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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중요한 것은 게임기가 아니라 게임 그 자체입니다”
2001년 E3 현장, 마이크로소프트 로비바크 부사장이 엑스박스 발표현장에서 이렇게 입을 열었다. 세계 최고기업 MS도 이 순간만큼은 절박한 도전자의 입장이었다. 아타리 몰락 후 세계 게임시장의 패권은 일본에게 넘어갔다. 닌텐도, 세가, 소니 등 콘솔시장을 쥐락펴락한 업체들은 전부 일본회사였다. 크리스마스 시즌 아이들의 선물 1순위도 죄다 일본 게임기였고 ‘마리오’와 ‘소닉’의 인기는 이미 ‘미키마우스’를 능가했다. 세계 정치, 경제, 문화를 주도해온 미국도 게임만은 열등국가였다. 한때 게임 종주국 미국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MS가 콘솔게임기를 만든 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다시 그날의 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사람들은 눈앞에 놓인 이 투박하고 육중한 기계에 실망하는 듯 했다. 이미 그들은 ‘플레이스테이션2’라는 쌈박한 마법 상자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PS2에 비하면 엑스박스는 덩치만 컸지 실상 게임기의 탈을 쓴 PC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게임기’가 아니라 ‘게임’이었다.

드디어 행사장 대형스크린에서 엑스박스의 게임들이 공개됐다. 먼저 엑스박스 독점타이틀 ‘먼치스오디세이’가 나왔다. 하지만 반응은 별로였다. 너무 식상하다는 평가다. 다음 미식축구게임 [NFL 피버 2002]가 나왔다. 기존 스포츠게임과 다를 바 없었다. 세 번째 타이틀은 레이싱게임 [프로젝트 고담]. 하지만 [그란투리스모3]라는 괴물 레이싱게임에 비한다면 한낮 하룻강아지에 불과했다. 여기까지 나가자 사람들의 반응도 떨떠름해졌다. 남은 작품은 하나.

바크는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선보였다. 세계 게임사의 지형이 바뀌는 결정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미래도시의 장엄한 풍경과 함께 [헤일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앞에 펼쳐진 화면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장엄하게 연주되는 주제곡과 함께 로켓의 궤적을 따라 뱀같이 이어지는 연기의 자취까지 표현한 그 놀라운 그래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때깔은 좋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아날로그 스틱으로 FPS를 할 수 있을까?”

당시 사람들에게 아날로그 스틱으로 FPS를 조종한다는 게 말이 안됐다. [헤일로]는 그걸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 그것도 아주 편하고 원활하게… 엑스박스의 뇌관을 건드려 세계 게임사의 흐름을 바꾼 [헤일로]는 이러한 숙제를 안고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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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S는 콘솔게임으로 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엑스박스 킬러타이틀로 성장한 헤일로



공부는 잘하는데, 성적은 안 나오는 학생
아마 [헤일로]를 만든 번지스튜디오만큼 파란만장한 과거를 가진 회사도 드물 것이다. 내놓은 게임마다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지만 유독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은 없었다. 사람으로 치면 공부는 잘 하는데 성적은 안 나오는 안타까운 학생과도 같다. 적어도 [헤일로]를 만들기 전까지는 그랬다. 번지는 1991년 시카고대학 출신 대학생인 ‘알렉스 세로피언’과 ‘제이슨 존슨’이 공동 창업한 회사다. 그들은 애플의 매킨토시용 게임을 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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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의 공동창업자 알렉스세로피언(좌)과 제이슨존슨(우). 헤일로를 만들기 전까지 번지는 20만장 이상 팔린 게임이 하나도 없을 만큼 불운한 회사였다


