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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페르시아는 ‘술탄’이라는 왕의 통치 하에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페르시아를 노리는 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자파’, 왕국의 수상이었다. ‘자파’는 페르시아를 손에 넣기 위해 술탄의 딸인 공주에게 청혼했으나, 지방 부호의 아들과 사랑을 나누고 있던 공주는 이를 거절한다. 이에 분노한 ‘자파’는 공주를 성 꼭대기에 가두고 공주와 사랑을 나누던 지방 부호의 아들은 술탄의 거대한 지하감옥에 가둔다. 공주는 자신을 구해줄 자신의 ‘왕자’를 기다린다. 그가 지하감옥에 갇혀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채.

중동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독특한 오프닝 음악과 함께 볼 수 있었던 [페르시아의 왕자]의 오프닝이다. 당시 게임들에선 보기 힘들었던 사실적이고 부드러운 움직임, 다양하게 준비된 퍼즐만큼이나 물약 과다복용, 추락, 가시 트랩 등 다양한 방법으로 죽는 왕자의 모습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또는 차세대기로 부활해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을 손에 넣고 얽히고 설킨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공주와 함께 세상을 구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 왕자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메모장에 그려진 낙서일 뿐이었던 [페르시아의 왕자]가 게임계에 등장해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게임계에서 가장 유명한 왕자가 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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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DOS용 페르시아의 왕자 1편 메인화면.>



‘카라테카’의 성공 신화를 잇기 위해

[페르시아의 왕자]의 개발자인 조던 메크너는 [페르시아의 왕자]를 구상하던 당시, 이미 세계적인 히트작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게임의 이름은 [카라테카]였다. 그의 동생이 달리고 점프하는 모습을 촬영한 뒤 그 모습을 게임 속에 재현하는 ‘로토스코프’ 방식으로 만들어져 당시의 어느 게임보다도 사실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으며, 독특한 엔딩 역시 당시 게이머들의 눈길을 끌었다. [카라테카]는 [로드런너], [촙리프터], [카멘샌디에고를 찾아서]와 같은 프랜차이즈 게임과 함께 그의 게임을 퍼블리싱 한 ‘브로더번드’의 주요 히트 상품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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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메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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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메크너의 첫 히트작 [카라테카], 국내에선 패미컴으로 즐겨 본 게이머들이 많을 것이다.>


[카라테카]는 1985년 당시 컴퓨터 소프트웨어 판매량 차트가 별도로 나와있던 ‘빌보드’ 지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그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던 브로더번드는 당시 예일대를 막 졸업했던 조던 메크너와 후속작에 대한 계약을 진행했다.

메크너는 빠르게 새로운 게임을 구상했다. 그는 [카라테카]의 성공 요인이 신비로운 느낌의 ‘동양’을 세계관으로 설정했던 것이라 생각하고 ‘술탄’, ‘마법의 양탄자’와 같은 신비로운 이야기가 전해지는 중동 지역을 다음 게임의 무대로 정했다. 새로운 작품이 [카라테카]의 후속작일 것이라는 브로더번드의 기대와는 달리 조던 메크너가 구상하고 있던 것은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게임’ 이었다.


모두의 힘을 모아 완성된 ‘전설’


“이 게임을 만들어서 정말 다행이다.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내 노력이 나쁜 쪽이 아니라 좋은 쪽으로 작용했다고 확신하는 부분이다. 이 멋진 게임은 내 작품이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 게임의 존재를 기뻐하겠지.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 조던 메크너, 그의 일기에서

