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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1일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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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9일 코엑스에서 열린 '스타크래프트2: 공허의 유산' 런칭 행사

 

 

11월 9일, 서울 코엑스에서는 ‘스타크래프트2: 공허의 유산’ 대한민국 런칭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는 프로게이머 이윤열 선수의 결혼식을 비롯해 ‘공허의 유산’ 시범 경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렸다.

 

이 날 ‘공허의 유산’ 런칭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2천여 팬의 환호성이 코엑스홀을 뒤흔들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 순위 1위에 ‘공허의 유산’이 올랐다. ‘공허의 유산’ 행사는 화려한 행사였다. 블리자드 마이클 모하임 CEO는 영상을 통해 ‘스타크래프트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으며,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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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마이클 모하임 CEO. '공허의 유산' 런칭 행사에 앞서 열린 이윤열 선수의 결혼식에 축사를 보낸 모습이다.

 

 

그러나 실시간 전략 게임, 즉 RTS의 시대는 누가 봐도 저물고 있다. 2007년을 기점으로 신규 RTS게임의 출시가 크게 줄어들었다. 블리자드의 라이벌인 웨스트우드는 이미 공중분해 되었다. 그와 함께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도 사실상 막을 내렸다. ‘홈월드’로 혁신적인 RTS를 내놓은 렐릭은 이제 끝없는 DLC와 확장팩으로 연명하고 있다.

 

한 때 대한민국 PC방의 지배자이자 RTS 열풍을 불러온 ‘스타크래프트’도 이미 ‘리그 오브 레전드’에 그 자리를 내어준 지 오래다. e스포츠도 이미 ‘리그 오브 레전드’와 ‘도타2’가 ‘스타크래프트2’의 규모를 제쳤다. ‘RTS의 아버지’인 ‘듄2’가 등장한지 23년이 지난 지금, RTS는 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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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행성의 운명을 놓고 벌인 사투가 만든 게임 장르
실시간 진행 방식이 아닌 전략 게임(일명 ‘턴 전략’)은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등장했다. 대규모 병력을 지휘해 적을 격파하는 모습은 꼭 군인이 아니더라도 남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로망’이다. 상상 속에서나마 훌륭한 장군이 되고 싶다는 유치한 생각은 체스와 바둑을 낳았고, 컴퓨터 게임 시대에는 전략 게임을 낳았다.

 

1980년, 애플II 기종으로 SSI사의 ‘컴퓨터 비스마르크(Computer Bismarck)’가 등장하며 전략 게임의 막을 열었다. 게이머는 영국 해군의 제독이 되어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를 격침하고 대서양에서 독일 해군을 제압해야 한다. 다양한 유닛을 이용해 지역을 탐색하고 적을 격멸하는 모든 전략 게임의 기본적인 구도는 이 게임으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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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스트우드의 '듄2'

 

 

이후 10여년간 전략 게임은 급성장을 거듭하며 게임 시장의 큰 축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92년 실시간 전략 게임 장르의 표준 모델을 제시한 웨스트우드의 ‘듄2(Dune2)’가 등장하며 새로운 계기를 맞는다. 프랭크 허버트의 SF소설 ‘듄’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게임은 황량한 모래 행성 ‘아라키스’의 지배권을 놓고 세 가문이 겨루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해야 할 부분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듄2’가 최초의 RTS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실시간 전략 게임 자체는 이미 1980년대 초반부터 여러 방식으로 시도되고 있었다. 워 게임에 실시간 조작을 도입한 ‘Stonkers(1983)’나 RPG에 실시간 전략 형식을 도입한 ‘보코스카 워(1983)’, 그리고 SF 분위기의 ‘허족 쯔바이(Herzog Zwei, 1989)’처럼 다양한 시도가 이미 있었다.

 

하지만 ‘실시간 전략 게임’이라는 장르를 정립하고 게이머에게 본격적인 인기를 얻은 게임은 역시 웨스트우드의 ‘듄2’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RTS의 역사에서 듄2가 갖는 의미는 절대적이다. 자원 수집, 전장의 안개, 테크 트리, 다양한 진영 구도, 상성 등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RTS의 기본 구도는 듄2에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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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2' 이후 RTS에서 마우스와 키보드는 그야말로 필수 요소가 되었다

 

 

‘듄2’의 성공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이 바로 ‘PC’라는 플랫폼이다. 듄2의 성공은 당시 한창 발전하고 있던 PC의 성능과 PC만의 조작 체계인 ‘마우스’와 ‘키보드’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듄2 직전에 등장한 ‘허족 쯔바이’만 해도 진행은 실시간이었지만 세가 메가드라이브 기종으로 출시되었기 때문에 조이패드를 이용해 조작해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RTS에서 요구하는 빠르고 섬세한 조작에 조이패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여기에 제한된 성능의 가정용 게임기에서는 RTS의 물량전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었다. 듄2만 해도 PC판의 성공 이후 가정용 게임기로도 이식되었지만, PC 버전에 비해 제한된 게임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듄2 이후 RTS는 PC에서 가장 번성하는 게임 장르가 되었다.

