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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전 세계를 충격 속에 빠뜨린 [하프라이프2]. ‘하프라이프’ 시리즈는 게임업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시작은 좀 당황스러웠다. MIT 신출내기 박사 ‘고든 프리맨’은 오늘도 그의 직장인 블랙매사 연구소로 출근한다. 출근길 열차 창문 밖으로 낯익은 풍경들이 스쳐 지나간다. 연구소에 도착하자 경비원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동료 연구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상사의 짜증나는 잔소리도 여전하다. 오프닝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주인공의 일상을 담담한 시각으로 따라간다. 괴기스러운 분위기도 없고, 악당과 살육전을 펼치지도 않는다. 이쯤 되면 플레이어는 좀 당황스러워 진다. 샷건을 들고 신나게 괴물과 맞장 떠야하는데, 이건 너무 심심하다! 그렇다고 이 지겨운 오프닝을 ‘스킵’해 버릴 수도 없다.

주인공은 어떤 기괴한 물질을 분석하는 실험을 맡았다. 실험복을 입고 물질을 분석기에 넣으려는 찰나 어딘가에서 폭발음이 들린다. 연구소는 이내 불길로 뒤덮이고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고막을 찢는다. 이때부터 게임의 분위기는 180도 변한다. 어떤 다른 차원에서 돌연변이 괴물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공격당한 사람들은 흉측한 괴물로 변해 서로를 뜯어먹는다. 구조하러 들어온 군인들조차 오히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연구원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평화스러운 일상이 한 순간에 끔찍한 지옥으로 바뀐다. 자신의 몸을 방어할 유일한 무기는 쇠꼬챙이 하나뿐. 이제 살아남기 위한 주인공의 사투가 시작된다. 21세기 게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하프라이프’ 시리즈, 그 시작은 이만큼 충격적이었다.


FPS 시장의 격동기!
필자는 FPS 역사에서 결정적인 게임을 고르라면 id소프트의 [둠]과 [하프라이프]를 꼽는다. 둠은 FPS 장르를 낳은 원조격 작품이고 [하프라이프]는 FPS를 대중적으로 정착시킨 게임이다. [둠]이 장르의 씨앗을 뿌렸다면, [하프라이프]는 화려한 열매를 맺었다. 1993년 [둠]의 등장으로 FPS 장르는 격동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새 타이틀이 나올 정도로 많은 게임들이 쏟아졌다. 당시 FPS는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한 장르였다. 때문에 실력 좀 있다는 게임사들은 대부분 FPS 만들기에 혈안이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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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 [퀘이크]의 대항마로 나왔던 언리얼 시리즈. 90년대 FPS시장의 한 축을 담당했다.


90년대 FPS시장은 마치 수많은 고수들이 모여있는 ‘중원무림’을 연상케 한다. 당시 FPS의 대권은 [울펜슈타인3D]와 [둠]을 만든 id소프트가 쥐고 있었다. 천재 개발자 ‘존 카맥’이 이끈 id소프트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FPS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그 뒤를 이어 언리얼 개발사 ‘에픽게임즈’가 도전장을 냈다. 에픽게임즈는 ‘언리얼’ 시리즈로 [둠]과는 다른 느낌의 액션을 표현했다. 그러자 id소프트는 [둠]에 이어 [퀘이크]를 내놓고 중원 최강자의 자리에 쐐기를 박았다. 당시 개발자들 사이에선 ‘퀘이크 엔진 VS 언리얼 엔진’의 품질논쟁이 한창이었다. 이밖에 한 시대를 풍미한 독특한 FPS게임들도 속속 등장했다. FPS와 비행슈팅을 접목한 [디센트], 중세판타지 배경의 칼싸움 게임 [헥센], 유쾌한 풍자와 성인유머가 돋보인 [듀크뉴켐], 테러진압 부대의 활약상을 담은 [레인보우 식스] 등 개성적인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바야흐로 FPS 시대의 르네상스였다. [하프라이프]는 이런 FPS 전성기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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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S 르네상스를 풍미했던 [레인보우식스](좌), [듀크뉴켐](우).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하버드 출신 엘리트, 게임의 ‘구원’을 받다
세계 게임시장의 지축을 흔든 [하프라이프]는 당시 무명의 개발사에 불과했던 ‘밸브 코퍼레이션’에 의해 탄생했다. 밸브를 창업한 ‘게이브 뉴웰’ 대표는 전형적인 미국 엘리트 출신 개발자다. 그는 [하프라이프], [카운터스트라이크], [포털] 등 밸브 게임들을 총괄 개발해 왔다. PC게임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팀’을 구축해 전 세계 게임시장의 지형을 바꾸어 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지금은 게임업계 큰손으로 불리고 있지만, 사실 그는 젊었을 적만 해도 게임을 별로 즐기지 않았다고 한다. 하버드대에 입학한 그는 도중에 학교를 그만두고,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해 프로그래머로 근무했다. 13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근무하면서도 게임에 대해선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게임’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게 해준 사건이 왔다.

