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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2 모드를 제작하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게임이 있습니다.

 

RTS의 옷을 벗고 새로운 장르의 옷으로 갈아입은 게임도 있죠.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 출시된 핵 앤 슬래시 RPG 워해머: 카오스 베인(카오스 베인)과 패스 오브 엑자일(POE) 입니다.

 

 

낯섦을 넘으면 재미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태평양을 건넌 소닉이 팔다리가 길어지고 피카츄는 털북숭이가 되는 현상. 이것을 가리켜 양키 센스라고 합니다. 우리와 저들 사이의 거대한 바다만큼이나 이 센스는 도무지 적응하기가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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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만 건너면 전혀 다른 아이로 변신한다

 

그런 면에서 POE나 카오스 베인의 디자인은 담백하게 말해서 구립니다. 구리다는 것이 그래픽 퀄리티의 문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멋의 관점에서 봤을 때 하나도 안 멋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커스터마이징으로 성형을 넘어 신인류를 탄생시킬 수 있고 항상 뽀샤시하고 번쩍번쩍거리는 국산 게임 캐릭터에 비해 이 두 게임은 날 것 그대로 캐릭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워해머: 카오스 베인

드워프라 하면 누가 봐도 “이건 드워프네”라고 할 만큼 드워프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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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장이나 꾸밈 하나 없는 순수결정체 드워프 형

 

인간 캐릭터도 이태원 노천카페에 앉아있으면 흔히 목격되는 외국 젊은이처럼 평범하게 생겼죠. 8등신 캐릭터도 없으며 허리는 잘록하고 가슴은 큰 현실성 제로의 여성 캐릭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날 것 그대로의 미제를 보는 느낌입니다. 이는 주인공 캐릭터뿐만 아니라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그렇습니다.

 

패스 오브 엑자일

POE의 경우는 정도가 더 심합니다. 게임 초반 당연히 캐릭터는 허접한 아이템을 둘둘 말고 있습니다. 이 허접한 아이템이 그야말로 진짜 허접합니다. 누더기를 걸친 것 같아요. 국산 게임은 기본 아이템이라 해도 어느 정도 예쁨을 가지고 있지만 POE는 정말 거지꼴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궁수 캐릭터는 목 늘어진 러닝셔츠 그러니까 방구석 백수 삼촌들이나 입고 있을 ‘난닝구’스러운 그런 옷을 입고 서있습니다.

 

근데 충격적인 반전은 웬만한 템을 착용해도 룩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노란색 레어 등급의 아이템을 착용해도 누더기에서 찢어진 부분만 없을 뿐 패션 테러리스트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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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어를 착용해도 거지꼴을 못 면한다

 

어찌 되었건 두 게임 모두 캐릭터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뭐 긍정적으로다가 생각하면, 좀 더 예쁘고 잘생긴 캐릭터를 가지기 위해 3, 40분 정열을 쏟지 않아도 되니 좋습니다만 캐릭터 생김새를 중요시 여기는 유저라면 플레이를 시작하는 게 망설여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낯섦만 극복한다면 생레몬 씹었을 때 폭발하는 침샘처럼 짜릿한 재미가 마구 터지게 되니 첫인상에 너무 실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진입장벽 노말과 하드코어

 

모든 게임은 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룰을 숙지해야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게임에서 튜토리얼 구간을 두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유저는 튜토리얼을 통해 게임의 전투 방식이나 자신의 캐릭터를 성장시키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워해머: 카오스 베인

일반적인 RPG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캐릭터 성장이나 각종 아이템, 스킬, 전투 방법 등은 기본적인 RPG의 룰을 따르고 있으며 RPG 다운 복잡도가 보입니다.

 

레벨에 따라 스킬은 자동 활성화됩니다. 문제는 스킬을 슬롯에 끼워 사용하는데 스킬 점수가 쓰인다는 사실입니다. 기본 기술 외에 액티브, 패시브 스킬 모두 포인트를 사용하는데 이 포인트를 넉넉하게 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2단계 고급 기술을 쓰고 싶을 때는 다른 스킬을 슬롯에서 제거해야 합니다. 최적의 조합을 찾기 위해 고민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더해 GOD SKILL TREE라는 일종의 패시브 스킬 트리가 존재합니다. 스킬을 활성화하는 데는 보석 조각이 필요한데 이 보석 조각은 몬스터가 드롭합니다. 따라서 던전에서 꼼꼼하게 몬스터를 찾아 죽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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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면 일반적인 RPG 정도의 복잡도다

 

얼핏 보기엔 복잡해 보일지 모르나 이 정도는 웬만한 RPG는 가지고 있는 콘텐츠입니다. 만약 이 정도도 너무 복잡하다 느껴진다면 그동안 너무 오토에만 의지해왔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권해드립니다.

