아들의 온상이고, 게임은 공부를 방해하는 마약취급 당했다(물론 이런 인식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만큼 초창기 한국 게임개발 환경은 척박했다. 당시는 게임 개발자란 직업 자체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게임 만든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걸로 밥이나 먹고 살겠냐’며 우습게 봤다. 어렵게 공부시켜 명문 대학 보낸 자식이 게임회사에 취직하면, 부모들은 도시락 싸들고 말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일수록 크리에이터들의 창조열정은 타 오르기도 했다. [울티마], [드래곤퀘스트] 같은 외국게임을 부럽게만 바라봤던 그들은 ‘우리도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결심으로 떨치고 일어났다. 사회의 냉대 속에서 한국게임의 싹이 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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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국산 RPG [신검의 전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남인환 씨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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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국산 PC용 RPG [홍길동전]. RPG를 한글로 할 수 있다는 자체가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1987년, 마침내 첫 번째 결실이 나왔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남인환 씨가 제작한 [신검전설]이 발매된 것이다. [울티마] 마니아였던 그는 혼자서 프로그램을 독학해 애플용으로 한국 최초의 RPG를 개발했다. 당시 애플 컴퓨터 보급률이 저조했고,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던 시절이라 크게 돈을 벌진 못했다. 이어 1993년, 국내 최초의 PC용 RPG [홍길동전]이 출시됐다. 그러나 일본산 RPG에 비해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아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1994년, 국산 게임의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졌다. 손노리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가 출시된 것이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한국 RPG의 봄을 가져온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당시 [울티마], [이스] 같은 외국 RPG는 언어장벽 때문에 국내 유저들이 쉽게 즐기기 힘들었다. 이런 시기에 등장한 본격 한글 RPG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게임의 스토리를 100% 이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은총(?)이었다. 손노리 특유의 유머와 감동적인 스토리는 외국게임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이때부터 RPG는 한국게임의 주류 장르로 자리를 굳혔다. [신검전설]로 싹을 틔운 한국게임은,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에서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창세기전]으로 이어지면서 화려한 열매를 맺었다. 기성세대가 게임이란 마약(?)으로부터 그렇게 보호하려 했던 고등학생이 한국게임의 역사를 시작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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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손노리가 내놓은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당대 최고의 게임이었던 [삼국지3]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었다.


재야 고수들, 게임의 ‘강호’로 나서다!
“그 당시 한국은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죠. 애플2와 MSX가 비슷한 비율로 보급되면서 자연스럽게 서양과 일본 문화를 동시에 받아들이게 됐죠. 한쪽에 쏠리지 않고 폭넓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의 울티마와 일본의 드래곤퀘스트를 동시기에 즐길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창세기전] 개발자 소프트맥스 최연규 이사(인벤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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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맥스 최연규 이사. 하이텔 ‘게임기동’에서 만난 지인들과 뭉쳐 [창세기전]을 개발했다.

초창기 한국 게임업계는 수많은 재야의 고수들이 몰려들던 중원 무림과도 같았다. 외국에서 들어온 명작들은 한국 크리에이터들의 창작욕을 깨웠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국가의 지원은커녕 이들을 받아줄 만한 게임사조차 없었다. 결국 게임 지망생들은 PC통신 동호회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같은 PC통신은 한국 게임개발자들의 산실이었다.

[창세기전]을 만든 소프트맥스 최연규 이사도 PC통신에서 만난 지인들과 게임 인생을 시작했다. 유달리 책을 좋아하는 그는 어릴 적 꿈이 동화작가였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한 그는 하이텔에 ‘게임기동’이란 동호회를 만들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창세기전의 핵심 개발진들은 대부분 ‘게임기동’에서 만난 사이다. 그들은 습작으로 MSX용 ‘메탈기어’를 PC용으로 이식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이런 작업은 불법이지만 당시 국내에는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행해졌다). 자신감을 얻은 최연규 이사는 본격적으로 게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퇴직금 3천만 원으로 살린 회사
“사람에 투자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이 게임회사의 전부입니다. 회사 설립부터 지금까지 새로 들어온 개발자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경영자로서의 가장 큰 즐거움이죠.”
-소프트맥스 정영원 대표(매일경제 인터뷰 중)

