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 Form

4월 24일,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지하 2층에서 진행된 2019년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이하, NDC2019)의 기조강연은 제가 특히나 좋아하는 한국 게임의 옛날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데브캣 스튜디오 김동건 프로듀서는 기조강연 [할머니가 들려주신 마비노기 개발전설]을 통해 마비노기를 만들기까지 자신의 이야기, 마비노기를 만드는 이야기, 그리고 마비노기를 만들고 나서의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DSC06245.jpg

▶넥슨 데브캣 스튜디오 김동건 프로듀서

 

근데 보통 기조강연이라고 하면 그 해 진행되는 NDC를 관통하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김동건 프로듀서는 "제가 옛날 이야기를 하는 건, 저도 옛날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라며, 기조강연 자리에서 마비노기의 개발 이야기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기록이 남아 있는 해외의 게임들과 달리,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이 대부분인 한국 게임은 남아있는 기록을 찾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한국 게임이 그렇게 서서히 사라지고 있어요. 그래서 이 발표를 준비했습니다. 마비노기가 서비스 중이고 찾아볼 수 있는 지금 이야기하자고 생각했어요. 오늘 발표가 다음 세대에 더 나은 게임이 나오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DSC06237.jpg

DSC06242.jpg

 

 

- [마비노기]를 만들기까지

그렇게 시작한 김동건 프로듀서의 옛날 이야기는 그가 게임 개발을 시작한 고등학생 시절부터 시작합니다. 그저 게임을 만드는 게 좋아서 개발을 시작한 김동건 프로듀서는 대학생 시절 전산실에서 이은석 프로듀서와 함께 둠2를 했던 경험을 정말 즐겁다고 회상했습니다. 다른 개발자들이 패키지 게임을 만들 때 온라인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건 이때의 경험이 강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죠.

 

어떤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야 할지는 대학교 네트워크 안에 BBS를 운영하며 정했다고 합니다. BBS는 지금으로 생각하면 SNS 같은 건데요, 김동건 프로듀서는 여기에 게임적인 요소를 더해 글을 올리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 경험치를 얻어 레벨업을 하거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을 추가해 운영했다고 합니다. 김동건 프로듀서는 자신이 만든 BBS에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항상 상주하는 유저들을 보고 '새로 이사 온 내성적인 아이'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내성적인 아이는 새로 이사 온 지역의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놀이터에 가죠. 하지만 쉽사리 말을 걸지 못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걸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장난감을 들고 왔다 갔다 합니다. BBS에 상주하던 유저들이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게 온라인 게임이 돌아가는 원리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장난감은 게임으로 치면 고레벨 장비나 예쁜 아이템 같은 거죠."

 

김동건 프로듀서는 자신도 내성적이었지만 사람을 사귀고 싶고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래서 내성적인 사람들을 위한 게임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DSC06266.jpg

▶지금은 마비노기 모바일을 담당하는 이진훈 디렉터와 함께 만든 '로나와 판의 판타지 라이프'. 김동건 프로듀서는 로나와 판을 직접 디자인하고 '로나와 판의 판타지 라이프'의 대본도 직접 써서 애정이 강하다고 합니다. 게임 가이드가 주 내용이긴 했지만, ‘마비노기가 내성적인 플레이어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되었으면 한다.’는 디렉터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해요.

 

 

김동건 프로듀서는 그런 생각을 품었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넥슨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만들고자 하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여러 기획서를 냈습니다. [부루마블 온라인], [모험의 바다], [소사리언 온라인], [로봇대전 온라인] 등등...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김동건 프로듀서는 "당시에는 이미 돈을 번 프로젝트에서 활약한 개발자에게 또 기회를 주는 경우가 많았어요. 신입은 기회를 잡기 어려웠습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그래도 김동건 프로듀서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튀는 기획서를 제작했죠. 게임 이름을 누가 봐도 튀는 것으로 짓고, 기획서도 두껍게 만들었어요. 그래요 이게 [마비노기]의 기획서였어요. [마비노기]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정말 오래 달려왔네요. 아무튼 [마비노기]의 기획서는 통과됐고 지금도 김동건 프로듀서가 몸담고 있는 데브캣 스튜디오가 탄생했습니다.

 

DSC06250.jpg

DSC06252.jpg

 

 

- [마비노기]를 만들면서

[마비노기]의 개발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도전이었습니다. 김동건 프로듀서가 '도전'이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듣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 [마비노기]의 가장 큰 특징이었떤 카툰렌더링 그래픽부터 보다 체계적인 개발, 관리를 위한 관계형 DB 솔루션 도입, 하드웨어의 부족한 성능을 보완하기 위한 기술 활용 등 마비노기 개발을 위해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정말 많았다고 하니까요.

