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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촉망받는 엘리트였다. 괜찮은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대에 들어갔지만 3년만에 때려 치우고 중소기업의 271번째 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그는 10년 넘는 세월 동안, 회사가 300명짜리 중소기업에서 전 세계를 지배하는 IT대기업으로 커가는 과정에 큰 힘을 보탰다. 돈, 명예, 실력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었다.

 

이 엘리트 엔지니어가 그대로 회사에 남아있었더라면 분명 그의 선배들처럼 최고의 IT 기업가 중 한 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회사를 뛰쳐나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던 길을 개척했다. 이 엘리트 엔지니어가 모든 걸 던진 이유는? 게임 때문이었다. ‘둠’이 그와 전 세계 게임 산업의 운명을 바꿨다. 1996년의 어느 날, 게이브 뉴웰은 그렇게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 밸브(Valve)를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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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이브 뉴웰(오른쪽), 그도 뚱뚱하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엘리트

1980년, 게이브 뉴웰(Gabe Newell)은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다. 꿈에 그리던 대학 생활이었지만, 게이브 뉴웰은 곧 실망을 맛보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대학교에서는 질펀한 술판이 벌어진다. 미국 최고의 대학으로 꼽히는 하버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 생활을 하면 할수록 뉴웰은 실망감만 늘어갔다.

 

그렇게 3년을 보내다 게이브 뉴웰의 인생을 바꾼 첫 사건이 벌어졌다. 우연히 같은 하버드 출신 선배 하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선배는 게이브 뉴웰의 말을 듣더니 그럴 거면 학교 때려치우고 우리 회사나 오라고 권했다. 직원이 300명도 안되는 IT 중소기업이지만 학교보단 훨씬 재미 있을 것이라는 선배의 권유에 뉴웰은 학교를 그만두고 그곳에 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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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이브 뉴웰이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한 1983년 당시의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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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의 빌 게이츠(왼쪽)와 스티브 발머(오른쪽). 스티브 발머는 그 때 부터 이미 탈모 갤러리 정회원이었다.

 

하버드 대학교를 3년만에 때려치우고 게이브 뉴웰이 입사한 회사의 이름은 마이크로소프트로, 그 나쁜(?) 선배의 이름은 스티브 발머였다. 게이브 뉴웰은 마이크로소프트의 271번째 사원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창업주인 빌 게이츠 역시 게이브 뉴웰처럼 하버드 대학교를 다니다가 탈주한 사람이었고, 뉴웰은 빌 게이츠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게이브 뉴웰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아주 좋았다. 그의 말을 빌자면 “눈밭에서 물구나무 서 맥주나 마시던 하버드 3년보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의 3개월 동안 더 배운 것이 많았”다. 뉴웰은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내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윈도우 1.0’ 등 초기 윈도우 시리즈 개발의 프로듀서 역할을 맡았고, 서버용 ‘윈도우 NT’ 운영체제의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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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이브 뉴웰은 윈도우 1.0x 등 초창기 윈도우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그는 초창기 ‘마이크로소프트 백만장자(Microsoft Millionaire)’ 중 하나였다. 이 단어는 마이크로소프트 내에서 백만달러 넘는 돈을 번 직원을 부르는 호칭인데, 그만큼 마이크로소프트 내에서 중책을 맡았고 업적이 있는 엘리트라는 의미였다. 게다가 뉴웰은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의 관심을 받고 있었고, 기술 외에도 다양한 부서를 두루 거쳤다.

 

▶ Microsoft Windows 1.0 with Steve Ballmer (1986)

 

만약 게이브 뉴웰이 마이크로소프트에 그대로 있었다면 아마도 나쁜 선배(?) 만큼 높은 지위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2000년 마이크로소프트의 CEO로 취임한 스티브 발머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전도 유망한 엘리트 엔지니어는, 저 멀리 텍사스 깡촌 소도시에 있던 두 천재 ‘존’이 만든 게임 때문에 운명이 바뀌고 만다. 그렇다. ‘둠’의 등장이다.

