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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화' 보다 '한국어화'가 맞다
 
흔히 게임 한글화, 자막 한글화라고 한글화란 말을 많이 쓰지만 ‘한글’은 언어가 아니라 문자이기 때문에 ‘게임 한글화’라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겠죠. 한글로 나오는 것은 맞긴 하지만, “아이 엠 어 보이”라고 영어를 한글로 쓰더라도 이건 한글화지만 한국어는 아니니까요. 아무래도 입에 붙어서(?) 자꾸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같습니다. 그래서 이 컬럼에서는 ‘한국어화’라고 표현하도록 하겠습니다. 제목은 한글화라고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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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블록버스터 어벤저스 인피니티워도 번역 오류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유적이 우리 가족이 되었다???
 
인디로 시작해 큰 인기를 모은 게임 <다키스트 던전>이 세번째 DLC, <광기의 색채(The Colors of Madness)>를 발매함과 동시에 한국어 버전도 함께 내놓았습니다. 발매된지 햇수로 3년만에 공식 한국어버전이 나온다고 하니 팬들은 물론 아직까지 못해본 이들도 모두 기대하는 소식이었죠. 
 
그런데 막상 한국어화 소식에 게임을 실행해보니 이게 웬걸, 인트로 영상부터 오역이 난무하는 발번역의 현장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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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띠용? 유적이 우리 가족이….

 
“Ruins has come to my family”라는 첫 대사가 “유적이 우리 가족이 되었다”라고 번역된 겁니다. 첫문장부터 이상한 것을 떠나서 오프닝 전체의 대사가 어색하고 오역이 가득합니다. 이건 영어를 몰라도 딱봐도 문제가 있어 보이죠. 말이 안되니까요. 뿐만 아니라 게임 시스템에 들어가서면 정상적인 번역보다 이상한 번역이 많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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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에)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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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말못잇)

 
<다키스트 던전>의 번역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되었지만, 정작 나온 결과물이 이렇다보니 시종일관 높은 평가를 유지했던 스팀의 다키스트 던전 평가 점수는 복합적으로 내려앉았습니다. 부랴부랴 개발사 레드훅 측에서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사과문을 내고 과거 비공식 한글 패치에 참여했던 번역가가 있는 새로운 번역 업체를 고용해서 다시 한국어화를 한다고 공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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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사과문이 귀여워서 개인적으로는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비단 <다키스트 던전> 뿐만 아니라, 재미있을 것 같은 게임이 한국어화되어 나온다고 해서 기대했다가 번역 수준에 실망해서 게임을 즐기지 못하거나, 비공식 수정 패치를 이용해서 즐긴 경험, 최소 한 두 번 쯤은 있으시겠죠. 
 
그러나 다른 언어로 만들어진 게임을 완벽하게 한국어화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번역의 질은 물론, 여러 가지 상황에 있어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 상황별로 알아보도록 할까요? 
 
 
Case 1. 외국어 이전에 한국어를 잘해야...
 
흔히 번역은 해당되는 외국어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어를 못하면 그에 적절한 단어로 옮기지 못합니다. 때문에 언어실력이 뛰어난 분들이 번역을 해야합니다. 
 
또, 번역가가 외국어 및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자신이 잘 아는 분야가 아니라서 숨겨진 의미(특히 속어 같은 것들)를 잘 모르거나, 자신이 아는 단어라고 자만하고 다른 의미가 있는지 찾아보지 않아서 오역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 <다키스트 던전>의 오역 사태가 바로 이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앞서 오프닝 첫 대사를 번역기에 돌려보면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유적이 가족이 되진 않을텐데, 이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면 아예 한국어를 못하는 사람 아닐까요? 
 
반대로 한국어가 아니라 외국어를 못해도 이상한 번역이 탄생하곤 합니다. 숙어나 슬랭을 이해하지 못해서 직역을 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양쪽 언어 모두 뛰어난 분이 번역을 할 경우, 이른바 ‘초월번역’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아예 우리말로 똑같이 옮길 수 없는 문장이라고 판단한다면 스스로의 창작이 더해져서 알아듣기 쉽게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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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멍안에 발사! Fire in the hole, 이런 군대 용어를 모르면 게임 번역의 퀄리티는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모르면 사전을 찾아봤어야죠.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Case 2. ' 난 게임을 모른다 단지 번역을 할 뿐이다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번역가에게 맡기는 경우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특히 고유명사를 번역할 때 이런 일이 많이 벌어지곤 합니다. 게임 상에서는 다른 의미로 쓰이는 단어지만 사전적인 의미로 번역한다거나, 게임을 이해하지 못해서 멋대로 의역한다거나 하는 것이죠. 