처음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카라테카]와 같은 ‘로토스코프’ 방식을 이용해 개발을 진행했으며 기본적인 달리기와 점프액션을 구현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꿈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화감독의 꿈이었다. 그는 게임의 개발을 진행하면서 자신이 쓴 각본을 영화화 하고 싶어 했으며 실제로 그의 각본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는 개발 작업에 집중하지 못했으며 그가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약 8개월 동안 개발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1988년 1월, 개발을 재개한 그는 빠른 속도로 게임을 완성시켜 나갔다. 그 동안의 시간을 만회하듯 한 주에 40시간 이상을 개발에 쓰기도 했다. 그저 함정이 깔린 지하감옥을 탈출하던 게임은 동료들의 의견을 수렴해 칼싸움, ‘간수’나 ‘그림자 왕자’와 같은 적 캐릭터, 스테이지 구성 등 [페르시아의 왕자]의 각종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특히 ‘그림자 왕자’를 비롯한 다양한 적과의 전투는 그 때까지 다소 지루하던 게임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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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의 인상적인 적 캐릭터 ‘그림자 왕자’. 그림자 왕자는 게임 곳곳에 나타나 왕자를 방해한다.>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에는 브로더번드의 사내 인원들은 물론 조던 메크너의 아버지까지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그들도 점점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게임에 환호하고 성공할 것을 확신했다. 그 동안 지지부진했던 패키지 디자인이나 MS-DOS용으로의 이식이 승인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을 만들었다. 중간에 고비가 조금 있었지만 [페르시아의 왕자]는 1989년 10월 애플II로 출시되었다.

애플II로 출시된 [페르시아의 왕자]는 당대 유명 PC잡지의 리뷰에서 극찬을 받았고, 이를 플레이 한 게이머들로부터도 찬사를 받았다. 시간에 쫓긴다는 긴장감과 그로 인한 압박감을 주는 게임은 당시엔 흔치 않았고 시대를 앞서나간 그래픽 역시 호평 받았다. 특히 게임 내내 플레이어와 대립하는 적. 캐릭터이자 자파를 물리치는 열쇠였던 ‘그림자 왕자’, 자파에게 가는 길에 있는 보이지 않는 길은 많은 게이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페르시아의 왕자]의 분위기는 93년 디즈니의 명작 애니메이션 ‘알라딘’이 만들어지는 데도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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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의 대표적인 난관. 여기에서 막혔던 게이머들이 많을 것이다>



뜻 밖의 실패, 전화위복의 기회


“저기서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
- 조던 메크너, 그의 일기에서

메크너의 관점에서 보면 마냥 잘 풀렸던 것만은 아니다. 출시 당시 모든 리뷰에서 ‘최고의 게임’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페르시아의 왕자]는 실제 판매되자 [카라테카]와 동일한 수준의 판매량을 보여주었다. 메크너는 종국엔 한 달에 단 150장도 팔리지 못하는 [페르시아의 왕자]를 ‘죽어가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게임을 퍼블리싱하는 브로더번드의 홍보도 소극적이었으며, 그의 희망이었던 MS-DOS용 마저 눈에 띄는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NYU 필름 스쿨에도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페르시아 왕자]는 미국보다는 해외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유럽에서는 너무 잘 팔려 재고가 부족할 지경이었고 일본에서는 NEC 컴퓨터로 이식한 [페르시아의 왕자]가 대히트 했다. 또한 세가와 같은 일본의 대형 업체에서도 제의가 들어왔고, ‘패미컴’과 ‘게임보이’로의 이식도 결정되었다. 게임 출시로부터 약 3년이 지난 뒤에야 드디어 미국 내에서도 [페르시아의 왕자] 붐이 일기 시작했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결국 성공했으며, 조던 메크너는 이 성공을 바탕으로 [페르시아의 왕자2]의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좀 더 거대해진 왕자의 모험

조던 메크너는 [페르시아의 왕자2] 구상 당시 판매량 1위였던 [셰도우 오브 더 비스트 2]라는 게임을 즐기며 멋진 그래픽과 뛰어난 연출의 오프닝 장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높은 난이도와 긴 로딩 시간이 흠이었지만 게임의 그래픽과 모험적인 요소가 게이머들을 이끌었기에 1위 게임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러한 요소를 [페르시아의 왕자2]에 담고 싶었다.