최 이사는 뜻 맞는 사람들을 모아 ‘갑인물산’이라는 회사에 들어갔다(정식채용이 아니라 사무실만 빌려 쓰는 형태였다). 소프트맥스의 전신인 ‘갑인물산’은 비디오게임기를 납품하던 업체였다. 그러나 사업이 어려워 회사가 문을 닫게 되자, 당시 대리로 근무했던 정영원 씨(현 소프트맥스 대표)가 퇴직금 3천만 원을 털어 회사를 인수하고 개발을 계속했다. 기획을 담당하는 최연규 이사, 게임 그래픽 담당 전석환 부장, 게임 프로그래밍을 맡은 조영기 전무가 회사의 주축 멤버들이다. 그들은 회사 이름을 소프트맥스라 바꾸고, 처녀작으로 [리크니스]를 개발했다.

두 번째 작품으로 비행슈팅게임 [스카이&리카]를 출시했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다시 회사는 재정난에 시달렸다. 최 이사는 마지막 카드인 RPG를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개발기간도 길고, 돈도 많이 드는 RPG는 위험부담이 높은 큰 프로젝트였다. 정영원 대표는 고민 끝에 최연규 이사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그들이 회사를 차린 이유도 제대로 된 국산 RPG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가. 회사의 허락이 떨어지자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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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맥스의 첫 작품 [리크니스]. 당시 대세였던 횡스크롤 액션게임으로 제작됐다.

처음엔 [울티마] 같은 RPG를 만들려고 했지만, 콘텐츠가 너무 방대해 일본식 SRPG로 방향을 잡았다. 대신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다양한 서브 컬처를 게임에 담았다. 예를 들어 창세기전은 한국 무협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실제로 최연규 이사는 하이텔 ‘무림동(무협소설 작가 동호회)’에서 알게 된 소설가 용대운(대표작 [군림천하]) 씨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최 이사 또한 “게임개발자가 아니면 무협작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 할 만큼 무협지 마니아이기도 하다. 여기에 ‘불륜’, ‘사랑’, ‘배신’, ‘복수’ 같은 치정극의 요소를 첨가했다. 인물간의 얽히고 설킨 관계는 배경만 현대로 바꾸면 아침드라마의 치정극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 실제로 팀원들은 최 이사를 가리켜 우스갯소리로 불륜치정 작가라고 불렸다고 한다. 최 이사 자신도 “(스토리를 만들 때)남녀관계의 치정극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렇듯 [창세기전]은 무협, SF, 판타지, 역사, 문학, 심지어 TV드라마까지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의 소재들을 버무려 놓은 게임이다. 외국게임을 모방하기보다 한국인의 보편적인 한의 정서를 자극하는 화법들을 담아낸 것이다. 이러한 클리셰 때문에 일부 유저들은 [창세기전]이 표절작품이라고 오해 하지만, 이건 너무 지난 친 반응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이 B급 쿵푸영화의 오마주인 것처럼, 창세기전도 일본식 RPG에 한국식 정서를 담아낸 독창적인 게임이라 보는 것이 적당하다.


안타리아 대륙의 대서사시, [창세기전]
1995년, 마침내 [창세기전]이 발매됐다. 소프트맥스에서 제작하고 하이콤에서 출시한 [창세기전]은 발매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플로피 디스켓 10장의 대용량 게임으로 출시된 [창세기전]은 [바람의 나라]로 유명한 만화가 김진 씨가 일러스트 작업에 참여했다. 전략게임의 느낌이 강한 전투시스템은 SRPG의 맛을 제대로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유저들이 극찬하는 건 스토리였다. 지금까지 일본식 RPG에선 주인공 개인의 성장스토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창세기전]은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들이 복합적으로 진행되면서 깊이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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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RPG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한 [창세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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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드래건의 왕자 라시드. 사사건건 누나 이올린에게 의지했던 철없던 어린아이에서 나중엔 나라를 지키는 성왕으로 성장한다.