이런 일은 게임에서 쓰는 의미가 실제 생활에서의 의미와 크게 다를 경우에 더욱 더 자주 벌어집니다. 정 모르겠으면 스크립트가 아니라 게임을 직접 해보면 좀 더 나을텐데, 실제 번역환경은 겡임을 하면서 하는 환경이 아니죠. 

이런 오역은 제작사의 확실한 번역 가이드가 있거나, 책임자가 확실하며 게임에 대해 잘 알 경우에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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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 리치(언데드 마법사)를 힘쎈 이끼로 번역해버린 마이트 앤 매직 6. 흔히 ‘왈도체’라고 부르는 한국어화 오역의 레전드입니다. 리치의 원래 의미인 거머리도 아니고 왜 이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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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건전하다! Unsound. 즉 건강하지 않다는 의미지만 불건전한 모험가가 되어버렸습니다 표정도 적절(마이트 앤 매직 6) 

 
 
Case 3. 대체 이 대사가 어디에 들어가는거야
 
게임 번역은 일반적인 문서의 번역과는 다릅니다. 게임 내에 나오는 대사들은 상황에 따라서 어떤 곳에 들어가는지 번역가들이 보면 알기 어렵습니다. 게임을 건네받는 것이 아니라 상황은 전혀 주어지지 않은 채 대사 또는 게임 내 텍스트만 쭈욱 들어간 스크립트를 받기 때문이죠. 
 
게임에 나오는 대사들은 모든 것들이 순서대로 차근차근 써있지 않습니다. 문장에 단어가 들어가는 자리가 변수로 지정되어있어서 상황에 따라 다른 단어가 들어가거나, 대사가 뒤죽박죽 섞여있어서 번역가가 어디에 들어가는 말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우리 말은 대상에 따라서 존댓말, 반말, 어투가 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존댓말 했다가 반말 했다가 마구 섞이거나, 조사가 잘 못 붙거나 하는 것입니다. 개발사가 다국적 언어 버전을 자주 내봐서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확실하게 서있고, 번역 퀄리티에 대해 테스트를 제대로 거칠 경우에 이런 경우를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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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대한 텍스트를 자랑한다고 하는 게임들일수록 이런 일이 잘 벌어집니다. 선택문이 많은 게임의 경우, 각 선택문의 어투가 통일되어있지 않은 일이 비일비재하죠. 사진은 그 예시 중 하나인 네버윈터 나이츠(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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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뒤가 안 맞거나 존대가 틀린 것들은 스크립트 상태에서 짜맞춰지는 문장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 유명한 초딩이 되어버린 유비(삼국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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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 10은 이런 오역으로 워낙 유명합니다. 도원결의를 잊은 유비(삼국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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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누구랑 누가 결혼을 해? 도대체 어디서 꼬인건지 알 수가 없네요. (삼국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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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이야! Fire!가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인지 모르면 이런 번역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엔 발사! 라고 하는게 맞죠. (어쌔신즈 크리드 3) 

 
 
Case 4. 음차냐 의역이냐
 
이번 케이스는 오역이나 발번역이라기보다는 상황에 따라서 다른 경우입니다. 

‘화염구’ 이제 많이 익숙한 단어죠? 파이어 볼(Fire Ball). 하지만 이 단어가 정착되는 데에도 대단히 큰 논쟁이 있었습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한국 서비스가 시작될 시점에 블리자드는 확실하게 현지화를 할 것을 천명하고 음역이 아니라 의미를 살려서 번역할 것을 결정했죠. 
 
당시 서비스되던 국산 온라인 게임의 기술명, 직업명들은 영어를 그대로 읽은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크리티컬 스트라이크’, ‘블레이드댄서’ 등 영어 모르는 사람은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죠. 그러나 <WOW>는 이런 것들을 한국어로 옮기면서 음차가 아니라 풀어서 번역하는데 주력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한국어의 멋과 맛을 살린 괜찮은 번역이 탄생했습니다. 물론, 고유명사를 너무 지나치게 의미에 집착해서 번역하거나, 고유명사의 경우 어떤 경우에는 의미를 풀어서 번역하고, 어떤 경우는 음차로 하는 등 일관성이 없는 부분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 이후 많은 국산 게임들이 이런 점을 배워서 한국어로 기술명을 짓거나 하는 등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물론, 한글화를 제대로 한 게임들 중에는 이런 식으로 의미를 한국어로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바꾼 것들도 꽤 있어서 긍정적인 부분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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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W 이후 국내에 나온 외산 게임들 중에는 순 한국어로 의미를 살려 번역한 것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번역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어렵다고 하죠. 번역팀의 열정이 만든 좋은 사례입니다