 

‘듄2’의 성공은 RPG 제작사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던 웨스트우드를 순식간에 일류 개발사의 지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듄2’의 성공을 본 여러 게임 회사가 이 새로운 장르에 앞다투어 뛰어들었다. ‘세틀러(Settlers, 1993)’을 내놓은 블루바이트나 ‘아웃포스트(1994)’를 내놓은 시에라 등이 있었고, 그 사이에 ‘길 잃은 바이킹(1992)’ 등을 내놓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라는 그저 그런 회사가 있었다.

 

 

 

웨스트우드 대 블리자드, 두 라이벌의 ‘대 RTS’ 시대
마이클 모하임과 프랭크 피어스, 앨런 애드함이 1991년 세운 ‘실리콘 & 시냅스’라는 회사는 1994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로 회사 이름을 바꾸고 ‘워크래프트’라는 RTS 게임을 출시했다.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Warcraft: Orcs & Humans)’라는 제목의 이 게임은 ‘듄2’에서 선보인 RTS의 공식을 한층 더 발전 시킨 것으로 평가받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워크래프트’의 성공에 웨스트우드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1995년 ‘커맨드 앤 컨커(Command & Conquer)’을 내놓으며 RTS 장르는 한껏 달아오른다. 블리자드도 1995년 ‘워크래프트2: 어둠의 물결(Warcraft2: Tides of Darkness)’를 내놓으며 경쟁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웨스트우드는 이듬해인 1996년 ‘커맨드 앤 컨커: 적색경보(Command & Conquer: Red Alert)’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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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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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스트우드의 '커맨드 앤 컨커'

 

 

두 라이벌의 대결 구도를 본 다른 게임 회사들도 이 새로운 장르에 뛰어들었다. 1997년 한 해 동안 20개가 넘는 RTS가 쏟아져 나왔다. 앙상블 스튜디오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Age of Empires)’, 톱웨어의 ‘어스 2140(Earth 2140)’, 빔의 ‘KKnD’ 등 다양한 회사가 자신만의 RTS를 내세우며 등장했다. 3D 시대의 서막을 알린 케이브독의 ‘토탈 어나힐레이션(Total Annihilation)’도 이 해 등장했다.

 

‘대 RTS 시대’는 1998년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Starcraft)’와 확장팩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Starcraft: Brood War)’를 내놓으며 정점에 달했다. ‘스타크래프트’는 게임 자체의 완성도도 물론 성공에 큰 역할을 했지만, 다가오고 있는 인터넷 시대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게임이기도 했다. 블리자드의 ‘배틀넷’ 시스템은 멀리 떨어진 게이머를 ‘스타크래프트’로 묶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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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불모지나 다름 없던 대한민국에서도 ‘스타크래프트’는 인터넷 붐을 타고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 시대를 살아온 게이머라면 정말 모두가 ‘스타크래프트’와 RTS에 열광했던 시기였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골수 게이머나 즐기던 PC게임이 어느 새 ‘모두의 놀이’로 변해 있었다.

 

‘스타크래프트’의 성공과 함께 RTS 장르는 더욱 불타올랐다. 새천년을 맞은 PC게임 시장에서 RTS는 영광의 시절을 보냈다. 앙상블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2(1999)’, 파이어글로우의 ‘서든 스트라이크(Sudden Strike, 2000)’, GSC의 ‘코사크(Cossacks, 2002)’ 시리즈 등 특색 있는 RTS가 끊임없이 등장했다.

 

RTS 장르에 충격을 안겨준 새로운 도전자도 등장했다. 1999년 3D RTS ‘홈월드(Homeworld)’를 내놓은 렐릭이다. 홈월드는 ‘진정한 3차원’ RTS라는 찬사를 받았다. 렐릭은 이 처녀작으로 단숨에 주목받는 게임 회사 반열에 올랐다. 이후 렐릭은 계속 굵직한 RTS를 내놓으며 블리자드, EA 웨스트우드와 함께 RTS 시장에서 3파전을 주도한다.