초창기 아타리의 ‘퐁’게임의 리메이크 버전을 시작으로 걸프전을 다룬 [오퍼레이션: 데저트 스톰], 공포게임 [페스웨이 인투 다크니스]를 내놓았지만 관심을 끌진 못했다. 문제는 시장이 작았다.1990년 초반, 애플의 매킨토시는 이미 IBM PC에 밀려 변방으로 밀려났다. 당시 대부분의 개발사들은 좋든 싫든 도스용 게임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매킨토시용 게임들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번지는 매킨토시용 게임개발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애플의 매킨토시가 MS의 도스환경보다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헤일로의 전신이 된 [마라톤]
FPS 팬이라면 [마라톤]이란 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번지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은 ‘애플의 둠’이라고 불리는 [마라톤]부터다. 1994년 발매한 [마라톤]은 매킨토시용 번들로 제공될 만큼 애플 유저들에게는 유명한 게임이다. 무엇보다 이 게임은 마우스룩을 처음 도입해 FPS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1990년대 초반 FPS 장르는 게임시장의 핵심중의 핵심으로 통했다. [둠]의 성공 이후 FPS 장르는 엄청난 속도로 기술적 발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FPS 게임들은 ‘조작의 벽’에 부딪혔다. 당시만 해도 FPS는 키보드 조작이 대세였다. 마우스를 인터페이스로 활용한 사례는 있었지만 대개는 수평이동에 한정됐다. [마라톤]은 마우스 조작으로 수직-수평 이동이 모두 가능한 최초의 게임이다. 지금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당시만 해도 게임사의 획을 그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마우스룩이 도입된 후 FPS 조작의 편의성은 엄청나게 향상됐다.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FPS의 기본조작체계는 [둠]의 키보드 조작과 [마라톤]의 마우스룩 조작, 그리고 [하프라이프]의 <WASD>조작이 합쳐져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이런 FPS의 조작패턴이 완성될 때까지 무려 5년이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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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매킨토시용으로 발매된 마라톤. 처음으로 마우스룩을 도입한 혁신적인 게임으로 이후 헤일로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마라톤]은 번지의 출세작 [헤일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주인공의 갑옷색깔부터 손 모양, 모션까지 [헤일로]의 주인공 ‘마스터 치프’와 닮았다. 두 개의 무기를 사용하거나 혁신적인 멀티플레이 기능을 도입하는 등 [마라톤]은 [헤일로]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마라톤]은 1편 성공 이후 [마라톤2: 듀란달], [마라톤: 인피니티]가 발표되어 총 3부작으로 시리즈가 마무리됐다. 이중 2편만 윈도우용으로 나오고 나머지는 모두 맥용으로 출시됐다.


거듭된 실패와 위기, 빌게이츠와 손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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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으로 FPS의 혁신을 이룬 번지의 RTS 도전작 미쓰


[마라톤]의 성공이후 번지는 거듭된 좌절을 맞게 된다. 번지는 차기작으로 RTS게임 [미쓰]를 내놓았다. 당시 RTS는 FPS와 함께 1990년대 게임업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웨스트우드의 [듄2]를 시작으로 [워크래프트], [커맨드앤퀀커]를 거치면서 장르의 기틀이 마련됐다. [미쓰]는 RTS 역사상 가장 치열한 시대였던 1997년에 출시됐다. 같은 해 [스타크래프트], [토탈 어나이얼레이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등 경쟁자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이름값으로 놓고 보면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번지는 RTS에서도 혁신적 실험을 감행했다. 당시 주류였던 빌드위주(건설과 생산위주의 방식)의 게임방식에서 탈피해 유닛의 전술적 운영을 강화했다. 복잡한 건설을 배제하고 제한된 유닛만으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풀3D 그래픽에 유닛의 신체가 떨어져 나가는 잔혹한 표현까지 더해 실감나는 전쟁터를 묘사해 놓았다(잔혹성 때문에 국내에선 삭제버전으로 발매됐다).

하지만 당시 게이머들은 건설과 생산이 없는 RTS를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미쓰]는 게이머들의 외면 속에 잊혀져갔다. 2편까지 나왔지만 흥행에선 참패했다.

필자는 ‘[미쓰]가 20년이 지난 지금 나왔으면 어땠을까’라고 가정해 본다. [리그오브레전드] 같은 운영위주의 게임을 즐기는 요즘 게이머들에게 [미쓰]는 그리 낯설지 않은 게임일 것이다. [미쓰]의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시대를 앞서도 너무 앞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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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드위주의 게임방식에서 탈피해 유닛의 전술적인 운영을 강화했다. 끔찍한 전쟁묘사로 국내에선 삭제판으로 출시됐다


어쨌든 [미쓰]의 실패로 번지의 사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차기작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오니]를 발매했지만 쪽박만 찼다. 설상가상 [미쓰2]가 일부 하드드라이브를 삭제하는 치명적 오류를 일으키면서 대대적인 리콜 사태까지 겪게 된다. 이 리콜사태로 번지는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미쓰3]와 [오니]의 판권을 다른 회사에 넘기는 등 위기를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까운 개발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는 찰라! 2000년 8월 어느 날, 좌초 직전의 이들에게 구명조끼를 던진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였다.


