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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댄스 레볼루션 최신 기기(2013)의 모습. 넘버링을 떼고 첫 타이틀로 돌아갔다.



DDR VS 펌프, 한국 오락실 최후의 날
댄스 댄스 레볼루션(DanceDanceRevolution, 이하 ‘DDR’)은 일본 코나미 사의 리듬 게임이다. 1998년 첫 출시 이후 현재까지 업소용 (아케이드) 버전, 가정용 콘솔 버전, 모바일 버전 등으로 다양한 시리즈가 발매되었다. DDR의 게임 형식은 음악이 흘러나오면 화면에 표시되는 화살표의 방향과 타이밍에 맞춰 발판을 밟는 쉽고 직관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DDR은 코나미가 제작하고 있는 리듬게임 브랜드인 ‘BEMANI’ 시리즈 중, 국내에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게임 중 하나이다. 1998년 일본 첫 출시 이후 한국, 홍콩, 북미, 유럽 등 다양한 지역에 보급되어 큰 인기를 끌었으며, 한국 대중 가요나 팝송 등의 지역 별 음악이 탑재되기도 하였다.


리듬 게임의 시작, 사이먼에서 파라파 더 래퍼, 그리고 비트매니아까지
리듬 게임, 혹은 음악 게임이라는 장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관점에 따라 논란이 있긴 하지만, 소리에 따라 무언가를 연주한다는 방식은 1978년에 발매된 전자 오락기 ‘Simon’에서 이미 구현되었다. 단순한 형태의 ‘Simon’에서 시작된 리듬 게임은 이후 1980년대를 거치며 이런 저런 회사에서 개량 된 버전이 등장하긴 했지만 불충분 한 하드웨어 여건 때문에 큰 인기를 끌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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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미의 리듬 게임 브랜드인 BEMANI의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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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밀튼 브래들리 社가 발매한 최초의 음악 게임기 Simon


이런 상황에서 1990년대 중반, CD-ROM이 탑재된 콘솔 게임기가 보급되면서 리듬게임은 큰 전환점을 맞는다. 기존 매체에 비해 훨씬 큰 용량을 자랑하던 CD-ROM에 힘입어 더 이상 삑삑대는 구식 음원이 아닌, 진짜 음악을 들으며 리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리고 마침내 리듬 게임의 역사를 바꿀 위대한 게임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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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게임의 역사를 바꾼 [파라파 더 래퍼] 북미판 표지


1996년 당시 막 보급되고 있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파라파 더 래퍼(PaRappa the Rapper)]가 출시된다. 나나온샤가 제작하고,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가 발매한 [파라파 더 래퍼]는 현재 우리가 즐기고 있는 음악게임의 형태를 확립한 기념비적인 게임이다. 고품질의 음악이 흘러나오면 화면에서 제시하는 키를 패드로 입력하는 방식의 [파라파 더 래퍼]는 리듬 게임의 방식을 확립한 선구자로 추앙 받는다.

[파라파 더 래퍼]는 음악뿐 아니라 PS의 3D성능을 이용해 독특한 생김새의 캐릭터가 음악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모습을 구현한 점도 게이머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이용해 [파라파 더 래퍼]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상업적으로도 [파라파 더 래퍼]는 약 15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성공을 거두었고, PS2와 PSP용으로도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파라파 더 래퍼]의 성공은 일본 게임업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코나미도 [파라파 더 래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메탈기어]나 [도키메키 메모리얼] 등을 제작하며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길 좋아하던 코나미에게 리듬 게임은 새로운 가능성이었고, 마침내 걸출한 명작 리듬 게임이 탄생한다. 1997년 [비트매니아(beatmania)]의 등장이다.

비트매니아는 기계 모양부터 독특했다. 일반적인 스틱과 버튼으로 이루어진 다른 오락실 기기와는 달리, 5개의 건반과 턴테이블(레코드 판을 올려놓는 장치)로 구성되어 있었다. 클럽에서 DJ가 쓰는 바로 그 기기를 모방해 오락실용 기기로 내놓은 것이다.