안타리아 대륙을 배경으로 개성 강한 10여명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구성이나 규모 면에서 기존 게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했다. 보조캐릭터까지 합치면 등장인물이 100여 명이 넘는다. 숨겨진 요소까지 모두 찾아 즐기면 플레이 시간이 70여 시간 걸릴 정도다. 스토리가 워낙 방대해 1편에서는 제대로 완결을 보지 못했다. 미완으로 끝난 이야기는 1996년 발매된 [창세기전2]에서 완결을 맺는다. 2편이 1편의 내용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사실상 2편만 사서 즐겨도 무방하다. [창세기2]는 전작에서 미흡했던 전직 시스템이나 필살기 시스템 등을 추가해 완성도를 갖췄다. 특히 흑태자의 필살기 ‘아수라파천무’는 화면에 있는 적들을 한 번에 쓸어버리는 위력으로 유저들을 흥분시켰다.

여기에 날씨 등의 변수를 추가해 전략적 재미를 극대화 시켰다. 캐릭터가 마장기를 타고 전투를 펼치는 장면은 그 자체가 스펙터클 한 전쟁영화를 방불케 했다. 하지만 전작과 그래픽이 비슷하고 추가 시나리오도 짧아서인지, 전반적으로 1편을 답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창세기전2]는 국내 게임으로는 처음으로 5만장 이상 팔리며, 소프트맥스를 위기에서 구했다. 그 유명한 흑태자와 이올린의 엔딩씬을 남기며 유저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때부터 [창세기전]은 매년 겨울 가장 기대되는 게임 중 하나로 90년대를 풍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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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전2]. 시리즈 최고의 카리스마이자 비극의 주인공 흑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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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태자와 이올린. 이들 연인의 사랑이야기가 창세기전 1, 2편의 핵심.


비극의 완성형, 서풍의 광시곡
2편 이후 창세기전 시리즈는 [서풍의 광시곡]과 [템페스트]라는 2개의 외전 타이틀이 발매했다. 1998년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원작으로 했다. 주인공 ‘시라노 번스타인’의 처절한 복수와 비극적 스토리는 게이머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또한 게임의 배경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모티브로 삼아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실제로 ‘클라우제비츠’, ‘체사레 보르자’ 등 그 시대 실존 인물들의 이름이 그대로 등장한다.

시리즈 최초로 멀티 엔딩을 지원했는데, 선택에 따라 엔딩의 내용이 달라진다. 그래픽도 발전했다. 전작의 순정만화 같은 분위기에서 벗어나 한 폭의 서양화를 보는 듯한 화려한 그래픽을 연출했다. 소프트맥스는 [서풍의 광시곡] 일러스트레이터로 일본작가를 기용 했는데, 작가가 중간에 잠적해 버려서 곤란을 겪었다는 후문도 있다. CD 3장으로 구성된 [서풍의 광시곡]은 첫 번째 CD 전체가 프롤로그로 구성되어 있을 만큼, 오프닝이 상당히 길었던 게임이다. [서풍의 광시곡]은 국내에서만 15만장이 팔리며, 당시 최고 게임이었던 [스타크래프트]도 주춤하게 만들었다(물론 잠깐이지만). 또, 팔콤사가 게임을 리메이크해 일본에 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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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의 광시곡]의 주인공 시라노번스타인. ‘복수’를 테마로 한 스토리로 등장인물의 대사 하나하나가 문학적이다.