어느 날 그는 ‘둠’이란 게임을 윈도우용으로 포팅 하는 작업을 맡게 됐다. FPS ‘둠’은 당대 최고의 게임이자, 각종 논란거리를 빚어온 문제작이기도 했다. FPS의 전성기를 열은 동시에 폭력성 때문에 사회적 지탄을 받은 작품이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95를 시작으로 PC환경을 윈도우 체제로 바꾸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게임은 윈도우의 성능을 알리는 결정적인 무기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도스용 인기게임을 윈도우로 포팅 하는데 정성을 쏟았다. 당연히 ‘둠’이 빠질 순 없었다. ‘게이브 뉴웰’은 둠의 윈도우 포팅 작업을 하면서 게임에 매료됐다. 그는 둠을 만든 ‘존 카맥’과 교류하면서 게임이란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됐다고 한다. 존 카맥의 자유로운 개발정신과 게임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은 딱딱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을 발견한 것이다.

1996년, ‘게이브 뉴웰’은 13년 동안 몸 담았던 마이크로소프트를 그만두고 ‘밸브 코퍼레이션’이라는 게임회사를 차렸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선망의 직장이었다. 이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한다는 건 보통 용기로는 힘들었다. 하지만 게임에 인생을 걸어보기로 한 그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그는 ‘퀘이크1 엔진’을 개량해 ‘골드소스 엔진’을 만들었다. [하프라이프]는 골드소스 엔진으로 만든 첫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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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브 코퍼레이션 창립자 ‘게이브 뉴웰’. 하버드 엘리트 출신인 그는 둠을 만든 존 카맥을 만나고 난 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게임개발사를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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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브는 첫 작품인 [하프라이프]부터 대박을 쳤다. 참으로 복 받은 개발사다.


기술만능시대, 서사로 접근하다
신생회사 밸브에게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게 없었다. 당시 미국 게임 산업은 최고의 천재들과 혁신적인 기업들의 각축장이었다. 이 중에서 FPS 분야는 최고의 기술이 응집된 그야말로 최고의 시장이었다. 자체개발 엔진 정도는 기본으로 둬야만 명함을 내밀 수 있었다. 기술력의 진보는 곧 시장의 발전을 가져왔다. 모든 첨단 기술은 가장 먼저 FPS 게임에 적용됐다. FPS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의 척도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오히려 유저들에게 피로감을 주었다. 사실적인 물리엔진과 현란한 그래픽에 압도됐지만, 게임이 끝나면 남는 게 없었다. 하나같이 람보처럼 우락부락한 주인공이 나와 신나게 나쁜 놈들을 도륙 내다보면 어느새 게임이 끝난다. 오프닝은 화려하고 엔딩은 허무함의 극치를 달렸다. 기술력을 뽐낼 줄만 알았지, 그것을 이야기에 녹이는 방법을 몰랐다. 이것이 당시 FPS들의 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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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브는 어드벤처 명가 ‘시에라’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하프라이프]의 서사를 완성했다.


