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탈출’부터 ’검은방’, ’회색도시’까지... 한국 모바일 게임 역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긴 어드벤처 후예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지난 세기 말, 그러니까 1990년대에 PC게임을 열심히 즐겼던 게이머라면 대작 어드벤처 게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저 유명한 ‘원숭이 섬의 비밀’ 시리즈나 ‘가브리엘 나이트’, ‘인디아나 존스’ 등 셀 수 없는 어드벤처 대작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었다.


안타깝게도 1990년대 말부터 PC 어드벤처 게임의 인기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미스트’나 ‘더 롱기스트 저니’ 같은 명작 어드벤처 게임이 간간히 나오며 명맥은 이어갔지만, 대다수의 관심에서는 멀어진 장르가 되고 말았다. 멀티플레이가 크게 강조되는 시대에 온라인과는 맞지 않는 어드벤처 장르의 특성도 부진에 한 몫 했다.

 

<위에서부터 인디아나 존스와 슈타인즈 게이트.>

 


그러나, 어드벤처 게임이 완전히 몰락한 것은 아니다. RTS가 AoS(혹은 MOBA, 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라는 새로운 장르를 낳았듯, 어드벤처 역시 다양한 파생장르를 낳았다. 예를 들면, 어드벤처 게임에서 스토리만을 극대화 한 일본식 게임인 ‘비주얼 노벨’이나 반대로 퍼즐 요소를 극대화 한 ‘방탈출’ 장르가 그렇다. 이들은 정통 어드벤처 게임과는 거리가 있지만, 분명히 어드벤처 게임에서 파생되었으며 각자 팬을 확보하며 영역을 넓혀왔다.


이들 어드벤처의 친척 내지는 후예들은 모바일 시대가 열리자 그 곳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한국 모바일 게임 역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긴 어드벤처 후예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탈출하라, ‘방탈출’ 시리즈
2000년대 초반, 다양한 플래시 게임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 눈에 띄는 게임이 몇 있었는데 바로 ‘방탈출’류(Escape Games)의 게임들이었다. 이들 게임은 어드벤처 게임에서 흔히 보이는 ‘밀실 상황에서 퍼즐을 풀어 탈출하는’ 부분을 따와서 독립적인 게임으로 만든 형태였는데,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끈 게임을 꼽자면 일본에서 만들어진 ‘크림슨 룸’(2004), 영국에서 만들어진 ‘시공의 미스터리’(2004)등이 대표적이다.

 

<크림슨 룸. 게임 좀 했다는 분들은 한 번쯤 접해봤을 화면일 것이다.>

 


열악한 사양에서도, 웹 브라우저만 돌아가면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는 ‘방탈출’ 게임의 가능성에 유달리 주목한 개발사가 바로 ‘게임데이’였다. 게임데이는 2007년 ‘방탈출’을 출시하며 본격적으로 모바일 어드벤처의 이름을 알렸다. 이후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에 등장한 다양한 ‘방탈출’ 장르의 대선배격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이다.


이 ‘방탈출’ 시리즈는, 아예 장르 이름을 게임 제목으로 붙일 만큼 ‘방탈출’ 그 자체만을 강조한 게임이다. 주인공이 방에 갇힌 간단한 배경 설명 외에는, 스토리는 그냥 장식이다. 대신, 난이도 있는 퍼즐을 풀어 잠긴 문을 열고 탈출한다는 방탈출 게임의 핵심에만 주목했다.


‘방탈출’ 시리즈는 피처폰 시대가 끝나고 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현재도 원조의 명성에 걸맞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게임데이는, 처음 ‘방탈출’ 게임이 출시된 지 7년이 지난 2014년에도 최신작인 ‘방탈출: Doors & Rooms 2’와 ‘방탈출 for Kakao’을 내놓으며 ‘방탈출’ 시리즈의 인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탈출’에 강력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더한 ‘검은방’ 시리즈
이때, 게임데이의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게임데이의 ‘방탈출’ 시리즈가 ‘퍼즐을 풀어 방을 탈출한다’는 컨셉에 충실한 게임이라면, EA 모바일이 내놓았던 ‘검은방’ 시리즈는 퍼즐에 강력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더한 모바일 게임이다. 퍼즐과 스토리를 함께 즐기는 정통 어드벤처 게임의 형태에 가까운, 좀더 진화된 형태의 게임이다.


실제로 게임데이 이창윤 이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검은방 시리즈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같은 탈출 게임을 이런 식으로 풀 수 있구나 하고 많이 감탄했다. 덕분에 개발자 대부분이 검은방 팀을 선의의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검은방’ 시리즈의 서막을 연 ‘검은방: 밀실탈출’은 2008년 피처폰 용으로 출시되었다. ‘방탈출’ 시리즈와는 달리, 퍼즐 난이도는 조금 낮고 대신 추리 요소가 가미된 스토리와 강력한 캐릭터성을 더했다. ‘검은방’ 시리즈는 초기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3편부터 게임원화가 김현정(닉네임: 레피)이 참여해 산뜻한 일러스트가 더해지며 ‘검은방’ 시리즈는 더 큰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검은방’의 강점은 역시 스토리다. 전체적으로 게임에 추리요소가 가미되어 있고(시스템도 이를 위해 방탈출 게임들과는 다른 시스템이 포함되어 있다), 후속작에서 전작의 스토리를 이어서 다루기 때문에 수명이 짧은 다른 모바일 게임과는 달리 오랜 기간 꾸준히 지속할 수 있었다. ‘검은방’ 시리즈는 2008년 첫 출시 이후 1년 간격으로 꾸준히 시리즈가 이어져 2011년 ‘검은방4’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검은방’의 주요 제작진들이 퇴사하고 서비스 주체였던 EA모바일코리아가 ‘검은방’ 시리즈의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결정이 내려지면서 ‘검은방’ 시리즈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검은방’의 스토리 자체는 4편에서 이미 완결된 상태였지만, 서비스 종료에 많은 게이머들이 아쉬움을 표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시리즈였다. 결국 국내 모바일 어드벤처의 초석을 놓은 검은방 시리즈는 더 이상 게임을 해볼 수 없는 비운의 명작으로 남게 됐다.

