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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의 MMORPG [마비노기]가 올해로 정식서비스 9주년을 맞이한다. 2002년 처음 공개된 이후, 2004년 정식 서비스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밀레시안(게임 내에서 플레이어를 지칭하는 용어)들이 나오의 인도를 받아 에린에 초대되어 강함을 추구하는 전사가 되거나, 모두에게 멋진 음악을 들려주는 음유시인이 되거나, 옷이나 무기를 만드는 장인이 되거나 하는 등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다.

그러던 중 2013년 8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넥슨의 MMORPG [마비노기]가 동시접속자 수 10만을 달성한 것이다. 이보다 앞선 7월에는 오프라인 행사 ‘판타지 파티’에는 1만 2천명이 넘는 유저를 동원하며, 넥슨에서 개최한 역대 오프라인 행사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한 행사로 기록되었다. 올해 9살이 된 [마비노기]의 선전은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처음보다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지금의 [마비노기]를 있게 한 저력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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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노기]의 마스코트 캐릭터 ‘나오’>



‘소서리안 온라인’이 될 뻔한 [마비노기]

진부할 수도 있지만 [마비노기]를 이야기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면 게임을 만든 ‘데브캣 스튜디오’와 개발자 ‘김동건 본부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마비노기]는 카이스트 연구생으로 재직하며 게임개발을 하다가 2000년 넥슨에 입사한 김동건 본부장의 주도하에 2년여에 걸쳐 개발된 게임이다. 당시 높은 자유도로 유명한 ‘울티마 온라인’을 즐기던 김동건 본부장은 높은 자유도를 토대로 한 ‘한국형 MMORPG’를 제작할 생각이었다. 그는 평소 매력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게임인 ‘소서리안’의 온라인 화를 생각하고 ‘팔콤’으로 찾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당시 온라인게임에 관심이 없던 ‘팔콤’에게 거절당하고 오리지널 세계관을 갖춘 게임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001년 4월, [마비노기]의 개발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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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콤의 대표작인 ’소서리안’. 나중에 정말로 ‘소서리안 온라인’이 등장하긴 했다.>


[마비노기]를 만들었으며 현재는 넥슨의 대표적인 개발 스튜디오가 된 ‘데브캣 스튜디오’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마비노기] 개발 시작과 함께 탄생한 것은 아니었다. [마비노기]의 초기 개발은 소규모 인원으로 결성된 ‘프로젝트 [마비노기]’ 팀에 의해 이루어졌다. 김동건 본부장을 비롯한 개발팀의 출퇴근이 일정치 않았고 밤낮 없이 스케줄을 따라가느라 힘들었다. 온라인게임은 한 번 개발하고 끝이 아니라 지속적인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개발 환경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김동건 본부장은 개발 환경의 개선을 위해 2002년 4월 [마비노기] 프로젝트 팀을 기반으로 개발자를 뜻하는 ‘Developer’와 ‘Created Advanced Technology’의 약자이자 ‘고양이’의 뜻을 가진 영어 단어 ‘CAT’를 합쳐 ‘데브캣(DevCAT) 팀’을 새롭게 결성한다. 개발자로서의 전문성을 지향하면서도 고양이의 친숙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유저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업무시간 동안 집중해서 작업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는 생각에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을 새로운 개발팀의 모토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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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노기]를 즐기는 유저들에게는 익숙할 데브캣의 로고.>



온라인게임의 새로운 비전 ‘생활형 MMORPG’

이렇게 개발된 [마비노기]는 2002년 12월 12일, 현재 지스타의 전신인 KAMEX 2002(카멕스 2002)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당시 온라인게임 계는 ‘리니지’를 필두로 ‘뮤’, ‘레드문’, ‘미르의 전설’ 같은 사냥과 전투에 치중한 MMORPG들이 대세였다. 이후로 한동안 몬스터를 사냥해 레벨을 올리고 더욱 강한 장비를 맞춰서, 다른 유저들과 싸우는 경쟁 위주의 MMORPG가 범람하기에 이른다. 전투와 사냥은 초창기 MMORPG의 공식 같은 것이다.