밸브는 이런 한계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그래서 깊이 있는 스토리를 게임에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스토리를 만드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기술자들이 모여 있는 밸브 자신들 또한 스토리를 만드는데 능숙하지 못했다. 밸브는 스토리에 정통한 회사와 합작하기로 했다. 이렇게 만난 회사가 ‘시에라 엔터테인먼트’다. ‘시에라’는 [킹스퀘스트], [레저슈트레리], [가브리엘나이트] 등 80년대 어드벤처게임 시대를 이끌었던 장본인이다. 비록 어드벤처의 인기가 한풀 꺾였지만, 그래도 감동적인 스토리는 여전히 게이머들의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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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던 연구실이 한 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주인공에게 주어진 무기는 쇠꼬챙이 하나뿐.


밸브의 제안에 시에라도 선뜻 응했다. 당시 시에라는 어드벤처의 어머니라 불리는 ‘로베르타 윌리엄스’가 회사를 떠나고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어드벤처 시대가 저물면서 시에라 또한 한물간 개발사 취급당했다. 시에라는 하프라이프의 유통을 맡고 본격적인 공동개발에 참여했다. 시에라가 작품에 참여하면서 [하프라이프]는 스토리 위주의 게임으로 재창조됐다. 1인칭 슈팅이라는 기본 틀은 유지하고, 여기에 심오한 스토리와 드라마적 연출, 그리고 캐릭터간의 상호작용을 집어넣어 멋진 게임을 만들어 냈다. 텍스트나 동영상이 아닌, 상황전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연출에도 신경을 썼다. 밸브의 기술력에 시에라의 스토리를 입은 [하프라이프]는 전에 없는 새로운 게임이 되어 있었다.

1998년 출시된 [하프라이프]는 업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술력이 뛰어나고 그래픽이 멋져서가 아니다. 다른 FPS에선 없는 이야기의 재미가 [하프라이프]에는 있었다. 처음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평론가들도 게임을 하고 난 뒤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시에라와 밸브의 합작은 게임 역사상 가장 완벽한 컬래버레이션 사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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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레벨디자인. 후반부로 갈수록 게임의 스케일은 훨씬 커진다.


최초의 WASD방식, 조작의 혁신을 가져오다
[하프라이프]는 <W>,<A>,<S>,<D>의 조작체계를 확립한 게임이다. [하프라이프]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FPS의 조작법은 불편했다. FPS는 시뮬레이션처럼 느긋하게 생각할 겨를 없이 순간적인 순발력에 의지해 게임을 조작해야 한다. 때문에 조작법이 복잡하거나 불편하면 아무리 좋은 게임도 ‘그림의 떡’일 뿐이다. 조작법을 보다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 당시 FPS의 숙제였다. 이것은 FPS시장의 명운을 결정짓는 근본적인 고민이었다.

1세대 FPS [울펜슈타인]나 [둠]에서는 오직 키보드만 사용됐다. 이때는 마우스라는 입력장치가 보편화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2세대 FPS [퀘이크]와 [언리얼]에선 마우스와 키보드를 함께 사용하는 조작방식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게임마다 설정된 키가 달라서 유저들이 혼란스러워 했다. 퀘이크2만 해도 ‘←,→,↑,↓’ 방향키가 기본으로 설정되어 있다. 밸브는 FPS에서 가장 효율적인 키 조작 체계를 찾았다. 그리고 얻은 결론이 <W,A,S,D> 방식이다. ‘하프라이프’부터 선보인 <W,A,S,D> 이동방식은 이후 FPS 조작의 표준이 됐다. 중구난방 이었던 FPS의 조작 체계를 하나로 확립 시킨 것이다. [하프라이프] 이후 모든 FPS게임의 기본 조작은 <WASD>로 통일됐다.