게임기 전쟁 한복판에서!

“헤일로는 진정한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문화현상이다. 헤일로3는 엑스박스360은 물론 ‘스토리 예술’로서의 비디오게임이라는 분야에서도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전회장

빌게이츠의 러브콜을 받아들인 번지는 한시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숨고르기도 잠시, 세계 게임시장의 시계추는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른바 ‘128비트 게임기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전쟁의 규칙은 냉혹했다. 승자는 모든 것을 독식하고, 패자는 사업을 접어야 했다. 먼저 최대 라이벌 관계인 ‘소니’와 ‘세가’가 붙었다. 결과는 세가의 참패! 세가는 드림캐스트 사업을 철수하고, 소니의 PS2가 전 세계 콘솔시장을 독점하는 듯 했다. 세가의 처참한 꼴을 보자 MS는 초조해졌다. 엑스박스는 ‘빌게이츠’가 나서 직접 진두지휘 할 정도로 중요한 사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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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는 소니의 게임시장 독점을 견제하기 위해 차세대 게임기 전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초창기 엑스박스는 성능은 좋았지만 눈에 띄는 킬러타이틀이 없었다


문제는 선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드웨어 성능은 자신 있는데 쓸 만한 게임이 없었다. PS2 진영에선 [GTA3], [데빌메이크라이], [파이널판타지10] 같은 쌈박한 선수들이 포진해 있는데, 엑스박스는 딱히 내세울만한 주전 선수 하나 없었다. 여기에 ‘마리오’와 ‘젤다’를 내세운 닌텐도 게임큐브도 뒤를 바싹 추격하고 있는 상황. MS는 엑스박스용 킬러타이틀 개발에 사력을 다했다. 일본 게임사들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잘나가는 PS2를 버리고 검증도 안 된 엑스박스로 갈아탈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안 되면 직접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영입한 게임사가 번지스튜디오다. 빌게이츠에게 있어 [헤일로]는 가뭄 속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실제로 빌게이츠는 [헤일로3] 발매일 상점에 나가 직접 패키지를 판매할 정도로 [헤일로]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스티브잡스를 열받게하다!
[헤일로]는 ‘빌게이츠’에겐 기쁨을 줬지만, ‘스티브잡스’에겐 분노를 안긴 게임이다. 사실 번지는 MS에 들어가기 전부터 [헤일로]를 매킨토시용으로 개발하고 있었다. 애플 CEO ‘스티브잡스’도 [헤일로]를 매킨토시 게임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MS가 번지를 인수해버리면서 [헤일로]는 졸지에 엑스박스용 게임이 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스티브잡스’는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잡스가 MS 부사장 ‘스티브 발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큰소리로 항의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사실 스티브 잡스도 1997년 애플 CEO로 복귀하면서 게임소프트웨어 사업을 강화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아타리에서 첫 직장생활을 했던 그 자신도 열성적인 게이머였기 때문이다. 결국 MS가 [헤일로]의 매킨토시 버전을 따로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잡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다. [헤일로]는 세계 최고기업인 애플과 MS를 울리고 웃겼던 희귀한 이력의 게임이기도 하다.

번지 점프를 하다!

“팀의 다수가 PC가 아닌 게임기에서 일인칭 슈팅게임을 제작한다는 데 회의적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아날로그 스틱으로 FPS를 조작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죠.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우리는 해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 헤일로 프로젝트 팀장 제이슨 존슨(번지소프트웨어 창업자)

2000년 12월부터 [헤일로] 개발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시카고에서 MS로 본부를 옮긴 번지스튜디오는 죽을힘을 다해 개발에 열중했다. 번지 창업자 제이슨 존슨은 게임이 완성될 때까지 새로 이사 온 집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게임개발은 힘들었다. 콘솔게임 개발이 전무했던 번지로써는 작업 하나하나가 난관의 연속이었다. MS는 개발인원을 두 배로 증원했다.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멀티플레이 부분을 제외시켰다. 대신 외계인의 침공에 맞선 인류의 저항을 기본 스토리로 싱글플레이를 강화했다. FPS에서 소홀했던 이야기의 결을 세심하게 짜 맞췄다.