그런 바람을 담아내어 4년 만에 등장한 [페르시아의 왕자2: 그림자와 불꽃]는 전작의 2주일 뒤를 배경으로 전작에서 공주를 구출한 ‘왕자’가 마녀와 결탁한 자파의 음모에 빠져 가짜 왕자라는 누명을 쓰게 되고 살기 위해 도망치는 데부터 시작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두컴컴한 지하감옥과 성에서 진행되었던 전작과는 달리 2편의 왕자는 성은 물론 마법의 양탄자가 잠들어 있는 함정투성이의 섬, 폐허가 된 왕국, 유적 등 다양한 무대를 돌아다닌다. 그래픽적인 부분에서도 캐릭터 표현은 물론 배경 묘사가 더욱 자세해지면서 ‘모험’을 한다는 느낌을 확실히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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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2]에서 왕자의 모험은 무인도, 폐허가 된 왕국 등 다양한 장소에서 펼쳐진다>


여기에 전작을 뛰어넘는 난해한 퍼즐과 함정들이 추가되었다. 개중에는 지금까지 [페르시아의 왕자]를 플레이 하면서 항상 최우선적으로 챙겼던 것을 포기해야 하는 퍼즐도 있었다. 스토리적인 부분도 많이 발전했다. 오프닝과 주요 이벤트에 ‘내레이션’이 추가되어 몰입도가 늘었으며, 전작과의 연계는 물론 후속작을 암시하는 내용도 넣어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속편을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속편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게이머들의 찬사를 받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더욱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는 [페르시아의 왕자]에 게이머들은 환호했으며, [페르시아의 왕자2]에서 속편에 대한 암시가 있었던 만큼 그런 기대는 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3D로의 등장, 그리고 실패

그러나 전작의 인기를 잇는 속편은 등장하지 못했다. 평소 영화에 관심이 많던 조던 메크너는 [페르시아의 왕자2]의 후속작으로 오리엔탈 익스프레스에서의 살인 미스터리를 다룬 게임인 ‘라스트 익스프레스’를 개발했다. ‘라스트 익스프레스’는 셀셰이딩 방식의 새로운 그래픽과 다양한 분기로 나뉘는 스토리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브로더번드의 내부 사정으로 파트너사와의 협력 관계가 깨지면서 게임 판매량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플레이스테이션으로의 이식이 수포로 돌아갔다. 때문에 브로더번드는 큰 손해를 보게 되었으며, 조던 메크너도 이 일로 게임에 손을 떼려고 했다.

그러던 중에 브로더번드의 자회사 레드 오브 엔터테인먼트의 앤드류 페더슨이 조던 메크너에게 3D 기반의 페르시아의 왕자를 제안하게 되었고, 이를 받아들인 그는 ‘페르시아의 왕자 3D’의 디자인과 스토리 공동 구성에 참여하게 된다. [페르시아의 왕자2]로부터 6년 만인 1999년 출시된 ‘페르시아의 왕자 3D’는 로토스코핑 대신 모션 캡쳐를 활용해 개발되었으며 이전 [페르시아의 왕자2]의 스토리는 폐기하고 술탄의 형제인 아산이 악역으로 등장하는 스토리를 새로 구성했다. 미려한 3D 그래픽으로 그려진 7가지 환경의 15가지 레벨과 어두운 게임의 분위기는 [페르시아의 왕자]의 그것이었으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개발과정에서 브로더번드가 재정 문제로 교육용 게임 제작사 ‘TLC’에 인수 당해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때문에 개발 인원이 대폭 축소되었고 ‘페르시아의 왕자 3D’는 제대로 된 QA를 거치지 못한 채로 출시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게임 방식 자체에는 [페르시아의 왕자] 만의 느낌을 성공적으로 담아내지 못했으며, 해결되지 못한 수많은 버그들로 혹평 받았다. 결국 이전 작품들과 같은 흥행은 없었고 한동안 [페르시아의 왕자]는 잠들어있었다. 왕자에게는 더 이상 미래가 없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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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 3D]의 타이틀과 게임화면. 그들에게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다시 없을 명작이 되었을 게임이다>



