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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

1998년 늦가을, 첫 게임인 ‘하프라이프’의 제작을 마친 밸브 직원들은 드디어 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휴가를 즐기러 떠났다. 비슷한 시기, 밸브 본사가 있는 시애틀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캐나다 서부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의 기숙사에서는 한 대학생이 ‘하프라이프’를 보고는 감탄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민 리(Minh Le). 리는 베트남계 캐나다인으로, 당시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민 리는 ‘둠’부터 ‘퀘이크2’까지 이드 소프트웨어의 열렬한 신도였다. 리는 특히 ‘퀘이크’ 시리즈의 모드(MODification) 제작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처음 만든 모드는 ‘퀘이크1’의 밀리터리 모드인 ‘네이비 씰(Navy SEALS)’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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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즈맨' 민 리

 

1997년 12월, 이드 소프트웨어가 ‘퀘이크2’를 내놓은 직후 리는 ‘액션 퀘이크2’ 모드 제작에 참여했다. ‘액션 퀘이크2’ 모드는 이후 이드 소프트웨어에게 그 완성도를 인정받아 ‘퀘이크2 공식 확장팩’에 수록되었다. 그가 참여한 모드가 원 제작자에게 인정을 받을 정도였으니 민 리의 실력을 알 만 하다.

 

민 리는 닉네임 ‘구즈맨(Gooseman)’으로 퀘이크 모드 제작자 사이에서 차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액션 퀘이크2’를 내놓은 직후, 클리프(Cliff)라는 닉네임을 쓰던 사람이 접촉해 왔다. 클리프의 본명은 (싱겁게도) 제스 클리프로, 리와 클리프는 곧 퀘이크 모드에 대해 토론을 벌이며 친분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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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션 퀘이크 2

 

그러던 와중에 밸브가 ‘하프라이프’를 내놓았다. 민 리는 ‘하프라이프’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하프라이프’ 자체도 놀라운 게임이었지만, 거기에 포함된 에디터 기능은 더 충격적이었다. 게이브 뉴웰의 의지에 따라 ‘하프라이프’는 공식적으로 게임을 수정할 수 있는 여러 에디터 기능을 지원하고 있었다. ‘하프라이프’의 패치가 거듭되며 에디터 기능은 더욱 강력해졌다.

 

민 리만 ‘하프라이프’에 감탄한 것은 아니었다. 이 시기 ‘퀘이크’ 모드를 만들던 수많은 제작자가 그대로 ‘하프라이프’ 모드 제작에 뛰어들었다. 예전에 만든 퀘이크 모드를 하프라이프로 리메이크 해 내놓는 일이 많았다. 리도 예전에 만들었던 퀘이크 모드를 리메이크 하려 했다. 밀리터리 모드인 가칭 ‘네이비씰2’였다. 그러나 누군가 이미 이 이름의 모드를 만든 상태였고, 민 리는 자존심(?)때문에 다른 모드를 만들기로 했다.

 

▶ 민 리가 '퀘이크1' 용으로 제작했던 '네이비씰' 모드

 

리의 생각에 ‘하프라이프’ 엔진(이제는 ‘골드소스’라는 이름이 붙은)은 좀 리얼한 밀리터리 FPS에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또 ‘톰 클랜시의 레인보우 식스’마냥 지나치게 리얼한 밀리터리 FPS는 별로 였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게임 방식 자체는 경쾌한 FPS를 추구하고, 소재는 현실에 있는 실제 총기 등을 사용한 ‘제3의 길’이었다.