[비트매니아]는 게임의 규칙 자체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이고 단순했다. 화면을 따라 노트가 지시선까지 내려오면 해당 노트에 해당하는 버튼이나 턴 테이블로 입력하면 점수를 얻는 방식이다. 음악에 맞춰 박자에 따라 버튼을 누른다는 [비트매니아]의 게임 방식보다 더 쉽고 원초적인 방식을 찾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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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매니아 IIDX 20 tricoro의 플레이 화면. 매우 직관적인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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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미의 [비트매니아 IIDX 20 tricoro]. 오리지널 [비트매니아]가 5키인데 반해 후속작인 IIDX는 7키로 키가 증가했다. 전체적인 외양은 [비트매니아]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비트매니아]의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게임 방식은 더 없이 간단하지만, 파고 들면 파고 들수록 난이도가 급격히 증가한다는 점이다. ‘배우기는 쉽지만, 통달하긴 어려운(Easy to learn, hard to master)’라는 게임의 절대명제를 정말 잘 만족하고 있었다. 리듬 게임에 막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초보자와 어느 정도 아케이드 실력이 있는 마니아 모두가 만족할 게임성을 갖추고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비트매니아]는 아케이드 게임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어 코나미는 리듬게임을 하나의 브랜드로 정립하기로 마음먹는다. [비트매니아]가 등장한 다음 해인 1998년, 코나미는 또 다른 리듬 게임인 [팝픈뮤직]을 내놓는다. 그리고 [팝픈뮤직]에 이어 등장한 코나미의 3번째 리듬게임 시리즈가 바로 [댄스 댄스 레볼루션]이었다.


오락실에 울려 퍼진 ‘버터플라이’ 대한민국 DDR 열풍
[비트매니아]와 [팝픈뮤직]이 음악에 맞춰 버튼을 눌러 입력하는 방식이었다면, DDR은 상하좌우 화살표가 그려진 발판을 밟아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이 독특한 게임 방식 때문에 DDR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음악에 맞춰 발을 활용해 리듬을 입력하는 게임이라는 것은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혁신적인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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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시작 [댄스 댄스 레볼루션(Dance Dance Revolution)](1998) <출처: 코나미 DDR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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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댄스 레볼루션](2013)의 플레이 화면. 세월은 지났지만 DDR의 기본 스타일은 그대로다.


그냥 기계 앞에 서서 버튼을 누르는 [비트매니아]나 [팝픈뮤직]과는 달리, 발로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춤을 추며 게임을 즐기거나 몸을 360도 회전해 노트를 입력하는 등의 다양한 행동을 보여줄 수 있는 DDR은 춤을 좋아하는 ‘일반인’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자신만의 독특한 플레이를 선보이는 ‘퍼포먼스’라는 말도 이 때 처음 등장했다.

일본을 휩쓴 DDR 열풍은 한국에도 자연스럽게 건너왔다. 마침 일본 대중문화 개방정책이 시행되면서 수많은 일본 게임이 당당하게 한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 DDR은 단연 독보적인 인기였다.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DDR은 최고의 놀이문화였다. 오락실 업주들에게도 1회 최대 천원까지 받을 수 있는 DDR은 비싼 기기가격에도 불구하고 놓칠 수 없는 수입원이었다.

공중파 방송에서까지 DDR이 언급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자 그 동안 침체된 분위기였던 오락실에는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DDR은 물론 비슷한 유사 게임도 오락실에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아예 DDR만 들여놓고 다른 기기는 들여놓지 않는 ‘DDR방’ 등이 생겨나는 등 DDR은 말 그대로 오락실의 절대 군주로 군림했다. 마치 90년대 초반 한국을 강타한 노래방 문화가 재현되는 듯 했다.

이 시기 DDR 덕분에 얻은 긍정적인 효과는 또 있었다. 이전까지 어둡고 퇴폐적인 분위기로 인식되어 있던 오락실의 이미지가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가서 춤추는 건전한 게임을 하는 곳’으로 바뀌어갔던 것이다. 공중파 방송에서도 오락실에서 DDR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방송되고, DDR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곡인 스웨덴 그룹 스마일.dk의 ‘버터플라이’는 말 그대로 모르는 사람이 간첩이었을 정도였으니 오락실의 이미지 재고에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젝스키스, 노바소닉, 듀스 한국 대중 가요의 반격 – 펌프 잇 업
한편, DDR이 인기를 얻자 많은 게임 회사들이 DDR의 ‘짝퉁’을 만들며 인기에 편승하려 했다. 1999년 등장한 안다미로의 ‘펌프 잇 업’도 그 중의 하나였다. ‘펌프 잇 업’은 화살표의 방향이 대각선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DDR의 게임 방식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었다. 기기 자체도 DDR의 그것과 별 차이 없는 모습이었다. 말 그대로 그냥 흔하디 흔한 DDR 짝퉁 게임기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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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 잇 업 익시드(Pump it up EXCEED2)](2004)를 즐기는 스페인 게이머들의 모습. DDR이 북미에서 성공한 반면, 펌프는 중남미권과 유럽에서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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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 잇 업 뉴 제네시스(Pump it up New Xenesis)]의 모습. 미국 플로리다 디즈니 퀘스트 테마파크에 설치되어 있다.