 

이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당시 사용한 다이렉트X7은 스펙 상으로는 쉐이더를 지원했지만 실제로 지원하는 하드웨어는 없었음. 그래서 카툰렌더링은 비트맵 폰트를 사용하는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이 외곽선을 출력하는 기법에서 착안, TnL 파이프라인을 활용해 카툰렌더링을 구현.

- 하드웨어의 한계로 조명을 하나만 쓸 수 있는 상황, 공간감 표현을 위해 조명에 영향을 받는 캐릭터를 그룹으로 묶어서 렌더링했음. 이를 통해 평소에는 태양과 달빛의 영향을 받다가 가로등이나 캠프파이어 옆으로 가면 해당 조명의 영향을 받는 식으로 구현.

- 카툰렌더링의 단조로운 색상을 탈피하기 위해 시간과 장소, 날씨에 따라 색조가 바뀌게끔 색조 컨트롤을 도입. 이를 위해 셀 애니메이션 제작 기법을 공부함.

- 캐릭터나 지형지물은 텍스처는 간단한 명암만 표현해 단순하게 만들고, 버텍스(vertex)에 색을 입혀서 디테일한 표현을 함. 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테크닉으로 당시 잘 나가는 플레이스테이션 1 게임에서 참고했다고.

- 작곡과 연주는 8비트 MSX 컴퓨터에 있던 basic 명령어 play 문법을 가져옴. 옛날 컴퓨터 잡지에 있는 코드를 복사해 연주해보면 쉽게 익힐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구현. 또, 음표 악보보다 커뮤니티에서의 전파가 편해서 채용한 것도 있음.

- 악기연주 음악에 midi를 활용한 것도 당시 하드웨어가 재생할 수 있는 소리의 수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 그래서 합주 시 소리가 들리지 않는 파트가 있거나 일정 옥타브 이상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었음. 다만, 합주는 처음부터 고려한 콘텐츠가 아닌 100% 유저 제작 콘텐츠라고 강조.

 

DSC06263.jpg

 

 

김동건 프로듀서는 당시 하드웨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적인 노력 외에도 [마비노기]만의 특색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마비노기]가 나오던 시절 많은 게이머가 떠올렸던 게임이 있는데요, 바로 [울티마 온라인]입니다. 김동건 프로듀서 역시 [울티마 온라인]의 유저였고, [마비노기]의 개발에는 여기서의 경험이 많이 반영돼 있다고 해요. 다만 차이를 하나 뒀는데, 바로 '다정함'입니다.

 

"다정함은 평범한 말이지만 의외로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돌이켜보면 그런 기억이 별로 없어요. 요즘엔 모르겠지만 제 세대에서 다정함은 남성답지 않다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그래도 게임에 다정함을 녹이고 싶었습니다. 빵을 챙겨주고 생일을 기억해주는 친절한 NPC, 캠프파이어나 음식을 나눠 먹는 '쉐어링' 같은 작은 것도 나누는 분위기를 초기부터 계획적으로 잡아 나갔습니다."

 

빵을 챙겨주고 생일을 기억해주는 NPC는 [마비노기]를 즐겼다면 누구나 만나게 되는 '나오'가 되었습니다. 나오는 처음에는 [젤다의 전설]에 나오는 요정처럼 플레이어를 따라다니는 NPC였지만, 그래서는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에게 주목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지금처럼 바뀌었다고 해요. 모티브는 은하철도999의 메텔에서 가져오고, 연애와 동경, 안전함이 느껴지도록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DSC06258.jpg

DSC06259.jpg

 

 

[마비노기]의 특색 중 하나였던 '가위바위보 전투 시스템'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원래는 턴제 전투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유저들은 다 턴제 전투라고 불렀다는 뒷이야기도 덧붙였죠. 김동건 프로듀서는 가위바위보 전투 시스템을 ''때리고 맞는 느낌, 타격감에서는 호평이었지만 온라인 게임으로서는 다소 피곤하고, 다대다 전투로 확장이 어려운 문제가 많았다.'라고 자평했습니다.

 

[마비노기]하면 떠오르는 메인스트림, 즉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게임 속 세계인 에린에 대한 설정도 처음부터 다 정했고, 시나리오를 담당한 '이원'씨와 분담해 이런저런 설정을 작성했다고 해요. 특히, [마비노기] 스토리 진행의 가장 큰 특징이었던 'RP 던전'과 '컷씬 연출'은 김동건 프로듀서가 조금 무리했지만 고집을 부린 부분이라고 합니다.

 

DSC06262.jpg

▶스토리는 [마비노기]라는 게임을 유저들의 기억에 각인한 핵심 요소였지만, 라이브 서비스로 넘어오면서 스토리 제작이 너무 힘들어 업데이트를 중단했던 일화도 밝혔습니다. '좀 더 공정을 효율적으로 다듬으면서 스토리도 제작했어야 하는데'하는 후회가 남았다고 해요.