가장 큰 고민은 조작이었다. PC용 슈팅게임의 조작감을 게임기로 옮겨올 방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엑스박스 컨트롤러를 세밀하게 분석해 아날로그 스틱으로도 FPS를 원활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게임이 처음 공개됐을 때는 그저 그런 반응을 얻었다. 앞서 제이슨존스의 말처럼 아날로그 스틱으로 FPS를 조작한다는 자체가 못할 짓이었다. 키보드와 마우스의 즉각적인 반응을 어떻게 가느다란 스틱하나로 커버할 수 있겠는가. 작품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01년 11월 15일 [헤일로: 전쟁의 서막]이 발매됐다.

게임에 대한 반응은 예상외였다. 사람들은 이 낮선 콘솔용 FPS에 열광했다. 스틱으로 조작하는 방식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비평가들의 평론에서도 만점을 받았고, 이는 폭발적인 판매로 이어졌다. [헤일로]는 전 세계적으로 600만장 이상 판매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작품성으로 보나 흥행으로 보나 엑스박스의 간판게임으로 손색이 없었다. 게임의 흥행을 예감한 제이슨 존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멋진 일이었습니다. 정말 대단했죠! 게임이 발매되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마침내 집으로 향했고 그제야 새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이사도 마치지 않았고, 자동차에는 아직 시카고 번호판이 달려 있었죠.”
(‘마이크로소프트의 도전: 엑스박스와 게임의 미래’ 중 발췌)


게임사를 바꾼 발상의 전환!

“콘솔용 FPS는 학습을 요합니다. 그러나 학습이 완료되면 유저는 콘솔용 조작방식이 FPS에 최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머지않아 콘솔용 FPS가 대세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둠3, 파크라이 등의 대작 FPS게임이 콘솔 타이틀 출시를 서두르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죠.”
- 헤일로2 기획자 프랭크 오코너(2004년 게임메카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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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박스의 구원투수로 나온 헤일로. 헤일로를 하기 위해 엑스박스를 구입하는 유저들도 많았다.


[헤일로]의 가장 큰 숙제는 FPS의 빠른 시점조작을 어떻게 아날로그 스틱으로 구현할 수 있냐는 것이다. 사실 번지는 이 난제를 풀기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찾은 해법은 ‘에임어시스트’, 바로 조준보정 시스템이다. 번지는 약간의 편법을 썼다. 사람들이 스틱을 통해 엄지손가락으로 조준하는 일이 어려웠기 때문에 조준점을 순간적으로 목표물에 멈추게 만든 것이다. PC게임처럼 정밀하게 조준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타케팅 되는 방식이다. 이렇게 만들고 보니 조작에 미숙한 사람들은 오히려 게임을 편하게 할 수 있게 됐다(여성 팬들이 유독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보호막 시스템을 도입해 조준 실수에 대한 부담감을 줄였다. 그렇다고 게임이 너무 쉬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동시에 지닐 수 있는 무기를 2개까지만 허용하고 탄약수를 제한했다. 때문에 총알이 떨어지면 적의 무기를 노획해 사용해야 한다. 이런 방식은 멀티플레이시 캐릭터간의 상성을 맞추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FPS라고 무조건 정교하게 조준할 필요는 없다. 조준은 편하게 하고 다른 시스템으로 게임의 난이도를 맞추면 된다. 번지스튜디오는 이런 발상의 전환을 통해 그들 앞에 놓인 어려운 숙제를 풀었다.