놀랍게도 ‘펌프 잇 업’은 2000년대 초반 큰 인기를 끌면서 ‘원조’인 DDR을 몰아내고 오락실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어떻게 된 일일까? 비결은 노래였다. 한국에서 나온 게임인 만큼, ‘펌프 잇 업’이 당시 유명하던 대중 가요를 다수 확보했다는 점에 있었다. DDR을 즐기던 주 계층이었던 10대 학생 게이머에게 낯선 외국 노래로 구성되어 있던 DDR보다는, 아무래도 자주 듣고 잘 알고 있는 한국 대중 가요로 된 ‘펌프 잇 업’이 더 호감이 가는 대상이었다.

‘펌프 잇 업’은 폼생폼사(젝스키스), 또 다른 진심(노바소닉), 헤어지는 기회(소찬휘), 우리는(듀스) 90년대 한국 가요의 전성기를 수놓았던 주옥 같은 명곡들을 내세워 오락실을 평정했다. 스마일dk의 ‘버터플라이’가 아무리 신나더라도, 한국 유저에게 ‘젝스키스’나 ‘소찬휘’의 인기를 능가할 수는 없었다.

물론 DDR도 손을 놓고 앉아서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한국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DDR 3rd MIX 한국 버전에 당시 인기 있던 이정현이나 백지영의 노래를 넣으며 현지화를 시도했다. 노래는 물론 족보 역시 한국 게이머들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바꿔서 넣을 정도였고, 일부 한국 가요는 일본판에도 실릴 정도였다. 그러나 ‘펌프 잇 업’의 대중 가요 라인업에 비하면 DDR의 한국 가요 라인업은 턱없이 부족했으며, 시기가 좀 지난 인기곡이 들어갔다는 점도 감점 요인이었다.

‘펌프 잇 업’의 단점으로 지적 받던 조악한 게임성도 버전을 거듭해가며 DDR을 무섭게 따라잡기 시작했다. 게임 자체의 개선은 물론, ‘펌프 잇 업’만의 중앙 발판을 활용한 다양한 플레이와 족보가 인기를 끌면서 ‘펌프 잇 업’은 DDR을 내몰고 새로운 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DDR방에 이은 ‘펌프방’이 생겨나면서 전국으로 확산됐을 정도다.

‘펌프 잇 업’의 흥행에 코나미는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 누가 봐도 자사의 DDR 컨셉을 모방한 게임기가 오히려 자사의 게임기를 몰아내고 한국 시장에서 흥행을 일으키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코나미는 예전부터 이런 권리 침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회사였고, ‘펌프 잇 업’을 제작한 안다미로와의 기나긴 법적 공방에 들어간다. 또한, 코나미는 ‘펌프 잇 업’과 유사한 사례인 비트매니아를 모방한 어뮤즈월드의 EZ2DJ와도 법적 공방에 들어가게 된다.


DDR의 몰락! PC방에 밀리다
앞서 언급했던 그대로 DDR과 펌프는 각각 고유의 영역을 구축하며 오락실 붐을 이끌었다. ‘오락실 게임은 한 판에 100원’이라는 터무니 없는 가격이 정석으로 인식되고 있는 시기, DDR과 펌프는 한 판에 1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붙여도 오히려 기기가 부족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두 게임의 인기는 대단했다.

당시 DDR과 펌프 모두 기체가격이 천 만원이 넘어가는 괴물(펌프는 DDR에 대해 가격정책으로도 공세에 나섰다. 펌프가 DDR보다 300~500만원 정도 더 쌌다)이었지만, 짭짤한 수익을 보장해주는 게임기를 들여놓지 않을 업주는 없었다. 절정기에는 억 단위의 비용을 소비하며 펌프와 DDR을 들여놓는 오락실 업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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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R 익스트림(2002) 이후 한동안 아케이드 DDR 신작은 나오지 않게 된다.


