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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게임은 한국 역사와 함께 성장해 왔다. 최초의 한국 게임은 1987년 애플2 용으로 출시된 슈팅게임 <폭스레이저>다. 당시 한국에선 독재정부에 맞서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다.이런 정치적인 격변기때 한국 게임의 역사가 시작됐다. 
 
10년 후 한국은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모든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있을 때 한국 게임은 경제 위기를 극복할 핵심 산업으로 떠올랐다. 2000년 이후 한국 게임은 세계 곳곳에 수출되며 게임 한류를 일으켰다. 그리고 지금 한국은 게임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 게임이 빠르게 발전한 이유는 콘텐츠 속에 한국인의 정서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역사적 자긍심이 유난히 높고, 경쟁을 즐기고, 빠른 게임을 원하는 한국인의 성격이 게임에 그대로 녹아있다.  
 
 
감정에 호소하는 스토리
 
초창기 한국게임은 일본이나 미국게임을 모방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모방에만 그치지 않았다. 외국게임을 벤치마킹 하면서, 여기에 한국인의 정서를 보탰다. 
 
1995년 출시된 RPG <창세기전>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RPG다. 이 게임은 한국적 정서를 반영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보통 게임에선 권선징악을 기본으로 주인공의 성장 스토리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창세기전>은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이 복합적으로 전개되면서 이야기의 깊이를 더했다. 등장인물 내면의 감정묘사나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가 특징이다. 처절한 복수와 비극적인 스토리는 한국인 특유의 ‘한’의 정서를 살렸다. 
 
총 3편까지 출시된 <창세기전> 시리즈는 일본에도 수출되어 인기를 끌었다. 어찌 보면 한국 게임의 스토리텔링은 한국 드라마와 닮아있다. 섬세한 감정묘사와 등장인물들 간의 복잡한 갈등구조, 낭만적인 로맨스 등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은 드라마와 비슷하다. 한국 드라마가 세계시장에서 성공한 것처럼, 게임 또한 외국에 수출되어 좋은 성과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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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만든 한국게임
 
IMF 외환위기는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직장인들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쫓겨났고, 극심한 취업난은 청년들을 실업자로 내몰았다. 자살률이 급증하고, 가족이 파괴됐다. 절망이 온 사회를 뒤덮었다. 
 
이런 위기는 게임에겐 기회로 다가왔다. 당시 정부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IT산업을 육성했다. 전국에 인터넷 망을 보급하고 게임 벤처기업을 키웠다. 이때 창업한 기업들이 한국 게임 산업을 대표하는 ‘엔씨소프트’, ‘넥슨’ 같은 회사다. 게임 인프라도 갖춰졌다. 전국에 PC방 창업이 유행했다. PC방은 80년대 아케이드 게임장처럼 사람들이 모여 인터넷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이 속속 PC방 창업에 나섰다. 
 
프로게이머라는 신종 직업도 생겼다. 임요환, 이윤열 같은 유명 프로게이머들은 다른 스포츠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프로게이머는 당시 아이들의 장례희망 1순위가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렇듯 한국은 IMF 경제위기를 돌파하면서 자연스럽게 게임하기 좋은 환경이 갖춰졌다. 한국게임은 이런 성장 동력을 바탕으로 온라인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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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직접 만드는 게임세상
 
한국 온라인게임은 외국게임과는 개념이 달랐다. 모든 콘텐츠가 온라인상에서 서비스된다. 게임시디를 구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다운로드 받는 방식이다. 보통 외국 게임은 개발자가 콘텐츠를 만들고 플레이어가 소비하는 구조다. 하지만 한국 온라인게임은 다르다. 게임은 개발자가 만들되 콘텐츠의 방향은 유저 스스로 결정한다. 
 
플레이어는 게임 안에서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어떤 세계가 완성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치 우리의 역사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게임 속에서 타인과 소통하고, 경제활동을 하며, 정치도 할 수 있다. 길드를 결성하고, 상대편과 전쟁을 펼치면서 자신들만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한국 게임은 유독 집단주의 성격이 강하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외국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요소다. 이는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16년 촛불혁명에서 보여준 한국인의 집단지성이 반영된 결과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바람의 나라>는 고구려 시대를 다룬 게임이다. 하지만 원작의 스토리를 따라가기보다 플레이어들 끼리 힘을 합쳐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다. 엔씨소프트가 만든 <리니지>는 한국 온라인게임의 집단주의 문화를 세계에 알린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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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시민혁명! 게임 스토리텔링의 역사를 바꾸다
 
한국 게임의 집단주의 문화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냈다. 2004년, MMORPG <리니지2>에서 사이버 시민혁명이 벌어진 것이다. 게임에서 캐릭터의 레벨은 힘이다. 높은 레벨의 캐릭터들이 권력자 집단을 만들어 약한 캐릭터들을 억압하는 일이 벌어졌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게임 속 사냥터를 독식하고 높은 세금을 매겨 이용자들의 괴롭혔다. 
 