[헤일로]는 이외에도 혁신적인 시스템이 많다. 전투의 패턴도 바꾸었다. 이전에는 단순 학살형 게임들이 대부분이었다. 주인공이 쏜 총에 적들이 쓰러지면 끝이었다. 그러나 [헤일로]에서는 주변 캐릭터들의 반응이 다양해 졌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정확한 조준으로 적을 쏘아 맞추면 주변 아군들은 “이야! 명사순데요!”라고 감탄한다. 적들의 인공지능도 높아졌다. 적은 주인공이 던진 수류탄을 피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살공격을 감행한다. 또, 주인공을 만나면 무서워서 도망가거나, 쏘지 말라고 빌기도 한다. 이렇듯 캐릭터들의 다양한 반응은 게임의 재미를 풍성하게 했다.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살벌한 전장이 아닌, 유머와 위트가 살아있는 다이내믹한 전장을 펼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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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는 콘솔에서도 FPS를 원활하게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시켰다.


엑스박스 멀티플레이의 기틀을 세웠다. 원래 [헤일로]는 초기에 오픈월드게임으로 기획됐다고 한다. 그만큼 맵이 넓고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특히 소형 바이크부터, 탱크, 비행선까지 여러 가지 탈것을 제공해 스케일을 키웠다. 역할도 다양하다. 탱크에 탈 때 운전석에 탑승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캐릭터에게 운전석을 맡기고 자신은 포를 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동료와 함께 각자의 역할을 맡아 플레이하는 방식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협동플레이의 기반을 다졌다. 엑스박스 라이브가 지원되기 전인데 ‘대전모드’, ‘깃발 뺏기’, ‘고지점령’ 등 멀티 플레이의 기본이 완성된 것 또한 놀랍다.


헤일로2는 ‘실수덩어리(?)’

“엄청난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마감은 다가오는데 멀티플레이 쪽은 손도 대지 못했죠.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정말이지 너무 충격을 받아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였죠. 솔직히 그때는 ‘망했구나’라고 싶었어요.”
- 헤일로2 수석 디자이너 제임 그리즈머(영국 게임지 ‘엣지’와의 인터뷰 중)

2004년 11월 [헤일로2]가 발매됐다. 전작이 워낙 대박을 쳐서인지 후속편에 대한 기대는 엄청났다. 방대해진 세계관과 화려한 그래픽으로 ‘역시, 헤일로!’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2편은 스토리와 멀티플레이를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전작에서 적으로 설정됐던 코버넌트 종족의 내부갈등이 2편 스토리의 핵심이다. 주인공 ‘마스터 치프’외에 전작에서 적으로 나왔던 코버넌트 전사 ‘아비터’를 조종할 수 있다. 헤일로가 파괴된 후 코버넌트가 지구를 침공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결국 또 다른 헤일로가 발견되고, 인류와 코버넌트가 협력해 거대한 재앙을 막아낸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서로 싸웠던 ‘마스터치프’와 ‘아비터’를 번갈아 플레이하며 적과 맞서 싸우는 경험은 감동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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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스케일을 키우고 멀티플레이를 대폭 강화한 헤일로2. 2편부터 미국유저들의 헤일로앓이(?)가 시작됐다


[헤일로2]는 싱글과 멀티플레이의 밸런싱이 잘 맞춰진 게임이다. 온라인상에서 대전 상대를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자동 매치시스템’을 도입해 누구나 쉽게 멀티플레이를 즐길 수 있게 했다. 또, 홈페이지를 통해 플레이어의 랭킹이나 전적, 레벨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했다. 게임의 엔딩을 본 유저들은 멀티플레이를 통해 게임을 계속 즐길 수 있었다. ‘콘솔은 혼자 하는 게임’이라는 고정관념은 [헤일로2]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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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은 게임의 규모가 더욱 방대해졌고, 1편에서 적으로 등장한 코버넌트 내부갈등이 묘사됐다.


그러나 이런 찬사를 뒤로하고 정작 번지 개발자들은 [헤일로2]를 실수투성이 게임이라고 고백했다. 실제로 개발자들은 게임발매 4주 전까지도 멀티 쪽은 손도 못 댔다고 한다. 결국 막판에 멀티플레이 쪽에 개발역량을 집중하면서 싱글과 멀티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게임발매 후 여러 가지 부족한 점들은 라이브를 통해 꾸준하게 수정 보완했다고 한다. 이런 노력 끝에 [헤일로2]는 650만장 이상 판매되며 엑스박스 간판타이틀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헤일로]는 1, 2편 합쳐 1,500만장(2007년 기준) 이상 팔렸다.