그러나 흥행은 오래 가지 못했다. 한 때 사회적 열풍을 불고 올 정도로 강력했던 DDR 바람은 불과 3년만에 사그라졌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대중의 관심이 사그라지자, 코나미는 DDR을 하드코어하게 만들며 마니아 게이머를 노렸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결국 2002년 ‘DDR 레볼루션 익스트림(Revolution Extreme)’를 끝으로 한동안 DDR 신작 기기는 나오지 않게 된다.

한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2000년대 초 한국 오락실은 DDR과 펌프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전 국민이 열광하던 DDR 붐은 순식간에 사그라졌고, 이제 수많은 DDR방과 펌프방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DDR이 하나 둘 오락실에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 자리를 펌프 잇 업이 물려받았지만 그 역시 예전만큼 신통치는 않았다. 대세는 오락실과 DDR이 아닌 PC방과 [리니지]로 대표되는 온라인게임이었고, 한 때 젊은이들의 공간으로 각광받던 오락실은 완전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DDR의 몰락을 시작으로 전국의 수많은 오락실이 문을 닫게 된다. DDR을 즐기던 사람들은 그냥 DDR만 즐기지 다른 게임을 즐기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심지어 DDR을 즐기던 마니아들은 펌프 잇 업에 대해 ‘짝퉁 게임’이라며 비난하고 멸시했으며, 펌프 잇 업을 즐기던 마니아들은 DDR에 대해 ‘한 물 간 퇴물 게임’이라며 맞받아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 그들이 오락실을 떠나자 대한민국 오락실의 운명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DDR이 몰락한 그 이후
일본도 DDR 열풍이 사그라진 이후 아케이드 시장이 침체되며 많은 오락실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일본의 아케이드 시장은 어느 정도 탄탄한 기반이 있었고, 특색 있는 기기의 개발과 네트워크 기능 도입, 고품질 그래픽 등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며 버티기에 성공한다.

코나미 역시 DDR 이후에도 [기타프릭스/드럼매니아] 등 독특한 개념의 리듬 게임기를 내놓으면서 흥행을 이어가는데 성공한다. 마니악하게 흘러가던 리듬 게임을 [유비트]나 [리플렉비트]로 다시 대중 앞에 내세운 것도 빼놓을 수 없다. 2002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던 DDR 아케이드 신버전도 2006년 화려하게 부활해 지금까지 시리즈가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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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코는 ‘태고의 달인’ 시리즈로 새로운 시도를 했고, 좋은 성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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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미의 ‘드럼매니아’ 시리즈도 오락실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사진은 드럼매니아 v8.


그러나 한국은 사정이 달랐다. 90년대 말 혹독한 IMF 구제 금융 사태를 겪으며 아케이드 시장은 이미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DDR 열풍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DDR의 대체재로 들여놓을 만한 일본 최신 아케이드 기기는 너무나 비쌌고, 그런 기기가 한국에서 DDR만큼 흥행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이제 오락실은 진퇴양난에 빠져버렸다.


바다에 빠져버린 대한민국 오락실 최후의 날
PC방에 밀리며 점점 더 많은 오락실이 문을 닫으며 대한민국 아케이드 시장은 구석에 몰리기 시작했고, 결국 해서는 안 될 결정을 하고 만다. 바로 [바다이야기]로 대표되는 아케이드 도박 게임의 등장이다. 일본의 도박기기인 ‘파칭코’를 모방해 아케이드 게임으로 옮겨놓은 [바다이야기]는 이제 오락실의 새로운 수입원이 되었다.

어려움을 겪고 있던 많은 오락실이 [바다이야기]나 아류작인 [황금성] 등의 성인 오락기를 들여놓으며 생존을 모색했고, 영등포 등지의 번화가는 한 블록 전체가 대놓고 이런 성인 오락실로 뒤덮여 있던 시절이었다. 바다이야기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다는 호소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는 정치권 로비 의혹이 돌면서 함께 폭발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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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위 단속에 적발된 불법 사행성 오락실. 상품권과 바다이야기는 대한민국 오락실의 최후를 알리는 조종(弔鐘)이었다.