 

2002년에는 블리자드가 ‘워크래프트3: 레인 오브 카오스(Warcraft3: Reign of Chaos)’를 내놓으며 다시 한 번 돌풍을 일으켰다. ‘워크래프트3’는 ‘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잇는 반전 있는 스토리와 한 층 발전된 게임 방식으로 인기를 얻었다. 특히 중국에서 인기가 많았고, 강력한 유즈맵 기능은 RTS의 틀을 벗어난 여러가지 재미있는 커스텀 게임을 낳았다.

 

 

 

RTS의 쇠락과 웨스트우드의 파멸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실시간 전략 게임은 지난 10여년간 쇠락을 거듭했다. RTS의 쇠퇴를 알린 가장 극적인 순간은 바로 ‘듄2’를 낳았던 웨스트우드의 파멸이었다. 웨스트우드는 ‘커맨드 앤 컨커: 적색경보’의 흥행으로 영광의 절정에 올랐다. 그런 웨스트우드를 눈 여겨 본 EA는 1998년 1억 2천만달러라는 거액을 지불하고 웨스트우드를 인수했다.

 

이미 EA와의 합병 과정에서부터 웨스트우드는 흔들리고 있었다. 많은 개발자들이 EA와의 합병 과정에서 회사를 떠났다. ‘커맨드 앤 컨커’ 이후 개발 중이던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1999년 간신히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을 출시했지만 이전만큼의 흥행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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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선

 

 

웨스트우드는 2000년 ‘적색경보’의 후속작인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2’를 발매하며 반전을 노렸지만 이미 대세는 블리자드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게다가 새로 내놓은 ‘커맨드 앤 컨커’ 세계관의 FPS ‘레니게이드(Renegade, 2002)’도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연이은 성적 부진에 웨스트우드 스튜디오는 해체되고 EA 퍼시픽으로, 다시 EA LA로 재편되었다. ‘듄2’를 만든 웨스트우드는 이미 이 시점에서 공중분해 되었다.

 

그렇게 웨스트우드가 사라진 후에도 EA의 이름으로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는 계속되었다. 2003년에는 기존 시리즈와 전혀 다른 외전인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Command & Conquer: Generals)’을 내놓았다. 이 게임은 ‘C&C’ 시리즈의 ‘자존심’을 버리고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나 ‘스타크래프트’와 유사한 방식의 인터페이스로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게임 자체는 경쾌한 근미래전을 다루고 있어 호평을 받았지만 기존 팬들은 ‘제너럴은 C&C도 아니다’라고 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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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맨드 앤 컨커3: 타이베리움 워는 실사 동영상 삽입 등 C&C 시리즈의 원점 회귀를 추구해 호평을 받았다.

 

 

그래도 시리즈는 계속되었다. 사실상 웨스트우드의 잔해 약간이 남은 EA LA였지만 ‘RTS 명가’의 자존심을 잇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2007년에는 8년만의 정식 후속작인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움 워(Command & Conquer: Tiberium Wars)’를, 2008년에는 확장팩 ‘케인의 분노(C&C: Kane’s Wrath)와 ‘레드얼럿’시리즈의 후속작인 ‘레드얼럿3’을 내놓았다. 이 게임들은 ‘C&C’ 시리즈의 원점 회귀를 바탕으로 EA LA만의 감각을 더해 호평을 받았다.

 

이미 RTS 장르는 기울고 있었다. 블리자드, 렐릭, EA를 제외하면 RTS의 명맥을 잇는 회사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물론 매시브 엔터테인먼트의 ‘월드 인 컨플릭트(World in Conflict, 2007)’처럼 신선한 게임도 종종 등장했다. 그렇지만 RTS 장르에 뛰어들었던 회사들이 사라지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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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3: 아시아 왕조. 앙상블 스튜디오는 이 게임과 '헤일로 워즈'를 끝으로 해체된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를 내놓았던 앙상블 스튜디오도 2009년 ‘헤일로 워즈(Halo Wars)’를 끝으로 해체되었다. ‘월드 인 컨플릭트’를 내놓은 매시브 엔터테인먼트도 유비소프트에 매각 당하는 신세가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대열에 EA LA와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도 합류하며 오랜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EA LA는 2010년 ‘커맨드 앤 컨커4: 타이베리안 트와일라잇(Command & Conquer 4: Tiberian Twilight)’를 내놓았다. 1995년 시작된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의 종막을 장식해야 했을 이 게임은 시리즈 역사상 최악의 게임으로 손꼽히며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본래 ‘커맨드 앤 컨커 온라인’으로 만들던 별도의 게임을 무리하게 출시하려 한 것이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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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C4. 여러 가지 의미로 시리즈를 끝장냈다.

