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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내 또래의 많은 영웅이 마지막인지도 모른 채로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성역의 파수꾼’, ‘시공의 지배자’, ‘사신의 아버지’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가졌던 친구들은 결혼했고,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렸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게임을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가장’이 된 이들은 나의 삶을 부러워했다. 내가 잘나서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단지 혼자 사는 ‘싱글’이라는 이유, 그리고 무엇보다 눈치 보지 않고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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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년차 와우저의 마지막 뒷모습은 눈이 부셨다.

 

하지만 게이머의 삶을 사는 내게도 불안한 마음은 있었다. 남들처럼 가족을 꾸려야 한다는 압박과는 결이 달랐다. 30대 중반이 되면서 점점 ‘이제는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게이머가 ‘피지컬이 안된다’라는 공포가 얼마나 절망적인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더 늦기 전에 무언가를 이뤄보고 싶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자,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게임’에서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결국 그렇게 ‘인생은 한방이지만, 한번 뿐이기도 하다.’라는 그럴싸한 합리화를 하며 회사를 그만뒀다.  

 

어른이라면 해서는 안 될 철없는 행동이었다. 많은 이들이 내 생각과 행동에 ‘나이를 먹어도 변한 게 하나 없는 놈’, ‘여전히 대책 없이 사는 놈’이라며 나무랐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내심 부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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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의 대부분을 태운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다.

 

‘와우는 접는 것이 아니라 쉬는 것’이라는 아주 유명한 말이 있다.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나는 ‘아제로스의 용사’가 될 자격을 얻게 됐다. 날이 제법 쌀쌀했던 2018년의 겨울, 단 한 번도 와우를 접은 적 없었던 나는 고리발이 박혀 아제라이트를 흘리고 있는 실리더스로 향했다. 

 

내 캐릭터가 오그리마 한복판에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올바른 결심을 한 것 같았고, 이번에야말로 정점에 오를 수 있을 거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다. 확실히 그동안의 느낌과는 달랐다. 공격대도 참여해보고, 쐐기돌 던전도 가보고, 몸이 버틸 수만 있다면 투기장 검투사도 찍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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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구경만 하고 끌려고 했다. 하지만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금의 와우는 예전의 내가 알던 그 게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주한 격전의 아제로스는 곳곳이 병들어 있었다. 실제로 나와 비슷한 시기에 복귀한 와우저들도 오래 머무르지 못한 채 ‘더는 못하겠다’라며 게임을 떠났다. 다들 못해도 10년 혹은 그 이상을 와우에 보낸 사람들인데 말이다. 

 

‘MMORPG’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임. 도전자가 없었던 최고의 게임인 와우가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건지 궁금했다. 오래된 게임인 만큼 연령대가 높고, 고인물들만 남았긴 했어도 이 정도까지 엉망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 글은 나름 와우를 사랑했지만, 이제는 떠나보내려는 한 와우저의 심정을 담은 글이다. 약 6개월동안  아제로스에서 보낸 시간들을 갈무리하고자 한다. 아마 이 글에 공감할 수 있는 와우저가 많진 않겠지만, 그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와우저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와우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왜 이토록 병들었는지를 한 번 돌이켜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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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도 끝도 없는 호드 갈구기

와우가 얼마나 추락했는지는 ‘스토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워크래프트의 세계관부터 20년 넘게 쌓아 올린 와우의 스토리는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잘 짜인 스토리였다. 하지만 이번 격전의 아제로스는 그동안의 모든 확장팩의 시리즈 중에서도 최악이다. 고전 서사시 같은 깊이와 무거움은 와우에서 사라졌고, 삼류 작가가 휘갈겨 쓴 라이트노벨 수준의 막장 스토리만 남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을 바로잡아 줄 인물들이 이제는 블리자드를 떠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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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기가 된 건 이 영상 때문이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안 봤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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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드랏실이 불 타리라고는 얼라도 호드도 생각하지 못했다.