 

 

고집을 부렸다고 이야기한 부분은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아바타와 플레이어의 일체감입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이해하기 어려운데요, 우리가 [마비노기]를 하며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캐릭터가 말하는 상대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것'도 이런 일체감을 위해 만든 요소라고 해요.

 

"플레이어가 보는 걸 아바타도 보고, 아바타가 보는 걸 플레이어가 주목하게 만들기 위해 어떤 경우에는 목만, 어떤 경우에는 허리만, 어떨 때는 몸까지 돌리는 식으로 여러 상황에 대해 정리했습니다. 또, 말풍선이 여럿 나타날 때는 어떤 순서로 처리할 지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계획했죠."

 

 

이어 김동건 프로듀서가 [마비노기] 개발에 있어 비율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일상이 있어야 모험이라는 비일상적인 체험도 있을 수 있다면서요.

 

"'모험이 가득 찬 세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흔하지만, 정말 모험만 있으면 모험이 일상이 되기 때문에 특별함이 사라집니다. 그런 비율을 처음부터 신경 써서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마비노기]의 비율은 아트 가이드부터 시작합니다. 화면에 녹색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남녀 캐릭터의 비율, 모자를 쓴 캐릭터와 그렇지 않은 캐릭터의 비율 등을 처음부터 가이드하며 맞춰 나갔다고 해요.

 

 

- [마비노기]를 만든 이후

김동건 프로듀서의 [마비노기 개발전설]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듭니다. 데브캣 스튜디오 내부의 소식을 정리한 사내정보지 '마비일보'를 허락도 받지 않고 넥슨 전체 메일로 뿌려 결국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문제가 많았던 CBT에서도 유저들의 격려를 받으며 힘을 내서 런칭을 준비했죠.

 

하지만 유저들에게 받은 힘도 수개월이 지나니 바닥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워라밸'이 없던 시절이라 주 7일 근무에 야근, 밤샘이 생활화되어 팀원들이 하나씩 번아웃됐고, 김동건 프로듀서 자신도 G3 막바지에 진행한 오프라인 유저 간담회에서 직설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상처를 받고 번아웃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계를 만드는 것과 유지하는 것은 다르다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이후 [마비노기]는 라이브 서비스 본부로 이관됐고, 데브캣 스튜디오의 운영 권한과 책임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나서 김동건 프로듀서는 '[마비노기] 개발 완수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최초 기획부터 개발 과정, 성과를 담아낸 보고서를 통해 프로젝트를 완전히 마무리했다는 마침표를 찍었다고 해요.

 

DSC06270.jpg

 

 

- 그 다음에 들려줄 이야기

길고 길었던 [마비노기 개발전설]이 끝나고 김동건 프로듀서는 그 다음에 들려줄 이야기 [마비노기 모바일]을 잠깐 언급했습니다. [마비노기 모바일]은 단순한 원작의 복각이 아니라, 과거의 [마비노기]가 주었던 느낌,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을 현 시점에 맞춰서 다시 만들어보는 프로젝트라고 이야기했죠.

 

DSC06272.jpg

DSC06273.jpg

 

 

김동건 프로듀서는 이어 왜 자신이 옛날 이야기를 했는지 설명했습니다.

 

"마비노기가 과거에서 현재를 이어줬다면 마비노기 모바일은 현재부터 미래를 이어주기를 바랍니다. 왜 옛날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저는 미래를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게임은 늘 똑같다', '발전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이유에는 과거가 빨리 유실되기 때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최근 화제가 됐던 '한국 PC 패키지 게임의 역사를 구매해주세요'의 일화를 들어 "이제 와서는 저 게임들을 누가 만들었고,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고, 왜 잘됐고 왜 망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라며, 한국 게임의 과거가 유실되고 있음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끝으로 김동건 프로듀서는 "과거의 한국 게임은 점으로 남아 있고, 점으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미래로 이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옛날 이야기를 하거나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과거에서 미래로 선을 이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도 미래를 위해 열심히 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라며 발표를 마쳤습니다.

 

DSC06274.jpg

 

 

[할머니가 들려주신 마비노기 개발전설]은 김동건 프로듀서의 말처럼 기조강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왜 지금 와서 이런 오래된 이야기를 하나'하고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이만큼 NDC에 잘 어울리는 기조강연도 없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까지 NDC에서 나왔던 이야기들, 앞으로 나올 이야기들은 대부분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과거의 점을 미래로 이어 나가야 한다는 이번 강연은 NDC2019뿐만이 아니라 NDC 전체를 아우른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이미 사라져 버린 옛 것을 다시 되찾기는 어렵습니다만, 지금부터라도 과거의 점을 미래로 이어 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전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댓글 0
1 2 -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