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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터마이징에만 세 시간을 쓰고 처음으로 접속해서 마주한 홍문파의 침대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 튜토리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혜성처럼 나타나 그야말로 파문을 일으키고 간 진서연의 얼굴은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거기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서 아무것도 못하는 짐짝으로 만들어 버리니 도저히 잊을 수가 없는 것도 있고…

 

블소 하면 생각나는 캐릭터는 많다. 무성 사형도 있고 우리의 홍문파 사부님 석근이형 등등 많지만, 스토리상 빼놓을 수 없는 희대의 여캐인 진서연은 블소 유저들에게 지금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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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진서연은 인기도 인기지만 논란거리도 많았던 캐릭터다. 우리 막내들(유저 지칭)에게 시련을 시작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고,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 그저 악역으로만 볼 수 없는 애증 섞인 캐릭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블소 팬들에게 희대의 비극이었던 백청산맥 리부트 이후 

스토리상으로 여러 가지 변화가 있기는 했으나 

이 글에서는 리부트 이전을 기준으로 기술한다.*

 

진서연은 본래 탁기에 휩싸여 폐허가 되어버린 귀도시에 살던 노비 출신의 여자아이로, 천하사절이 마물을 봉인하려 이곳을 찾았을 때 우연히 발견된다. 

 

천하사절은 마황을 상대하기 위해 선계에서 꾸린 네 명의 입신급 고수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검선 비월과 환귀 익산운, 역왕 홍석근, 그리고 무신 천진권이 그들이었다. 이중 검선 비월은 깊은 인연을 만들지 말라는 천계의 당부를 무시한 채 죽어가고 있던 진서연을 거두어 제자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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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하사절

 

어린 진서연은 비월의 유일한 제자가 되어 비월봉에서 수련을 하게 되지만, 강호에서는 탁기에 물든 노비 출신의 어린아이가 갑자기 비월의 제자가 되자 곱게 보지 않았다.

 

한편 천하사절 중 마황과 동귀어진해 봉인시킨 영웅이었으나, 봉인되어 있는 동안 마황의 탁기를 거부하지 못하고 타락하고 만 무신 천진권은 엄청난 야욕을 숨기고 있었다. 무신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비월이 가진 귀천검을 노리고 이들을 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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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월이 공격을 받고 쓰러지자 한 발 늦게 익산운과 홍석근이 도착하고, 무신은 모든 누명을 진서연에게 씌운다. 무신의 힘에 의해 입이 닫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진서연을 죽이려 하자 그 앞을 비월이 막아서고, 결국 진서연 대신 비월은 죽고 만다.

 

누명을 쓴 채 비월봉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진서연은 곤륜절벽에 도착해 곤륜파에서 지내게 되지만, 곤륜산 문주가 비월봉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듣게 되면서 다시 진서연을 추궁한다.

 

결국 진서연은 마황의 속삭임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수하가 되고 만다. 강력한 힘을 얻은 진서연은 복수를 시작한다. 이전의 자신을 마황의 수하로 몰았던 곤륜파를 포함해, 비월이 자신을 데려왔을 때부터 탐탁잖아 하고 사건 이후에는 진서연을 살인자로 몰았던 백청파까지 멸문시킨다. 복수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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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문파의 학살로부터 시작된 진서연의 복수는 거침이 없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 때로는 국가까지 희생되었다. 그 중에는 홍석근도 있었고, 홍석근의 제자 포지션인 '막내' 유저들은 죄없이 희생된 사형들과 스승님의 복수를 위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진서연의 목적은 그녀의 은인이자 스승이었던 비월에 대한 복수였다. 즉 무신 천진권을 포함한 천하사절을 죽이는 것이었고, 그와 함께 마황의 부활을 도와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홍문파 막내 입장에서 보면(지금은 장문인 이지만), 진서연은 스승님과 사형들을 싸그리 죽인 철천지 원수이며 마황의 야욕을 돕는 충실한 수하로 천하의 나쁜X이 따로 없는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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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사실 그렇다. 누구의 인생이건 인간다움과 역겨움, 아름다움과 초라함이 공존하는 법이다.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도 있지 않겠나. 이쪽에선 나쁜X여도 저쪽에선 불쌍한 비극의 주인공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블소 세계관 안에서 얘기하자면 막내에게 묵화의 상처를 입힘으로써 악연이자 길고 긴데다 험난하기까지 한 여정을 선사한 희대의 악역이지만... 유저들에게는 수많은 퀘스트 라인과 렙업의 길, 그리고 게임플레이의 강력한 이유를 제공한 매력적인 여캐이기도 하다.

 

이후의 스토리라인까지 전부 보고 나면 진서연을 마냥 악역으로 치부하기에는 안쓰러운 점도 많이 있는 건 사실이다. 진서연이 그렇게 된 데에는 무신 천진권이라는 흑막이 있었고, 더 큰 흑막인 마황의 야욕 때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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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하는 법이다. 막내가 마지막 복수의 순간에 다른 선택을 했던 것처럼, 선택의 연속인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결과까지가 자신의 책임이니까.

 

악역 캐릭터에 대해 어떤 강렬한 이유, 즉 악역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나 과거사를 부여해 개연성을 가져가는 것은 진서연뿐만이 아니라 많은 악역들에게 시나리오 라이터가 했던 일이다. 

 

그를 통해 캐릭터가 살아 숨쉬게 되고, 스토리가 탄탄해지는 것은 게임 유저들에게 역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처럼 제대로 된 스토리 하나 찾아보기 힘든 때에는 더욱 그렇다. 물론 모든 악역에게 얘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다! 라고 하는 건 좀 피해야겠지만.

 

필자: 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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