개방적 마인드, 밸브의 대인배적 결단
더 나아가 밸브는 대인배적인 결단을 내린다. 아예 게임 레벨 에디터를 유저들에게 공개해 버린 것이다. 레벨 에디터는 게임 맵을 직접 디자인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레벨 에디터 권리는 개발자들만 가지고 있었다. 게임 디자이너가 게임을 디자인하고, 유저들은 이를 플레이하면 된다. 그런데 밸브는 개발자만의 권한을 미련 없이 유저들에게 줘버렸다. 유저들은 에디터 프로그램을 사용해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각양각색의 모드를 만들어, 인터넷에서 공유했다. 이중 일부 모드는 하프라이프 패키지에 포함되어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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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라이프]의 모드로 제작된 [카운터스트라이크]. 2000년대 이후 온라인 FPS 게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하프라이프] 모드 중 대표적인 성공작이 불세출의 게임 [카운터스트라이크]다. [카운터스트라이크]는 폭탄을 설치하는 테러리스트와 이를 진압하는 특수부대간의 전투를 다룬 모드게임이다. 게임은 공개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밸브는 카운터스트라이크 개발팀을 스카우트 해 정식 상용화 모드로 따로 출시했다. [카운터스트라이크]는 사실상 2000년대 이후 FPS의 변화를 가져온 작품이다. 카스 이전의 FPS게임들은 마니아적인 성향이 강했다. FPS를 하려면 조작에 능숙하고, 컴퓨터 사양도 받쳐줘야 했다. 그러나 카스 이후 FPS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장르로 자리 잡았다. 카스 열풍은 미국을 넘어 중국, 한국 등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다. 초창기 국내 PC방에도 [스타크래프트] 다음으로 [카운터스트라이크]가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카운터스트라이크]는 개발사와 유저들이 함께 만든 가장 이상적인 게임이다. 물론 개발 툴을 아낌없이 공개하는 개방적인 마인드는 이후 미국 게임시장의 하나의 주류로 정착했다. 블리자드도 [워크래프트3] 모드 개발 툴을 공개하면서, [리그오브레전드]라는 불세출의 게임이 나오지 않았는가. 개발의 일부를 유저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더 창의적인 콘텐츠가 나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렇듯 미국게임의 개방성은 플랫폼 위주의 폐쇄성으로 일관한 일본게임을 앞지르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다.


카스 온라인, 신세계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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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이 서비스 중인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2]. [하프라이프]의 모드로 시작해 지금은 대작 온라인게임으로 자리 잡았다.


참으로 게임의 운명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다. [하프라이프]의 모드로 출발한 [카운터스트라이크]의 인기를 그칠 줄 몰랐다. 밸브는 [카운터스트라이크]가 생각보다 훨씬 큰 그릇임을 알아차렸다. 바로 온라인게임으로의 가능성이다. 시에라와 합작해 게임에 스토리를 입혀준 것처럼, [카운터스트라이크]에 온라인의 옷을 입혀줄 회사를 찾았다. 그들은 한국에서 강력한 ‘온라인게임 제국’을 형성한 넥슨과 손을 잡았다. 밸브와 넥슨은 [카운터스트라이크]를 온라인에 최적화된 게임으로 만들었다. 넥슨의 온라인 기술력이 보태지면서 완벽한 온라인 게임으로 다시 태어났다.

당시 한국은 [스페셜포스], [서든어택]같은 온라인 FPS가 인기였다. 여기에 정통의 강호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까지 가세하면서 대한민국은 온라인 FPS게임의 전성기를 이룬다. 한국의 FPS 인기는 중국에도 영향을 주었다.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은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온라인게임으로써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했다. 원작인 [하프라이프] CD가 유저들의 서랍 속 깊숙한 곳으로 밀려났을 때도, [카운터스트라이크]는 인터넷의 광활한 공간에서 마음껏 활개를 치고 있다. 최근에는 넥슨이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2]를 개발하면서 또 한번의 날갯짓을 준비하고 있다.