[창세기전]과 IMF
[창세기전 외전2: 템페스트]는 [서풍의 광시곡]과 같은 해 출시됐다. 사실, [템페스트] 탄생 배경에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90년대 중반, 한국이 IMF 위기를 맞으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했다. 게임회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동안 창세기전 시리즈를 유통해온 ‘하이콤’이 IMF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됐다. 유통사가 망하자 소프트맥스는 [서풍의 광시곡] 판매대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됐다. 소프트맥스 최대의 위기였다. 하지만 회사가 어려워 졌다고 직원을 내보내는 일은 없었다. 소프트맥스는 창사 이래 지금까지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회사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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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전 외전2: 템페스트]. 처음엔 [창세기전] 시리즈가 아닌 미소녀 육성게임으로 개발됐다고 한다.

한편 최연규 이사는 미소녀 육성게임을 제작하고 있었다. [창세기전]으로 성공했지만, 반대로 [창세기전]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창세기전]의 그늘에서 벗어나 가볍고 예쁜 게임을 신작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가 어려워지자 그는 신작개발을 포기했다. 그리고 또 [창세기전] 시리즈를 만들어야 했다. [창세기전]이라야만 팔리기 때문이다. 그는 여태껏 만들었던 게임에 [창세기전] 브랜드를 입혀 다시 만들었다. 시스템과 스토리를 [창세기전] 분위기에 끼워 맞췄다. 원래 기획됐던 육성게임은 [창세기전 외전2 템페스트]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발매됐다. 최연규 이사는 그때를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아무리 개발자의 뜻이 있다고 하더라도 회사 자체가 망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억지로 창세기전을 접목하다 보니 설정에 무리수가 많았고 완성도도 떨어지게 됐습니다. 버그도 상당했고요. 원래 계획했던 기획들도 대거 삭제되거나 다른 것들로 대체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쉬웠던 프로젝트였습니다."
- 인벤 인터뷰 중

개발자의 애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때문에 [템페스트]는 기존 창세기전 시리즈와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서풍의 광시곡]이 장엄한 비극을 다뤘다면, [템페스트]는 연애와 사랑을 다룬 로맨스물에 가깝다. 전통적인 SRPG 방식에서 벗어나 연애/육성 장르에 횡스크롤 턴제 전투를 도입하는 등 파격적인 시스템을 선보였다. 예상했던 반응이지만 [템페스트]는 나오자 마자 정통성 논란에 부딪혔다. 창세기전의 진지한 분위기를 기대했던 유저들은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느낌이었다. 반면 새로운 모습을 반기는 유저들도 있었다. 미소녀풍의 아기자기한 게임성은 오히려 여성 팬들이 늘어나는 계기가 됐다. [템페스트]는 호불호가 극단으로 나뉘었지만 흥행에는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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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2] 손이 오글거리는 대사들이 많다. 문학적인 서풍의 광시곡과는 다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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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스크롤 턴제 게임으로 바뀐 모습.


창세기전이 배출한 보석
“게임시장 소비자 폭은 여성보다 남성이 훨씬 많습니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에로티시즘에 관심을 갖고 있죠. 특히 우리나라는 유교 국가이기에 이를 항상 감추고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욕을 먹더라도 노골적으로 과감하게 이를 보여주고 싶었죠.”
-엔씨소프트 아트디랙터 김형태(ICON 2008년 강연 중)

‘템페스트’는 국내 대표 일러스트레이터 김형태 씨(현 엔씨소프트 아트디렉터)를 배출한 게임이기도 하다. 그의 데뷔과정이 재미있다. 원래 템페스트의 원화작업은 일본의 유명작가 ‘토니’가 맡았다. 그러나 사정이 생겨 작업에서 빠지고, 대신 한국 원화가가 대타로 투입됐다. 이 사람이 바로 김형태다. 워낙 기대가 높은 작품이었고, 인기 작가의 그림을 대체하기엔 신인작가로써 부담이 컸을 것이다. 그야말로 잘하면 본전, 못하면 욕먹기 딱 좋은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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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전]이 배출한 최고의 아트디렉터 김형태. [창세기전], [마그나카르타], [블레이드앤소울]을 개발하면서 국내 게임 일러스트의 획을 그은 인물.

