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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FPS의 서막

그렇게 게이브 뉴웰이 이끄는 밸브는 출발선에 섰지만, 넘어야 할 산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기본적인 ‘어떤 FPS를 만들 것인가?’ 부터 시작해 ‘어느 정도 규모의 게임을 만들 것인가?’, ‘퀘이크 엔진을 얼마나 뜯어 고칠 것인가?’ 등 난해한 문제들이 밸브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퀴버’라는 코드명이 붙은 이 게임의 컨셉은 게이브 뉴웰이 냈다. 그는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인 ‘미스트(The Mist)’의 분위기를 FPS로 옮기고 싶어했다. 이 소설은 마을을 뒤덮은 수수께끼의 안개와, 그리고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괴물들에 둘러싸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공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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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게이머에게 '미스트'는 2007년 제작된 영화 버전으로 더 친숙할 것이다. 원작은 스티븐 킹이 1980년 쓴 중편 소설이다. 이 소설 '미스트'가 '하프라이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게이브 뉴웰은 소설 ‘미스트’의 안개로 둘러싸인 세계, 괴물, 그리고 소설 내에서 암시되는 ‘비밀 군사시설’ 등의 요소를 액션 게임과 접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뉴웰이 만들고 싶어한 FPS는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무조건 박살내는 게임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철학과 스토리가 담긴 게임이었다. 이는 당시까지의 FPS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당시 최고의 FPS로 꼽히던 이드 소프트웨어가 내놓은 ‘둠’ 시리즈나, 3D 렐름이 내놓은 ‘듀크 뉴켐 3D’ 같은 게임은 마초적이고 화끈한 파괴를 중시했다. 다른 ‘둠’의 아류작 게임도 사정은 비슷했다. 특히 이드 소프트웨어의 존 카멕은 ‘둠’ 제작 과정에서 “게임에서 스토리란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라는 불후의 명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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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의 FPS는 뇌를 비우고 할 수 있는 원초적인 게임이었다. 3D 렐름의 '듀크 뉴켐 3D'도 그랬다.

 

물론 게이브 뉴웰이 다른 FPS의 요소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둠’ 시리즈가 보여준 경쾌한 게임 진행이나, ‘울펜슈타인 3D’부터 이어져 온 퍼즐 등은 뉴웰도 본받아 새로운 게임에 그대로 넣을 생각이었다. 어쨌든 나름 배경 설정이나 스토리를 중시하는 게이브 뉴웰의 제안은 이러한 유행과는 정 반대로 가는 길이었지만, 밸브의 팀원들은 뉴웰의 제안이 괜찮아 보였다.

 

그 다음은 밸브가 처음 만드는 이 게임의 ‘규모’였다. 사실 밸브의 누구도 이 ‘퀴버’가 ‘대작’ 게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밸브의 공동 설립자인 마이크 해링턴은 ‘대작’ 보다는 밸브가 최대한 빨리 B급 게임을 만들어 출시하는게 우선이라 주장했다. 밸브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합리적인 주장이었다. 게임 역사에서 너무 무리하게 ‘대작’ 게임을 만든다고 설치다가 회사가 망한 예는 얼마든지 있었다. ‘적당한 규모’의 게임을 만들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1997 E3에서) ‘하프라이프’의 스크린샷을 봤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 존 카멕

 

고난의 하프라이프(Half-Life)

‘퀴버’의 본격적인 제작에 앞서 밸브는 배경설정과 캐릭터를 담당할 소설가 마크 레이드로(Marc Laidlaw)를 영입했다. 마크 레이드로는 소설 ‘미스트’의 몇몇 설정을 뼈대 삼아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비밀 군사기지’와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 컨셉은 뉴 멕시코의 비밀 시설인 ‘블랙 메사 연구소(Black Mesa Research Facility)’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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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메사 연구소 내부로 향하는 트램 열차. '하프라이프'의 유명한 오프닝 시퀀스에 사용된 배경이다.

 

주인공인 고든 프리맨(Gordon Freeman)은 MIT 출신의 물리학자로 이전까진 무기를 들어본 적 없는 평범한 블랙 메사의 연구원이라는 설정이 붙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인간 군상이 하나 둘 만들어졌다. 동료 과학자, 경비원 등…그들은 게임 내에서 게이머와 소통할 캐릭터들이었다. 서로 농담을 주고 받거나 적대하고, 때로는 스스로 ‘행동’하는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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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야 고든 프리맨은 빠루 하나로 외계 생물이고 뭐고 다 때려잡는 흉악한 공돌이 이미지지만...