 

민 리는 이 시기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졸업만큼이나 이 하프라이프 모드 제작도 중요했다. 졸업 준비를 하며 일주일에 20시간은 모드 제작에 투자했다. 사운드와 맵 디자인은 친구 제스 클리프가 도와주었다. 약 반 년에 걸친 작업 끝에 리는 1996년 6월, 인터넷에 자신의 새로운 모드를 공개했다. 모드의 이름은 ‘카운터 스트라이크(Counter-Strike)’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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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의 시작: 카운터 스트라이크 첫 베타버전 (출처: https://joliesjunk.wordpress.com/2012/10/11/the-history-of-counter-strike )

 

밸브의 품에 안긴 ‘카운터 스트라이크’

민 리는 거의 반 년 동안 학업과 모드 제작을 병행하며 사투 끝에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내놓았지만, 처음에는 초라했다. 첫 베타버전을 내놓았을 당시 이 모드의 멀티플레이 인원은 다 합쳐서 100명 정도였다. 맵도 고작 4개에 불과했다. 부족한 맵은 클리프가 다른 모드 제작자를 끌어들이며 해결할 수 있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기적이 일어났다. 첫 베타 이후 채 6개월도 지나지 않아 5번째 베타 버전을 내놓자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갑자기 북미를 휩쓸기 시작했다. 제작자인 구즈맨과 클리프는 이제 모드 제작자 사이에서 영웅이 되어 있었다. 자신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과에 민 리는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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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다섯번째 베타 버전

 

▶ Counter-Strike Beta 1.0 - CS_Mansion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게이브 뉴웰이 지휘하던 밸브가 직접 ‘카운터 스트라이크’ 지원에 나섰다. 민 리는 ‘카운터 스트라이크’ 베타 버전 당시 네트워크 코드 문제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이는 툴 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는데, 밸브에 문의를 넣자 기술지원은 물론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위한 3D 모델까지 덤으로 보내주었다.

 

그 다음은? 게이브 뉴웰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민 리와 제스 클리프를 밸브로 초청해 정식으로 채용했다. 가장 인기 있는 ‘하프라이프’ 모드가 된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이제 밸브의 품에 안겼다. 밸브는 이 두 사람을 정식으로 고용한 후에도 별 다른 간섭을 하지 않고, 이전처럼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만들도록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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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밸브는 유통사인 시에라를 통해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PC 패키지로 출시했다. 사실 ‘하프라이프’ 패키지를 샀다면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여전히 무료로 다운받아 즐길 수 있었지만, ‘카운터 스트라이크’ 패키지도 대단한 인기를 끌며 팔려 나갔다. 이제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즐기는 게이머의 숫자는 대선배 ‘퀘이크’ 시리즈를 즐기는 게이머의 숫자를 넘어섰다.

 

누구나 즐기는 FPS 멀티플레이 시대를 열다

밸브는 FPS 장르의 패러다임을 두 번이나 바꿨다. ‘하프라이프’를 통해 FPS 싱글플레이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고,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통해 FPS 멀티플레이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보여준 것은 누구나 입문할 수 있는 대중적인 FPS 멀티플레이 시대의 신호탄이었다.

 

이전까지 FPS 장르를 대표하던 이드 소프트웨어의 게임들은 존 카멕의 철학에 따라 극한의 액션을 추구했다. 멀티플레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퀘이크’ 시리즈는 빠른 템포를 자랑하는 멀티플레이로 유명했다. 발 밑에 로켓 런처를 쏴 더 높이 점프하는 로켓 점프 테크닉 정도는 기본으로 갖춰야 했고, 온갖 비현실적이고 현란한 무기가 날아다녔다. 이 특유의 액션 때문에 ‘퀘이커’라고 불리는 퀘이크 멀티플레이 광신도가 생길 정도였지만, 정작 대중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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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이크 3 아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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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 클랜시의 레인보우 식스

 

비슷한 시기 멀티플레이로 인기를 끌었던 ‘톰 클랜시의 레인보우 식스’는 퀘이크 시리즈의 멀티플레이와는 정 반대였다. 이 게임에 현란한 점프 따위는 없었다. 게이머는 대테러부대의 일원이 되어 긴장에 긴장을 거듭하며 저택이나 공항 같은 현실적인 맵을 조심스럽게 탐색하다 단 한 발로 적을 끝장내야 했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퀘이크’와 ‘레인보우 식스’의 공통점은 결국 하드코어 한 게임이라 아무나 막 접근할 수 있는 게임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 리는 ‘카운터 스트라이크’에서 이 두 게임의 중간 지점을 정확히 잡아냈다. 나름 현실적이긴 한데, 또 경쾌한 액션을 즐길 수 있는 FPS. 이점이 바로 ‘카운터 스트라이크’ 성공의 묘미였다.

