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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의 전조

1994년 이드 소프트웨어가 ‘둠2(Doom 2)’를 내놓으며 영광은 절정에 달했다. 이제 북미에서 이드 소프트웨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뉴욕부터 로스 엔젤레스까지 수 천 만대의 컴퓨터에 ‘둠2’가 깔려 있었고, 사람들은 ‘둠2’ 데스매치에 바빴다. 게임의 역사에 ‘FPS’ 장르가 굵게 새겨진 시기였다.

 

당연히 이드 소프트웨어의 두 주역인 존 카멕과 존 로메로에게 세간의 시선이 쏠렸다. 이름이 같은 두 사람은 ‘이드 소프트웨어의 두 천재 존’으로 불리며 차세대 게임 개발자로 각광받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새벽 4시까지 일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천재 프로그래머 존 카멕,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이드가 내놓는 게임의 전반적인 컨셉을 책임지는 존 로메로. 완벽한 콤비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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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둠2' 제작 당시 이드 소프트웨어 주요 멤버의 모습. 맨 앞이 존 로메로,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존 카멕이다.

 

그러나 영광의 이면에서 ‘두 천재 존’ 간의 갈등이 서서히 불거지고 있었다. 존 로메로는 더 이상 직접 프로그래밍에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로메로는 이제 이드 소프트웨어가 내놓는 게임의 전반적인 컨셉을 디자인하는 게임 디자이너 역할을 맡고 있었다. 초창기 이드 소프트웨어가 내놓은 FPS 게임의 레벨 디자인은 ‘둠’부터 ‘퀘이크’까지 로메로의 손을 거쳤다.

 

또 하나 로메로의 역할은 이드의 얼굴마담이었다. 최신 페라리 스포츠카를 구입하고, 언론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이드가 내놓는 게임에 대해 신나게 떠들어 댔다. 로메로에게 있어 이 역할은 아주 즐거웠을 것이다. 그는 인생은 마땅히 즐기며 살아야 한다 생각했다. 회사에서 일하는 만큼 파티에 참석해 술을 마시거나, 스포츠카를 모는 일도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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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일만 있으면 새벽 4시까지 회사에 처박혀 미친듯이 프로그래밍에 몰두하던 존 카멕은 이런 존 로메로의 ‘변화’를 좋게 보고 있지 않았다. 존 카멕은 옛 스승인 존 로메로가 본업이어야 할 게임 개발에 점점 소홀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개발 과정에서 존 카멕과 존 로메로 간에 언쟁이 벌어지는 일도 잦아지고 있었다.

 

‘둠’의 컨셉을 놓고 벌인 톰 홀과의 대결에서 “게임에서 스토리란 포르노의 그것과도 같다”는 전설적인 명언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했던 존 카멕은, 액션 게임에서 무엇보다도 ‘속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로메로도 기본적으로 존 카멕의 입장에 동의했지만, 그는 게임이 보다 더 화려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 사이에 한 번 생긴 균열은 멈출 줄 몰랐다.

 

‘버추어 파이터’와 새로운 시대의 개막

이드 소프트웨어, 존 카멕, 그리고 존 로메로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는 지구 반대편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등장했다. 1993년 8월, 세가는 게임쇼를 통해 3D 격투 게임 ‘버추어 파이터(Virtua Fighter)’를 공개했다. 세가의 천재 개발자 스즈키 유의 작품인 ‘버추어 파이터’는 게임 산업에 떨어진 핵폭탄이었다. ‘진짜 3D’의 시대가 눈 앞에 다가와 있었다.

 

‘버추어 파이터’의 등장에 이드 소프트웨어도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완벽한’ 3D 게임을 추구하고 있던 존 카멕에게 ‘버추어 파이터’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존 로메로도 ‘버추어 파이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원래 대전 격투 게임을 좋아하던 존 로메로는 ‘버추어 파이터’의 3D 그래픽뿐 아니라, ‘격투’라는 요소도 이드가 내놓을 차기작에 넣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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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린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 하지만 이 덕분에 수많은 게임회사와 개발자가 3D의 주화입마에 빠지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1994년 가을, ‘둠2’의 발매 직후 약간의 휴식을 가지고 이드 소프트웨어는 진짜 3D로 제작될 새로운 게임의 제작에 돌입했다. 존 로메로는 이 새로운 게임에 ‘슈팅’ 말고도 ‘버추어 파이터’ 같은 근접격투도 넣자고 주장해 관철했다. 게임 역사에 영원히 남을 또 하나의 명작, ‘퀘이크(Quake)’ 시리즈 개발의 시작이다.