그러나 김형태는 배포가 큰 인물이었다. 그는 과감히 ‘템페스트’ 일러스트 작업을 맡았다. 토니의 그림체와 비슷하게 그렸지만, 자신의 개성 또한 그림 곳곳에 새겨 넣었다. 민감한 사람은 게임 중간에 그림체가 바뀐 것을 알아챘지만, 대부분 유저들은 모르고 지나갔다. 실력을 인정받은 김형태 씨는, 창세기전 메인 일러스트레이터를 맡게 됐다. 이후 ‘창세기전3’, ‘마그나카르타’를 거쳐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앤소울’에 참여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다. 일본 작가의 대타로 투입된 김형태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아트디렉터가 됐다.

여성의 신체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그의 작품은 늘 기성세대들을 불편하게 했다. ‘마그나카르타’, ‘블레이드앤소울’ 등 내놓은 작품마다 선정성 시비가 따라다녔다. 비록 욕을 먹더라도 더 노골적이고 과감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표현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그런 고집 때문인지 일본에서도 그의 작품은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김형태의 그림은 [창세기전]이 발굴한 가장 빛나는 보석이다.


‘모든 것의 시작! 그리고 파멸...’ [창세기전3]
“창세기전3를 해본 사람이라면 눈망울을 투명하게 만드는 어떠한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프닝에서 살라딘이 피리를 불 때, 울컥하고 치솟아 오르는 감정의 격랑은 창세기전 팬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가슴시림, 그 자체다.”
-<피시 파워 진>, 2000년 12월호 [창세기전3] 리뷰에서 발췌

1999년 발매된 [창세기전3 파트1]은 외전이 아닌 정식 시리즈다. 정통 SRPG 방식으로 회귀했고, 3개의 에피소드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된다. 3편은 일종의 프리퀄 형식의 작품이다. 시대적 배경도 2편 이전 세대를 다뤘다. 2편에서 신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3편에서는 왜 신이 됐는지가 밝혀진다. 따라서 전작에서 설명하지 못한 창세기전의 비밀이 3편에서 밝혀진다.

2편이 남녀 간의 사랑을 주요테마로 했다면, 3편은 엇갈린 운명을 타고난 형제의 이야기를 다뤘다. ‘살라딘’, ‘버몬트’, ‘크리스티앙’ 3명의 에피소드를 따로따로 플레이 할 수 있으며, 이들의 여정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엄청난 파국으로 치닫는다. 형제간의 사랑과 증오, 그리고 희생과 용서는 유저들을 또 한 번 가슴 뭉클하게 했다. 결말부분에서 형 ‘살라딘’과 동생 ‘버몬트’가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장면은 2편의 폭풍도 엔딩만큼이나 인상 깊다. 3편은 시리즈 중 완성도가 가장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2편의 시스템을 충실히 따르면서, 군단 시스템 같은 새로운 콘텐츠를 추가해 볼륨을 키웠다. 캐릭터간의 ‘전투’가 아닌 군대간의 ‘전쟁’의 느낌을 구현했다.

[창세기전3]는 파트1과 파트2 두 개의 게임으로 나눠 발매됐다. 1년 뒤, 소프트맥스는 [창세기전3] 파트2를 내놓는다. ‘파트2’는 패키지 창세기전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게임이다. 특히 2편의 최종 보스로 등장하는 ‘베라모드’의 과거가 ‘파트2’에서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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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엇갈린 운명을 타고난 살라딘과 버몬트 형제의 스토리가 3편 파트1의 주요 테마. 그들의 이야기는 파트2의 처절한 비극으로 가는 전주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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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전3] 파트2.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었던 베라모드. 그의 출생의 비밀 속에 숨어있는 엄청난 반전은 유저들은 경악시켰다. 정말 이보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또 있을까..