유비소프트와 함께 새롭게 태어난 왕자

한편, 평소 [페르시아의 왕자]에 관심이 많았던 프랑스의 개발사 ‘유비소프트 몬트리얼’의 프로듀서 ‘야니스 말럿’은 [페르시아의 왕자] 후속작에 대한 작업을 아무도 진행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저작권을 소유한 조던 메크너는 자신의 지난 두 작품에서 고생했던 경험 때문에 더 이상 시리즈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말럿은 메크너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팀원들과 만약 [페르시아의 왕자]를 개발하게 된다면 어떤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 했고, 약간의 지원을 받아 모션 캡처를 통한 테스트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2001년 5월, 말럿은 메크너를 초대해 자신의 팀이 만든 영상을 보여줬다. 이 영상은 조악했지만 왕자가 벽을 타고 달리다가 점프하여 사다리를 잡는 등 혁신적인 동작들이 담겨 있었다. 메크너는 이 영상에서 [페르시아의 왕자]가 가진 게임성을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저작권 사용을 허가했다.

메크너는 처음엔 [페르시아의 왕자] 저작권 사용에 대한 조언 정도만 하려고 했지만 이후 팀원으로 고용되어 스토리와 각본 작업을 맡게 되었고 결국엔 성우 감독까지 하게 된다. 2003년 여름엔 아예 식구들과 함께 몬트리얼로 거처를 옮기고 본격적인 게임의 디자이너로서 개발에 참여했다. 유비소프트의 품에서 새롭게 태어난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가 2003년 11월 출시되었다.

[시간의 모래]의 이야기는 주인공 ‘왕자’가 아버지와 함께 인도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와 새로운 전리품인 시간의 단검과 모래시계를 얻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인도의 왕을 섬기던 고관은 인도를 배신하고 페르시아의 승리를 도운 보상으로 시간의 단검을 원했지만 거절당한다. 하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한 고관은 왕자를 꼬드겨 단검으로 모래시계를 열게 하고 모래시계에서 시간의 모래가 흘러나와 아버지인 국왕을 비롯한 왕국의 모두가 모래 괴물로 변하고 만다. 왕자는 인도의 공주인 ‘파라’와 함께 그가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고 영생하고자 하는 ‘고관’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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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의 주인공 왕자는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이용해 모험을 풀어나간다>


[시간의 모래]는 모두가 바라던 [페르시아의 왕자]의 진정한 3D로의 부활이었다. 새로운 왕자는 빠르고 날렵해졌으며 화려한 칼솜씨로 다수의 적과도 문제 없이 싸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잔혹한 연출 등 게임을 어둡게 만드는 요소가 사라졌으며, 왕자와 공주의 로맨스도 게이머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시간에 쫓기던 이전의 왕자와는 달리 이번 왕자는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곳곳에 있는 ‘시간의 모래’를 회수해 시간을 10초 이전으로 되돌리거나 멈출 수도 있으며, 빠르게 혹은 느리게 흐르도록 할 수도 있게 되었다. 또한 실수도 만회할 수 있었다. 조던 메크너는 ‘미로와 트랩을 돌파하는 재미’를 최대한으로 살리고자 했으며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은 그와 맞물려 게임플레이의 전반적인 변화를 이루어냈다.

이러한 변화들은 [시간의 모래]를 명작의 반열에 올려놨다.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게임상을 수상했으며 게임 디자인, PC 게임 부문, 콘솔 게임 부문, 어드벤처 게임 부문 등 총 여덟 개 부문에서 DICE 상을 받았다. 유비소프트의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속편을 개발하기 위한 충분한 판매량을 달성했다. 왕자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왕자의 성인용 파격적인 변신