 

‘둠’이 모든 것을 바꾸다

1993년 12월 10일, PC통신 및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둠’은 북미 지역을 뒤흔들었다. ‘둠’ 파일 때문에 대학 전산망이 마비되는 정도는 기본이고, 회사에서도 다들 업무를 제쳐 둔 채 ‘둠’ 데스매치에 빠져들었다. 나름 컴퓨터 좀 만진다는 곳이면 기업이나 대학이나 다 이 모양이었다. 정말 이게 다 ‘둠’ 때문이었다.

 

이드 소프트웨어의 두 천재 존 카멕과 존 로메로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1994년 9월, ‘둠2’가 다시 한 번 공개되었다. 전작보다 더욱 강화된 멀티플레이를 탑재한 ‘둠2’ 앞에서 북미는 완전히 열광 상태에 빠져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윈도우95’ 출시를 앞두고 있던 중요한 시기임에도 업무시간에 ‘둠’과 ‘둠2’ 멀티플레이를 즐기는 직원으로 난장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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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둠’ 앓이를 한창 하고, 1995년 8월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95’를 출시했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은 대대적인 ‘윈도우95’ 홍보가 벌어졌다. 다시 한 번 ‘둠’이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빌 게이츠는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광란의 ‘둠’ 파티는 좀 못마땅했지만, ‘둠’이 가진 잠재력으로 ‘윈도우95’ 판매에 불을 붙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95’ 홍보를 위해 이드 소프트웨어를 아예 인수해 ‘둠’ 시리즈를 독점하려는 계획까지 세웠지만, 이는 여러 사정으로 무산되었다. 대신 ‘윈도우95’용 ‘둠’ 이식에 합의했고, 이 프로젝트의 마이크로소프트 쪽 책임자는 게이브 뉴웰이었다. 물론 그 역시 ‘둠’에 열광하던 마이크로소프트 직원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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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엔지니어 게이브 뉴웰은 ‘둠’을 계기로 게임에 강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한 때 ‘윈도우’ 시리즈보다도 더 많은 컴퓨터에 깔려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둠’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FPS, 아니 컴퓨터 게임이야말로 이제 그에게 확실한 미래였다. 

 

이런 생각은 마이크로소프트 내에서 뉴웰만 하던 것도 아니었다. 어셈블리어 전문가로 명성이 높던 마이클 애브라시(Michael Abrash)는 ‘둠’을 보고선 나도 이런 게임을 만들겠다며 마이크로소프트를 뛰쳐나가 이드 소프트웨어에 입사했다. 마이클 애브라시의 그런 행보는 게이브 뉴웰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리하여 마이크로소프트의 촉망받던 엘리트 엔지니어는 회사를 뛰쳐나가 게임을 만들 결심을 했다. 1996년 여름, 게이브 뉴웰은 ‘윈도우 NT’ 개발에 함께 참여했던 마이크 해링턴(Mike Harrington)를 꼬셔(?)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퇴직했다. 이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본거지(?)인 시애틀 근처에 새로운 게임 회사를 차렸다. ‘밸브 코퍼레이션(Valve Corporation)’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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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소프트웨어에 방문하다

1996년 8월, 게이브 뉴웰과 마이크 해링턴은 회사 설립 직전 ‘그’ 이드 소프트웨어에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먼저 탈주(?)한 선배인 마이클 애브라시 덕분이었다. 이 시기는 이드 소프트웨어가 막 ‘퀘이크’를 내놓은 (그리고 존 로메로가 회사에서 쫓겨난) 직후였다. 이드 소프트웨어의 멤버들은 이 두 명의 방문에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 그거 따분한 회사잖아?’

 

애브라시의 소개 덕분에 뉴웰과 해링턴은 존 카멕을 비롯한 업계 ‘선배’들의 여러 조언을 듣고, 퀘이크 엔진을 라이선스하기로 했다. 이 퀘이크 엔진의 라이선스 과정에도 애브라시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만 이드 소프트웨어는 두 방문자가 못미더웠다. ‘저러다가 말겠지?’ 애브라시를 빼면 이드 소프트웨어의 누구도 뉴웰과 해링턴이 뭘 제대로 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 때 까지는 그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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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밸브 코퍼레이션의 공동 설립자 마이크 해링턴. 그 역시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이었다.