DDR이 대한민국 오락실의 마지막 불꽃이었다면, 바다이야기는 대한민국 아케이드 산업의 몰락을 알리는 조종이었다. 2006년 시작된 정부의 단속과 검찰의 수사로 바다이야기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이 철퇴를 맞게 된다. 4만 5천여대가 팔린 바다이야기를 제작했던 업체의 간부는 재판 후 실형에 처해졌고, 성인 오락실 업주들도 대부분 처벌받았다. ‘펌프 잇 업’을 만든 안다미로 역시 간부가 사행성 게임 유통과 상품권 관련 의혹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등 혹독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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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이야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2012년 적발된 사행성 불법 게임기를 설명하고 있는 게임위 직원.


많은 오락실이 이 시기에 바다이야기와 연루되어 사라졌으며, DDR과 펌프로 구축했던 건전한 오락실의 이미지는 [바다이야기]로 한 순간에 무너졌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오락실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거 [바다이야기] 돌리는데 아냐?’라는 반응을 보인다. 아케이드 게임 역시 된서리를 맞았다. 한 예로, 멀쩡한 네트워크 기능이 바다이야기의 여파로 한국에서는 적용되지 못하는 기묘한 상황이 몇 년 간 지속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DDR과 펌프를 추억하는 이유
2000년대 초 시작된 코나미와 안다미로, 코나미와 어뮤즈월드 간의 법적 공방은 미묘한 결과로 끝났다. 펌프를 둘러싼 코나미와 안다미로와의 법적 분쟁은 2002년 양 사 화해로 종결되었다. 원천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사들이는 등 안다미로의 적극적인 대응에, 부담을 느낀 코나미가 안다미로에게서 화해금을 받는 형태로 법적 공방은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이미 DDR 열풍이 사그라지고 있던 시점이었다.

코나미와 어뮤즈월드간의 법적 공방은 훨씬 더 오래 끌었다. 2007년, 코나미는 어뮤즈월드의 EZ2DJ의 기판과 화면 효과가 코나미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을 받아냈고 EZ2DJ 판매 금지 및 회수 명령과 함께 막대한 배상금을 받아냈다. 그러나 이미 바다이야기 사태로 인해 한국 아케이드 시장 자체가 죽어버린 상황이었고, 어뮤즈월드 역시 빈사상태에 빠진 지 오래였다. 이후 어뮤즈월드는 EZ2DJ 신작을 ‘패치’ 형식으로 공급하면서 소송의 여파를 피하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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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오락실은 이제 거점마다 특색을 지닌 오락실이 한 두 군데 남아있는 정도로 바뀌고 있다. 사진은 서울 사당 모펀 매장 모습. 리듬 게임기가 가득하다. <출처: 게임어바웃>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많은 동네 오락실이 문을 닫았다. 동네 골목에 있던 오락실은, 이제 대형 극장 등 지역 거점 별로 오락실이 한 두 개 있는 형태로 재편되었다. 아직 남아 있는 오락실은 각자 특색을 갖추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인기 게임 [철권] 시리즈로 오락실 전체를 채우거나, 일반인(?)을 노리고 인형뽑기나 커플을 위한 체감 게임 등을 많이 들여놓는 식이다.

비록 DDR은 시장에서 사라졌지만, 리듬 게임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후에도 코나미의 [드럼매니아]나 남코의 [태고의 달인]이 들어와 성과를 거뒀고, DDR 초창기부터 코나미 리듬 게임을 들여오던 유니아나는 최근 [유비트]와 [리플렉 비트], [사운드 볼텍스], [비트매니아 IIDX 20 트리코로] 등 코나미 리듬 게임 신작을 잇따라 발매하며 다시 한 번 흥행을 노리고 있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을 산 많은 게이머들이 그 당시의 오락실을 회상하며 아쉬워한다. 어두침침한 지하실에 있는 불량한 분위기로 인식되던 오락실이, 신촌 번화가 한 가운데 널찍하고 밝은 매장 안에 많은 연인과 학생들이 모여 재미있게 게임을 즐기던 곳으로 변화하던 그 시기를 말이다 그 ‘좋았던 한 시절’의 중심에 DDR과 펌프가 있었고, 세기말 대한민국 아케이드 센터를 기억하던 모든 게이머들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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