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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천재가 있다. 우연히 만난 둘은 공교롭게도 이름마저 같았다. 둘이 힘을 합쳐 만든 게임은 게임의 역사를 영원히 바꾼 불후의 명작으로 남았다. 그러나 둘은 너무나 다른 존재였고, 마침내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며 갈라선다. 이드소프트웨어(id Software)를 함께 세우고 전설적인 게임 ‘둠(Doom)’을 낳은 존 카멕(John D. Carmack)과 존 로메로(John Romero)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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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로메로(좌)와 존 카멕(우)

 

1991년 2월, 미국 텍사스

막 새 출발을 감행한 네 명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얼마 전 소프트디스크(Softdisk)를 떠나 자신들의 ‘진짜’ 독립 게임회사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1991년 2월, 텍사스주의 소도시인 메스키트에 ‘이드 소프트웨어(id Software)’ 사무실을 차린 이 네 명의 이름은 존 카멕, 존 로메로, 아드리안 카멕(Adrian Carmack), 그리고 톰 홀(Tom Hall)이었다.

 

‘이드(id)’라는 단어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었다. 존 로메로가 옛날에 세웠던 회사의 이름인 ‘Ideas from the Deep’의 약자이기도 하고, (현재 이드 소프트웨어가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개념인 ‘이드(id)’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후에 이들이 만드는 게임의 본질을 꿰뚫는 멋진 회사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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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드 소프트웨어의 옛 로고

 

어쨌든 이드 소프트웨어를 막 세운 당시에는 이 네 명 중 누구도 자신들이 역사를 바꿀 위대한 게임을 만들 것이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이드 소프트웨어는 북미에 흔하던 자그마한 PC게임 회사에 불과했다. 독립한 기쁨은 뒤로 하고, 이드 소프트웨어의 멤버들은 생존을 위해 바삐 움직여야 했다.

 

이드 소프트웨어의 멤버들은 정식 독립 후에도 퇴사한 옛 회사와의 계약 이행을 위해 몇 개의 게임을 만들어 납품해야 했다. 초창기 이드 소프트웨어에서 존 카멕과 존 로메로는 프로그래밍을, 톰 홀은 게임 디자인을, 아드리안 카멕은 그래픽을 각각 맡아 일했다.

 

꼬인 성격의 천재, 존 카멕

존 카멕은 정말 ‘비범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우수한 이해력으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천재 소리를 듣고 살았다. 그런 존 카멕의 인생을 바꾼 것은 컴퓨터였다. 컴퓨터와 마주친 순간 존 카멕은 ‘이것 외에는 필요 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삶을 거기에 몽땅 쏟았다.

 

그런 존 카멕의 천재성과 열정은 엉뚱한 방향으로 발휘되기도 했다. 14살 때 갖고 싶던 ‘애플2’ 컴퓨터를 뽀리기(!) 위해 테르밋(Thermite, 금속 분말과 산화물을 혼합한 물질)을 자작해 컴퓨터 가게의 유리를 녹여버렸다가 경보장치가 울려 경찰에 체포 당한 경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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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카멕

 

소년원에서 풀려난 존 카멕은 이후 중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더 이상 공부는 존 카멕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2년만에 대학을 그만 둔 존 카멕은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전형적인 컴퓨터 괴짜의 면모를 풍겼다. 그는 일 할 때 딱 두가지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하나는 프로그래밍을 할 컴퓨터, 다른 하나는 프로그래밍을 하며 마실 다이어트 콜라.

 

비범한 면모에 걸맞게 꼬인 성격을 지녔던 존 카멕은 단체 생활을 매우 싫어했다. 대학교를 그만 둔 것도, 소프트웨어 회사들의 입사 제안을 뿌리치고 굳이 프리랜서로 일하던 것도 틀에 박힌 등교나 출퇴근 그리고 가식적인 인간관계를 억지로 유지해야 하는 생활이 싫었기 때문이다. 존 카멕은 집에 처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일하는 생활을 보냈다.

 

그의 스승님, 존 로메로

또 다른 ‘존’, 존 로메로는 존 카멕과는 상반된 인물이었다. 컴퓨터에만 미쳐 사는 존 카멕과 달리 존 로메로는 박식한 인물이었다. 그는 중세시대, 흑마법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컴퓨터와 콜라만 있으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는 존 카멕과는 정 반대로, 존 로메로에게는 인생을 즐기는 것도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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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로메로. 1994년의 모습이다.

 

어쨌든 존 로메로 역시 독립 프로그래머로 다양한 경력을 쌓아 가며 심심풀이 삼아 게임을 만들어 왔다. 그가 정식으로 첫 상용 게임을 만든 것은 1987년 오리진 시스템(‘울티마’ 시리즈를 만든 그 회사)에 입사한 뒤다. 그러나 존 로메로는 오리진 시스템에서 ‘스페이스 로그’ 제작에 참여한 직후 입사한지 채 1년도 못 되어 뛰쳐나오고 말았다.