 

두 사람은 이드 소프트웨어에서 퀘이크 엔진 말고, 또 다른 쓸 만 한 정보도 들고 돌아왔다. ‘퀘이크’는 발매 직후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퀘이크 팬사이트를 만들어 열렬한 활동을 하던 스티브 본드(Steve Bond)와 존 거스리(John Guthrie)는 이드 소프트웨어도 주목하고 있었다. 이들의 존재를 이드가 게이브 뉴웰에게 알려주었고, 뉴웰은 곧 ‘스카우트’에 나섰다.

 

거스리는 어느 날 뜬금없는 이메일을 받았다. 자기는 시애틀에 있는 게이브 뉴웰이라는 사람인데, 게임 개발에 대해 한 번 이야기를 하고 싶으니 전화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플로리다에서 대학교를 다니며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거스리는 무슨 장난이거니 하고 이 메일을 그냥 흘려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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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거스리. 퀘이크 팬사이트를 운영하던 그는 게이브 뉴웰의 이메일에 낚여 밸브에 입사했다. 하프라이프, 하프라이프, 레프트 포 데드 시리즈 등의 레벨 디자인을 담당했다.

 

얼마 뒤 친구인 스티브 본드가 자기도 이런 메일을 받았다고 이야기하자 그때서야 두 사람은 이게 그냥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뉴웰에게 연락했다. 게이브 뉴웰은 당일 스티브 본드에게 비행기 티켓, 렌터카, 호텔 방을 잡아주며 시애틀로 오라고 했다. 공항으로 배웅을 나간 거스리에게 본드는 황망한 표정으로 “이거 농담이지? 농담이겠지?”라고 중얼거렸다.

 

당연히 농담이 아니었다. 시애틀로 날아간 스티브 본드는 뉴웰의 이야기를 듣고 밸브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거스리도 일주일 후 시애틀로 날아가 본드와 함께 밸브에 입사하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게이브 뉴웰이 그랬던 것처럼, 존 거스리 역시 밸브 입사와 함께 대학교를 그만두고 게임 개발에 일생을 바치게 된다. 나쁜 선배(?)가 여기 또 있었다.

 

밸브와 시에라의 만남

게이브 뉴웰과 마이크 해링턴 두 명이 세운 밸브 코퍼레이션은, 뉴웰이 본드와 거스리를 이메일로 ‘낚은’ 것처럼 업계의 여러 사람을 두루 두루 낚으며 점차 회사 꼴이 갖춰 지기 시작했다. 스티브 본드와 존 거스리는 정말 ‘자질’만 보고 뽑았지만, 나머지 팀원은 3D 렐름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출신 같은 경력을 쌓은 사람 위주로 뽑았다.

 

그 다음은 밸브에 투자를 해 줄 유통사를 찾아야 했다. 게이브 뉴웰과 마이크 해링턴이 개인적으로 출자한 돈만으로 회사를 굴리는 건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갓 생긴 회사에 투자를 해 줄 유통사는 많지 않았다. 어떤 때는 뉴웰이 앞으로 밸브가 만들 게임의 핵심 컨셉을 제안하자 마자 듣던 유통사 쪽 사람이 딱 잘라서 “회의는 이걸로 끝이군요.”라고 말하고 나가버리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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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몇 달 고생하던 게이브 뉴웰은 다시 한 번 그만의 수를 썼다. 스티브 본드와 존 거스리 때처럼 이메일을 통한 낚시(?)였다. 뉴웰의 이메일을 받은 사람 중에는 시에라 온라인(Sierra On-Line)의 창립자인 켄 윌리엄스(Ken Williams)도 있었다. 그는 뉴웰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 전직 마이크로소프트 출신 개발자들이 있다는 점도 그랬고, 무엇보다도 FPS를 만든다는게 좋았다.