 

트레일러에서 ‘호드를 위하여’를 외치는 실바나스를 봤을 때까지만 해도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그 장면 하나 때문에 복귀한 유저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게임에서의 ‘실바나스’는 ‘텔드랏실’을 불태우고, ‘언더시티’에 역병을 푼 것도 모자라 ‘사울팽’에 까지 막말을 해대는 ‘개ㅆ년’이 되어 있었다. 원래 호드와 얼라이언스는 오래전부터 대립하고 있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 전쟁에는 명분도 확실하지 않고, 명예도 없었다. 

 

목적도 불투명하고,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까라면 까’ 식의 스토리 진행에 호드 유저들은 분노했다. 이미 ‘가로쉬’ 라는 캐릭터가 한 번 해먹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호드 입장에서는 다시 들추기 싫은 과거의 모습을 현재의 대족장이 그대로 따라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아니 언제까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냐’, ‘실바나스랑 막고라라도 한 번 붙게 해달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개발진은 호드 유저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실바나스는 가로쉬와 다를 것’이라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반전을 가져와도 쉽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호드 유저들의 화를 어떤 식으로 누그러트릴지 궁금하지만, ‘앞뒤가 맞고, 말이 되며, 모두를 납득시킬만한 스토리’를 내놓기란 어려워 보인다. 

 

게임에서 답이 안 나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는 조금 치사하지만 반칙, 치트키를 쓰는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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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확실한 치트키

 

개발진은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첫 번째 카드는 ‘사울팽’이었다. 그런데도 이미 엎어진 물을 주워 담기엔 벅차 보였다. 결국 최후의 치트키. 모든 상황을 뒤엎고 거기다 정당성까지 부여하는 캐릭터. ‘스랄’을 꺼내왔다. 

 

‘사울팽’과 ‘스랄’. 이 둘은 호드 플레이어에게 따로 수식어가 필요 없는 캐릭터다. 와우 세계관에서는 얼라이언스에서도 인정받는 둘이다. 호드의 명예 그 자체, 그리고 신생 호드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이자 최후의 카드. 이 둘을 꺼냈으니 어찌 됐든 비벼내면 플레이어들은 ‘아 스랄이랑 사울팽이 맞다고 하면 맞다’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 게임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고 대충 어떤 식으로 그림이 흘러갈지는 예상할 수 있다. 대부분의 유저가 ‘오그리마 공성정 시즌 2’, ‘실바나스가 젤나가’, ‘스랄의 죽음, 호드의 각성’ 등 끔찍한 결말을 예측하고 있다. 

 

다만 내가 걱정되는 것은 만약 ‘스랄’과 ‘사울팽’이 이번 확장팩에서 소비되어 버린다면, 이후의 호드를 이끌어나갈 주축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대와 세대를 이어줄만한 캐릭터가 마땅히 없다는 것도 문제다. ‘그롬마쉬’와 ‘가로쉬’는 이미 죽었고, ‘볼진’역시 등장은 하지만 어디까지나 영혼일 뿐 큰 영향력은 없다. 사울팽의 아들도 이미 10여년 전 얼음 왕관 성채에서 싸늘한 죽음을 맞았다.  

 

이번 확장팩의 중심인 ‘실바나스’, ‘사울팽’, ‘스랄’이 최악의 경우를 맞이한다면, 호드를 대표할 수 있는 캐릭터는 ‘케른 블러드후프’의 아들 ‘바인 블러드후프’와 ‘렉사르’ 그리고 트루 호드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맘에 들지 않겠지만 블러드엘프의 섭정 ‘로르테마르 테론’ 정도가 남는다. 호드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캐릭터의 스토리나 임팩트가 역대 대족장에 비하면 빈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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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저들이 이토록 불만을 갖고, 개발진을 불신하는 이유는 꼭 지금의 스토리 때문만은 아니다. 스토리는 단지 그동안 쌓여있던 유저들의 불만이 터지게 된 ‘도화선’일 뿐이다. 와우저들이 정말로 불만을 가지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와우가 아니다’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와우를 만들어 온 많은 사람이 블리자드를 떠났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지금의 블리자드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블리자드’가 아니다. 와우의 스토리는 그 어떤 게임의 이야기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마무리가 어떻게 될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와우는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내지 않는다. ‘실바나스 윈드러너가 하루아침에 이런 취급을 받으며 욕을 먹을 캐릭터일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이런 상황을 바로잡아줄 인물들은 이미 블리자드를 떠났다. 