 

존 로메로가 내놓은 초기 ‘퀘이크’ 컨셉은 판타지와 SF가 섞인 세계관을 기반으로 FPS, RPG, 근접격투가 한 데 섞인 엄청난 규모였다. 존 카멕은 새로운 3D 게임 엔진 개발을 위해 미친듯이 일했다. 회사에서 거의 먹고 자다시피 하면서 하루에 12시간씩 개발에 몰두했다. 다른 멤버들도 존 카멕과 다르지 않은 힘겨운 장정에 들어갔다.

 

힘겨웠던 ‘퀘이크’ 개발, 그리고 두 천재의 반목

그러나 이 새로운 게임의 제작은 곧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하나는 엔진 개발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있었다. 아무리 천재 프로그래머라는 존 카멕이라도, 풀 3D 게임 엔진을 밑바닥부터 만드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카멕 특유의 완벽주의 성격도 한 몫 했다. 존 카멕은 만드는 김에 아예 멀티플레이 코드까지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있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존 로메로가 내놓은 컨셉이 너무나 거창했다는 점이다. 슈팅에, RPG에, ‘버추어 파이터’에서 영감을 얻은 근접격투까지 게임에 집어넣으려 들었다. 초기 컨셉 중에는 거대한 망치를 들고 다니며 적을 뭉개다가 나중에는 그걸 적에게 던져 머리통을 부숴버린다는 내용도 있었다. 엔진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컨셉들은 소화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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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멕과 존 로메로의 충돌은 계속되고 있었다. 존 카멕은 잡다한 컨셉을 버리고 그가 슈팅에 대해 가지고 있던 철학인 ‘속도’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존 로메로는 기왕에 만드는 게임인데 넣을 수 있는 것은 전부 넣어 보자는 식이었다. 온갖 컨셉을 들고 와 게임에 넣자고 주장했다.

 

존 로메로의 황당한 일처리 방식은 존 카멕을 더욱 질리게 만들었다. 로메로는 이런 거창한 컨셉을 들고 오며 정작 세부적인 문서화에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로메로는 좋게 말하면 그 자리에서 자유분방하게 제안하는 타입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문서로는 지시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시행착오의 연속이었고, 이러니 ‘퀘이크’ 개발은 한 없이 느릴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인간의 관계는 때로 맹목적이다. 어떤 사람이 좋으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을 한없이 좋게 바라보고, 싫어 지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을 한없이 나쁘게 바라보게 된다. 존 카멕과, 그가 한 때 ‘스승’으로 모셨던 존 로메로의 관계는 점점 더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당신은 해고다!”

늘어지는 ‘퀘이크’ 개발을 견디다 못해 존 카멕을 비롯한 이드 소프트웨어의 개발팀은 프로젝트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했다. 존 로메로가 제안했던 여러 거창한 컨셉 중 상당 부분이 잘려 나갔다. 대부분은 이드 소프트웨어, 아니 당대의 기술로 달성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대신 존 카멕의 주장대로 ‘속도감’에 집중하기로 방향이 변경되었다.

 

존 로메로는 이런 흐름에 반발했지만 그럼 당신이 제대로 된 문서를 만들어 지시하라는 반박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존 로메로는 회사에서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높은 자리에 앉아 ‘먹튀’를 하고 있다는 눈총까지 받고 있었다. ‘게임을 디자인 하려면 즐거움을 알아야 한다’는 핑계로 업무시간에 다른 팀원이 일할 동안 ‘둠2’의 데스매치를 즐기고 있었다.

 

처음에 존 로메로가 제시했던 잡다한 컨셉을 싹 정리하고 존 카멕이 풀 3D 게임 엔진의 개발을 마무리하자 다시 ‘퀘이크’ 개발은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반대로 한 번 미움을 사기 시작한 존 로메로는 더욱 미움을 받기 시작했다. 언론이나 인터넷 게시판에 ‘퀘이크’ 개발에 대해 쓸데없는 소리를 흘리고, 스포츠카를 몰고 파티나 참석하러 다닌다는 ‘죄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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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로메로는 언론 인터뷰를 사양하지 않았다. (사진의 인터뷰 자체는 이드 소프트웨어 퇴사 후인 1997년 한 것이다)

 

이러자 로메로는 이드 소프트웨어 내에서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아무도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퀘이크’ 개발 후반기가 되자 존 로메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업무 시간에 노는 것 밖에 없었다. 다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속된 말로 이드 소프트웨어 내에서 이제 로메로는 밥벌레나 다름 없었다.