이들의 전횡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다른 게임 이용자들에게도 알려졌다. 그러자 사람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캐릭터를 만들어 게임 속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모여 권력자의 폭정을 규탄했다. 권력자는 강력한 전투력을 내세워 시위대를 탄압했지만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이 사건은 게임 스토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었다. 다른 게임에서 절대 볼 수 없었던 극히 현실적인 혁명의 역사를 보여준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한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이슈가 됐다. 많은 매체에서 '사이버 세계의 시민혁명'이라 보도했으며, 학자들도 이 사건을 표본 삼아 '디지털 사회의 스토리텔링'을 연구하고 있다. 
 
 
빠른 게임이 통한다!
 
한국 게임의 특징은 속도가 빠르다. 게임을 시작하면 최대한 빨리 전투가 벌어지고 짧은 시간 안에 승부가 나야한다. 느린 게임은 인기가 없다. 속도가 빠르다보니 그만큼 박진감 넘치는 게임플레이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 FPS <서든어택>은 대표적인 속도 지향 게임이다. 시작 된지 몇 초 만에 상대를 만나 전투가 벌어진다. 간발의 차로 캐릭터의 생사가 갈린다. 
 
한국게임은 속도는 해외에서도 인정받는다. 중국에 수출되어 히트를 친 <크로스파이어>는 빠른 게임전개가 인기비결이다. 넥슨의 <던전앤파이터>는 간단한 그래픽과 속도감 있는 전개로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다. 펄어비스가 만든 MMORPG <검은사막>은 유럽시장에서 성공했다. 자유도가 높고, 콘텐츠 업데이트를 빨리한 점이 성공비결로 꼽힌다. 근대 이후 고속성장을 이룬 한국인의 속도지향적인 습관이 게임에 영향을 준 것이다.
 
[카카오게임즈] MMORPG 검은사막 그래픽 및 사운드 리마스터 이미지 (1).jpg

 

 
극한의 경쟁을 즐기는 게임
 
경쟁은 재미있다. 극적이고 짜릿하다. 한국인들은 경쟁이 치열한 게임을 좋아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인기 있는 게임들은 대부분 경쟁 게임들이다. ‘경쟁’은 한국 e스포츠의 기반을 마련했다. 플레이어들은 자신과 경쟁할 상대를 찾게 됐고, 게임대회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PC방을 중심으로 작은 게임대회가 열렸고, 이것이 e스포츠라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했다. 경쟁의 최고단계에 오른 고수들은 프로화를 선언했고, 이들이 프로게이머로 성장했다. <애니팡>같은 퍼즐게임도 경쟁요소를 넣었다. <애니팡>은 제한시간 안에 문제를 풀고 그 결과로 서열이 매겨진다. 게임을 한판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그사이 누가 더 높은 점수를 따느냐로 순위가 결정된다. 
 
전 세계 흥행돌풍을 일으킨 <배틀그라운드>는 극단적인 경쟁시스템을 보여준다. 한 섬에서 100명이 모여 서로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100명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1일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이 게임은 5천만장 이상 팔리며 전 세계 한국게임의 위상을 알렸다. 이렇듯 잘나가는 대박 게임은 늘 그 사회를 관통하는 경쟁구도를 보였다. e스포츠의 부흥과 함께 IMF를 극복했던 승부사적 기질이 게임 속 경쟁시스템의 근간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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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게임의 또 다른 시작!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언제 어디서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한국 게임도 스마트폰 플랫폼에 맞춰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처음엔 간단한 퍼즐게임들이 유행했고, 최근엔 콘솔게임 못지않은 높은 수준의 게임들도 나왔다. 
 
한국 모바일게임은 과거 온라인게임처럼 다시 도전자의 위치에 서있다. 지금까지 한국 게임이 내세웠던 특징들도 모바일 환경에 맞춰 다시 점검해야 한다. 온라인게임 <리니지>를 모바일게임으로 이식한 <리니지 모바일>이 해외에서 선방하고 있다. 모바일게임 <세븐나이츠>는 닌텐도 스위치용으로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과거 온라인게임 때의 전성기를 되찾기에는 부족하다. 그동안 한국 게임의 특징을 살리면서 모바일 플랫폼에 적응하는 것이 한국 게임의 남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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