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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이 존경하는 ‘두목님’의 직감

닌텐도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카리스마 경영으로 회사 내에서도 추앙 받기 시작했다. ‘게임&워치’, ‘패밀리 컴퓨터’ 등 닌텐도의 중요한 순간마다 야마우치 사장의 직감과 카리스마는 빛을 발했다. 딱 봐도 엄격한 인상에, 옅은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야마우치 사장에게는 자연스럽게 ‘두목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별명 그대로 야마우치는 때로 불같이 화를 낼 때가 있었다. 뭔가 실수를 하면 지위에 관계없이 야마우치의 불벼락을 각오해야 했다. 심지어 사위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닌텐도 아메리카 아라카와 미노루 사장이 ‘레이더 스코프’ 판매에 실패했을 때, 야마우치는 듣는 사람이 질릴 정도로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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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야마우치 히로시(山内 溥, 1927~2013). 딱 봐도 엄격해 보이는 외모에 항상 옅은 색의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으니 '야쿠자 두목'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닌텐도 사원들에게 야마우치 사장은 존경받는 ‘두목님’이었다. 말투는 무뚝뚝하고, 언제나 힘든 과제를 던지고, 만약 실수라도 하면 불같이 화를 냈지만 이상하게도 야마우치 사장이 “된다!”고 단 한 마디를 툭 던지면 정말로 됐다. 정작 야마우치 본인은 컴퓨터 게임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바둑이 취미(그는 바둑 아마추어 6단까지 올랐다)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두목님의 “된다!”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요코이 군페이, 우에무라 마사유키, 미야모토 시게루 같은 닌텐도의 핵심 인재들이 밤낮을 개발에 매달렸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이에 대해 “야마우치 사장의 기뻐하는 얼굴이 보고 싶어 모두들 열심히 노력했다”고 회상할 정도다. 과연 ‘두목님’이라 일컬어질 카리스마다.

 

10분만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가능성을 점치다

이야기는 다시 1980년대 중반으로 돌아간다. ‘패밀리컴퓨터’의 흥행을 위해 야마우치 사장은 미야모토 시게루에게 ‘이제까지 없었던 게임을 만들어 오라’는 특명을 내렸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고민 끝에 1983년 만들었던 ‘마리오 브라더스’를 발전시킨 새로운 액션 게임을 구상했다. 아파트 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배관과, 길거리의 콘크리트 토관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게임이 바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야마우치 사장의 반응을 보고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게임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야마우치 사장은 딱 10분간 시연을 보더니, 또 다시 “이건 된다!” 한 마디를 남기고 집에 가버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이없는 광경이었겠지만, 미야모토 시게루에게는 ‘보증수표’가 주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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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이 10분만에 '이건 된다!'를 외치고 집에 가 버렸지만, 그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30년 넘게 갈 줄은 모르지 않았을까?

 

그 ‘보증수표’ 그대로였다. ‘패미컴을 위한 최고의 게임은 닌텐도의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던 야마우치 사장의 직감은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1985년 9월 출시와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처음 기획한 목적이었던 ‘패미컴’의 판매량에 기여했음은 물론, 일본에서만 680만장 이상을 판매해 단일 게임 판매량으로는 최대치를 기록했다.

 

물론 미야모토 시게루가 만든 이 불후의 명작에 야마우치 사장이 “된다!” 한 마디만 남긴 것은 아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완성을 알리자 야마우치 사장은 아낌없는 칭찬으로 미야모토를 놀라게 했다. “대단해. 땅도, 하늘도, 물 속까지 탐험할 수 있는 게임이라니. 이 게임을 보면 세상 모두가 놀라겠지.” 언제나 무뚝뚝한 야마우치 사장이 최고의 게임에 남긴 최고의 찬사였다.

 

북미로의 진격

한편 야마우치 사장에게는 또 다른 목표가 있었다. 바로 북미 진출이었다. 아라카와 미노루가 이끄는 닌텐도 아메리카는 ‘동키콩’의 대박으로 기사회생했다. 이제는 닌텐도의 또 다른 히트작인 ‘패밀리컴퓨터’가 북미를 정복할 차례였다. 그러나 패밀리컴퓨터의 북미 진출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때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던 북미 게임 시장은 1982년 말부터 대대적인 붕괴를 겪고 있었다. 시장을 주도하던 세계 최고의 게임 기업이던 아타리는 1983년에만 5억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고, 1984년에는 분할 매각 당하는 치욕을 겪었다. 순식간에 북미 게임 시장에는 빙하기가 몰아 닥쳤다. 세간에서 ‘아타리 쇼크’로 부르고 있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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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멕시코에서 매립된 채 발견된 아타리2600용 'E.T.'. 1982년 말부터 북미 게임 시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