 

1996년 6월, 개발을 시작한지 18개월만에야 이드 소프트웨어는 3D FPS ‘퀘이크’를 내놓을 수 있었다. ‘퀘이크’는 등장과 함께 다시 한 번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미 존 카멕과 존 로메로의 관계는 완전히 끝장나 있었다. 한 때 이드 소프트웨어의 영광을 이끌며 찬사를 받았던 ‘두 천재 존’의 만남은 최악의 형태로 끝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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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 ‘퀘이크’ 발매 2개월 후 존 카멕은 존 로메로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존 카멕은 해고에 앞서 한 때의 스승에게 신랄한 비난을 가했다. “당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책임자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않았다. 프로젝트에 해나 입혔고, 지난 2년동안 공헌 한 일이라고는 오로지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이제 이 회사에서 나가라. 당신은 해고다!” 씁쓸한 결별이다.

 

존 로메로의 ‘다이카타나’

이드 소프트웨어에서 쫓겨난 존 로메로는 그 동안 번 돈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온 스톰(Ion Storm)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이드 소프트웨어에서 나가 어포지에 가 있던 톰 홀이 다시 존 로메로와 합류했다. 존 로메로는 1997년 3월 새로운 게임을 내놓는다고 발표했다. 먼 미래의 일본, 고대 그리스, 중세 노르웨이를 오가는 장대한 규모의 FPS ‘다이카타나(Daikatan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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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드 소프트웨어에서 쫓겨 났음에도 이 시기 존 로메로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이카타나’를 발표하며 존 로메로는 7개월이면 완성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옛날에 퀘이크 만들 때는 아홉 명이 6개월이면 뚝딱 만들었는데 뭐!’ 이게 로메로의 생각이었다. 엔진은 그냥 존 카멕이 만든 ‘퀘이크’에 사용된 엔진을 라이선스해서 쓰면 되니 별 거 없고, 사람을 모아 만들면 금방 나온다는 식이었다. 

 

정작 ‘이온 스톰’ 회사 자체도 아직 인력을 다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로메로는 일단 질러 놓고 일을 시작했다. 다행히 이 곳 저 곳에서 사람을 끌어와 회사 꼴을 갖추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이 들 중 상당수는 존 로메로가 ‘잠재력’만 보고 뽑은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대충 FPS 맵 정도나 만들 줄 알던 아마추어까지 마구잡이로 뽑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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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온 스톰의 사무실은 초고층빌딩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사무실을 갖추는데만 200만달러 이상이 들어갔다.

 

아무리 남의 엔진을 사다 만든다지만 이런 사람들을 모아 7개월만에 존 로메로가 생각하고 있던 어마어마한 게임을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존 카멕이 옛 스승의 이런 정신나간 계획을 두고 “정말 터무니 없는 생각이다”라고 혀를 찼을 정도였다. ‘다이카타나’의 개발은 한없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존 로메로 특유의 놀기 좋아하는 성격까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었다.

 

존 로메로가 이렇게 삽질을 하고 있는 동안 존 카멕이 이끄는 이드 소프트웨어는 1997년 겨울, ‘퀘이크2’를 내놓았다. ‘퀘이크2’는 3D FPS에 있어 일대 전환점이라 불릴 만큼 대단한 게임이었다. 물론 존 로메로도 ‘퀘이크2’를 보고 가만 있지는 않았다. 로메로가 보기에도 ‘퀘이크2’는 엄청난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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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이크2

 

이드 소프트웨어는 ‘퀘이크2’ 발매 몇 개월 전 게임쇼에 데모 버전을 들고 나왔고, 로메로는 기존의 퀘이크 엔진 대신 퀘이크2 엔진으로 라이선스를 변경했다. 어차피 지금 상황으로는 1997년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다이카타나’를 완성하는 건 무리니까, 차라리 우수한 퀘이크2 엔진으로 교체해 1998년에 내놓으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판단이었다.