 

프로젝트 ‘퀴버’는 이제 ‘하프라이프(Half-Life)’가 되었지만, 이렇게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든 마크 레이드로조차 게임 내에서 캐릭터끼리 서로 소통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등의 기능이 실제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 다음은 밸브의 엔지니어들이 활약할 차례였다. 밸브의 고난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밸브가 마크 레이드로의 설정에 기반해 만들고자 하는 ‘하프라이프’는 ‘적당한 규모’의 게임을 만들자는 초기 컨셉과는 달리 점점 규모가 불어났다.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요소 하나만 해도 엄청나게 공을 들여야 했다. 3D 캐릭터가 게임 속에서 걸어 다니고, 대화 할 때 입을 움직이는 등의 애니메이션을 모두 구현하려면 당시의 어지간한 컴퓨터 사양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결국 켄 버드웰(Ken Birdwell)등 밸브의 엔지니어들은 퀘이크 엔진을 완전히 뜯어고쳐 ‘하프라이프’컨셉에 맞게 최적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기본적인 3D 그래픽은 물론 인공지능까지 모두 포괄하는 장대한 여정이었다. 퀘이크1의 엔진을 기반으로 퀘이크 월드 및 퀘이크2의 개선된 코드가 약간 첨가되었으며, 그렇게 완성된 ‘하프라이프’ 엔진은 퀘이크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 Half-Life E3 1997

 

‘하프라이프’는 1997년 연말을 목표로 개발 중이었다. 밸브는 1997년 봄 E3 쇼에서 ‘하프라이프’에 사용될 고급 인공지능과 그래픽 데모를 공개했다. ‘하프라이프’는 순식간에 언론과 게임회사들의 주목을 받았다. 실제 ‘하프라이프’ 게임의 내용은 극히 일부만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E3 최고의 게임으로 선정되는 등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유통사인 시에라 엔터테인먼트도 ‘하프라이프’에 거는 기대가 컸다. 당시 시에라의 책임자이던 스콧 린치는 ‘하프라이프’를 빨리 출시해 이드 소프트웨어의 ‘퀘이크2’와 경쟁하라는 이야기를 안팎에서 수도 없이 듣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존 카멕 만큼은 1997 E3의 ‘하프라이프’ 열풍에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존 카멕의 시큰둥한 반응은 정확했다.

 

“전부 내다버렸다.”

E3 쇼의 흥분이 가라앉고, 1997년 8월이 되자 게이브 뉴웰은 당초 예정했던 대로 ‘하프라이프’를 1997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출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꾸역꾸역 만든다면 그 때 까지는 ‘하프라이프’를 간신히 내놓을 수 있겠지만, 원래 게임을 기획하며 넣기로 했던 많은 부분을 포기하는 수 밖에 없었다. 

 

게이브 뉴웰은 골치 아픈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하프라이프’의 발매를 연기해야 하는가? 연기한다면 어느 정도의 기간이 추가로 필요한가? 기존에 만들던 ‘하프라이프’의 미진한 부분을 모두 메꿀 수 있을까? 발매가 연기되는 동안 들어갈 추가 자금은 어디에서 조달해야 하는가? 하나같이 잘못 결정할 경우 첫 게임은 고사하고 회사가 날아갈 수 있는 위험한 항목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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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업 이전 '하프라이프' 베타 버전의 스크린샷

 

결국 뉴웰이 ‘하프라이프’를 놓고 내린 결단은 실로 놀라웠다. 현재 밸브가 만들고 있는 ‘하프라이프’는 아무리 생각해도 당초 목표에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상태이므로, 싹 갈아엎고 다시 만든다는 결정을 내렸다. 거의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하프라이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던 유통사 시에라 엔터테인먼트와의 갈등도 뻔했다.

 

이 결정으로 밸브가 그 때까지 만들고 있던 ‘하프라이프’의 상당 부분이 폐기되었다. 게임에 등장하는 몬스터, 레벨 디자인, 인공 지능 등 켄 버드웰의 말을 빌자면 “전부 내다버린” 수준이었다. 남은 것은 ‘엔진’과 그 동안 ‘하프라이프’를 작업하며 쌓은 노하우였다. 밑바닥까진 아니더라도 게임의 반 이상은 다시 만들어야 했다.