 

 

이 ‘타이베리안 트와일라잇’을 끝으로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는 사실상 최후를 맞았다. 웨스트우드 최후의 잔존물이던 EA LA는 C&C4의 실패 이후 ‘데인저 클로즈’로 다시 이름을 바꿔야 했고, 이마저도 ‘메달 오브 아너: 워파이터(2012)’의 실패로 완전히 해체되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EA는 ‘커맨드 앤 컨커’의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 자회사 빅토리 게임즈에 ‘커맨드 앤 컨커 온라인(혹은 제너럴2)’의 제작을 맡겼지만, 이마저도 ‘퀼리티 부족’을 이유로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빅토리 게임즈를 해체했다. RTS의 전성기를 이끌어 온 웨스트우드와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는 그렇게 사라졌다.

 

 

 

모두가 떠나버린 RTS의 황혼
라이벌 웨스트우드는 그렇게 죽어갔지만 블리자드는 RTS 시리즈를 계속 이어갔다. ‘C&C4’가 등장한 그 해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2: 자유의 날개’를 내놓았다. ‘스타크래프트’ 이후 12년만의 정식 후속작이었다. 게임 한 편에 ‘스타크래프트2’의 방대한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3부작으로 나뉘어 발매되었다.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를 의식한 블리자드는 ‘자유의 날개’ 공개 과정에서 한국에 많은 신경을 썼다. ‘자유의 날개’ 자체가 처음 공개된 것이 2007년 서울에서 열린 블리자드 월드 와이드 인비테이셔널이었다. 해병이 한국어로 ‘올 것이 왔군.’이라고 말하는 순간 회장은 한국 팬들의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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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날개’는 45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블리자드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초반 불안한 반응을 보였던 e스포츠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규모 1위의 종목으로 떠올랐다. ‘스타크래프트’ 세계관을 잇는 캠페인 스토리도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자유의 날개’와 경쟁할 RTS 라이벌 자체가 이미 남아 있지 않았다.

 

오랜 라이벌 웨스트우드는 C&C4를 끝으로 완전한 사망선고를 받았다. 이제 RTS를 만드는 곳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렐릭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시리즈와 ‘워해머40k’ 시리즈를 내놓으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게임은 참신했지만 매출 증대를 위한 확장팩 찍어내기와 형편없는 밸런스가 계속 발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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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렐릭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시리즈로 흥행했지만, 확장팩에서 엉망진창인 밸런스로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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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2’ 시리즈의 2편인 ‘군단의 심장’을 내놓았지만 게이머의 반응은 냉랭해졌다. 우리나라만 해도 ‘자유의 날개’ 출시 당시에는 PC방에서 한동안 ‘자유의 날개’가 인기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군단의 심장’은 그만큼의 센세이션은 일으키지 못했다. PC방은 이미 ‘리그 오브 레전드’가 장악하고 있었다.

 

e스포츠 분야에서도 ‘리그 오브 레전드’가 차츰 세를 불려갔고, 이어 밸브의 ‘도타2’가 등장해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다. RTS에서 파생된 AoS 혹은 MOBA(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 장르는 이전까지 RTS가 차지했던 자리를 밀어버리고 하나의 대세가 되어가고 있었다. 블리자드조차 ‘히어로즈 오브 스톰’을 내놓으며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기울고 있는 RTS,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누가 봐도 RTS 장르는 기울고 있다. 2007년 이후 새로 진입해 크게 흥행한 RTS가 등장하고 있지 않다. 아직도 버티고 있는(?) 블리자드와 렐릭을 제외하면 ‘액트 오브 워’ 시리즈와 ‘워게임’ 시리즈를 내놓은 유진 시스템 정도가 그나마 안착에 성공한 상황이다. 하지만 유진 시스템이 최근에 내놓은 ‘액트 오브 어그레션’은 썩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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렐릭은 2012년 모회사인 THQ의 파산으로 세가에 팔려가는(?) 수모를 겪었다. THQ 산하에서 개발 중이던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2’의 개발도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가 세가의 인수 이후 재개되어 발매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온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2’는 멀티플레이 진영을 ‘확장팩’이라고 내놓고, 스킨과 지휘관을 유료로 판매하는 게임이 되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렐릭의 베스트셀러 RTS인 ‘워해머40k: 던 오브 워’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개발에 참여했던 개발자 상당수가 다른 회사로 이적했다는 점이다. 특히 블리자드로 자리를 옮긴 개발자가 많다. 예를 들어, ‘던 오브 워’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의 선임 디자이너인 제이 윌슨은 블리자드로 이적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시리즈와 ‘디아블로3’ 제작에 참여했다.

