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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도박’ 판정을 받은 루트박스(lootbox)
 
지난 4월 19일, 네덜란드 사행사업감독원(De Kansspelautoriteit)은 10개 게임의 루트박스(Lootbox,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을 조사한 결과 그 중 4개의 게임이 네덜란드 도박 관련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판정했다. 네덜란드 사행사업감독원은 해당 판정을 받은 게임의 목록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은 문제가 된 게임이 ‘피파 18’, ‘도타2’, ‘플레이언노운즈 배틀그라운드’ 및 ‘로켓 리그’ 4개 게임이라 보도했다. (https://www.kansspelautoriteit.nl/nieuws/alle-nieuwsberichten/2018/april/artikel-0/ ) 
 
네덜란드 사행사업감독원은 해당 4개 게임의 루트박스는 우연의 일치가 내용물을 결정하며, 루트박스의 내용물은 게임 외부에서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루트박스는 실제로 슬롯머신이나 룰렛 같은 도박과 유사한 디자인 및 매커니즘에 기반하고 있다”며 이번 결정의 배경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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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 도타2나 플레이어언노운즈 배틀그라운드가 벨기에에서 도박으로 판정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공식적으로' 루트 박스의 내용물이 현금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루트 박스 자체를 사고 팔 수도 있다.
 
보도자료를 통해 네덜란드 사행사업감독원은 네덜란드에서 이런 종류의 도박을 허가 없이 대중에게 공급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이 결정으로 인해 네덜란드에서 해당 게임을 수정 없이 계속 서비스 하기 위해서는 도박 라이선스를 별도로 취득하든가, 6월까지 해당 루트박스 시스템의 전면적인 수정을 실시 해야 한다.
 
이어 4월 25일에는 벨기에 게임/도박 위원회(Belgian Gaming Commission)가 ‘스타워즈 배틀프론트2’, ‘피파 18’, ‘오버워치’ 및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에 대한 조사 결과 배틀프론트2를 제외한 나머지 게임의 루트박스에 대해 ‘도박에 해당하며 따라서 불법이다’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 아이러니하게도 벨기에 게임/도박 위원회 조사의 계기가 된 EA의 '스타워즈: 배틀프론트2'는 도박 판정을 받지 않았다. 너무나 논란이 되어 EA가 자발적으로 시스템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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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버워치의 전리품 상자
 
벨기에 법무장관은 성명서를 통해 ‘피파18’, ‘오버워치’, ‘글로벌 오펜시브’에 있는 루트박스 시스템은 불법이며, 만약 루트박스에 대한 수정 없이 벨기에에서 이들 게임을 계속 서비스 한다면 퍼블리셔는 5년 이하의 징역형 혹은 최대 80만 유로(약 10억 5천만원)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고 발표했다. 특히 미성년자가 관여되어 있으면 이런 처벌은 두배로 가중될 수 있다며 강력하게 경고했다.
 
유료 확률형 아이템은 이전부터 꾸준하게 논란이 되어 왔지만,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실제 게임의 루트박스 시스템이 ‘도박’ 판정을 받자 그 충격은 이전과 비할 수 없이 크다. EA는 벨기에 도박 위원회의 이번 결정에 대해 어떠한 연락이나 공유를 받지 못했으며, 벨기에측 (책임자인) 법무 장관과의 대화를 언제나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EA는 자신들이 만든 게임이 도박으로 취급 받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부인했다. EA 대변인은 해외 게임 언론을 통해 EA는 EA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이 즐겁고 공정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으며, 게임 시장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고, 자신들이 국가 별 게임 등급 분류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정의 의의: 유료 확률형 아이템 그 자체가 불법이다?
 
하나 주목할 점은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일부 게임의 루트박스가 실제 도박 판정을 받았다는 그 자체다. 지금까지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두고 불거진 논란에서 주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게임 회사가 지나치게 낮은 확률로 유료 확률형 아이템의 획득 확률을 설정하거나, 확률을 속이는 등 세부적인 항목이었다. 즉, 유료 확률형 아이템 자체는 인정한다는 기조였다.
 
그러나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게임의 유료 확률형 아이템이라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 그것이 실제 도박과 정말로 같음을 명시했다. 이 두 국가에서 루트박스에 대해 도박 판정을 내린 기관 자체가 카지노 등 실제 도박 및 사행사업을 관장하는 곳이라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사행사업감독원의 경우 불법사행사업을 단속하고 벌금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까지 있는 곳이다. 국가 차원에서 일부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공식적으로 도박으로 판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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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사행사업감독원은 루트박스의 비주얼 효과도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네덜란드 사행사업감독원은 나아가 이들 유료 확률형 아이템이 도박 중독과도 연관이 있다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게임 내에서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열 때 나오는 멋진 효과 등도 취약 계층(미성년자 등)에게 중독 효과를 일으킬 수 있으니 ‘무해한 형태’로 바꾸고 무해함을 게임 개발사에서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이 정도면 어마어마하게 강경한 정책이다.
 
벨기에 법무부 장관과 벨기에 도박/게임 위원회의 입장도 비슷하다. 유료 확률형 아이템 자체가 실제 재산상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고, 이런 유료 확률형 아이템의 마케팅에 대해서도 마치 구입하기만 하면 최고 등급의 상품을 획득할 수 있는 식으로 홍보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확률도 상당히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벨기에 법무부 장관은 나이 어린 게이머가 유료 확률형 아이템에 무분별하게 노출될 경우 정신건강에 위험하다는 경고까지 덧붙였다. 유료 확률형 아이템이 게이머를 유혹해 도박에 빠지게 만들고, 정신건강을 해치며 그릇된 행동을 낳기 때문에 도박과 같은 레벨로 규제해야 한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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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제 지긋지긋하다
 
 
이제는 정말로 남의 일이 아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벌어진 루트박스 ‘도박’ 판정은 절대 남의 일이 아니다. 그 동안 개별 정치인이나 사회 단체, 게이머가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규탄해 온 적은 있지만, 국가 단위에서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도박’ 판정을 내린 것은 그 파장이 다르다. 이번 판정은 유럽 권에서 인기 있는 몇몇 콘솔 혹은 패키지 게임을 조사해서 내려진 결과에 불과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몇 년 동안 모바일 게임, 아니 정확히는 유료 확률형 아이템에 절대적인 매출을 의존해 온 동북아시아 지역의 게임 회사들은 바짝 긴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다. ‘자율규제’라는 기만술 하에 오랜 세월 동안 게이머를 속이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상태다. 지키지 않아도 처벌은 없고, 기껏해야 홈페이지를 통해 회사와 게임 이름이 공개되는 정도다. 스스로 룰을 정하고, 처벌도 없는 규제가 어떻게 규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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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만들어진 '자율규약'일 것 같은가? 2008년이다. 10년전이다.
 
‘베어필드의 언더커버’를 통해 수 차례 밝힌 의견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유료 확률형 아이템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확률은 분명 즐거움을 주는 하나의 요소이며, 유료 확률형 아이템에서 얻은 매출 덕분에 게임 산업의 규모가 성장하고 더 많은 게임이 등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게이머의 골수까지 빨아먹으려는 동북아 3국의 모바일 게임 확률형 아이템은 정도를 이미 오래전에 넘어선 상태다.
 
 
우리나라만 봐도 이미 해외에서 문제가 된 사례가 있음에도 같은 방법으로 기만적인 운영을 하다 얼마 전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철퇴를 맞은 것만 봐도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아직까지는 정부가 직접 나서 법적으로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하려는 시도가 미약하지만,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내려진 이번 판정은 하나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과연 그날을 대비하고 있는가?
 
글/ 베어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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