 

개인적으로 다음 9번째 확장팩이 와우의 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현재 블리자드의 상황, 숫자 9가 가지는 의미, 돌이킬 수 없는 유저 이탈 등 많은 이유 때문이다. 언젠가 끝이 올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은 했었지만, 이제는 정말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아닌가 걱정된다. 다만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다른 분야의 이야기지만 최근 마무리된 ‘왕좌의 게임’과 같은 마무리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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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리자드는 ‘게임’회사에서 게임‘회사’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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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보다 어렵고 복잡한 ‘애드온’

와우를 처음 시작하는 와린이들, 그리고 복귀 와우저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바로 ‘애드온’이다 와우는 ‘애드온으로 시작해서 애드온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애드온이 있다. 지금까지 애드온의 역할은 ‘조미료’, 혹은 ‘토핑’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없으면 절대 깰 수가 없다’의 영역까지 확대된 것이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은 와우에서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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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도면 ‘일반적’인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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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담 조종’이라고 돌아다니는 짤. 과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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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PS를 확인할 수 있는 데미지 미터기 ‘디테일스’와 각종 경고를 알려주는 ‘DBM’을 사용중이다. 사실 이 둘은 와우의 필수 애드온이다.

 

애드온을 제대로 다루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 세팅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 역시 애드온 ‘위크오라’와 ‘네임 플레이트’의 코드를 종일 만진 기억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와린이 입장에서는 애드온을 구하기, 설치, 세팅까지 복잡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아마 많은 와우저들이 애드온을 사용하면서 ‘꼭 필요한 건 그냥 기본 UI로 지원해 주면 안 되나?’하는 생각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다행히도 와우를 정말 좋아하는 와우저들은 커뮤니티나 유튜브를 통해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애드온 제작자들 역시 패치에 맞춰 꾸준히 업데이트 버전을 배포하고 있으며, 애드온이 어렵게 느껴지는 와린이들을 위해 필수요소만 모아놓은 통합 애드온을 만들기도 한다. 이 모든게 돈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와우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이 없다’라는 말도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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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 애드온’은 꼭 필요한 것만 담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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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해지면 쉽지만, 모르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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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 네임드에서는 애드온뿐만 아니라 음성채팅이 가능한 프로그램까지 사용해야 한다.

 

‘나는 그냥 순정이 좋은데’라고 하는 와우저들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애드온 자체를 ‘반칙’이라고 생각한 사람 중 한명이었다. 혼자 하는 콘텐츠를 즐긴다면 문제가 될 것은 없다. 하지만 레이드나 던전을 가겠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특히 이번 격전의 아제로스 많은 학원팟을 파괴한 다자알로 전투의 7넴 ‘멕카토크’의 경우 ‘디스코드’와 ‘위크오라’ 없이는 공략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자신에게 맞는 애드온을 찾고 세팅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당연히 신규 유저들에게 애드온이란 존재는 ‘아니 게임하는데 이런 거까지 내가 알아야 해? 이거 꼭 써야 돼?’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많은 와린이들이 게임을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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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팟의 종결자 ‘멕카토크’. 많은 막공을 터트렸다. 애드온 없이는 공략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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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경력자’만을 원하는 ‘레이드’

와우의 꽃은 ‘레이드’다. 하지만 이 꽃이 이제는 시들고 있다. 레이드 문화에 가장 큰 타격을 주었고, 많은 와우저들이 아제로스를 떠난 계기가 된 것은 아마 ‘로그’가 아닐까 한다. 나는 울디르 영웅 레이드에 참여하려 했을 때 ‘와우에 이런 시스템이 있었구나’를 처음 알았다. 와우는 이제 현실보다 더욱 냉혹하게 스펙을 따진다. 경험많고 학벌 좋은 경력자만이 레이드를 갈 수 있다.