 

패스 오브 엑자일

패시브 스킬 트리. POE의 진입장벽은 이것 하나로 설명 가능합니다. 열자마자 뜨악하게 만드는 이 놀라운 아이는 마치 만 원권에 새겨진 별자리 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보는 듯 경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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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큼이 다가 아닙니다. 아직 더 많아요

 

이렇게 거대한 스킬 트리는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다양한 빌드 업 방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각종 커뮤니티나 유튜버들은 최고의 스킬 트리를 완성하기 위해 다양한 공략을 내놓고 있죠. 따라서 제대로 파고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정신없이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이것이 선택지가 많을 때의 최대 장점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공부와 연구가 필요하고 그 공부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수포자의 심정으로 그냥 막 찍다 보면 결국 낭패를 볼 확률이 큽니다. 그리고 낭패를 보면 뒤로 되돌리기도 힘듭니다. 유저들은 스킬 트리를 잘못 탔을 때는 그냥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길 권하고 있습니다. 라이트 유저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전투

 

핵 앤 슬래시 장르의 묘미는 대량학살에 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터지는 대미지 숫자의 장관. 가지고 있는 모든 스킬을 다 사용해 적을 학살하는 쾌감. 누워있는 적들이 떨군 수많은 아이템을 주울 때의 탐욕. 이것이 핵 앤 슬래시 장르가 게이머로부터 사랑을 받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두 게임 모두 핵 앤 슬래시의 아버지인 디아블로를 충실히 계승했습니다. POE야 디아블로 유즈맵에서 태어난 게임이기 때문에 태생부터가 디아블로지만 카오스 베인도 플레이를 하다 보면 역시 이 아이도 디아블로에서 자유롭진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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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게임의 아버지 격인 디아블로

 

따라서 두 게임 모두 비슷한 전투 성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만 뚜껑을 열어보니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전투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패스 오브 엑자일

패스 오브 엑자일의 경우 전형적인 핵 앤 슬래시의 모습입니다. 엄청 넓은 맵에 떼로 몰려나오는 몬스터 그리고 대량 살상 기술들까지 디아블로식 핵 앤 슬래시의 교과서를 보는 듯합니다. 몬스터의 AI도 단순합니다. 몇 가지 다른 유형의 몬스터가 섞여서 돌진하는 게 다입니다.

 

물론 특정 몬스터는 특수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모든 몬스터는 유저를 향해 ‘돌진 앞으로’를 시전합니다. 스킬도 크게 컨트롤을 요하는 것은 없습니다. 오로지 대량학살에 모든 포커스를 맞춘 아주 명확한 전투 콘셉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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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 앤 슬래시의 기본에 충실한 패스 오브 엑자일

 

워해머: 카오스 베인

워해머 카오스 베인 역시 대량학살 측면에서는 POE와 일맥상통합니다. 몰이사냥도 가능하고 스킬 디자인 역시 대부분 다중 히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이렇듯 비슷해 보이지만 카오스 베인은 POE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몬스터가 직선으로 달려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줘 터지면서도 꾸역꾸역 달려오는 올곧은 대나무 같은 몬스터가 POE의 몬스터라면 카오스 베인의 몬스터는 상당히 약아빠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초반 메이지 플레이 때 가장 당황했던 것이 곡선을 그리며 뛰어오는 몬스터였습니다. 대부분의 핵 앤 슬래시 게임에서는 보이지 않는 곡선 주행으로 인해 몬스터를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컨트롤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판정 범위가 짜지 않기 때문에 큰 조작 없이도 웬만하면 맞출 수 있지만 직선으로 냅다 뛰어오면 서서 쏴도 그만인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몬스터 방향으로 약간 방향을 틀어 줘야 했습니다.

 

뒤를 잡는다던가 도주를 했다가 다시 온다던가 원거리 몬스터가 다양한 방향에 위치해 공격하는 등 다양한 패턴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핵 앤 슬래시 게임보다 더 많은 손놀림이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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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악한 몬스터 AI로 인해 많은 손놀림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더해 원형 기술이라는 신박한 기술이 있어 손의 피로를 더 올려줍니다. 원형 기술은 특정 스킬 중 컨트롤 가능한 스킬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한 메이지의 경우 마법구를 발사하면 발사된 마법구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시켜 적에게 대미지를 줄 수 있습니다. PS4의 경우 오른쪽 스틱으로 이동할 수 있고 PC의 경우 스페이스 바를 누르고 커서로 이동하는 방식입니다.

 

상당히 매력적인 기술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맵 디자인도 원형 기술을 사용했을 때 효과가 극대화되도록 비교적 넓지 않고 좁게 디자인되었기 때문에 원형 기술의 중요도는 더 큽니다. 하지만 육체적인 피로가 상당합니다. PS4의 경우는 그나마 컨트롤하기가 더 수월합니다만 PC의 경우 캐릭터 이동과 함께 사용하기에는 컨트롤이 상당히 빡셌습니다.

 

그냥 화끈한 대량 살상을 원한다면 POE 쪽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카오스 베인은 상대적으로 컨트롤을 많이 요하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컨트롤이 익숙해지면 박카스 한 사발 마시고 계속하고 싶을 정도로 카오스 베인의 전투가 더 박진감 넘치고 몰입감이 좋았습니다.

 

***

 

‘디아블로’가 봉인되고 ‘로스트 아크’가 방주 타고 떠나버린 지금의 핵 앤 슬래시 시장에서 두 개의 같지만 다른 게임이 동시에 나왔다는 것은 핵 앤 슬래시류의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에게는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두 게임 모두 각각의 개성과 매력이 있는 게임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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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디아블로를 계승할 수 있을까요?

 

오전엔 패스 오브 엑자일을 오후엔 워해머: 카오스 베인을 저녁엔 디아블로로 하루를 마감하는 핵 앤 슬래시 안빈낙도의 삶. 상상만으로도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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