 

존 로메로가 찾은 새로운 직장이 바로 소프트디스크였다. 소프트디스크는 월간잡지에 부록으로 납품(?)할 다양한 게임을 만드는 회사였다. 소프트디스크에서 존 로메로의 실력은 회사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이 시기 존 로메로가 만든 게임이 바로 ‘위험한 데이브(Dangerous Dav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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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로메로가 만든 위험한 데이브

 

소프트디스크에서 존 로메로는 또 하나의 공적을 세웠다. 그 때까지 은둔형 프리랜서로 일하던 존 카멕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설득해 소프트디스크에 끌어들였다. 쾌활하고 박식한데다 프로그래밍 실력까지 겸비한 존 로메로는 존 카멕의 ‘스승님’이나 다름 없었다. 단체생활은 절대 하지 않겠다던 존 카멕이 입사하고, 후에 같이 회사까지 세웠을 정도로 두 사람은 친하게 지냈다.

 

존 로메로와 존 카멕은 소프트디스크의 에이스였다. 이들은 회사에서 특급 대우를 받았다. 전용 사무실을 배정받았고, 인센티브로 냉장고부터 오디오 세트까지 온갖 물건을 사들여 사무실을 꾸몄다. 함께 일하던 아드리안 카멕 및 톰 홀과도 친분을 쌓았다. 1990년 가을, 존 카멕과 톰 홀은 주말을 틈타 엄청난 장난을 벌였다. 그 장난이 네 명의 운명을 통째로 바꿔 놓게 된다.

 

짝퉁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이 바꾼 운명

1990년 2월, 닌텐도는 NES(북미판 패미컴)용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을 북미에 출시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은 출시와 함께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나는 미야모토 시게루를 존경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존 카멕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에 푹 빠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존 카멕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을 실컷 즐기고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 해 가을, 어느 한가한 주말에 그는 톰 홀과 함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의 첫 스테이지를 PC판(!)으로 만들어 내놓았다. 그것도 그냥 이식이 아니라 ‘마리오’를 ‘위험한 데이브’ 캐릭터로 바꾼 버전이었다.

 

두 사람이 주말 내내 만들어 온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 짝퉁을 본 존 로메로는 한바탕 웃고는 ‘저작권 침해 때문에 위험한 데이브(Dangerous Dave in Copyright Infringement)’라는 유쾌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지만 존 로메로는 장난질로 탄생한 이 게임이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눈치챘다.

 

▶ Dangerous Dave In Copyright Infringement · Unreleased Prototype

 

이 짝퉁 게임은 크게 두 가지 가치가 있었다. 하나는 닌텐도 게임의 PC 이식이었다. 존 로메로는 존 카멕과 톰 홀에게 ‘저작권 침해 때문에 위험한 데이브’를 닌텐도 아메리카에 보내 정식으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의 PC판 이식을 제안하자고 말했다. 그는 ‘저작권 침해 때문에 위험한 데이브’를 회사 몰래 닌텐도에 보냈다.

 

다른 하나는 짝퉁 게임 그 자체였다. 이전까지 PC게임에서 횡스크롤 게임은 NES 같은 가정용 게임기와 비교했을 때 스크롤의 ‘부드러움’ 같은 면이 크게 뒤떨어졌다. 그런데 존 카멕이 만들어온 이 짝퉁 게임은 이전까지의 PC 횡스크롤 게임과 비교할 수 없는 매끈한 게임 진행을 자랑하고 있었다. 막대한 잠재력이 보였다.

 

닌텐도 아메리카는 존 로메로의 비밀 제안에 대해 “닌텐도는 PC플랫폼으로 게임을 이식할 생각이 없습니다.”라며 정중한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그렇지만 존 로메로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있었다. 그 기회는 우연 아닌 우연이 빚어냈다. 잡지 부록으로 낸 게임을 두고 존 로메로에게 도착한 이상한 팬 레터에서 시작되었다.

 

어포지 소프트웨어, 셰어웨어 그리고 독립

소프트디스크는 잡지 부록으로 게임을 내던 회사였다. 잡지에 있던 독자 엽서로 부록 게임에 대한 이런 저런 의견이 들어왔는데, 그 중에는 존 로메로가 만든 게임을 ‘디스’하는 팬 레터가 몇 개 있었다. 이상한 부분은 그 팬 레터가 모두 이름만 다르고 같은 주소에서 발송되었다는 점이었다. 누군가의 장난질이라 생각한 존 로메로는 화를 잔뜩 내며 답장을 보냈다.

 

얼마 뒤 존 로메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 놈’이라 생각한 존 로메로는 상대와 한 판 벌일 생각이었는데, 상대방의 말은 황당했다. 자신은 어포지 소프트웨어(Apogee Software)의 사장인 스콧 밀러(Scott Miller)인데, 셰어웨어(Shareware)로 게임을 내 보지 않겠냐는 이야기였다. 이상한 팬 레터는 밀러가 소프트디스크를 거치지 않고 ‘비공식적’으로 직접 존 로메로와 접촉하기 위해 일부러 도발한 낚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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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포지 소프트웨어의 설립자 스콧 밀러. 그는 셰어웨어 판매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이드 소프트웨어의 설립 및 성장에 큰 도움을 준 인물이다. 후에 3D 렐름을 설립한다.