 

‘로그’는 레이드의 네임드마다 자신의 점수를 나타내주는 사이트라고 생각하면 쉽다. 일종의 ‘성적표’를 보여주는 사이트다. 내가 어떤 네임드에서 몇점을 받았는지, 그리고 와우저들 중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MMORPG에서는 보기 힘든 리플레이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누가 바닥을 밟았는지, 어디서 트롤 짓을 했는지 다 잡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저 아닌데요’는 통하지 않으며,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상황이 이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실수는 잡아내고, 공대 전멸이 왜 일어났는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딜 사이클은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등 빠른 피드백을 통해 무의미한 트라이를 방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주 좋은 사이트다. 이렇게 장점만 놓고 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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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드에서 일어난 모든 데이터가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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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에서 어떤 스킬을 사용했고 맞았는지 모두 확인이 가능하다. 이제 와우에서 밑장빼기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 로그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여기는 고인물들이 많다는 것이다. 로그의 점수를 보조지표가 아닌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이전까지 와우 레이드의 목표를 ‘클리어’라고 했다면, 지금은 ‘로그 점수’갱신을 목적으로 하는 와우저들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로지 로그 점수의 기준이 되는 ‘딜’에만 집중해 제대로 된 공략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공략을 무시한 ‘빡딜’, 특수 임무 당첨 시 불쾌감 표출, 로그를 올리지 않았을 때의 불만, 로그 점수를 위한 의도적인 전멸 등 많은 단점들이 레이드의 본래 목표인 ‘협력’에 흠집을 내고 있다.  

 

시작은 ‘더 좋은 레이드 환경’을 위해서 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일정 점수 이상의 유저들만 레이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진입장벽’으로 변질됐다. 이 로그 점수 때문에 레이드는 점점 폐쇄적, 제한적인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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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은 로그 1위의 점수, 오른쪽은 내 점수. 솔직히 공대장 입장에서도 왼쪽을 뽑고 싶을 것이다.

 

처음 공격대가 열리고 나면, 대부분의 공대장은 네임드의 진행 상황을 확인하는 ‘업적’과 게이머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판단하는 ‘로그 점수’를 요구한다. 첫 번째 주에 레이드 참여를 못 했거나, 로그 점수가 낮을 수밖에 없는 신규 와린이들, 공략을 천천히 익히는 슬로우 스타터들, 레이드가 잘 모이지 않는 시골 서버의 와우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레이드 참여가 어려워진다. 

 

이런 소외자들을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알려주는 ‘학원팟’이 있지만, 가뭄에 콩 나듯 열릴까 말까 한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학원팟 공장’이란 존재는 예수, 부처, 석가모니, 공자에 버금가는 성인만이 할 수 있다. 쉽게 볼 수도, 쉽게 할 수도 없는 위치다. 그럼에도 ‘학원팟 공대장’에게 남는 것은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뿐이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와린이들은 ‘길드팟’이나 ‘학원팟’이 열리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다가 ‘레이드는 고인물만 갈 수 있구나’는 인식을 갖게 되고 와우를 그만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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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적제시, 확고팟, 로그 봅니다’ 공대장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 스펙도 안 보고 사람을 뽑을 수는 없으니까.

 

물론 불필요한 트라이를 줄이고, 최대한 빨리 자신이 원하는 네임드를 클리어 하고 싶은 건 모든 와우저의 본능이다. 나 역시 아니라고 부정하진 못하며, 내가 공대장을 잡는다고 해도 로그 점수를 아예 안 보겠다고는 못하겠다. 레이드에서 시간을 태우고, 도핑 값으로 몇만 골드씩을 버려가면서 트라이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변태가 아닌 이상. 

 

그렇다고 로그를 없앨수는 없다. 분명 ‘순기능’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고, 이미 레이드 참여를 위한 하나의 과정이자 중요한 지표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마치 캐릭터의 레벨이나 아이템 레벨을 확인하는 것과 같다.  

