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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 미국 나스닥(NASDAQ)에서 거래 중인 EA의 주식 가격이 아침 시장 개장과 함께 폭락했다. 불과 하루 전까지 주당 128달러에 거래되던 EA 주식은 이 날 115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단 하루 만에 주가가 10% 폭락한 참사(?)를 겪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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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지점프를 하다


CNBC등 북미 주요 언론들은 이날 EA의 주가 폭락을 전날 있었던 EA의 예상 실적 하향 조정 발표에 따른 실망감 때문이라 평가했다. 이 모든 논란의 핵심에는 EA 다이스의 출시 예정작인 ‘배틀필드V’가 있다. 이야기는 지난 5월, EA 다이스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배틀필드V’ 공개 트레일러를 선보이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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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못 만든 첫 공개 트레일러가 부른 논쟁
2분 34초짜리 동영상이 모든 일의 발단이 되었다. ‘배틀필드V’ 첫 공개 트레일러는 아이러니하게도 ‘공개’와 함께 엄청난 속도로 ‘비추’를 받기 시작했다. 전작 ‘배틀필드1’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도 떨어지는 수준의 트레일러 자체도 문제였고, 가장 큰 논란거리는 트레일러에 등장하는 캐릭터였다.

 

 

이 트레일러에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한 손은 의수고, 얼굴에는 기괴한 얼굴 분장을 하고 있어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배틀필드V’의 분위기와 너무 이질적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추’수는 더욱 빠르게 올라갔고, ‘배틀필드V’는 전 세계 게이머 커뮤니티를 달군 핫 이슈가 되었다.


이어 게이머의 불만은 PC(정치적 올바름)이 게임을 망치고 있다는 토로로 이어졌다. ‘배틀필드V’ 첫 공개 트레일러에 다이스가 기괴한 모습의 여성 캐릭터를 굳이 넣은 이유가 최근 게임 업계에 유행하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에 영합하기 위해서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페미니스트가 게임을 망친다는 비난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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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트릭 소덜런드


문제는 이러한 게이머의 불만에 대해 EA 다이스가 아주 부적절한 방식으로 대응했다는 점이다. EA COO이자 DICE의 책임자인 패트릭 소덜런드(Patrick Söderlund)는 자신이 13살짜리 딸과 나눴다는 대화를 인용해 ‘그들은(배틀필드V 트레일러에 불만을 토로하던 게이머들을 뜻한) 못 배운 사람들이며 받아들이기 싫으면 게임을 안 사면 된다’는 요지의 인터뷰를 해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외에도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Reddit)’에서는 ‘배틀필드V’의 핵심 개발자들이 자신들을 비난하는 게이머에게 ‘(게임 속 캐릭터를) 전부 백인으로 만드는 버튼 만들어 줄까?’라는 식으로 비꼬거나, 1살짜리 딸에게 ‘배틀필드’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식으로 발언해 열심히 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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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스 개발자들은 레딧 등지에서 자신의 딸을 열심히 들먹거렸지만, 배틀필드 시리즈는 대부분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이다.


일부 게임 매체는 EA 다이스의 이런 강경 발언에 동조해 게이머를 고증에 집착하며 여성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성차별주의자로 몰아가는 식의 기사를 내보내 ‘게임매체라는 것들이 배틀필드 시리즈를 해보기는 한거냐’라는 식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벌어지지 않았어야 할 불필요한 논쟁이 결국 EA의 주가까지 흔들다
패트릭 소덜런드의 ‘못 배운 사람’ 발언은 ‘배틀필드V’를 야구 방망이로 후려 갈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배틀필드V’ 정보가 첫 공개될 당시만 해도, 시리즈의 원점인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게임으로 돌아간다는 점에 많은 게이머가 열광했지만, 관심은 놀랄 정도로 빠르게 식기 시작했다. 트위치를 통해 생중계된 ‘배틀필드V’ 알파 테스트 플레이에는 말 그대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굴욕을 겪을 정도였다.


이제 관심을 받고 안 받고를 넘어 당장 5월부터 시작된 ‘배틀필드V’ 예약구매에도 커다란 타격이 가기 시작했다. ‘배틀필드V’ 예약구매를 한 사람들이 “나는 못 배운 사람이라 감히 배틀필드V를 즐길 수 없어 예약구매를 취소했다”며 EA와 다이스를 비꼬는 구매 취소 인증을 커뮤니티에 줄줄이 올리기 시작했다.


게임 커뮤니티에서 ‘배틀필드V’는 주제가 올라오기만 하면 ‘못 배운 사람’ 이야기가 반드시 따라붙기 시작했고, EA 다이스의 인력이 이미 대부분 타 게임 업체로 빠져나갔으며 ‘배틀필드V’가 이 모양이 된 것이 그 때문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돌기 시작했다. 그나마 ‘배틀필드V’ 사태가 단지 ‘못 배운’ 소수 게이머 사이의 비난으로 끝났으면 다행이었겠지만, 진짜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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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4는 '싱글플레이 캠페인'을 없앴다는 발표로 팬들 사이에서 큰 비난을 받았는데, '배틀필드V'는 그 블랙옵스4에도 한참 못미치는 예약 판매량을 기록했다.