헤일로 3부작의 완결판!
원래 헤일로 시리즈는 총 3부작으로 기획됐다. 2007년 번지스튜디오는 시리즈의 마지막편인 [헤일로3]를 발매했다. 3편은 예정된 히트작이었다. 감히 누구도 3편의 흥행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헤일로]는 엑스박스, 아니 미국 콘솔게임의 자존심으로 군림해 있었다. 물론 1, 2편을 능가하는 완벽한 게임성으로 엑스박스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차세대 게임기 ‘엑스박스360’을 통해 펼쳐지는 진보된 그래픽은 ‘콘솔게임 중 최강자’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발매 전에 실시된 베타 테스트에도 82만 명의 유저가 참가할 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전작의 멀티 플레이를 더욱 강화해 4인이 협동하여 캠페인을 클리어 할 수 있는 코옵 시스템을 추가했다. 엑스박스 라이브를 통한 코옵 플레이는 전 세계 게임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콘솔게임은 더 이상 혼자 플레이하는 게임이 아닌 친구나 가족들이 함께 즐기는 놀이문화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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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스튜디오가 기획한 헤일로 3부작의 완결편. 헤일로 시리즈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스토리도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전작에서 서로 협력한 ‘마스터치프’와 ‘아비터’가 지구로 귀한하고, 인류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전쟁이 벌어진다. 또 다시 힘을 합치게 된 이들은 선조가 남긴 유물인 ‘포탈’과 ‘아크’를 이용해 세계의 종말을 막아야 한다. [헤일로3]는 시리즈 최초로 1,000만장 이상 판매되며 메가 히트를 기록했다. 발매 하루만에 1억 7,000만 달러(한화 1,8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엔터테인먼트 제품 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 이로써 번지스튜디오는 애초에 기획한 ‘헤일로 3부작’에 화려한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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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3는 디테일한 그래픽과 흥미진진한 멀티플레이를 내세워 1,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보였다



헤일로와 디스트릭트 나인

“헤일로 영화가 취소됐음에도 피터잭슨 감독이 나에게 ‘디스트릭트 나인’을 만들게 해 준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 영화감독 닐 블롬캠프

당시 미국의 ‘헤일로 신드롬’은 대단했다. 게임시장은 물론 문화계 전반까지 파급효과가 컸다. 열성팬들은 ‘헤일로데이’를 지정해 그날은 서로 모여 헤일로 코옵 플레이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됐다. 미국의 인기드라마 ‘빅뱅이론’에서도 ‘헤일로데이’를 소재로 한 에피소드가 나올 정도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발표에 따르면 헤일로 시리즈를 소재로 한 액션피규어, 사운드트랙, 소설, 만화책 같은 관련 상품들이 해리포터 시리즈 상품보다 세 배나 많은 매출을 기록했다고 한다. 번지스튜디오가 제작한 헤일로 그래픽 소설은 ‘엑스맨’과 더불어 마블코믹스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로 꼽힌다. 또, 4편의 헤일로 소설들 중 2편이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게임소설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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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감독 닐 블롬캠프는 헤일로영화(좌)를 만들다 중간에 취소됐고 이후 SF영화의 걸작 ‘디스트릭트 나인’을 만든다. 어딘지 모르게 두 영화의 느낌이 비슷하다.


[헤일로]는 허리우드에서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특히 영화 ‘반지의 제왕’을 만든 피터잭슨 감독이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헤일로] 영화제작을 결심한 그는 당시 신인감독인 ‘닐 블롬캠프’에게 감독을 맡겼다. 블롬캠프는 7분짜리 헤일로 프로모션 영상을 제작해 공개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피터잭슨도 아닌 이렇다 할 이력도 없는 신인감독이 ‘헤일로’를 영화화 한다는 게 미덥지 못했던 모양이다. 더구나 제작비 문제로 영화사들까지 손을 때면서 제대로 찍어보지도 못하고 좌초됐다. 결국 블롬캠프는 7분짜리 헤일로 프로모션 영상을 기반으로 저예산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SF영화의 신기원을 일으키며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디스트릭트 나인’은 이런 계기로 세상에 나왔다. 실제로 영화 특유의 거칠고 투박한 영상은 헤일로 프로모션 영상과 비슷하다. 최근엔 헤일로 TV 영화감독으로 블롬캠프가 유력하게 지목되고 있다.