21세기를 점령한 하프라이프 군단
1998년 11월 출시된 [하프라이프]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흥행과 함께 전문가들의 평가 또한 극찬 일색이었다. 전세계 나라에서 ‘올해의 게임상’만 50여개 이상을 받았다. 특히 게임 디자인 면에선 상대할 게임이 없을 정도로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프라이프]는 전 세계 800만장 이상이 팔리며 FPS시장의 독보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게임 하나의 인기로 끝나지 않았다. [하프라이프: 어포징포스], [하프라이프: 블루쉬프트] 같은 확장팩과 [카운터스트라이크], [팀 포트리스], [데스매치], [리코쳇], [데이오브디피트] 같은 모드들이 줄줄이 나왔다. 이렇게 나온 게임들은 하나하나가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하프라이프]가 배출한 막강한 게임군단은 2000년대 이후 FPS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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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라이프]의 정식 확장팩 [어포징포스]와 [블루시프트].


[하프라이프2]의 충격! 캐릭터가 살아있네~~

“한편으로는 굳이 새로운 방법을 또 찾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죠. 그러나 게임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선 기존의 모든 것들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고, 이게 얼마나 힘들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요.”
-[하프라이프2] 프로그래머 로빈 워커

나는 2003년 E3 전시장에서 [하프라이프2]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필자의 게임인생 중 가장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당시 밸브는 별다른 홍보 없이 작은 상영관을 만들어 조용히 [하프라이프2]를 공개했다. 그러나 막상 공개된 게임은 충격과 놀라움이었다. “이건 게임이 아니다! 현실 그 자체다!” 마치 실제 세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게임은 사실적이었다. 그 해 E3는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다. [하프라이프2] 하나 본 것만 해도 이미 본전은 뺐다. 지금도 필자처럼 2003년 E3의 충격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하프라이프2]에 대한 기대는 눈덩이처럼 쌓였다. 얼마나 기대가 컸으면 해커가 게임 데모버전을 빼돌려 유출시킨 사건도 발생했다. 재미 있는 건 ‘게이브 뉴웰’ 사장이 해커를 스카우트한다는 명목으로 유인(?)해 경찰에 넘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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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역사를 한 차원 상승시킨 [하프라이프2]. 2003년 E3 전시장에서 공개된 2편의 시연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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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의 여주인공 알릭스 벤스. 처음 그녀를 보고 진짜 사람이 나오는 줄 착각했었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하프라이프2]는 2004년 11월 발매됐다. 견고한 게임디자인과 깊이 있는 스토리는 전작을 능가했다. 특히 그래픽의 디테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캐릭터의 얼굴과 표정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카메라의 움직임에 따라 캐릭터의 시선이 바뀌는 연출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했다. 몬스터의 움직임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구현되었고, 전투의 리얼리티도 살렸다. 솔직히 [하프라이프2] 그래픽은 10년 전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요즘 게임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것이야 말로 한 시대를 넘어 두 시대, 세 시대를 앞서가는 게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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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라이프2] 기술력의 정점을 보여주는 중력총. 주변 사물을 들어 올려 던지는 혁신적인 무기다.