 

마찬가지로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의 선임 디자이너를 맡았던 조쉬 모스키에라도 블리자드로 이적해 ‘디아블로3’ 콘솔판 이식에 참여했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의 밸런싱을 담당했던 데이비드 킴 역시 블리자드로 이적해 ‘스타크래프트2’의 밸런싱을 맡고 있다.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RTS의 영토는 날로 축소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RTS라는 장르 자체가 PC를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듄2’ 이후 RTS는 PC만의 장르 비슷하게 되어버렸다. 간간히 ‘적색경보’나 ‘C&C3’ 등 콘솔로의 이식이 이루어졌지만 결국 인터페이스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장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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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드워는 음성인식을 통한 RTS 조작을 시도했다

 

 

시도는 몇 번 있었다. 가령 유비소프트가 2008년 내놓은 ‘톰 클랜시의 엔드워(Endwar)’는 음성 인식을 통해 콘솔 RTS의 한계를 극복하려 시도했다. 별도의 마이크를 이용해 유닛에게 직접 음성으로 명령을 내린다는 점은 참신했지만, 결국 음성인식 자체의 한계와 단순한 게임 구조로 흥행에는 실패했다.

 

2009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로 유명한 앙상블 스튜디오가 내놓은 ‘헤일로 워즈’도 평가는 좋게 받았지만 결국 흥행에는 실패했다. 200만장 이상이 팔린 만큼 완전히 실패한 게임은 아니었지만, ‘헤일로’의 IP를 이용한 게임 중에서는 대단히 낮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콘솔에서 RTS가 얼마나 성공하기 어려운지 보여주는 사례다.

 

온라인 게임을 제외하면 PC게임 시장 자체가 축소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 대부분의 대작 게임이 PC와 가정용 게임기로 함께 발매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PC게임 시장만으로는 막대한 제작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PC를 벗어날 수 없는 RTS는 쇠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최근 떠오른 모바일 게임 시장에도 RTS가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RTS의 높은 진입 장벽도 RTS의 쇠퇴를 부추기고 있는 한 원인이다. ‘듄2’ 이후 RTS는 마이크로 컨트롤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1초의 컨트롤이 승부를 가른다. ‘스타크래프트2’ 초기에 지적 받았던 부분도 그렇다. 꾸역꾸역 자원을 모아 인구수를 꽉꽉 채울 병력을 마련해 교전을 벌여도 정말 잠깐 한 눈을 팔면 병력이 순식간에 전멸해버린다.

 

단일 유닛의 마이크로 컨트롤만으로 승부를 보는 AoS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RTS가 쇠락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동시에 많은 유닛을 다루며 스킬을 사용하고 생산까지 통제하는 것보다 차라리 한 유닛에 집중해 컨트롤 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점점 경쾌한 게임들이 대세가 되는 와중에, 한 번 시작하면 길게는 한 시간 넘게 가는 게임 시간도 게이머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공허의 유산’ 이후에도 RTS는 계속될까
RTS는 점점 그들만의 리그로 변해가고 있다. 게임회사도, 게이머도 그렇다. 사실 블리자드가 RTS 장르에서 이제 승리(?)를 거둔다 해도 허무한 일이다. 애초에 라이벌이 없으니 말이다. 렐릭도 영 상태가 좋지 않다. 가뭄에 콩 나듯 고만 고만한 RTS가 잠깐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져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블리자드도 어떻게든 ‘공허의 유산’까지 ‘스타크래프트2’를 이끌고 왔지만 앞으로도 블리자드가 적극적으로 RTS를 계속 내놓을지는 조금 의심스럽다. 블리자드가 최근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나 ‘하스스톤’, 아무도 예상 못 했던 FPS ‘오버워치’까지 게임 장르를 다각화 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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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리자드가 FPS를 내놓을 것이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공허의 유산' 행사장에서 블리자드 마이클 모하임 CEO는 영상을 통해 “스타크래프트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아 보인다. ‘공허의 유산’이 반전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쪼그라든 RTS 장르의 멱살을 잡고 ‘캐리’할 수 있을까? 다시 e스포츠로 흥행할 수 있을까?

 

몇 년 전이라면 '예'라는 대답이 나왔겠지만, 지금은 무엇 하나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다. ‘공허의 유산’이 흥행에 실패해 RTS 장르가 완전히 쇠퇴할 것이라는 절망적인 시나리오도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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