이 작품의 핵심은 깜짝 놀랄 반전에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밝혀지는 ‘베라모드’의 탄생의 비밀은 영화 [식스센스]를 능가하는 충격적인 반전이었다. 패키지 마지막 작품이라서 그런지, 제작사는 아예 작정하고 이야기를 비극으로 몰았다. 정들었던 캐릭터들이 한꺼번에 죽어나가는데, 세상에 이런 멘붕이 없을 정도였다. 팬들로부터 ‘캐릭터를 너무 많이 죽인다!’는 불평이 쏟아질 정도였다. 그만큼 유저들은 캐릭터 하나하나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 플레이했다.

또 뫼비우스 세계관, 윤회개념 등 난해한 스토리 때문에 웬만큼 작정하고 플레이하지 않으면 엔딩을 봐도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를 정도다. 어쨌든 [창세기전] 시리즈는 3편을 기점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다.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총 100만장 이상이 판매되는 대기록 세우게 된다. 물량이 모자라 패키지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소프트맥스는 [창세기전3]의 성공으로 회사가치가 올라 2001년 코스닥에 상장됐다. [창세기전] 하나로 업계 최고의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승리감에 도취된 소프트맥스는 건드려선 안 될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 소프트맥스를 한 순간에 나락으로 빠뜨린 [마그나카르타]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창세기전]의 영광, [마그나카르타]의 덫이 되다
사실 [마그나카르타]와 [창세기전]은 연관성이 없다. 두 게임은 완전 별개의 타이틀이다. 그러나 [창세기전]에서 쌓아 올린 명성이 [마그나카르타]에 이르러 무너졌다는 점에서 두 게임은 필연적으로 맞닿아 있다. 소프트맥스표 RPG는 언제부터인가 게이머들의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매년 겨울이 오면 사람들은 서서히 술렁이기 시작하면서 소프트맥스가 선보일 또 다른 흥분과 감동을 기다려왔다. 그 기대에 부흥해 소프트맥스는 최초로 3D RPG를 선보였다. 소프트맥스는 3D게임 개발을 위해 자체엔진(아수라 엔진)까지 만들었다. 최연규 이사도 이번만은 제발 창세기전에서 벗어나 새로운 타이틀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그나카르타]가 발매됐다.

최연규의 스토리, 김형태의 그래픽, 여기에 보컬 엄지영 씨의 감미로운 오프닝 곡까지.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팬들의 기대도 대단했다. [창세기전]이 끝나서 아쉬워했던 유저들은 [마그나카르타]에서 또 한번 겨울의 전설을 기대했다. 게임관련 소식은 늘 게임매체에서 톱으로 다뤘다. 마케팅도 뻑적지근했다. 일반 패키지의 2배 이상에 달하는 최고급 한정판 패키지는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마그나카르타]의 실상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실망의 단계를 넘어 유저들은 경악했다. 아니, 경악의 단계를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2001년 12월, 아침부터 매장에 들려 큼직한 패키지를 들고 나온 그 뿌듯함도 잠시, 뚜껑을 열어보니 수많은 버그들이 득실거렸다. 게임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버그가 심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기 마련. 유저들의 분노는 대규모 리콜 사태로 이어졌다. 소프트맥스는 ‘유저들을 실망시켜 죄송하다’며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한국 게임의 명가 소프트맥스는 [마그나카르타] 리콜 사태로 순식간에 추락했다. 회사주식도 덩달아 폭락했다. 유저들은 [마그나카르타]를 ‘버그나카르타’로 부르며 비아냥거렸다. 얼마나 심적 부담이 컸으면 개발자들이 대인기피증까지 걸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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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아까웠던 게임은 소프트맥스의 [마그나카르타]와 손노리의 [화이트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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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솔게임으로 나온 [마그나카르타2]. 전작에 비해 훨씬 완성도를 높였지만 이미 유저들에게서 잊혀진 존재가 됐다.