 

지난날의 천재, 오늘날의 먹튀

게다가 이온 스톰과 존 로메로도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존 로메로는 엄청난 돈을 들여 마천루 꼭대기에 이온 스톰 사무실을 차렸다. ‘다이카타나’가 한없이 연기되고 있는 와중에도 로메로는 페라리를 타고 파티에 놀러 다니며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회사 내부는 전혀 통제되지 않고 있었다. 개발진이 대규모로 퇴사해 자신들 만의 회사를 차리는 일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퀘이크 엔진으로 만들던 ‘다이카타나’는 새로운 퀘이크2 엔진을 채용하며 다시 원점부터 만들어야 했다. 존 로메로의 어마어마한 컨셉, 미숙한 개발진, 엔진의 변경, 정신나간 이온 스톰 그 자체의 문화 등이 한 데 겹치며 1998년은 고사하고 1999년에도 ‘다이카타나’는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일이 꼬이자 유통사인 에이도스(Eidos Interactive)만 코가 꿰인 꼴이 되고 말았다. 에이도스는 존 로메로가 이온 스톰을 차릴 당시부터 계약을 맺고 막대한 투자를 해 왔다. 1999년까지 에이도스가 이온 스톰에 들이 부은 돈은 4천만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다이카타나’는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에이도스는 마침내 분통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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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온 스톰은 ‘다이카타나’를 꾸역꾸역 만들고 있었지만,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1999년 E3에 내놓은 ‘다이카타나’ 시연버전은 재앙으로 불렸다. 이런 꼴에 분노한 에이도스는 이온 스톰 경영진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결국 에이도스가 이온 스톰을 완전히 인수하는 형식으로 갈등은 일단 해결되었다.

 

‘다이카타나’는 2000년 4월에나 나올 수 있었다. 3년이라는 시간을 쏟은 로메로의 자칭 ‘대작’은 역사에 남을 쓰레기 게임으로 기록되었다. 개발기간을 온전히 게임 개발에만 쏟은 것도 아니었고, 개발진은 게임을 만들던 도중에 대량으로 탈주해버리고, 나중에는 사람이 없이 존 로메로가 ‘게이머’이던 여자친구까지 끌어들여 만든 게임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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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store.steampowered.com/app/242980/Daikatana/

 

참혹한 결말이었다. 존 로메로는 ‘다이카타나’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곧 사임했다. 에이도스는 4천만달러가 넘는 돈을 들였지만 남은 것은 쓰레기 게임과 껍데기만 남은 이온 스톰 뿐 이었다. 에이도스 자체도 막대한 적자를 안고 휘청거리는 상태였고 결국 이온 스톰은 해체되며 역사에서 사라졌다.

 

한 때 천재라 불렸던 존 로메로는 ‘다이카타나’ 이후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 게임 회사를 전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때때로 ‘둠’을 낳은 아버지로 언론의 인터뷰에 등장하거나, 행사에 초대받긴 하지만 존 로메로는 이제 일류 게임 개발자는 아니다. 여전히 호쾌한 성격이긴 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

또 다른 천재 존 카멕은 존 로메로보다는 훨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이드 소프트웨어의 정신적 지주로 활동해 왔다. 존 카멕은 정말로 ‘FPS의 아버지’라는 찬사를 받을 만 하다. 그가 남긴 대표적인 업적인 ‘퀘이크’ 시리즈의 게임 엔진은 수많은 파생작을 낳았다. ‘퀘이크’ 엔진 덕분에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썰트’와 ‘콜 오브 듀티’가 탄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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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카멕

 

요즘 존 카멕이 꽂혀 있는 분야는 다름 아닌 가상현실(VR)이다. 존 카멕은 2013년 이드 소프트웨어에서 퇴직해 오큘러스의 최고 기술 책임자(CTO)가 되었다. 존 카멕이 정든 이드 소프트웨어를 퇴직한 이유가 모회사인 제니맥스(ZeniMax, 이 회사의 산하에 있는 또 다른 게임회사가 베데스다 소프트웍스다)가 VR을 지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을 정도로 열정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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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의 게이브 뉴웰. 그도 나름 슬림(?)했었다.

 

한편, 1990년대 중반 두 천재의 종횡무진 활약은 새로운 이야기를 낳는다. 이야기는 다시 1996년으로 돌아간다. 그는 평범한 프로그래머였다. 198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해 초창기 ‘윈도우’ 시리즈의 개발에 참여하는 등 평범한 삶을 살아왔지만, 존 카멕이 만든 ‘둠’과 ‘퀘이크’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둠’을 본 이 남자는 1996년 마이크로소프트를 뛰쳐나와 자신만의 게임 회사를 세웠다. 이어 ‘퀘이크’를 보고는 이 게임에 사용된 엔진을 이용해 자신만의 FPS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퀘이크’ 엔진의 라이선스를 구입해 개량에 몰두했고, 무작정 쏴죽이는 게임이 아닌 철학이 담긴 FPS를 만들길 원했다. 그렇다. 밸브 코퍼레이션을 세운 게이브 뉴웰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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