단순히 그래픽만 좋은 게 아니다. [하프라이프2]의 결정적인 매력은 완벽한 물리엔진에 있다. 특히 중력장을 이용해 주변 물건을 들어 올려 던지는 중력총은 밸브의 기술력의 정점을 보여준다(심심할 때 중력총으로 물건을 쌓아올리는 놀이도 하곤 했다). [하프라이프2]는 완벽히 한글화 되어 국내 발매됐다. 국내 유명성우를 기용해 캐릭터의 음성을 모두 한국어로 더빙했다. [하프라이프2]는 전 세계 1,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전작의 흥행기록을 갈아치웠다. 또, 같은 해 출시된 [둠3]의 인기마저 눌러버렸다. 사실 [둠]은 [하프라이프]에 영감을 준 스승과 같은 게임이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둠3]는 흥행이나 재미 면에서 [하프라이프2]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2006년 확장팩 개념인 [하프라이프2: 에피소드2]가 발매됐고, 시리즈의 완결편인 ‘에피소드3’는 아직 개발 중에 있다(에피소드3 발매가 차일피일 늦어지자, 유저들이 밸브 회사를 찾아가 시위를 벌이는 일도 있었다).


언론이 통제당한 암울한 미래를 풍자
[하프라이프2]의 백미는 역시 스토리다. 2편의 배경은 전작의 20년 후다. 그 동안 동면상태에 있던 주인공 ‘고든 프리맨’이 지구인 저항군에 가세하면서 게임이 시작된다. 게임은 외계인에게 점령당한 지구의 암울한 미래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2편부터는 흥미로운 스토리와 함께 사회비판적 요소도 가미했다. 지구를 지배하는 외계생명체는 콤바인이라 불리는데, 그들은 엄청난 과학기술과 유전공학기술을 앞세워 지구를 지배한다. 이들이 지구인을 통솔하는데 사용하는 도구는 ‘군대’와 ‘미디어’다.

반역자 ‘월라스 브린’은 지구를 콤바인에게 바칠 계획을 착실하게 수행한다. 그가 가장먼저 한 일이 바로 미디어 점령이다. 브린은 신문, 텔레비전 등의 모든 언론매체를 검열하고 그 내용을 조작했다. 그는 방송을 통해 “인류와 콤바인이 조화되는 기간 동안 그 어떤 마찰도 일으켜서는 안 되며 우주 연합에 가입하기 위해선 어떠한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연일 울려대는 미디어의 위력에 인간들은 점차 브린과 콤바인을 믿게 되고 서서히 노예화되기 시작한다. 마치 2차세계 대전 독일 나치의 괴벨스 선동과 비슷한 장면을 연출한다.

1편의 오프닝은 주인공의 편안한 일상에서 시작하지만, 2편은 미디어를 통해 온갖 선동이 울려 퍼지는 도시 한복판에서 시작한다. 플레이어는 게임 하는 내내 “나약한 지구가 우주연합에 들어가려면, 콤바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반역자 브린의 연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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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은 사회비판적인 내용이 강하다. 인간은 군대의 폭력과 조작된 언론매체를 끊임없이 접하며 스스로 외계인의 노예가 되어 간다.


[하프라이프]가 남긴 위대한 유산들
한번 가정을 해보자. 만약 [하프라이프]가 아니었다면 [카운터스트라이크]같은 모드가 나올 수 있었을까? 카스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온라인 FPS 시대가 올 수 있었을까? 만약 [하프라이프]가 없었다면 밸브의 ‘소스엔진’이 개발될 수 있었을까? 소스엔진이 없었다면, [마비노기 영웅전]같은 MMORPG가 나올 수 있었을까? 만약 [하프라이프]가 없었다면 <WASD>조작방식이 확립될 수 있었을까? <WASD>조작방식이 아니었다면, FPS가 지금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만약 [하프라이프]가 없다면...’으로 시작되는 그 어떤 질문에도 ‘예!’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만큼 [하프라이프] 없는 게임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게임의 인생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한 시대를 멋지게 풍미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다음 세대에게 남길 유산까지 챙겨주는 게임도 있다. [하프라이프]는 후자의 경우다. 20세기 끝자락에 발매된 [하프라이프]는 21세기 게임시장에 많은 것을 남겼다. FPS의 ‘기술’, ‘서사’, ‘연출’ 같은 모든 흐름들은 [하프라이프]가 짜놓은 방식대로 흘러갔다. [하프라이프]는 구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열어젖힌 선구자적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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