멋진 개발사 번지,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알다!’
[헤일로3]가 발매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팬들에게 깜짝 놀랄 소식이 들려왔다. 번지스튜디오가 MS를 떠나 독립회사로 나선다는 내용이다. [헤일로]의 판권을 MS에 넘긴 번지는 더 큰 개발사로 거듭나기 위해 홀로서기를 택한 것이다. [헤일로]가 전부인 이들로써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번지는 [헤일로]가 정상에 섰을 때, 과감히 떠났다. 그야말로 박수칠 때 떠나는 미덕을 보여준 것이다.

필자는 번지만큼 쿨하고 멋진 개발사도 흔치않다고 본다. 이들은 당장 회사가 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소신을 버리지 않았다. 모두가 PC용 게임을 만들 때, 그들은 매킨토시용 게임을 끝까지 고집했다. 그리고 결정적일 때 MS의 손을 잡고 엑스박스의 구세주가 됐다. 미국 게이머들에게 번지는 실천하는 개발사로 통한다. 직원들은 스스로를 ‘언더그라운드 군단’이라 부르며 유저들과 눈높이를 맞춘다. 한때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했을 때 직원들은 그달 수익 전액을 적십자에 기부하고, 헤일로 티셔츠를 판매해 수익금 전액을 수재민에게 나눠줬다. 티셔츠에 그려져 있는 폭풍 속을 뚫고 나가는 마스터 치프의 모습은 이후 게이머들의 사회참여를 독려하는 상징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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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는 전략게임으로도 만들어졌다. 앙상블스튜디오가 제작한 RTS게임 헤일로워즈.


번지는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개발사다. 게임업계 인수합병 중 MS와 번지의 관계가 가장 이상적인 콜라보레이션으로 평가받는다. 인피니티워즈와 액티비전은 [콜오브듀티]라는 메가 히트작을 낳았지만, 정작 두 회사는 각종 소송으로 얼굴을 붉혔다. 블리자드는 거듭된 인수과정에서 내부 불협화음으로 조직이 분열되는 낭패를 겪었다. 한때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웨스트우드와 오리진은 EA에 인수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MS와 번지는 [헤일로]라는 희대의 명작을 내놓았고, 엑스박스를 경쟁력 있는 게임기로 만들었다. 번지는 [헤일로]를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고 깔끔하게 손을 땠다. 바람직한 윈윈의 전형적인 사례를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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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가 MS를 떠나 새롭게 개발하고 있는 신작 [데스티니], 액티비전을 통해 발매된다.


번지는 독립 이후에도 MS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시리즈의 외전격인 [헤일로3: ODST](2009년)와 [헤일로리치](2010년)을 제작했다(프리퀼 개념의 작품). 물론 이 작품들도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원래 번지는 헤일로 시리즈를 3부작으로 기획했기 때문에 억지로 4편은 만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완전 새로운 FPS게임 [데스티니]를 개발 중에 있다.

또 어떠한 ‘혁신’을 볼 수 있을지 가장 기대되는 타이틀 중 하나다. 한편 헤일로의 판권을 가진 MS는 앙상블스튜디오를 통해 RTS게임 [헤일로 워즈]를 제작했다(앙상블스튜디오는 ‘에이지오브엠파이어 시리즈’를 만든 RTS명가다). [헤일로 워즈]는 게임성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은 실패했다.


돌아온 마스터 치프, 헤일로4

“헤일로 시리즈는 ‘혁신’으로 불리는 작품입니다. 그런 대작의 이름에 먹칠을 할 수는 없죠. 헤일로는 그대로지만 우리 나름의 특징이 있고 또, 차원이 다른 작품이 될 것입니다.”
- 헤일로4 총괄프로듀서 키키 울프킬(헤일로4 제작일지 영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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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개발사 343인더스트리가 새롭게 헤일로 시리즈를 맡아서 개발한 작품 헤일로4. 번지의 헤일로 시리즈와는 또 다른 느낌의 헤일로 3부작이 시작됐다.