 

밀러가 로메로에게 전화로 제안한 셰어웨어란 무료 버전을 PC통신이나 잡지 등을 통해 배포하고, 게임이 마음에 든 게이머가 회사로 돈을 송금하면 ‘풀 버전’으로 바꿔주는 코드를 보내주는 식의 새로운 판매 방식이었다. 존 로메로는 곰곰이 생각하다 밀러에게 괜찮은 게임이 있으니 샘플을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스콧 밀러에게 존 로메로가 보내준 게임은 바로 ‘저작권 침해 때문에 위험한 데이브’였다. 스콧 밀러는 이 짝퉁 게임이 지닌 잠재력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이전까지 PC 플랫폼에 이렇게 부드럽게 움직이는 횡스크롤 액션 게임은 없었다. 물론 이 게임을 무작정 낼 수는 없었다. 닌텐도 법무팀의 악명은 로메로도 밀러도 잘 알고 있었다.

 

존 로메로는 곧 존 카멕, 톰 홀, 그리고 아드리안 카멕까지 끌어들여 회사에는 비밀로 하고 어포지 소프트웨어를 통해 횡스크롤 게임을 팔자고 설득했다. 톰 홀은 저작권 분쟁을 피하기 위해 SF 요소를 가미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3’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횡스크롤 액션을 제안했다. 이 게임이 바로 ‘커맨더 킨’ 시리즈의 첫 작품인 ‘Commander Keen: Invasion of the Vorticon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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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ander Keen: Invasion of the Vorticons

 

셰어웨어로 유통된 ‘커맨더 킨’은 꽤 인기를 끌었다. 어포지 소프트웨어가 ‘커맨더 킨’ 판매 로열티로 지급한 금액은 약 15만 달러였다. 대박 까지는 아니었지만, 존 로메로를 비롯한 네 사람이 자신만의 게임 회사를 차려 독립하기에는 충분한 액수였다.

 

하지만 마지막 걸림돌이 있었다. 소프트디스크였다. 말 그대로 회사를 먹여 살리는 에이스를 순순히 놓아줄 리 없었다. 소프트디스크와 네 사람 간에 약간의 실랑이가 오갔다. 결국 네 사람은 독립 후에도 소프트디스크를 위해 몇 개의 게임을 납품해 주기로 하는 계약서를 쓴 후 퇴사할 수 있었다.

 

대성공의 전조

그리하여 1991년 2월, 이드 소프트웨어가 탄생했다. 네 명이 모여 만든 작고 가난한 신생 게임회사는 그 해 내내 바빴다. 소프트디스크를 퇴사할 때 한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여러 게임을 ‘납품’해야 했다. ‘위험한 데이브’ 후속작, ‘로버를 구하라(Rescue)’ 시리즈, ‘섀도우 나이츠(Shadow Knights)’ 등 다양한 게임을 뚝딱뚝딱 만들어 냈다.

 

이드 소프트웨어는 가장 인기 있던 ‘커맨더 킨’ 시리즈를 1991년 한 해 동안 3개나 만들었는데, 소프트디스크, 어포지 소프트웨어, 그리고 폼젠(FormGen) 세 회사가 나눠 유통했다. 이렇게 만든 여러 게임들은 없는 살림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드 소프트웨어는 추가 직원을 고용하고, 사무실 꼴도 본격적으로 갖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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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드 소프트웨어의 초기작인 '호버탱크 3D' 여기에 사용된 엔진은 존 카멕의 꾸준한 개량을 거쳐 마침내 게임 역사를 뒤바꿔 놓는다.

 

1991년 한 해 동안 이드 소프트웨어가 냈던 게임 중 두 개는 다가올 대성공의 전조였다. 하나는 ‘호버탱크 3D(Hovertank 3D)’였고, 다른 하나는 ‘카타콤 3-D(Catacomb 3-D)’였다. 이 두 게임은 발매 당시에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이후 이드 소프트웨어가 낼 첫 히트작의 밑바탕이 되었다.

 

존 카멕은 ‘호버탱크 3D’에 사용할 게임 엔진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냈다. 이 게임 엔진은 ‘호버탱크 3D’와 비슷한 시기에 출시한 ‘카타콤 3-D’에도 사용되었다. 이 두 게임을 본 어포지 소프트웨어의 스콧 밀러 사장은 3D의 위력에 깜짝 놀랐다. 밀러 사장은 셰어웨어로 3D 액션게임을 출시하자고 이드 소프트웨어를 들들 볶기 시작했다.

 

하지만 존 카멕은 여전히 자신의 게임 엔진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카타콤 3-D’ 이후에도 더 나은 3D 구현에 미친듯이 몰두했다. 당대 PC 성능의 한계 안에서 어떻게 만족스러운 3D 효과를 이끌어 낼 것인가? 그 엔진을 가지고 어떤 게임을 만들 것인가? 이드 소프트웨어 내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그 격론의 끝은 게임 역사를 바꿀 ‘거대한 흐름’의 시작이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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