[시간의 모래]는 충분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프로듀서인 말럿은 한 가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전작의 가장 큰 특징이었던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이었다. 말럿은 게임 상에서의 실수를 간단히 되돌릴 수 있는 것은 물론 죽었던 공주마저 되살리는 등 왕자가 스스로의 잘못을 너무 쉽게 되돌릴 수 있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속편인 [페르시아의 왕자: 전사의 길]은 전작과는 달리 어두운 분위기가 되었다. 왕자는 그를 죽이고 왜곡된 시간을 원래대로 돌려 놓으려는 시간의 수호자 ‘다하카’에게 수년 간 쫓기고 있는 신세로 자신이 처한 운명에서 도망치기 위해 ‘시간의 여제’와 맞서 싸운다. 쫓기는 동안 그는 수없이 많은 폭력을 저지르며 무고한 이들을 짓밟았고, 밝고 쾌활하던 그의 성격은 점점 더 어두워졌으며 이러한 변화는 게임 전반에 반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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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의 길]은 어둡고 칙칙해진 왕자 내면의 변화에 따라 게임의 분위기도 상당히 암울하다>


왕자의 심리적인 면뿐만이 아니라 게임적으로도 전작과는 달리 매우 폭력적이 되었다. 7년간 수많은 싸움을 겪으며 전사가 된 왕자는 여러 가지 살인 기술로 적들의 사지를 절단하며 가는 곳마다 피바다를 만든다. 히로인의 자리도 섹시한 복장을 입고 있는 시간의 여왕의 시녀 ‘카일리나’가 차지했으며 덕분에 전작과 같은 건전한 로맨스는 없다. 때문에 ‘페르시아의 왕자: 전사의 길’은 시리즈 최초로 M(19세 이상) 등급을 받게 되었다.

자신의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위해 개발에 참여하지 않았던 조던 메크너는 게임의 분위기가 어두워지는 것을 언짢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사의 길]은 전작보다 평가는 낮았지만 판매량은 늘었다. 어두운 분위기로의 전환이 스토리 상으로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말럿’은 이제 이야기를 끝내야 할 때라고 생각했으며 전작의 개발 종료와 함께 바로 후속작의 개발을 진행했다.


왕자의 모험이 끝나고…


“사람들은 시간이 한쪽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고 생각하지요. 허나 전 시간의 진정한 모습을 보았고, 당신께 그들이 틀렸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시간은 마치 폭풍 속의 대양과도 같습니다. 아마 제가 누구이고, 또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궁금하시겠지요. 앉으세요. 이제 제가 당신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해드릴테니...”
– [두 개의 왕좌]에서 왕자가 파라 공주에게

말럿은 지난 두 게임의 특징을 적절히 혼합한 형태의 작품으로 3부작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전체적인 톤을 두 게임의 중간에 맞추어 최대한 많은 팬을 만족시키기 위함이었다. 2005년 12월, [페르시아의 왕자: 두 개의 왕좌]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3부작의 마지막 작품에선 이제 왕자는 더 이상 운명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싸운다.

스토리는 전작의 마지막에서 바로 이어진다. 카일리나와 함께 바빌론에 도착한 왕자는 불타고 있는 자신의 고향을 보게 된다. 그가 전작에서 [시간의 모래]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렸기 때문에 고관이 부활해 다시 영생을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 사이 고관은 사실 ‘시간의 여왕’이었던 카일리나를 죽여 ‘모래 시계’를 완성시키고 도시에 모래 괴물들을 풀어 놓는다.

왕자는 시간의 단검 덕분에 목숨을 구하지만 인격이 두 개로 분리되고 만다. 하나는 [시간의 모래]에서의 정의로운 왕자, 그리도 다른 하나는 [전사의 길]에서의 ‘어둠의 왕자’가 된 것이다. 이는 마치 첫 작품의 그림자 왕자를 떠올리게 한다. 게임 플레이도 양쪽 인격을 번갈아 가면서 플레이 하게 되는데 왕자일 때는 파라 공주와 동행하게 되며 트랩과 퍼즐을 해결하는 [시간의 모래] 스타일로 진행된다. 그리고 ‘어둠의 왕자’로 변하게 됐을 때는 [전사의 길]처럼 액션 게임의 성향이 더 강해지며 강력한 힘을 이용해 적들을 쓸어버릴 수 있다. 단, 다시 원래의 왕자로 되돌리지 않으면 사망하기 때문에 새로운 전투 시스템인 ‘스피드 킬’을 활용해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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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왕좌]의 가장 큰 특징은 왕자와 어둠의 왕자이다. 두 왕자는 겉모습은 물론 성격, 그리고 플레이 스타일도 다르다>