 

이제는 모든 와우저들이 로그의 긍정적인 효과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로그에 대한 인식의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고, 단순 ‘딜’이 아닌 ‘공략 이행 기여도’ 처럼 모두가 인정할 수 있을 만한 기준도 필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로그 점수가 ‘수단’에 머무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다 최고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할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어진 기회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였던 레이드의 정신이 ‘남이사 망하든 말든 상관없다. 내 점수만 잘 찍으면 된다’로 바뀌지 않도록 막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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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밸런스 ‘쐐기돌 던전’

‘특정 직업을 위한’, ‘특정 스킬에 의한’ 콘텐츠. 직업 밸런스와 던전의 구성이 얼마나 엉망인지, ‘깼어? 어케 깼노?’식의 블리자드 운영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콘텐츠. 바로 ‘쐐기돌 던전’이다. 레이드에서 스펙을 봤다면, 쐐기돌 던전에서는 ‘태생’을 본다. 애초에 직업 선택을 잘못했다면, 쐐기돌 던전 콘텐츠를 즐기기엔 한계가 있다. ‘공략보다는 편법’의 강요, ‘한 번 엿먹어 봐라’의 던전 구성, ‘응 수고했어 근데 템은 안 줘’식의 보상. 이 3박자가 완전히 맞물려 엉망진창인 와우의 현재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쐐기돌 던전’은 시간은 없지만, 아이템 파밍을 하고 싶고, 누군가와 함께 게임을 해보고 싶은 라이트 와우저이 즐기기 가장 좋은 콘텐츠다. 특히 길드, 혹은 지인들끼리 파티를 짜서 1시간 내외로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쐐기돌 던전’의 기본은 ‘타임어택’이다. 1단부터 25단(혹은 그 이상)까지 파티를 꾸려 도전할 수 있으며, 단수가 올라갈수록 던전내의 적들이 더 강해진다. 당연히 쐐기돌 던전에도 로그가 존재하고, 쐐기돌 던전의 성적표를 알려주는 ‘레이더’ 라는 사이트도 존재한다. 이제 와우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콘텐츠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점수’ 관리를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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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것을 따지다 보니 초대가 느릴 수 밖에 없다. 와우에서는 이제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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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전의 레이더 점수를 표시해주는 애드온도 있다.

 

쐐기돌 던전은 2단, 4단, 7단, 10단마다 '어픽스'라는 게 적용되고, 매주 다양하게 바뀐다. ‘어픽스는 유저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하며, 같은 던전이라도 다양한 공략이 필요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라고 개발자는 생각했겠지만, 실상은 그저 유저들을 짜증나고 귀찮게 만들 뿐이다. 

 

어픽스는 매주 번갈아 가며 ‘탱커 파업’, ‘힐러 파업’을 만들고, 최악의 어픽스가 적용되는 주간에는 도전 의식 보다는 ‘스트레스받기 싫으니까 빠른 포기’를 부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양한 어픽스 덕분에 아예 던전 자체를 공략하지 못하는 직업도 생겼고, 정직하게 해서는 절대 시간 내에 클리어할 수 없는 던전도 생겼다. 

 

특히, 15단 이상의 높은 단수 던전에서는 특정 직업(무법 도적)의 특정 스킬(은폐의 장막)이 없으면 클리어를 하기 매우 힘들다. 또 소외당한 직업의 경우 직접 파티장이 되어 자신의 쐐기돌을 소비하지 않는 이상 꾸준히 점수를 올리기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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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높은 단수일수록 레이더를 철저히 보고, 특정 직업만을 선호한다.

 

어픽스 난이도, 직업 밸런스, 비정상적인 던전 구성. 이 3박자가 제대로 맞아 떨어져 ‘전회도도풍’이란 단어를 만들어 냈다. ‘전회도도풍’은 쐐기돌 던전의 대회에서 나온 ‘전사, 회드, 도적, 도적, 풍운’이라는 직업 조합이다. 

 

‘전회도도풍’이 생기게 된 건 단순히 던전의 ‘난이도’ 문제만은 아니다. 좁은 통로에서 쏟아져 나오는 쫄들을 상대해야 하고, 직업마다 ‘스킬 차단’이 강제되고, 난잡한 진행이 합쳐져 ‘어쩔 수 없이’ 이런 조합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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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회나 글로벌이나 상황은 비슷하다. 전탱, 회드, 도적, 도적, 풍운. ‘전회도도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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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쐐기돌 던전에서 반드시 필요한 ‘무법 도적’과 내가 하고 있는 ‘파괴 흑마’ 직업의 TOP10 점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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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좁고, 복잡하고, 차단이 강제되는 던전 ‘웨이크레스트 저택’