 


명품 모바일 비주얼노벨, 스노우레인
한편, 검은방에 자극을 받은 게임데이가0 방탈출 시리즈를 벗어나 새로운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앞서 설명했던 ‘방탈출’ 시리즈로 대성공을 거둔 게임데이는, 2011년 미소녀게임 ‘스노우레인’을 모바일로 내놓아 어드벤처 팬들을 놀라게 했다. 음침한 분위기의 ‘방탈출’ 시리즈를 게임데이의 간판게임으로 기억하고 있던 게이머들에게, 밝고 화사한 미소녀게임인 ‘스노우레인’의 출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주인공과 5명의 히로인 간에 벌어지는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 ‘스노우레인’은, 앞서 게임데이가 내놓던 ‘방탈출’과는 정반대의 컨셉이다. 말 그대로 ‘퍼즐’에 주력하고 스토리는 공기나 마찬가지던 ‘방탈출’과 달리, ‘스노우레인’은 스토리를 강조하며 육성 시뮬레이션 요소를 조화시켰다. 부드러운 BGM과 고품질 그래픽으로, 게이머들은 당시 피처폰용으로 나왔던 미소녀게임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평했다.


앞서 소개했던 ‘방탈출’이나 ‘검은방’ 시리즈와 마찬가지도, ‘스노우레인’도 초기 버전은 피처폰용으로 제작되었지만 후에 스마트폰 버전으로 이식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비록 피처폰용 게임을 그대로 이식해 가로모드를 지원하지 않고, 음성도 없지만 스마트폰 게임 시대로 넘어와서도 많은 팬을 확보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또한, 일본어판으로도 번역되어 일본 마켓에서 판매 중이다.

 

 

 

‘거물’ 모바일 어드벤처 게임, 회색도시
하지만 치열한 경쟁이 난무하는 모바일 어드벤처 장르에선 영원한 강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검은방 제작진들은 또 한번 시장을 평정할 회심의 대작을 갈고 닦고 있었다. 네시삼십삼분이라는 새로운 둥지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국내 스마트폰 게임시장의 획을 그을만한 엄청난 작품이 되어 팬들에게 돌아왔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검은방’ 시리즈는, 2014년 초 EA모바일코리아가 서비스 중지를 선언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검은방’ 시리즈의 핵심 제작진은 이미 ‘검은방4’ 이후 퇴사한 상태였으며, 많은 팬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검은방’의 서비스는 결국 중단되며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검은방’의 핵심 제작진인 진승호(수일배) 프로듀서, 게임원화가 김현정(레피) 등은 ‘검은방4’ 이후 네시삼십삼분으로 이적해 새로운 어드벤처 게임을 제작한다. 그 결과물이 2013년 7월 출시된 ‘회색도시 for Kakao’다. ‘회색도시’는 비주류로 여겨지던 어드벤처를 단숨에 주류 장르로 끌어올리며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검은방’의 핵심 제작진이 다시 모여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 이면의 어두운 이야기를 그린 ‘회색도시’는 ‘검은방’의 그 독특한 센스는 그대로 계승했다. 여기에 스마트폰 시대에 발맞춰 그래픽, 사운드, 시나리오 등이 진일보한 작품이다. 복잡한 시스템은 간소화 하고, 퍼즐의 난이도도 쉽게 해 대중적인 게임으로 다가갔다. 4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시각에서 풀어나가는 스토리는 엄청난 몰입감을 주었다. 회색도시 이후 모바일 게임은 작품성을 갖춘 게임으로 인식됐다. 애니팡 같은 단순 퍼즐게임에 싫증난 유저들은 정통 어드벤처 게임의 깊이 있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시대에 맞춰 전반적인 그래픽과 음악의 품질도 강화하고, 유명 성우를 기용해 녹음할 만큼 많은 공을 들인 게임이다. 거물 게임인 만큼 ‘회색도시’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도합 200만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회색도시’ 팬들을 위한 팬아트 공모전과 사인회가 열렸다. 인기 온라인 게임도 아닌, 모바일 게임에서 이 정도로 팬덤을 형성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이전까지 비주류 장르로 여겨졌던 어드벤처 게임을 표방한 게임이 거둔 성과로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작년 회색도시 200만 다운로드 기념 행사에서 네시삼십삼분 소태환 대표는 “회색도시가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지만, 어드벤처의 대중화라는 원래의 목표를 이루기에는 아직 멀었다. 더 많은 어드벤처 게임을 출시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어드벤처의 즐거움을 알리겠다”고 어드벤처 장르의 발전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재 프리퀄에 해당하는 ‘회색도시2’가 2014년 가을 공개를 목표로 제작 중이다. 1편 주인공들의 부모세대의 이야기가 중심으로 거대한 스토리가 퍼즐처럼 맞춰진다. ‘긴 호흡으로 즐길 수 있는 스마트 드라마’를 컨셉으로, 기존 ‘회색도시’ 시나리오의 2배 볼륨과 유명 성우진의 풀 더빙이 지원될 예정이다. 본편 외에 게이머가 직접 만든 시나리오를 ‘회색도시2’ 내에서 즐길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탑재된다는 점도 독특한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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