 

닌텐도가 1984년 한 해 동안 일본에서 불티나게 ‘패밀리컴퓨터’를 팔아 치우고 있는 동안, 야마우치 사장은 아라카와 미노루에게 ‘패밀리컴퓨터’의 북미 진출 가능성을 타진해 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미 북미 가정용 게임기 시장이 붕괴했음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야마우치의 북미 진출 의사는 단호했다.

 

닌텐도 아메리카 아라카와 미노루 사장은 이 난감한 과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심하기 시작했다. 일본과는 정 반대로, 1984년 한 해 내내 북미 언론들은 ‘게임기 시장은 죽었다’고 떠들고 있었다. 장난감 가게에서 가정용 게임기 판매대가 치워지고, 빈 자리를 ‘양배추 인형’이 메꾸고 있었다.

 

뉴욕으로 향하라

아라카와는 고심 끝에 1984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 가전제품 박람회에 슬쩍 ‘패밀리컴퓨터’를 내놓았지만 반응은 역시 냉담했다. 1985년 초, 다시 한 번 ‘패밀리컴퓨터’를 들고 박람회에 참석했지만 반응은 여전히 싸늘했다. 대놓고 ‘멍청이들이나 가정용 게임기 사업에 새로 뛰어든다’는 면박을 당했을 정도였다.

 

곤경에 몰린 아라카와 미노루는 이번에는 진짜로 이 ‘골치 아픈 일’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1985년 여름, 아라카와는 야마우치에게 닌텐도 아메리카의 사장직에서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야마우치 사장은 아라카와의 요청을 딱 잘라 거절했다. 야마우치에게 후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야마우치도 북미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라카와에게 크게 화를 내진 않았다. 대신 야마우치는 사위에게 그 해 크리스마스, 뉴욕에서 ‘패밀리컴퓨터’를 팔아보라고 지시했다. 미국에서 가장 까다로운 시장인 뉴욕을 공략할 수 있다면 그 이후는 한결 나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장인의 지시를 받은 아라카와는 다시 한 번 북미 공략에 나서기로 했다.

 

아라카와를 비롯해 모두가 비관적이었지만 야마우치 사장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일본에서 미친듯이 팔려 나가는 ‘패밀리컴퓨터’가 북미에서 안 팔릴리가 없다는 믿음이었다. 아라카와는 또 다시 ‘구르기’ 시작했다. 500만달러에 달하는 홍보비가 책정되었고, 닌텐도 아메리카의 직원을 도매상과 소매상에 보내 설득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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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미판 패미컴,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아라카와의 노력으로, 1985년 크리스마스 시즌 패밀리컴퓨터의 북미판인 ‘NES’가 드디어 뉴욕에 발매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가정용 게임기라면 돌아 보지도 않던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는데 성공했다. 놀랍게도 연말시즌이 끝났지만 NES의 판매는 꾸준히 계속되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일본을 강타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북미로 건너왔다. NES 판매는 더욱 불이 붙었다. 1985년 까지만 해도 가정용 게임기라면 진저리를 치던 북미 소매상들도 이제 앞다투어 NES를 들여놓기 시작했다. 싸늘하게 죽어 있던 북미 게임 시장에 다시 한 번 가정용 게임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1986년 말이 되자 북미 진출 1년만에 닌텐도는 NES 판매량 180만대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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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TENDO’ 발음을 어떻게 할지 모르는 사람들도 무작정 ‘그 슈퍼 마리오 되는 게임기’를 달라며 NES 구입에 나섰다. ‘젤다의 전설’ 같은 닌텐도의 간판 게임도 계속 북미로 건너오며 NES 판매에 힘을 실어주었다. 1987년 말에 이르자 NES 북미 판매량은 500만대를 넘어서고 있었다. 일본을 능가하는 대성공이었다.

 

야마우치의 예상은 이번에도 정확했다. 북미 가전 전람회에서의 비관적인 시선들이나, 시연회에서의 싸늘한 반응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일본에서 이렇게 잘 팔리는 가정용 게임기를 왜 북미 사람들이 안 사겠는가? 게다가 닌텐도에게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같은 강력한 카드까지 있는데 말이다. 닌텐도는 이제 일본과 북미를 모두 장악한 ‘제왕’이 되어 있었다.