 

쐐기돌 던전도 그들만의 리그, 선택받은 직업만의 리그가 되었다. 비주류 직업이 고단의 던전을 간다는 것은 ‘시간 내 클리어’가 아닌 ‘아이템 파밍’이 목적이다. 쐐기돌 던전의 본질인 ‘다양한 공략과 도전 의식’은 이미 없다.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또 잘한다고 해도, 지금의 쐐기돌 던전 시스템에서는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가 없다. 그러니 대부분 와우저가 던전을 공략하기 위한 ‘도전’보다 ‘보상’을 위한 일종의 숙제 정도로 여기고 있다. 

 

‘파괴 흑마 외길’을 걸어온 나도 꾸준히 15단 이상의 던전을 도전하고 있지만, 갈 때마다 파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의 점수 역시 ‘버스’라는 것도 인정한다. 비참한 일이다. 게임에서도 현실처럼 스펙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직업과 태생만으로 대접을 받거나 한계에 부딪히는 일이 지금 와우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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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 없는 직업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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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장’은 밤 9시부터 새벽 1시까지만 열린다

 

투기장과 전장은 아주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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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으면 이기고 없으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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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대규모 전장은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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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와우

 

오래되었다는 것은 좋게 보면 ‘변함이 없이 한결같다’로 받아들여지지만 조금만 다르게 보면 ‘발전이 없다’로 보일 수 있다. 와우가 딱 그런 위치에 있는 게임이 아닐까 한다. 물론 대부분의 게이머들에게는 ‘한물간 게임’, ‘고인물 게임’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와우는 내 인생의 20대, 그리고 30대를 태운 게임이다. 삶의 대부분을 함께 보냈고, 한때는 멀어지기도 했지만,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그런 게임이다. 와우에서 많은 추억을 얻었고, 인연들을 만났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기에 내게는 소중하다. 그래서 지금의 와우를 보고 있으면 안타깝고 아쉽다. 

 

예전 와우를 할때면 ‘아제로스의 용사’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게임을 좀 못하긴 했어도 ‘호드의 창’, ‘얼라이언스의 방패’와 같은 진영의 소속감도 있었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불편하고, 투박했지만, 정말로 내가 캐릭터가 되어서 아제로스를 돌아다니는 느낌이 있었다. 

 

조금 부족한 우리들이 모여서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것들을 이뤄냈고,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움과 추억인 시기가 있었다. 그게 와우였고, 그래서 와우를 좋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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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그때의 감동은 없다. 그저 흔한 ‘유저’ 중의 한명일 뿐, 호드와 얼라이언스라는 진영의 소속감도 거의 사라졌다. 파티에서는 공통의 목표보다는 자신의 스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딱 잘라 말해 재미도 감동도 사라져버렸다. 딱 까놓고, 다자알로 번지대에서 점프 몇 번 누르는 거 말고는 할 게 없다. 더 절망적인 것은 지금의 방식으론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이며, 개발진 역시 큰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액티비전 블리자드’ 이 애증의 이름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변화는 이미 찾아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던 ‘마이크 모하임’, ‘크리스 멧젠’, ‘랍 팔도’의 ‘블리자드’를 이제는 놓아주어야 할 때다. 그래야 변할 수 있다. 예전부터 ‘와우 망했다’ 했지만, 이제는 더 망할 구석도 안남았다. 흥해야 할 때가 필요하다면 바로 지금이 그 시기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점이 와우에 있어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이대로 몰락해 버리든지, 아니면 위기를 기회 삼아 큰 변화를 이룰지 선택해야 할 시기다. 무엇보다 이런 위기의식을 개발진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아픈 부분은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고 본다. 대격변의 상처를 회복하고, 지금의 아제로스를 치유하듯 와우 역시 예전의 건강한 모습을 다시 한번 되찾길 진심으로 바란다.  

 

항상 주변에 ‘내 인생의 마지막 게임은 와우’라는 소리를 했다. 내가 상상했던 마지막은 나중에 아빠가 되고, 나의 자식들과 함께 와우를 하는 그림이었다. 부디 와우가 나의 바람을 이뤄 줄 수 있도록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글/ 더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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