번지는 [헤일로 리치]를 끝으로 시리즈에서 손을 땠다. 게이머들은 ‘마스터 치프’가 나오는 정식 넘버링 시리즈에 목말라 있었다. MS는 신생 개발사 ‘343인더스트리’에게 [헤일로4] 제작을 맡겼다. 하지만 2년차 신출내기 개발사가 이어받기에는 헤일로가 가진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3편으로 모든 스토리가 종결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리즈를 이어가는 게 일차적 과제였다. 343인더스트리는 전작과는 느낌이 다른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보여주었다. 4편을 시작으로 새로운 느낌의 헤일로 3부작을 다시 만든 것이다. 이전까지 주인공의 영웅담 위주로 스토리가 전개됐다면 4편에선 인물의 내면적 갈등 등 성격묘사에 신경을 썼다. 영화적 연출을 강화했고, 캐릭터들도 좀 더 인간다워진 면모를 보여주었다. 특히 시리즈 주인공인 ‘코타나’와 ‘마스터치프’간의 미묘한 감정교류는 이 게임의 달라진 재미 중 하나다. 마치 영화 ‘배트맨 시리즈’와 ‘다크나이트 시리즈’가 서로 다른 분위기인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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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에선 캐릭터들의 내면을 더욱 세세하게 표현했다. ‘마스터치프’와 ‘코타나’의 미묘한 감정 선도 놓칠 수 없는 재미


멀티플레이도 진화했다. 유저들이 함께 스토리를 풀어가는 ‘스파르탄 옵스’ 모드를 다운로드(DLC)콘텐츠로 제공했다. ‘스파르탄 옵스’는 드라마처럼 에피소드 별로 추가되며, 유저들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다운로드받아 함께 즐길 수 있다. [헤일로4]는 발매 당일 370만장 이상을 팔아 전작의 명성을 잇는데 성공했다. 또, 일주일 만에 3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같은 해 나온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파트2’와 ‘어벤저스’를 매출을 능가하는 결과다. 성공적으로 시리즈를 승계한 343인더스트리는 [헤일로5]를 2015년 하반기 '엑스박스원'용으로 발매할 예정이다.


우리시대 리더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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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출시예정인 헤일로5. 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마스터 치프’의 활약을 빨리 보고 싶다.


미국 사람들은 왜 [헤일로]에 열광할까. 필자는 게임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이 글을 마무리 지을까한다. 2001년 9월 11일, 처참하게 무너지는 쌍둥이빌딩을 목도하며 전 세계가 경악했다. 911 직후 사람들이 느낀 것은 공포와 분노였다. 정치인들은 ‘정의’와 ‘복수’라는 명목을 내세워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보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의 폭염 속에서 그들은 수많은 죽음을 봐야만 했다. 그러나 이 죽음에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911의 비극은 우리 시대의 리더십까지 실종시켰다.

공교롭게도 [헤일로]는 전 세계가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던 2001년 11월 발매됐다. 그런데 우연이었을까. 게임의 스토리는 911 직후 우리 모습과 비슷했다. 평화로운 인류가 갑자기 코버넌트의 공격을 받고, 군인들은 헤일로에 파병되어 전쟁을 치뤄야했다. 군인들 옆에는 항상 ‘마스터 치프’라는 야전 사령관이 있었다. 이름도, 얼굴도 알려지지 않은 그는 전장에 가장 먼저 나가 임무를 완수하고 때론 자신을 희생해가며 동료를 구했다. 과묵하지만 친근한 모습은 차가운 프로그램 덩어리 ‘코타나’의 마음도 움직였다. 헬멧 속에 가려진 그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그는 항상 신뢰받는 리더였다.

결국 [헤일로]는 리더에 관한 이야기다. 미국인은 정치에 대한 혐오를 게임으로 풀었다. 부시정부는 계속해서 전쟁터로 나가길 독려했지만, 마스터 치프는 전쟁 한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싸웠다. 알량한 정의보다 바로 옆에 있는 부하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겼다. 부하들을 신뢰하고 적들까지 포용할 줄 아는 아량도 있다. 유저들은 ‘마스터치프’의 모습에서 이 시대가 원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리더 부재의 시대, 우리가 [헤일로] 시리즈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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