 

민 리는 ‘카운터 스트라이크’에 현실의 대테러부대와 총기를 기반으로 인질 구출, 폭탄 해체 같은 꽤 현실적인 미션을 집어넣었다. 리는 게임 내 총기 구현을 위해 실제로 다양한 총기를 사격해 보기도 했다. 실제 총기 사운드는 민 리의 말에 따르면 “스피커가 찢어질 듯 우렁차서” 결국 게임에 넣지는 않았지만, 느낌을 살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여기에 로켓 점프 같은 비현실적인 액션은 최대한 줄였다. ‘카운터 스트라이크’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동작은 달리기, 걷기, 쭈그려 앉기, 낮은 점프, 사격 정도다. 나름 현실적인 액션만 남긴 셈이다. 게임 방식은 도보로 이동하다가 적과 만나면 사살하고 폭탄 해체 등의 미션을 수행하는 아주 단순한 구조를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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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은 흘렀지만 '카운터 스트라이크' 시리즈의 본질은 여전히 그대로다.

 

그렇다고 ‘레인보우 식스’처럼 매 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맵을 탐색하다가 총 몇 발 못 쏘고 한 방에 생사가 오가는 그런 게임도 아니었다. 무기나 보조장비에 따라 다르지만 신나게 맵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쪼이기도’ 하면서 적에게 화끈하게 여러 발을 갈겨야 잡을 수 있었다. 적당한 게임 템포와 더불어 ‘내가 무기를 쏜다’는 느낌도 충분히 남겨두었다.

 

FPS 멀티플레이는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등장을 계기로 그 인구층이 크게 확대되었다. 또한,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계기로 ‘하프라이프’는 싱글플레이 그 자체만이 아니라,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비롯해 ‘팀 포트리스 클래식’ 그리고 ‘데이 오브 디피트(Day of Defeat)’ 같은 다양한 멀티플레이 모드의 베이스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나는 관대하다

밸브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들이 게임을 내놓을 때 마다 다양한 모드가 나올 수 있도록 기본적인 뒷받침을 한 다음, 뛰어난 모드가 등장하면 재빨리 흡수해 힘을 키우는 방식이다. 이런 흡수 방식은 이미 게이브 뉴웰이 밸브를 창립할 때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다. 이미 ‘카운터 스트라이크’ 전에도 ‘팀 포트리스(Team Fortress)’를 흡수한 전력이 있다.

 

‘팀 포트리스’는 본래 호주 출신의 로빈 워커(Robin Walker)와 존 쿡(John Cook)이 1996년 ‘퀘이크’에 기반해 만든 모드였다. 게이브 뉴웰은 ‘팀 포트리스’ 모드에 진작부터 주목하고 있었다. 이 모드는 FPS에 처음으로 다양한 ‘병과’ 시스템을 도입하며 주목을 받고 있었다. 뉴웰은 1997년 두 사람을 밸브에 영입했다.

 

이 ‘팀 포트리스’ 팀은 처음에는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팀 포트리스2’를 계획했지만, 게이브 뉴웰은 일단 빠른 시간 내에 ‘하프라이프’ 공식 멀티플레이 모드를 만들어 주길 원했다. 모드 제작자를 위해 밸브가 만든 툴을 배포하면서 “하프라이프(골드소스) 엔진으로 이렇게 멋진 멀티플레이 모드를 만들 수 있다”는 일종의 시범 모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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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 포트리스 클래식

 

그리하여 옛 ‘팀 포트리스’를 하프라이프 모드로 리메이크한 ‘팀 포트리스 클래식’이 1999년 공식 배포되었다. 최대 32명이 대결하는 ‘팀 포트리스 클래식’은 병과 시스템 등 특유의 게임성으로 인기를 끌었고, ‘카운터 스트라이크’ 흥행 이전까지 가장 인기 있는 하프라이프 멀티플레이 모드였다.