 

두 번째로 참가한 E3에서 자신감을 얻다

보통의 게임 회사라면 이런 결정은 회사를 말아먹기 딱 좋은 결정이다. 늘어지는 개발기간은 곧 돈이고, 특히 아무 실적 없는 신생 게임 회사가 이런 짓을 하면 어느 순간 자금이 말라붙어 공중분해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게이브 뉴웰과 마이크 해링턴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돈을 몽땅 밸브에 집어넣으면서까지 이런 결정을 내렸다.

 

이제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오랜 시간을 들인 만큼 ‘하프라이프’는 무조건 ‘대작’ 게임으로 세상에 태어나야 했다. 밸브는 ‘하프라이프’에 전력 투구하기 위해 조금씩 진행하고 있던 다른 게임 제작 프로젝트를 취소했다. 다행히 유통사인 시에라 엔터테인먼트는 게이브 뉴웰의 이런 결정을 이해해 주었다. 시에라 내부적으로는 밸브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지만, 지원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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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새로운 '하프라이프'의 테스트에 한창인 밸브의 모습

 

‘하프라이프’의 발매일은 1997년 겨울에서 1998년 봄, 다시 1998년 가을로 계속 연기되었다. 시에라의 재무재표에서 밸브와 ‘하프라이프’는 암덩어리나 다름 없었다. 게이브 뉴웰조차 자신들이 시에라에 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에라는 밸브와 ‘하프라이프’에 대한 지지를 그만두지 않았다.

 

어쨌든 다시 만드는 ‘하프라이프’는 빠르게 진척되어 갔다. 밸브는 1998년 6월 E3에 다시 한 번 ‘하프라이프’ 시연버전을 내놓았다. 밸브가 E3에 다시 ‘하프라이프’를 내놓은 이유는 자기 점검의 차원도 있었다. 당시 대작으로 여겨지던 ‘다이카타나’ 같은 FPS에 비해 ‘하프라이프’가 얼마나 경쟁력이 있을까?

 

결과는 밸브의 기대 이상이었다. 1998년 E3에서도 ‘하프라이프’는 다시 한 번 E3 최고의 게임 상을 거머쥐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E3에 참가한 밸브 직원들은 환호했다. 이제 밸브에게 남은 것은 빠르게 ‘하프라이프’를 마무리하는 것뿐이었다. 예정으로 잡았던 1998년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프라이프는 (게임의) 몰입감에 대한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 – 에픽 게임즈 CEO 팀 스위니

 

의도치 않게 입소문을 타다

밸브는 ‘하프라이프’의 정식 출시를 앞두고 그래픽카드 및 오디오카드, 언론 등에 배포할 비밀 데모 버전을 제작했다. ‘데이 원’은 ‘하프라이프’ 정식 버전의 초반을 담고 있는 일종의 체험판이었다. 1998년 9월, 이 ‘데이 원’이 업계 관계자에게 비밀리에 전달되었다. ‘데이 원’은 북미 게임 회사들을 말 그대로 뒤집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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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멕은 이 ‘데이 원’ 버전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그때까지 나온 게임 데모 중 ‘데이 원’만큼 이드 소프트웨어 내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데모는 없었다.” 에픽 게임즈의 설립자로 또 다른 FPS의 전설(?)인 ‘언리얼(Unreal)’ 시리즈를 만든 팀 스위니(Tim Sweeney)도 ‘데이 원’ 버전을 보고 크게 놀랐다. 

 

이전까지 스토리를 극도로 중시한 소프트웨어인 ‘인터렉티브 무비’가 몇 개 나온 적이 있었지만, ‘하프라이프’는 그때까지 나온 모든 인터렉티브 무비보다도 더 영화에 가까운 게임이었다. “몰입감에 대한 새로운 표준을 세웠다.” 팀 스위니가 내린 ‘하프라이프: 데이 원’에 대한 평가다.