 

“대체 이런 걸 어떻게 파나?”

한편 지난날 닌텐도 역전의 발판이던 ‘게임&워치’는 1980년대 중반이 되자 이제 서서히 수명이 다 해 가고 있었다. ‘게임&워치’의 뒤를 이어 휴대용 게임기 시장을 정복할 새로운 게임기가 필요했다. 반도체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었고, ‘패미컴’처럼 게임팩을 갈아 끼우며 즐길 수 있는 휴대용 게임기도 허황된 꿈은 아니었다.

 

이 새로운 휴대용 게임기를 놓고 닌텐도 내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액정이었다. 컬러냐, 흑백이냐부터 의견이 갈렸다. 우에무라 마사유키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최신 기술인 컬러 액정을 기반으로 한 고성능 휴대용 게임기를 주장하고 있었고, 반대로 요코이 군페이는 흑백 액정을 기반으로 한 저가형 휴대용 게임기를 주장했다.

 

이 논쟁의 결말을 낸 사람은 역시 야마우치 사장이었다. 야마우치 사장은 비용이나 전력 소모에 있어 컬러 액정은 휴대용 게임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고, 새로운 휴대용 게임기는 흑백 액정을 사용한 저렴한 가격의 게임기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 저렴하고, 흑백 액정을 사용해 오랜 시간 휴대하며 즐길 수 있는 게임기. 이것이 ‘게임보이’ 개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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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코이 군페이는 액정 때문에 게임보이 프로젝트 취소 위기까지 몰렸고, 특유의 녹색 액정으로 교체되었다. 이 액정도 튼튼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 장점은 있었다. 전력소모가 적다는 점이었다. (출처: http://classicgamesblog.com/2013/11/24/how-to-repair-gameboy-common-problems/ )

 

요코이 군페이는 최대한 저렴하고 튼튼한 휴대용 게임기를 목표로 개발을 시작했다. 특히 가격 면에 있어서는 휴대용 게임기인 만큼 패미컴의 가격인 14800엔 미만이 아니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래서 ‘게임보이’에 들어가는 부품은 모두 시장에 나온 지 오래 된 흔하고 저렴한 것들을 채택했다.

 

‘천재’ 요코이 군페이가 맡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게임보이’ 개발도 난관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액정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액정 공급 문제는 샤프와 독점 계약을 체결하며 해결했다. 샤프는 ‘게임보이’ 액정 생산을 위해 40억엔을 들여 전용 공장을 증설했다. 그러나 하필 이 액정 때문에 ‘게임보이’ 개발 자체가 원점으로 되돌아 갈 뻔 했다.

 

요코이 군페이는 ‘게임보이’ 시제품을 들고 야마우치 사장에게 찾아갔다. 하지만 야마우치 사장은 이 시제품을 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 “화면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 이런 걸 어떻게 파나? 발매는 취소야.” 요코이 군페이가 처음 사용한 액정은 통상적인 자세로 야외나 형광등 밑에서 휴대용 게임기를 사용할 때, 하필 정면에서 화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됐네.”

이 황당한 실수에 요코이 군페이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게임보이’ 개발은 이제 너무나 큰 문제가 되어 있었다. 샤프는 ‘게임보이’ 액정 생산을 위해 40억엔이나 들이부었는데, 프로젝트가 취소된다면 두 회사 간에 큰 말썽이 벌어질 판이었다. 샤프도 당황했다. 고심 끝에 기존 액정보다 정면에서 잘 보이는 신형 액정으로 바꿨지만 이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간신히 봐 줄 만큼의 흑백 액정으로 개량할 수 있었다. 이 조차도 결국 한 낮의 태양 같은 강한 빛 아래에서는 잘 안 보이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는 결국 가격과 기술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단점으로 남겨놓기로 하고 넘어갔다. 요코이 군페이는 긴장 속에 새로 만든 ‘게임보이’ 시제품을 야마우치 사장에게 들고 갔다.

