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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은 보통 다른 플레이어와 함께 하는 게임이 많습니다. 혼자서 하는 싱글플레이 게임도 재미있지만, 친구나 누군지 모를 사람과 함께하는 협력, 경쟁도 재미있죠. 그런데 항상 재미있는 일만 있는 건 아닙니다.
 
단순히 팀워크가 잘 맞지 않는 사람과 만나거나 나보다 엄청 잘하는 사람과 만나는 일도 썩 반가운 일은 아닙니다만, 가장 기분 상하는 일은 아무래도 비난을 듣는 것이겠죠. 특히, 욕을 하는 플레이어를 만나면 그날 게임할 기분은 싹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적당히 신고 버튼을 누르고 게임을 끄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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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애꿎은 키보드가 부서지기도 하죠.

 

다만, 가끔씩 입에 담으면 안 될 심한 욕을 서슴없이 하는 플레이어를 볼 때도 있습니다. 그런 플레이어들을 가만히 둘 수 없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하죠. 그리고 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수사가 진행됐을 경우, 여러분도 알다시피 대부분 '모욕죄'로 진행됩니다.

 

 

사이버 명예훼손과 모욕죄

'상대방을 모욕했으니 모욕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셨다면, 정확합니다. 모욕죄는 형법 제311조로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사이버 명예훼손과 헷갈리기도 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모욕해 내 명예를 훼손했으니 명예훼손이다.'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흔하죠.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조금 더 살펴보니 사이버 명예훼손과 모욕죄는 조금 다르더라고요.
 
모욕죄는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단순히 타인에게 욕설만 해도 성립합니다. 만약 많은 플레이어가 모인 광장에서 플레이어 A가 플레이어 B에게 "이 XX아!" 같은 욕설을 했습니다. 모욕죄는 친고죄이니 피해자인 플레이어 B가 플레이어 A를 고소했다면, 플레이어 A는 모욕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 사이버 명예훼손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44조의7(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①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를 유통하여서는 아니 된다. <개정 2011. 9. 15., 2016. 3. 22., 2018. 6. 12.>
2.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사실이나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정보

<중략>

제70조(벌칙) ①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2014.5.28.>
②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모욕죄와 다른 점이라면, 사실, 또는 허위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플레이어 A가 플레이어 B를 비방할 목적으로 광장에서 "플레이어 B는 버그를 악용해서 유니크 아이템을 획득했다. 게다가 해킹으로 나온 장물까지 거래한다."라고 이야기하고 다닌다면, 플레이어 A가 말한 내용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사이버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이라면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사실이 아니라면 허위사실 유포에 인한 명예훼손이 되는 거죠.
 
온라인 게임에서 다른 플레이어에게 욕설, 인신공격 등으로 모욕을 들어서 내 명예가 훼손됐다고 생각해도, 단순한 욕설이지 사실이나 허위 사실을 언급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모욕죄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1:1 채팅은 공연성이 없어서..." 모욕죄의 성립 요건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다른 플레이어에게 욕을 먹었다고 해서 무조건 모욕죄가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모욕죄가 적용되려면 성립해야 하는 것들이 있거든요. 먼저, 모욕성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누가 봐도 상대를 경멸하는 표현이나 욕설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플레이어 A가 플레이어 B에게 "사랑한다."라고 말했을 때 플레이어 B가 어쩐지 모를 모욕감을 느꼈더라도, '사랑한다'라는 말 자체는 상대를 경멸하거나 욕하는 표현은 아니므로 모욕성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바보' 같은 간단한 욕 역시 모욕성이 성립할 수 있으므로, 온라인 게임에서 타인과 대화할 때는 언어 사용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심지어 특정 사람의 이름을 넣어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게 모욕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습니다.(출처: KBS News 유튜브)

 

 

다음은 공연성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외에 다른 사람들이 이 사건을 목격해야 한다는 것이죠. 또, 공연성이 인정되려면 다른 사람들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일을 다른 곳에 알릴 가능성, 즉 전파가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온라인게임의 경우, 전체 채팅으로 다른 이를 모욕한다면 이를 다른 유저들이 목격해 전파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공연성이 성립, 모욕죄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1 채팅, 쪽지 등으로 모욕했을 경우 주변에 목격자가 없으니 전파가능성이 없고, 그래서 공연성이 성립하지 않아 모욕죄가 적용되지 않죠.