전투위주의 게임들이 한국 온라인게임 발전에 이바지 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처음에는 모두들 전투형 MMORPG에 열광했다. 너도나도 오로지 강함만을 추구하며 최고가 되기 위해 달려왔다. 강자가 되면 모든 유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 어느 정도 권력을 가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게임을 할 시간이 적어 약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유저들에게는 이런 환경은 하나의 ‘폭력’과도 같았다.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하거나 게임플레이에 제약을 받았으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자의 편에 달라붙어야만 했다. 다른 것을 하려고 해도 할 게 전투 밖에 없었기 때문에 약자에서 벗어나려면 끊임없이 싸우고 남을 밟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유저들은 리니지로 대표되는 전투형 MMORPG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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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의 횡포의 대표적인 예인 ‘사냥터 통제’. 어떤 면에서는 게임을 활성화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같은 비용을 지불함에도 모든 콘텐츠를 즐길 수 없다는 점은 박탈감을 주는 독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 때에 ‘밝은 세상 즐거운 온라인 RPG’를 표방하며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게임이 [마비노기]다. 켈트 신화를 바탕으로 한 독특한 세계관과 카툰렌더링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의 밝고 화사한 그래픽을 선보이며 당시의 어둡고 칙칙한 MMORPG들에 질려가던 많은 게이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경쟁 없는 밝은 세상을 지향한다는, 어쩌면 당시 기준으로 가장 순진하고 바보 같았던 이 게임은 이후 국내 게임시장에 큰 획을 그었다.

유저 앞에 모습을 드러낸 [마비노기]는 확실히 달랐다. 비공개 테스트와 공개 테스트를 거치며 당시 게임들에선 보기 힘든 높은 자유도를 중심으로 차별화된 콘텐츠를 내세웠다. 특히 전투보다는 생활중심의 콘텐츠가 돋보였다. 모르는 사람과의 인연을 만들어주던 캠프파이어와 악기연주, 직업에 구애 받지 않는 자유로운 캐릭터 육성, 나이 및 음식 섭취에 따른 체형 변화, 자신의 업적을 나타낼 수 있는 타이틀 시스템, 아르바이트 등 그 동안의 게임에선 볼 수 없었던 ‘판타지 라이프’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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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노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인 '캠프파이어'.>



마비노기의 역사는 라이브팀의 역사!


“정식서비스가 시작되면 마치 콘솔이나 패키지 RPG와 같은 잘 짜여진 스토리 진행을 기대해도 좋다”
- 김동건 본부장

온라인게임 개발과 서비스 과정을 보면 크게 초기 개발과 운영으로 나뉜다. 개발팀이 짧게는 1~2년, 길게는 3~4년 동안 온라인 게임의 초기 개발을 하고 나서 실제 서비스를 하게 된다. 온라인게임의 특성상 진정한 개발의 시작은 서비스 시작부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을 초기 개발해온 팀들이 이런 모든 과정을 이어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운영과 향후 서비스 방향을 담당하는 ‘라이브 팀’이란 부서를 따로 만들었다. ‘라이브 팀’은 이용자들의 반응을 보고 불편한 상황이나 실제 문제가 있는 부분을 고쳐나간다. 또한 새로운 콘텐츠와 각종 이벤트를 넣어 게임의 흥미를 더욱 불러일으키게 한다.

[마비노기] 역시 ‘라이브 팀’에 의해 서비스 되고 있는 온라인게임이다. 특히 [마비노기]는 다른 게임과 비교했을 때 차별화 되는 점이 있는데 ‘라이브 팀’을 총괄하는 ‘디렉터’들이 유저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약 2년 주기로 바뀌는 디렉터는 그 성향에 따라 게임이 바뀐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게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점은 유저들이 게임에 대한 호평이나 혹평을 할 때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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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노기의 역대 디렉터들. 좌측부터 김동건 본부장, 이희영 본부장, 한재호 팀장, 문성준·조동현 팀장, 황선영 실장.>



‘1대 디렉터’는 바로 게임의 개발자인 김동건 본부장이었다. 정식서비스 이전인 2004년 3월부터 [마비노기]의 게임 서비스와 운영에 대한 전권을 위임 받은 그는, 이후 정식서비스와 함께 시작된 ‘챕터 1 여신강림(이하, C1)’의 개발을 총괄했다. ‘C1’의 다양한 콘텐츠 중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단연 ‘메인스트림 시나리오’였다. 켈트신화를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각색하고 밝고 화사한 게임의 분위기와는 달리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되는 ‘메인스트림 시나리오’는 이후 [마비노기]의 필수요소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또한 그는 게임 속에서 ‘나크’라는 닉네임을 쓰며 유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자신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게임 곳곳에 남겨놨으며, ‘나크’라는 이름을 당시부터 [마비노기]를 즐겨오던 유저들은 물론 이후에 [마비노기]를 즐기게 된 유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가 이끌었던 ‘C1’은 [마비노기] 유저들에게 ‘그 때가 좋았지…’ 하고 회자되는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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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유저들에게 ‘명작’으로 회자되곤 하는 ‘챕터 1 여신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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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볼 수 있는 나크의 흔적들 중 하나. 참고로 ‘나크’는 전 서버를 통틀어 유일한 ‘알비 씰 브레이커’이다.>