 

‘팀 포트리스’는 시작에 불과했다. 밸브는 괜찮다 싶은 모드는 회사 차원에서 직접 지원을 해주면서까지 육성해 주었고, 앞서 설명한 ‘카운터 스트라이크’, 2차세계대전 모드인 ‘데이 오브 디피트’ 등 뛰어난 ‘하프라이프’ 모드를 만든 개발자는 대부분 밸브로 영입했다. 이런 개발자 영입의 중심에는 물론 게이브 뉴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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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 오브 디피트. 이 역시 모드 개발자를 밸브가 영입했다.

 

자기들의 게임을 함부로 뜯어고치는 행위에 대해 소송도 불사하는 게임회사가 있는 반면, 밸브는 반대로 아예 처음부터 우리 게임 모드를 만들라는 식으로 나오고 괜찮다 싶으면 직접 고용을 해버리는 식으로 회사를 키워 나갔다. 직접 고용을 한 다음에도 강압적인 지시보다는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는데, 이는 밸브의 강점이지만 후에 치명적인 문제도 드러낸다.

 

밸브와 게이브 뉴웰의 전환점, 스팀 플랫폼의 탄생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북미에서는 ‘카운터 스트라이크’ e스포츠 리그가 결성되었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에서도 ‘레인보우 식스’를 밀어내고 PC방 국민 FPS의 위치를 차지했다. 최신 ‘퀘이크3’ 엔진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모드가 ‘카운터 스트라이크’에 도전해 왔지만, 이들 중 누구도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런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인기는 밸브에 또 다른 두통거리를 안겨주었다. 게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배포 및 관리의 문제였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본래 ‘하프라이프’의 멀티플레이 모드로 등장했다. 하프라이프를 일단 설치하고, 인터넷에서 ‘카운터 스트라이크’ 최신 버전 설치파일을 다운로드 받아 덧씌우는 식이었다. 패키지판도 실제로는 모드판과 별 다를 바 없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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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운터 스트라이크 패키지 버전. 이 패키지 버전과 스팀을 두고 밸브는 법적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다 좋은데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멀티플레이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라, 매우 잦은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는 점이 문제였다. 뭔가 업데이트를 할 때 마다 게이머가 일일이 인터넷에서 패치파일을 받아 덧씌워야 했다. 초기만 해도 반년 동안 베타 버전을 대여섯개나 내놓았는데 매 번 거대한 용량의 패치파일을 받아서 덧씌워야 하니 당시 인터넷 환경으로는 고역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치트였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치트 관련 시비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벽을 투명하게 만들어 적의 위치를 한 눈에 알아보는 ‘월핵(WallHack)’ 정도는 기본이었고, 마우스 커서를 대충 적 캐릭터에게 갖다 대면 알아서 머리를 조준해주는 ‘에임핵(AimHack)’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대놓고 둘 다 사용하는 양심 없는 사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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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운터 스트라이크 월핵 겸 에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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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프로그램을 기억한다면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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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게임 내 서버 찾기 기능도 거지같았다. '올 싱 아이' 같은 별도의 서버 접속 관리 프로그램이 기본이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각 서버 관리자가 직접 유저를 밴(추방)하는 기능이 있었지만, 진짜 실력인지 아니면 치트 유저인지 구분하기란 쉽지 않았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서버 중에서는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곳도 있었는데, 게시판에서 이러한 치트 및 밴 시비로 언쟁을 벌이는 일이 잦았다. 보다 못한 게이머가 직접 만든 ‘펑크버스터(Punkbuster)’나 ‘치팅-데스(Cheating-Death)’ 같은 서드파티 핵 방지 프로그램이 유행했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밸브가 중구난방으로 내놓는 패키지도 귀찮은 문제였다. ‘하프라이프’ 확장팩도 내놓았고, 괜찮다 싶은 모드는 다 흡수해서 패키지로 내놓았는데 밸브가 내놓은 패키지를 한 PC에 전부 깔다 보면 시디키 관리가 골치 아픈 문제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윈도우 레지스트리에 평문으로 기록하는 방식이라 PC방이나 사이버카페의 시디키 도난 문제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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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팀' 플랫폼의 시작은 '카운터 스트라이크' 흥행에서 비롯되었다.