끝으로 '피해자 특정성'입니다. 피해자 특정성은 가해자가 모욕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가해자가 모욕하고자 하는 대상이 피해자임을 알 수 있어야 하죠.
 
또, 실명을 직접 거론하지 않는 인터넷 환경이라도, 가해자의 표현을 통해 피해자가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고, 다른 사람도 가해자가 모욕하고자 하는 대상이 피해자임을 알 수 있다면 그 죄를 물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당신을 모욕한다면 본인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등을 공개해 피해자 특정성을 만들어라'라는 조언이 널리 퍼지고 있어요.
 
다만, 조언대로 행동해도 피해자 특정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전체 채팅창에서 플레이어 A가 플레이어 B를 모욕하는 상황에서, 플레이어 B가 조언대로 자신의 신상 정보를 밝혔다고 합시다. 여기서 플레이어 A와 플레이어 B를 바라보는 다른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플레이어 B가 이야기한 신상 정보가 정말 플레이어 B를 나타내는 정보라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플레이어 B가 거짓 정보를 이야기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동일한 상황이라도 피해자 특정성이 성립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피해자 특정성이 성립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수사 진행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관련해 헌법재판소 판례(2007헌마461)가 있으니 정보가 더 필요하다면 참고 바랍니다.

 

 

사이버 명예훼손은 있는데 왜 사이버 모욕죄는 없을까?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명예훼손의 가상 현실 버전인 사이버 명예훼손은 있는데 모욕죄의 가상 현실 버전인 '사이버 모욕죄' 같은 건 없으니까요. 현실과 다른 가상 현실의 상황을 고려한 개별 규정이 있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사실 '사이버 모욕죄'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2008년 한나라당이 사이버 모욕죄 및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주장하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 개정안을 '최진실법'이라는 이름으로 공동발의한 적이 있거든요. 하지만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고 기존 형법 체계를 통한 규제 가능성,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처벌 강도에 구분을 둬야 하는 타당한 근거의 부재 등으로 입법 부작용이 이익보다 클 것으로 판단돼 폐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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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법령정보원이 운영하는 찾기 쉬운 생활법령정보 홈페이지에서는 '사이버 모욕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관련법령에 있는 판례와 형법 제311조가 일반적인 '모욕죄'와 관련된 내용인 걸 보면, 편의상 '사이버 모욕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온라인 상에서 벌어지는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사이버 명예훼손이라는 별도의 규정으로 다루고 있지만, 온라인 상에서 벌어지는 모욕 행위에 대한 처벌은 기존의 법리로 판단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법원이 대충 판결하는 것도 아닙니다. 법원에서도 구체적인 상황, 사용된 단어를 모두 판단하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해요. 그럼에도 뚜렷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매 판결마다 피해자 특정성, 공연성 성립 여부와 모욕죄 적용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고 있죠. 이는 모욕 행위 가해자와 피해자는 물론 다수의 게이머, 더 나아가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 게임에서의 타인 비방에 형법 상 모욕죄는 적합한 처사일까?

한편, 온라인 게임에서의 타인 비방에 형법인 모욕죄를 적용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타인비방이 옳다는 건 아니지만, 인터넷상에서의 개인 간의 분쟁을 국가가 나서서 형법으로 다스리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죠. 또, '비방 유도를 통한 고소 및 합의금 장사'처럼 원래의 취지와 어긋난 사례가 종종 보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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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화제가 됐던 모욕죄 매뉴얼과 관련된 연합뉴스의 기사. 그만큼 많은 사람이 온라인 게임에서 벌어질 수 있는 타인 비방과 그로 인해 받을 수 있는 법적 처벌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방증입니다.(출처: 연합뉴스)

 

참고로 다른 나라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주거나(미국) 개인 간의 분쟁은 민사 재판으로 해결하는 경우(일본)가 대다수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모욕죄를 형법으로 적용하는 게 아니라 민법으로 적용, 온라인 게임에서 타인을 비방한 사람에게 민사적 수단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죠.
 
심지어 모욕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2016년에는 사실에 관한 명예훼손 처벌 규정 삭제, 모욕죄 삭제 등을 골자로 한 모욕죄 폐지에 대한 개정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지요.
 
온라인 게임에서의 타인 비방에 대해 지금처럼 계속 모욕죄로 책임을 물어야 할지, 아니면 온라인 게임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맞는 새로운 법규를 마련하는 게 좋을지, 각자 장단점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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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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