마비노기 무료화 선언, 성공을 향한 신의 한수


“챕터3와 함께 마비노기에서 시작할 도전적인 변화들을 지켜봐 달라.”
– 한재호 팀장

‘2대 디렉터’는 김동건 본부장과 함께 [마비노기]의 기획총괄을 담당했던 이희영 본부장이었다. 그는 ‘챕터 2 이리아(이하, C2)’의 개발을 총괄했다. ‘C2’는 기존의 무대였던 ‘에린’의 4~5배 정도 되는 신대륙 ‘이리아’와 이리아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탐험 및 전투 콘텐츠, 새로운 종족 등으로 호평 받았으며, [마비노기]가 최초로 동시접속자 수 4만을 달성하며 메이저 게임으로 도약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마비노기]의 자유도와 ‘탐험’을 부각시키기는 ‘메인스트림 시나리오’의 부재와 ‘C2’의 가장 큰 재미요소인 ‘이리아’ 콘텐츠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점 때문에 유저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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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신대륙 ‘이리아’를 향해 떠나는 유저들. 새로운 모험을 원하는 유저들을 흥분시켰다.>


‘챕터 3 연금술사(이하, C3)’의 개발을 총괄한 ‘3대 디렉터’ 한재호 팀장은 김동건 본부장만큼이나 많은 유저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디렉터다. [마비노기]의 무료화가 이뤄진 ‘C3’는 많은 유저들이 바라왔던 ‘메인스트림 시나리오’의 부활, 새로운 지역인 ‘탈틴’과 ‘타라’, ‘연금술’을 비롯한 ‘와인 제조’, ‘마창 대회’, ‘타라 패션 콘테스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최초로 동시접속자 수 5만을 돌파했다. 특히, 다양한 플레이 방식을 선보였던 ‘그림자 미션’ 콘텐츠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림자 미션’에 밀려 외면 받게 된 기존의 던전 콘텐츠에 대한 개편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무료화를 기점으로 등장한 ‘캐시샵’을 통해 랜덤으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캡슐 아이템’ 때문에 많은 유저들이 마비노기의 ‘흑역사’로 기억하고 있는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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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챕터 3의 최종 보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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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캡슐 아이템을 통해 그동안 초레어 아이템이었던 ‘서큐버스의 옷’이 풀리게 되면서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번의 위기와 또 한번의 재도약!


“항상 유저들은 개발팀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 황선영 실장

‘챕터 4 셰익스피어(이하, C4)’는 문성준 팀장과 조동현 팀장이 공동으로 개발을 맡은 때이다. 게임 콘텐츠와 관련된 부분은 문성준 팀장이, 서비스나 신규 유저 유입 및 정착과 관련된 부분은 조동현 팀장이 담당했다. 특히 문성준 팀장은 실제로 게임을 즐기고 있는 유저로도 알려졌으며 초기에 이뤄진 기존 콘텐츠들에 대한 개편으로 많은 지지를 받았다.

‘C4’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마비노기]에 맞게 각색한 것이 특징이다. 실제 역사적으로 셰익스피어의 베일에 가려 있는 공백기를 활용해 ‘에린에 등장한 최초의 밀레시안’이라는 설정으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이 신선했다. 또한 판타지 파티, 영화 시사회 등의 유저 행사나 7주년 기념으로 진행한 유저 의견 반영 이벤트 등 ‘유저와 함께 한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던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구성력이 떨어지는 ‘메인스트림 시나리오’와 완성도가 떨어진 콘텐츠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지나치게 캐시아이템 판매를 유도하고 게임의 밸런스를 크게 망가뜨린 ‘세공 시스템’은 현재까지도 추가되지 말았어야 할 콘텐츠로 여겨질 정도이다. 이외에도 ‘96시간 점검’을 비롯해 막바지에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은 개발팀에 대한 유저들의 신뢰도가 급격히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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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린에 등장한 셰익스피어의 모습은 유저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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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전설로 남은 96시간 점검과 여전히 말이 많은 세공. 세공의 경우 조금만 더 테스트를 거쳐서 나왔으면 더욱 좋은 콘텐츠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5대 디렉터’인 황선영 실장이 개발을 맡으면서 [마비노기]는 큰 변화를 맞았다.