 

이번 시제품도 액정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기에 요코이 군페이는 불벼락을 각오했지만, 야마우치 사장은 녹색 액정이 달린 ‘게임보이’ 시제품을 보더니 의외로 “이 정도면 됐네.”라며 선선히 만족해 주었다. 그 다음은 생산 원가 절감을 위한 혹독한 ‘깎아내기’가 시작되었다. 패밀리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조금이라도 필요 없을 만한 기능은 모조리 제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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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게임보이’에는 ‘패밀리컴퓨터’와 마찬가지로, 딱 하나 쓸데없는 기능이 첨가되었다. 바로 케이블을 이용한 ‘통신 기능’이다. 요코이 군페이가 ‘어차피 이 정도 기능은 넣어도 원가와는 별 상관이 없다. 언젠가 이를 이용한 재미있는 게임이 나올 것이다.’라며 별 생각 없이 남긴 기능이었다.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게임보이’ 개발 과정에서 또 하나의 난제를 요코이 군페이에게 던졌다. 내구성의 확보였다. ‘게임보이’는 아이들이 쓸 장난감 같은 게임기이니 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튼튼하게 만들라고 지시했다. 실수로 한 두 번 떨어뜨린다고 망가지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완성 직전의 ‘게임보이’를 놓고 가혹할 정도의 내구성 테스트가 실시되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고, 벽에 집어 던지고, 속된 말로 ‘개처럼 굴렀다’고 할 정도로 테스트는 가혹했다. 내구성 테스트가 얼마나 가혹했는지 후에 이상한 소문(?)이 돌 정도였다.

 

요코이 군페이가 양산을 앞두고 ‘게임보이’의 최종 시제품을 들고 갔을 때, 야마우치 사장은 대뜸 이 시제품을 사장실 바닥에 세게 집어 던졌다. 그러나 게임기는 말 그대로 끄떡도 하지 않았고, 만족한 야마우치 사장은 요코이 군페이에게 ‘게임보이’를 양산하라고 지시했다. (참고로 닌텐도는 공식적으로는 이런 소문에 대해 부인했다.)

 

게임보이로 다시금 거둔 성공, 그러나…

1989년 4월, 드디어 일본에서 ‘게임보이’가 발매되었다. 가격은 12800엔으로 패밀리컴퓨터의 14800엔보다 2천엔 정도 싼 가격이었다. 개발 과정에서 요코이 군페이가 신경쇠약 직전까지 갈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압박을 받는 등 고생이 많았지만, 그만한 보람이 있었다. 발매 2주만에 30만개를 판매하며 다시 한 번 ‘게임&워치’때와 비슷한 돌풍을 일으켰다.

 

그 해 7월 말, 북미에 진출한 ‘게임보이’는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북미에서 ‘게임보이’ 성공의 요인은 ‘테트리스’와 무식한(?) 내구도 였다. ‘테트리스’는 닌텐도 아메리카 아라카와 미노루 사장이 직접 소련으로 건너가 제작자와 접촉해 라이선스를 따낸 비장의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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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워싱턴DC행 비행기 내에서 게임보이를 즐기는 힐러리 클린턴. 북미에서 게임보이는 기내에서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는 심심풀이로 큰 인기를 끌었다.

 

땅덩이가 넓은 미국에서 게임보이로 지루한 비행기 여행이나 자동차 여행 도중 심심풀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게임기에 관심 없던 성인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구매하기 시작했다. 흑백 액정 덕분에 건전지를 한 번 갈면 35시간 정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게임보이는 북미에서 하루에 4만개 이상이 팔려 나가며 NES에 이어 닌텐도가 ‘제왕’임을 증명했다.

 

성질 나쁜(?) 아이들이 집어 던져도 끄떡 없는 내구도도 게임보이 열풍에 한 몫 했다. 게임보이는 아이들이 집어던지는 수준을 넘어 차에 밟히거나 심지어 공습에도 버텨낼 정도의 내구도를 자랑했다. 걸프전쟁 도중 어떤 게임보이가 공습으로 파괴된 막사에서 발견되었는데, 외장은 불탔지만 놀랍게도 기기 자체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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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워치’, ‘패밀리컴퓨터’, 그리고 ‘게임보이’까지. 1980년대 내내 닌텐도는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닌텐도의 성장을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마다 ‘두목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의 결정과 카리스마는 돋보였다. 그렇지만, 닌텐도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도 결국은 인간이다. 실수도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몇 가지 실수가 겹치자 기나긴 내리막이 그와 닌텐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날 중요한 순간마다 정확한 안목으로 닌텐도를 이끌어 온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도 세월 앞에서 차츰 지쳐 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위대한 독재자로 남았다. 카리스마로 닌텐도를 일궈온 이 독재자가 회사를 위해 내린 마지막 결정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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