 

게이브 뉴웰이 내놓은 해결책은 엉뚱했다. 2002년 초, 뉴웰은 ‘하프라이프2’ 개발팀에게 일단 전권을 부여하고 자신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 해 3월, 게이브 뉴웰은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을 통해 이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했다. 디지털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Steam)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뉴웰은 2002년 GDC에서 자신이 구상한 ‘스팀’ 플랫폼을 이용하면 유통업자를 거칠 필요 없이 독립 개발자들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갈 수 있다고 역설했다. 앞으로 밸브가 내놓을 게임은 더 이상 일반적인 패키지 형식이 아니라 ‘스팀’에 귀속될 것이라는 언급도 덧붙였다. 회장은 게이브 뉴웰의 발표에 술렁거렸지만, 이 플랫폼의 미래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스팀’은 근본적으로는 앞서 언급했던 ‘카운터 스트라이크’에 얽힌 여러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비장의 무기였다. 스팀 플랫폼을 통해 ‘카운터 스트라이크’ 등 게임이 자동으로 업데이트되고, 치트 방지 시스템인 VAC(Valve Anti-Cheat)를 통해 치트 문제도 한번에 관리하려 했다. 또 다양한 패키지의 시디키를 ‘스팀’에 등록해 쉽게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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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팀의 초창기 버전으로 알려진 스크린샷. 진위여부는 알 수 없다.

 

당초 뉴웰은 이 ‘스팀’ 프로젝트를 다른 IT회사가 맡아 주길 원했다. 직접 하기 보다는 야후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네트워크에 관련된 경험이 있는 회사가 맡으면 더 나으리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뉴웰의 요구조건이 무리라며 거절했다. 결국 스스로 하는 수 밖에 없었고, 게이브 뉴웰은 중요한 프로젝트인 ‘하프라이프2’를 팀원들이 일단 ‘알아서’ 하도록 두고 스팀 개발에 나섰다.

 

2003년에 1월에 들어서야 ‘카운터 스트라이크’ 1.6 버전과 함께 ‘스팀’ 공개 베타가 시작되었다. 게이브 뉴웰은 GDC 2002에서 스팀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지만, 갓 시작한 스팀이 넘어야 할 산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팀’은 게임 커뮤니티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온다. 옛 유통사와의 법적 분쟁도 기다리고 있었다.

 

고난의 ‘하프라이프2’ 개발과 게이브 뉴웰의 또 다른 결단은…

한편 밸브의 최우선 프로젝트인 ‘하프라이프2’ 개발은 계속 난항을 겪고 있었다. 전작보다도 더 괴로운 여정이었다. 계획 자체는 이미 1999년부터 시작되었지만, 개발은 한없이 느리게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에 밸브의 공동 설립자인 마이크 해링턴도 2000년 1월 갑작스럽게 회사를 은퇴하고 부인과 함께 긴 휴가를 떠났다. 뉴웰이 그를 일컬어 “밸브의 비밀병기”라고 말할 만큼 뛰어난 엔지니어의 갑작스런 은퇴였다. 

 

게이브 뉴웰이 2002년 GDC에서 ‘스팀’ 발표하고 밸브로 돌아왔을 때, ‘하프라이프2’ 팀은 뉴웰에게 그 해 E3에서 시연할 ‘하프라이프2’ 데모 버전을 보여주었다. 게이브 뉴웰은 이 데모를 보고 냉정하게 결론을 맺었다. “이 상태로는 올해 E3에 나갈 수 없다.” 뉴웰은 컷씬이 너무 길고 지루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완성도가 충분하지 않으니 갈아엎고 다시 만들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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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브는 2002년 E3에 ‘하프라이프2’ 시연버전을 내놓지 못했다. 이듬해가 되자 일은 더욱 꼬이고 있었다. 2003년은 밸브에게 있어 최악의 해였다. ‘하프라이프2’개발은 계속 늘어지고 있었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겠다며 야심 차게 내놓은 ‘스팀’은 게임 커뮤니티 안팎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불미스러운 일까지 벌어졌다. 게이브 뉴웰의 또 다른 결단이 필요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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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
19.11.19
잘보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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