 
 
Case 5. 용량이 모자라…
 
한글은 다른 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문자 체계입니다. 모음과 자음을 조합해서글자를 만든다는 방식은 대단히 뛰어난 표기법으로 국뽕 한사발 들이켜도 괜찮지만, 게임 한글화에 있어서는 좀 달랐습니다. 
 
영어는 알파벳 단 26자면 , 일본어는 최소 50글자(물론 카타카나+한자까지 포함하면 굉장히 늘어납니다만)이면 되지만 한글은 엄청난 글자의 조합이 가능합니다. 이 부분이 메모리와 저장공간이 부족했던 과거 컴퓨터나 콘솔 게임기에서 한글화를 할 때 걸림돌이 되었죠. 
 
그러다보니 궁여지책으로 아예 필요한 글자만을 집어넣는 일이 있었습니다. 과거 완성형과 조합형의 논쟁이 바로 예가 되겠습니다. 완성형 한글은 자주 사용되는 글자들만 넣었기 때문에 옮길 수 없는 글자들이 있긴 하지만, 그만큼 메모리와 용량을 적게 먹기 때문에 용량에 제한이 큰 콘솔 게임기의 경우 한글화에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심한 경우는 아예 그 게임에서 쓰는 글자만 뽑아 넣은 게임도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의미가 이상하게 전달되는 경우를 흔히 발견할 수 있었죠. 
 
PS2용 게임들이 한창 한국어화되어 발매될 때 이런 일이 많았습니다. 특히 일본 국내 전용으로만 만든 게임들은 한국어화하는데 많은 걸림돌이 있었죠. 일본어는 한자 병용인지라 한자어만으로도 의미가 전달 가능하지만, 한국어로 풀어서 쓰면 이른바 ‘칸을 넘어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맙니다. 
 
요즘은 완성형도 아니고 조합형도 아닌 전세계 모든 문자를 사용할 수 있는 유니코드(unicode)를 사용하고, 개발사도 미리 다른 나라 언어로 개발될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꽤 있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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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PS2 시절엔 오역보다는 눈에 띄는 훌륭한 한글화 타이틀이 많았습니다. 정확한 번역을 넘어서 게임의 맛을 살리는 초월번역, 게다가 더빙, 주제가까지 다 한국어화되는 타이틀도 있었죠. 이것은 당시 업계 관계자분들의 열정 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진은 초월번역의 대명사 반숙영웅 vs 3D)

 
 
제대로 된 한국어화를 보려면? 
 
텍스트가 방대한 경우, 1명의 번역가가 전부 다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나누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럴 경우에 확실하게 중심을 잡아줄 책임자가 필요합니다. 책임자는 번역에 사용되는 용어집(Glossary)을 관리하고, 초벌번역이 되어 온 것을 게임에 맞게 수정하는 일도 하게 됩니다.  
 
또한 번역 후에 게임에 적용해서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테스트를 거쳐서 실제로 번역한 텍스트가 어떤 곳에 들어가는지 확인하지 않는다면 오류없이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들을 무시하거나 적당히 하면서 값싸고 빠르게만 하려다가는 다키스트 던전과 같은 오역 사태는 언젠가 또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치며
 
한글화란 말이 널리 쓰이기 때문에 그냥 사용해도 되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화’를 처음에 언급한 이유는 여전히 많은 게임들이 ‘한글’은 지원하지만 ‘한국어’의 올바른 사용까지는 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장난으로 보일 수 있지만, 오역이 있어도, 의미를 못알아들어도 ‘한글화’란 말은 성립됩니다. 적어도 ‘문자’는 한글이니까요. 
 
하지만 ‘한국어화’는 단지 문자로의 ‘한글’이 쓰인게 아니라 언어로의 ‘한국어’, 즉 우리가 제대로 게임 개발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 되었을 때 붙일 수 있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앞으로도 '한글화'가 아니라 좋은 '한국어화' '현지화' 게임들이 많이 나와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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