문제는 개발기간이었다. 사실 일 년에 한 번씩 게임을 내놓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천하의 블리자드도 [스타크래프트]를 만드는데 5년이 걸렸다. 엔씨소프트도 [리니지2]를 개발하는데 꼬박 6년이 들였다. 그러나 [창세기전]은 매년 게임을 내놓는 강행군을 해왔다. 그리고 [마그나카르타]도 똑같은 길을 택했다. 이것이 패착의 원인이다. [마그나카르타]는 [창세기전]이 아니다. [마그나카르타]는 3D게임이다. 소프트맥스가 한 번도 도전해 보지 못했던 미지의 분야다. 개발기간을 충분히 두고 기초부터 착실히 쌓아야 했다. 창세기전의 영광 따윈 잊어야 했다. 그러나 [마그나카르타] 뒤에는 항상 [창세기전]의 아우라가 따라다녔다. 유저들도 [마그나카르타]에서 [창세기전]을 보려 했다. 그것도 매년 마다 한번씩....

최연규 이사는 인벤 인터뷰에서 “마그나카르타의 개발기간을 너무 짧게 정했던 것이 불행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그는 “스토리적인 성공에만 집중하다 보니 스토리 적 완성도만 높고 게임성은 떨어지는 게임이 나오게 됐다”고 당시를 고백했다. 겨울이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창세기전]의 약속은 [마그나카르타]를 옭아매는 덫이 된 것이다. 이후 [마그나카르타]는 PS2용으로 나와 일본에서 성공했지만, 한국 유저들에겐 여전히 애증의 게임으로 남아있다.


10년만의 외출, 새로운 창세기를 열다
한 10년 즈음 됐을까. [마그나카르타] 출시를 앞둔 최연규 이사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창세기전 후속작이요? 현재로써는 계획이 없습니다. 한 10년 정도 지나면 한번 고려해보죠(웃음)” 그가 무심코 던진 말은 이제 현실이 됐다. [창세기전4]는 전작이 나온 지 거의 10년 만에 MMORPG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다르다. 2008년 시작한 프로젝트는 개발기간만 벌써 5년째 접어든다. 그 5년의 시간을 소리 소문 없이 묵묵히 갈고 닦았다. 그 겨울의 굴레를 벗어 던진 [창세기전]은 그렇게 완숙미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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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묵묵히 갈고 닦아온 [창세기전4]. 새로운 [창세기전]을 기대해본다.

사실 [창세기전]은 장점만큼 단점도 많은 게임이다. 진행조차 불가능하게 하는 치명적인 버그들는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했다. 주인공의 필살기 한방에 모든 것이 정리되는 황당한 기술을 보면, 밸런싱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보낸 것 같이 허탈했다. 그렇다고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적인 게임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창세기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욕하든 칭찬하든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렇게 진절머리 나는 게임인데 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까.

[창세기전]은 어려운 시절 함께 해온 동네 친구 같은 게임이다. 서로 서먹하기도 하고, 간혹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런데 어릴 적 동네를 쏘다니며 녀석과 말썽 피웠던 생각을 하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지금 2~30대 게이머들은 [창세기전]과 그런 추억을 같이 해왔다. 겨울을 기다리며 게임잡지를 들추던 기억, 묵직한 패키지를 품에 안고 매장을 나섰던 기억, 지독한 버그에 게임을 수없이 다시 했던 기억, 이런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추억을 만들었다.

[삼국지]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스타크래프트]가 아무리 잘나가도, 사람들이 [창세기전]을 잊지 못하는 이유다. 그만큼 우리의 감성을 제대로 이해한 게임이 [창세기전]이다. 게임이 그려낸 처절한 비극 또한 각박한 현실에 억눌린 우리시대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온라인 게임으로 만난 [창세기전4]는 어떤 모습일까. 그 겨울의 설렘이 또 한번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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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전 3의 엔딩 장면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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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
15.01.11
패키지 PC 게임 세대인 저로서는 가장 재미있게 한 게임 하나만 꼽으라면 창세기전2를 꼽죠.
정말 최고의 게임이었습니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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