힘겨운 여정 끝에 왕자는 시간의 모래의 힘으로 괴물로 변한 고관을 물리치고 카일리나의 영혼을 해방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내면인 ‘어둠의 왕자’와 최후의 전투를 벌인다. 7년 동안의 고난으로 인한 모든 분노, 공포, 탐욕, 그리고 자만과 마주선 왕자는 파라의 도움으로 ‘어둠의 왕자’를 완전히 파괴한다. 마침내 자유로워진 왕자는 어떻게 자신을 알고 있었는지 물어보는 파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간의 모래]의 프롤로그 부분의 왕자가 달려가는 장면이 나오며 끝을 맞이한다. 그들의 새로운 로맨스가 시작된 것이다.

[시간의 모래]만큼은 아니었지만, [두 개의 왕좌]는 3부작을 깔끔하게 마무리 하는 게임으로써 높은 평가를 받았다.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같은 동화 속 이야기와 같은 엔딩을 끝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새로운 왕자의 이야기는 일단락 된다.


새롭게 시작되는 왕자의 이야기, 그러나…

3부작이 끝나고 한동안은 [페르시아의 왕자]의 또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먼저 [두 개의 왕좌]와 같은 달에 턴제 전략 게임 [배틀즈 오브 프린스 오브 페르시아]가 닌텐도DS로 출시되었다. [시간의 모래]와 [전사의 길]의 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다루고 있는 이 게임은 왕자가 종횡무진 여행하는 느낌을 전혀 줄 수 없었기 때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PSP용으로 등장한 [전사의 길]과 [두 개의 왕자]의 확장 이식작은 게이머들로부터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 크게 이슈가 되었던 것은 Xbox 라이브, 스마트폰으로 출시된 [페르시아의 왕자 클래식]이었다. 게임로프트가 원작 [페르시아의 왕자]에 [시간의 모래]의 캐릭터 모델을 활용해 리메이크 한 게임으로 원작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각으로 원작자인 조던 메크너에게도 인정받은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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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모래]의 왕자로 원작의 스토리를 즐기는 [페르시아의 왕자 클래식]. iOS용에 이어 최근 안드로이드 용으로도 출시되어 있다>


한편 2006년부터 [페르시아의 왕자]의 정식 후속작에 대한 정보들이 게이머들 사이에 돌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메크너가 ‘princeofpersiaprodigy.com’이라는 도메인을 선점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유비소프트 몬트리얼의 CEO가 된 ‘야니스 말럿’이 총괄을 맡은 액션 게임 [어쌔신 크리드]의 주인공 ‘알테어’에게서 많은 게이머들은 ‘왕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2008년 초, [페르시아의 왕자]의 신작으로 추정되는 스크린 샷과 컨셉 아트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페르시아의 왕자]의 신작은 원작과 같은 [페르시아의 왕자]라는 이름으로 2008년 12월 출시된다. 유비소프트 몬트리얼이 아닌 다른 팀이 개발을 맡았으며, 전작에서 이어지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번 작품에서는 자신의 형제가 오염시킨 세상을 정화하려는 ‘왕자’와 사악한 마신 ‘아리만’을 없애려는 공주 ‘엘리카’가 힘을 합쳐 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페르시아의 왕자(2008)]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공주다. 구해야 할 대상이었거나 단순한 도움밖에 주지 못하던 기존의 공주와는 달리 ‘엘리카’는 선한 신 오르마즈드에게 받은 빛의 힘으로 적극적으로 왕자를 도와준다. 오히려 왕자를 위기에서 구해줄 때도 많으며, 전투에서도 왕자에 버금가는 전투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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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2008)]의 공주 엘리카. 어떨 때는 왕자보다도 듬직해 보인다>


하지만 이 만능 공주 ‘엘리카’의 존재는 게임의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존재로 인해 액션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라도 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배려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게임이 너무 쉬워지고 이로 인해 게임 전체가 너무 반복적인 느낌을 준다는 의견도 있었다. 새로운 [페르시아의 왕자(2008)]는 유비소프트의 대표 프랜차이즈 치고는 크게 흥행하지 못했고, 그 때문인지 현재까지 속편은 없는 상태다.