 

더 극적인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이 ‘데이 원’ 버전을 누군가 인터넷에 유출했다. 선배(?)인 ‘둠2’도 비슷한 유출로 몸살을 앓은 적이 있었는데, ‘하프라이프: 데이 원’의 유출은 더 극적이었다. 순식간에 게임 커뮤니티의 화두는 단연 밸브와 ‘하프라이프’가 되었다. 밸브는 당혹스러웠지만, 쉴 틈은 없었다. ‘하프라이프’의 발매일은 1998년 11월로 확정되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게임의 반열에 오른 FPS ‘하프라이프’…그리고

‘하프라이프’의 발매일을 앞두고 주요 개발진들은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마이크 해링턴은 ‘하프라이프’의 마무리 기간 동안 수염을 텁수룩하게 기르기 시작했다. 밸브의 나머지 직원들은 멀티플레이 테스트를 거듭하며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버그를 잡아내고 있었다. 이들은 결국 ‘하프라이프’의 최종 버전 완성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치명적인 멀티플레이 버그를 하나 잡아냈다.

 

1998년 11월 19일, ‘하프라이프’ 정식 버전이 시에라를 통해 북미에 정식 출시되었다. 1996년 8월, 게이브 뉴웰과 마이크 해링턴이 밸브 코퍼레이션을 설립한 이후 약 27개월만의 결과물이었다. 유통사를 잡느라 고생하고, 만들던 게임을 “전부 내다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등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게이브 뉴웰과 밸브는 결국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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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당시 밸브 직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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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의 게이브 뉴웰. 아직 그나마 핸섬(?)하다

 

밸브는 첫 게임인 ‘하프라이프’로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각종 게임 상을 휩쓸고, 비평가들에게도 기념비적인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게이머들이 ‘하프라이프’를 놓고 내린 평가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출시 이후 ‘하프라이프’는 10여년동안 천 만 장 가량이 팔려 나가며 가장 잘 팔린 PC게임의 반열에 들었다.

 

상업적 성공 외에도 ‘하프라이프’는 FPS의 패러다임을 바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게임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인공지능과, 더 이상 ‘레벨’이 아닌 ‘챕터(Chapter)’로 구성된 꽉 찬 스토리 위주의 구성, 그리고 오늘날 FPS의 표준(?) 인터페이스로 꼽히는 WASD 이동 방식까지. ‘철학이 담긴 FPS가 있다면 어떨까’를 생각한 게이브 뉴웰은 멋지게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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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라이프’에 얽힌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하프라이프’의 공개 직전 밸브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이 퀘이크 엔진을 개조해 만든 ‘하프라이프’ 엔진을 두 개로 분리했다. 하나는 ‘하프라이프’에 사용된 원래 엔진이었다. 여기에는 ‘골드소스(GoldSource, GoldSrc)’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른 하나에는 그냥 ‘소스(Source, Src)’ 라는 이름이 붙었다. 밸브 엔지니어들은 ‘소스’에는 좀 더 실험적인 여러 기술을 붙여 보기로 했다.

 

밸브에 퀘이크 엔진 라이선스를 준 이드 소프트웨어도 ‘하프라이프’를 예상하지 못했듯, 하프라이프의 핵심 엔진인 ‘골드소스(GoldSource, GoldSrc)’는 그 엔진을 만든 밸브와 게이브 뉴웰조차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냈다. ‘하프라이프’도 분명 위대한 게임이지만, ‘하프라이프’ 조차 이에 비하면 거대한 흐름의 시작에 불과했다.

 

새로운 흐름은 밸브가 자리잡은 미국 서부 시애틀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1998년,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Simon Fraser University) 컴퓨터 공학과에 재학중이던 민 리(Minh Le)는 ‘퀘이크’를 비롯한 FPS 모드(Mod) 만들기에 푹 빠져 있었다. ‘하프라이프’를 본 민 리는 예전에 ‘퀘이크’ 용으로 만들었던 모드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하프라이프 모드 제작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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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20시간씩 모드 제작에 투자한 끝에, 민 리는 1999년 6월, 자신이 만든 ‘하프라이프’ 모드를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가 만든 모드는 민 리 자신 뿐 아니라 게이브 뉴웰과 밸브의 미래까지 바꿔 놓았다. 테러리스트와 대테러부대가 대결하는 이 모드의 이름은 ‘카운터 스트라이크(Counter-Strike)’였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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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
19.11.19
잘 보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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