8월이 되자 증권 애널리스트들이 ‘배틀필드V’의 저조한 실적에 대해 경고를 내놓았다. 현재 EA가 보유한 게임 프랜차이즈 중 스포츠를 제외하면 ‘배틀필드’ 시리즈가 가장 큰 기대작이자 수익원인데, 일련의 사태로 인해 ‘배틀필드V’는 매우 저조한 실적을 보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 것이다. 그 예측 중에는 ‘배틀필드V’ 예약 판매량이 경쟁작이라 할 수 있는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4’ 동 기간 예약 판매량의 15%의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내용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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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락스타의 '레드 데드 리뎀션2'


게다가 ‘배틀필드V’의 초기 발매 예정일이었던 2018년 10월에는 강력한 경쟁작 2개가 이미 포진해 있는 상태였고, 이는 시장의 우려를 더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액티비전의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4(10월 12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락스타의 ‘레드 레드 리뎀션2(10월 26일)’이다. 이미 예약 판매량에서 ‘블랙 옵스4’에 완전히 지고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니 게임이 안 된다는 건 뻔한 일이었다.


EA는 8월 29일 ‘배틀필드V’의 발매를 11월로 조정하겠다고 발표하고, 2019 회계 연도 전망을 55억 달러에서 52억 달러로 크게 낮췄다. EA는 환율 변동이 전망에 영향을 끼쳤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시장 전문가들은 ‘배틀필드V’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바로 이 발표 다음날 EA 주가는 128달러에서 115달러로 10% 폭락했다.


내부 통제력을 잃은 EA…어디로 가나?
‘배틀필드V’를 둘러싼 사태는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이나 인터넷에서 흔히 벌어지는 논쟁 정도가 아니다. 이면에는 EA가 핵심 스튜디오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암시가 있다. 적어도 제대로 정신이 박힌 회사라면 소속 개발자가 레딧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게이머를 비꼬며 ‘키배’나 뜨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벌어 지지 않어야 할 논쟁을 개발자들과 최고 책임자가 직접 나서서 불을 붙인 꼴이다. 왜 EA는 다이스를 통제하지 않는가?


단순히 다이스 일부 개발자가 ‘배틀필드V’를 두고 헛소리를 했다고 치부할 수도 없다. 패트릭 소덜런드는 그냥 다이스 총책임자가 아니라 EA의 최고 운영 책임자인 COO를 겸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전면에 나서 언론에다 고객을 ‘못 배운 사람들’, ‘꼬우면 사지 마라’는 식으로 비하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 이야기의 가장 황당한 부분은 지난 8월 중순, 논란의 당사자인 패트릭 소덜런드가 EA 퇴사를 발표했다는 점이다. EA는 패트릭 소덜런드에게 지난 6월 2천만달러에 달하는 주식을 보너스로 지급했다. 지금까지 패트릭 소덜런드가 받은 월급과 스톡옵션 등은 4천 8백만달러가 넘는 규모다. 한화로 500억원이 넘는 금액으로 소덜런드는 EA의 어떤 경영진보다도 많은 금액을 받아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패트릭 소덜런드는 자신은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겠다’며 뜬금없이 10월 퇴사를 밝히고 나섰다. 잇단 강경 발언으로 ‘배틀필드V’ 프랜차이즈와 나아가서는 EA, EA 다이스의 이미지를 망쳐 놓고 자신은 EA에서 퇴사하는 것이다. EA 경영진이 이런 식의 먹튀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배틀필드V’의 앞날도 그다지 밝지 않다. 지난 9월 4일부터 진행한 ‘배틀필드V’ 오픈 베타에 게이머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별 이유 없이 줄어든 분대원 수, 탱크가 밟고 지나가도 멀쩡한 길거리의 자동차, 전작에 비해 루즈 해 진 게임 플레이 등…역대 최악의 ‘배틀필드’라는 극한 평가까지 나오는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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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교육을 잘 받은 게임


만약 이런 평가 그대로 오는 11월 발매 예정인 ‘배틀필드V’가 저조한 실적을 거둘 경우, EA에게는 엄청난 타격이 될 전망이다. 증권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배틀필드’는 스포츠 게임을 제외하고 현재 EA가 가진 가장 큰 게임 프랜차이즈다. 모건 스탠리는 전작 ‘배틀필드1’의 판매량을 약 1500만장으로 추산했다. EA 스스로도 ‘배틀필드1’를 2017년 회계 연도의 가장 큰 실적으로 꼽았다.


이렇듯 EA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게임 프랜차이즈인 ‘배틀필드V’가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한다면 그 여파는 불 보듯 뻔하다. 이미 저조한 예약 판매 실적으로 EA 주가를 10%나 주저 앉히는 위력(?)을 보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쟁쟁한 경쟁자를 앞두고 EA 다이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카드를 꺼냈지만, 그런 카드를 쥐고서도 자동 권총으로 러시안 룰렛을 열심히 벌인 꼴이다.


‘배틀필드V’ 실적 걱정 외에도 EA의 두통거리는 또 있다. EA는 ‘스타워즈 배틀프론트2’와 ‘피파’ 시리즈에 포함된 ‘랜덤박스’ 때문에 지난 2월부터 벨기에 도박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다. 당시 EA는 CEO가 직접 나서 자신들이 “윤리적이며 합법적으로” 게임을 개발하고 구현했다고 강변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EA는 벨기에 도박위원회 조사 후에도 다른 게임 회사들과 달리 혼자 시정 명령에 따르지 않아 현재 브뤼셀 검찰청이 수사 후 기소를 결정할 예정이다. EA는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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