 

켄 윌리엄스에게 사실 FPS란 ‘속 쓰린’ 장르였다. 몇 년 전 시에라는 텍사스 깡촌에 있는 어떤 게임회사를 거의 인수 할 수 있던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물 건너가고 말았다. 그 게임회사가 바로 이드 소프트웨어였다. 시에라는 이후 게임 시장에서 '핫' 한 RTS나 FPS 제품을 하나도 유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시기 뉴웰이 이메일을 보냈으니 정말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1996년 11월, 폭설이 내리는 시애틀에서 밸브와 시에라 임원들이 만났다. 폭설 때문에 시내 교통은 통제 상황이었고, 대부분의 사무실이 텅 비어 있었지만 약속은 약속이었기에 게이브 뉴웰과 마이크 해링턴은 폭설을 뚫고 켄 윌리엄스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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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라 온라인의 창립자 켄 윌리엄스. 그는 밸브의 가능성을 보고 꼭 시에라와 일하자고 제안했다.

 

밸브가 만들 게임의 컨셉을 설명하는 프리젠테이션이 한 30분 정도 진행되자 켄 윌리엄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윌리엄스는 아직 프리젠테이션의 핵심 내용이 다 나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책상을 탁 치더니 “오케이. 이거면 됐습니다. 다른데 말고 꼭 우리(시에라)랑 일합시다.”라고 말했다.

 

켄 윌리엄스는 밸브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의 실력 있는 엔지니어를 갖춘 점도 좋았다. 윌리엄스 역시 프로그래머 출신으로 시에라 온라인을 세워 키워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밸브가 이드 소프트웨어가 만든 검증된 퀘이크 엔진을 ‘출발점’으로 삼아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 보겠다는 패기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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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콧 린치. 현재 밸브의 COO다.

 

윌리엄스와의 만남 후 실무적인 사항은 스콧 린치(Scott Lynch)가 계속 맡아 진행했다. 그가 보기에도 밸브는 시에라에 변화의 바람을 가져올 만한 신선한 회사였다. 그렇지만 걱정이 하나 있었다. ‘혹시 밸브가 퀘이크 엔진으로 단순히 퀘이크 맵팩이나 만드는 건 아닌가?’ 린치는 밸브에 다시 프리젠테이션을 요구했다.

 

게이브 뉴웰과 마이크 해링턴은 내부적으로 ‘퀴버(Quiver)’라는 코드명을 붙인 ‘새로운’ 게임이 절대 퀘이크 맵팩 정도가 아니라고 설명했고, 자신들이 만들 게임에 내비치는 자신감에 린치도 결국 납득했다. 시에라와 밸브는 최종적으로 계약을 맺었다. 밸브의 초기 게임을 맡아 유통한 시에라와의 관계는 비로소 시작되었다.

 

드디어 출발선에 서다

1996년 한 해 동안 게이브 뉴웰은 바빴다. 마이크 해링턴과 함께 밸브 코퍼레이션을 세우고, 회사에 필요한 인재를 하나 둘 낚아왔다. 난항을 거듭하던 유통사 문제도 시에라와의 만남으로 멋지게 해결할 수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엘리트 엔지니어는, 이제 게임 업계의 초보 개발자로 다시 태어났다. 그 다음에는 ‘퀴버’의 속을 채우는 일이었다. 물론 뉴웰이 만들 게임은 FPS였다. 그렇지만 그가 추구하는 방향은 선배인 이드 소프트웨어의 ‘둠’ 시리즈나 ‘퀘이크’ 와는 좀 많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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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브 뉴웰과 밸브 코퍼레이션의 첫 도전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아마 이 때 까지만 해도 밸브나 시에라의 그 누구도 밸브가 만들 이 FPS가 ‘대선배’ 이드 소프트웨어의 아성을 넘 볼 만큼 성공하리라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게이브 뉴웰이 꿈꾸던 새로운 FPS, ‘하프라이프’의 개발은 그렇게 출발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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