앞으로도 영원하리라고 생각했던 전투 시스템과 UI, 능력치에 대한 부분을 개편하고, 캐릭터가 성장한 방향을 보여주는 ‘재능’, 독특한 방식의 전투를 보여주는 ‘인형술’과 ‘듀얼건’, 기존의 재능을 영웅을 내세우며 개편한 ‘제로 업데이트’, 새로운 방식의 ‘메인스트림 시나리오’인 ‘드라마’ 등을 선보였다. 또한 인벤토리 플러스 키트와 환생의 무료화, 튜토리얼 개편을 포함한 ‘드림 프로젝트’ 등을 통해 보다 많은 유저들이 [마비노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외에도 ‘판타지파티’를 정기적인 연례행사로 만들었으며 여기서의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며 유저와 함께하는 기부문화를 만들었다. 또한 공식 페이스북을 개설해 각종 소식을 전하거나 유저들과의 소통에 임하고 있다. 특히, 황선영 실장은 개인 SNS를 통해 직접적으로 유저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 감사 차원에서 진행한 이벤트와 관련해 다소 원활하지 못했던 진행이 문제시 되었던 일도 있었지만, 최대한 모든 유저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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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영 실장은 게임 내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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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2천여명의 유저들이 운집했던 ‘2013 판타지파티’, 마비노기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6대 디렉터에는 초기 마비노기 개발에 참여했고, 메이플스토리의 해외 개발팀을 이끌어 온 '김우진' 디렉터가 올랐다. 김우진 디렉터는 '레노베이션'을 통해 근접전투, 궁술, 마법 재능의 개편을 진행했으며, '그린노기', '버그 버스터즈'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통해 마비노기 버그 및 불편점을 개선해 호평받기도 했다. 또, 새로운 메인스트림 '신의 기사단'을 런칭했다. 신의 기사단의 경우, 기존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연출과 개성있는 캐릭터들, 깔끔한 스토리 진행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유저 행사도 더 활발히 진행했다. 2014년 판타지 파티는 유저들이 직접 제작한 마비노기 상품을 판매하거나 코스프레를 하며 즐기는 등 유저참여형 행사로 탈바꿈했다. 2015년에는 메르스 여파로 대규모 유저행사 판타지 파티는 진행하지 못했지만, 2달 동안 '마비노기 판타지 카페'라는 마비노기 유저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기간 중에는 김우진 디렉터를 비롯한 마비노기 주요 개발진이 직접 카페에 방문, 짧게나마 유저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초청 형식의 유저 간담회도 따로 진행됐다. '밀담'을 통해 향후 업데이트 계획을 공개하는 한편, 유저들과 긴 시간 동안 소통해 주목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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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0여명의 유저와 소통한 유저 간담회 '밀.담.'>


하지만 새로운 메인스트림과 함께 추가된 신규 콘텐츠 '사도 레이드'의 밸런싱 문제로 지적 받는 일도 있었고, GM이 유저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특정 커뮤니티 유저들에게 정해진 규정 이상의 혜택을 준 것이 확인돼 논란이 되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오랜 기간 마비노기에 쌓여있던 문제를 꾸준히 개선해나가고 있어, 많은 유저가 2016년 김우진 디렉터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온라인게임 운영의 새로운 실험

[마비노기]는 국내 MMORPG 2세대를 연 게임이다. [마비노기] 이전에는 전투와 경쟁 위주의 게임들이 인기를 끌었지만, [마비노기] 이후에는 전투의 비중을 낮추고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한 ‘생활형 콘텐츠’가 천편일률적인 MMORPG 시장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기존 온라인게임의 특징과는 반대의 개념을 내세운 발상의 전환으로 국산 MMORPG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였다.

여기에 넥슨의 ‘라이브 팀’은 온라인게임에 지속적인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현재 라이브 팀은 게임의 신규 개발팀만큼이나 중요한 조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비노기]의 성공으로 많은 게임들이 ‘라이브 팀’을 조직해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넥슨은 아예 라이브팀 부서를 따로 만들어 다른 게임에도 적용하고 있다. [마비노기] 역시 이러한 라이브 서비스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게임 중 하나다.

전에 없던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낸 ‘초기 개발팀’과 변화하는 유저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온 ‘라이브 팀’의 노력은 [마비노기]가 9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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