2010년엔 [시간의 모래] 3부작의 왕자를 주인공으로 한 [페르시아의 왕자: 망각의 모래]가 출시되었다. [망각의 모래]는 [시간의 모래]와 [전사의 길] 사이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특이하게도 PS3/PC/Xbox로 출시된 HD 버전과 Wii 버전, PSP 버전, 닌텐도DS 버전의 내용이 각각 다르다. 이미 완결된 스토리에 대한 외전인 만큼 스토리가 충실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게임적인 부분도 실망스러운 점이 많아 판매량도 저조했다.

이외에도 2010년 [시간의 모래]를 배경으로 한 실사 영화가 개봉되었다. 왕자의 분위기를 잘 살린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와 게임에서 튀어나온 듯한 액션 장면,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 과정이 원작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영화도 게임과 같이 3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아쉽게도 현재까지 속편에 대한 소식은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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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도 나온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 게임의 분위기를 실사로 잘 옮겨내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에서의 왕자의 활약

국내에 [페르시아의 왕자]가 처음 소개되었던 것은 당시 게임들이 그랬듯 불법복제를 통해서였다. MS-DOS 버전이 주로 퍼졌으며 디스켓 한 장이면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암호표, 혹은 크랙 되어 많이 퍼져나갔다. 국내의 게이머들 중의 대다수는 이를 통해 [페르시아의 왕자]를 접했을 것이다. 후에 동서게임채널을 통해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되었으며, [페르시아의 왕자2] 역시 비슷했다. [페르시아의 왕자 3D]는 난해한 게임성 때문인지 많이 퍼지지 못했으며 국내에서의 인지도도 낮은 편이다.

국내에 정식으로 출시된 가장 유명한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는 단연 [시간의 모래] 3부작이다. [전사의 길]을 제외한 [시간의 모래]와 [두 개의 왕좌]는 국내에 한글 음성, 한글 자막으로 출시되었으며, 성우들의 열연으로 ‘원작을 초월한 더빙’이라는 평을 들으며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페르시아의 왕자(2008)]도 음성과 자막이 한글화되어 출시되어 게임의 재미 중 하나인 왕자와 공주의 대화를 들으며 즐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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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을 한국어로 들으며 플레이 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시 게이머들에게 큰 축복과도 같았다>


현재로썬 가장 마지막 작품인 [망각의 모래]는 자막만 한글화되어 출시되었으며,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 영화는 2010년 5월 27일에 개봉해 국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갈 정도로 흥행했다.


게이머들의 마음 속에 길이 기억될 ‘왕자’

2010년 ‘망각의 모래’를 끝으로 [페르시아의 왕자]는 지금까지 긴 잠에 빠져있다. 하지만 처음 왕자가 보여준 충격을 게이머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 또는 새로운 왕자를 탄생시킨 ‘유비소프트 몬트리얼’의 새로운 시리즈인 [어쌔신 크리드]의 주인공을 통해 다시금 왕자를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그 시작부터 게임의 그래픽은 물론 게임 방식, 스토리텔링의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위험천만한 모험을 함께하는 게이머들을 열광시켰다. 주인공은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위해 모든 불가능과 장애, 그리고 시간과 싸웠다. 자신의 게임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보아주길 바라던 조던 메크너의 의도대로 게이머들에게 [페르시아의 왕자]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흥미진진한 모험이었다. 지금도 [페르시아의 왕자]는 화려한 액션의 대명사로 기억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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