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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하자드] 좀비. 첫 등장씬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68년 조지 A.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전 세계 호러 마니아들을 매혹시켰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는 역사상 가장 혐오스러우면서도,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로 각광받았다. 때로 몰려다니며 인간들을 사냥하는 장면은 그 자체가 한편의 지옥도를 연상케 할 만큼 참혹하다. 육신을 게걸스럽게 뜯어먹는 좀비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탐욕을 발견하기도 한다. 좀비는 수많은 영화에 단골소재로 등장하면서 B급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 후 80년대는 좀비 호러물의 전성기였다.

1990년대 중반, 이번엔 영화에 이어 게임에서도 좀비 쇼크가 시작됐다. [바이오하자드]에서 첫 좀비 등장씬은 영화에서 보여준 충격과 공포, 그 이상이었다. 좀비견 켈베로스가 창문을 깨고 뛰어 들어온 장면에서 게이머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예쁘고 착한 게임은 개나 줘버리라는 듯 화면 곳곳에 피갑 칠을 해댔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게임을 다시보기 시작했다. “웃음, 재미, 감동을 넘어 게임에서 공포까지 경험할 수 있구나!” 지금껏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이었다. [바이오하자드]는 이제는 엄연한 게임장르로 정착한 ‘호러게임’ 시대를 연 원조다. 그러나 처음 나올 당시만 해도 폭력이 난무하는 저질 게임이라 비난 받았다. [바이오하자드]가 그 시대 고정관념을 깨고 어떻게 대작에 반열에 올랐는지 시간을 돌려 알아보자.


[스트리트파이터2]의 황혼, 대체게임을 찾아라!
90년대 초반, 일본 게임사 캡콤은 [스트리트파이터2]로 전 세계 오락실을 평정했다. 그러나 천하의 [스트리트파이터2]도 세월의 무게를 이길 수 없었다. [버추어파이터], [킹오브파이터즈] 등 쟁쟁한 라이벌들이 등장하면서 서서히 힘이 빠지고 있었다. 환경도 변했다. 90년대 중반 가정용 게임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장은 완전히 바뀌었다. [스트리트파이터2] 하나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캡콤은 [스트리트파이터2]의 인기를 이을만한 킬러타이틀을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그러던 중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괴물 게임기가 등장했다. 강력한 성능의 플레이스테이션은 게임사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보였다. 플레이스테이션의 가세로 세계 게임시장은 ‘닌텐도’, ‘세가’, ‘소니’의 삼파전으로 재편됐다. 캡콤은 가정용게임 데뷔작으로 플레이스테이션을 선택했다. 남은 건 어떤 콘텐츠를 만드느냐다. 그러나 신작 개발은 쉽지 않았다. 오락실과는 달리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는 새로운 강자들이 버티고 있었다. 이때는 ‘스퀘어’, ‘에닉스’, ‘코나미’ 같은 게임사들이 대작게임을 쏟아내고 있던 시절이었다. [파이널판타지], [드래곤퀘스트], [메탈기어솔리드] 등 당대 최고의 명작들이 이 시기 경합을 펼쳤다. 아케이드 시장을 석권한 캡콤도 가정용 비디오게임에서는 수많은 도전자 중 하나에 불과했다.

캡콤은 완전 다른 장르의 게임을 구상하기로 했다. 조작이 복잡하고 플레이타임이 짧은 격투게임보다 스토리와 퍼즐이 가미된 어드벤처게임으로 가닥을 잡았다. 캡콤은 [스트리트파이터2]를 만든 ‘오카모토 요시키’ 프로듀서에게 신작 프로젝트를 맡겼다(오카모토 요시키 프로듀서에 관해선 [스트리트파이터2]편에 자세히 나와 있다). 캡콤의 핵심인력이 다 투입됐지만, 신규 프로젝트는 그리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처음 그림을 그리는 일과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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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하자드]의 창시자 미카미 신지(왼쪽)는 디즈니 만화를 게임으로 만드는 일을 했다. 그의 첫 작품 [알라딘](오른쪽).


미카미 신지가 구상한 서바이벌 호러게임
그러던 중 한 직원이 회사를 깜짝 놀라게 할 아이디어를 들고 나왔다. 그가 바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창시자 미카미 신지다. 그는 캡콤에 입한 한 후 첫 작품으로 디즈니 만화를 소재로 한 [알라딘]을 만들었다. 이후 그는 만화를 소재로 한 아동용 캐주얼 게임을 주로 맡았다. 건전한 캐주얼 게임을 개발한 그가 희대의 호러게임을 구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동료 직원들조차 모르고 있었다. 신규 프로젝트 팀에 참여한 그는 ‘서바이벌 호러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제안했다. 주인공이 좀비와 사투를 펼치며 저택에서 탈출하는 게임이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반대에 부딪혔다. [스트리트파이터2] 같은 2D게임에 익숙한 캡콤은 검증도 안 된 3D어드벤처게임에 거부감을 보였다. 프로젝트를 총괄한 ‘오카모토 요시키’ 자신도 미카미가 내놓은 제안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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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산 B급 게임으로 출시된 [바이오하자드].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미카미 신지’는 회사 경영진들을 설득했고, 일단 1편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대신 개발비나 홍보예산이 확 줄었다. 저예산 B급게임으로 출발한 것이다. 그는 공포영화에서 연출된 다양한 클리셰들을 게임에 도입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저택에 갇혀 좀비와 사투를 벌인다든지, 좀비견이 창문을 깨고 들이닥쳐 게이머를 놀라게 한다든지, 혐오스러운 변종괴물들이 집요하게 따라오는 연출들은 80년대 공포영화에서 많이 봐왔던 장면들이다. 특히 폐쇄공간의 공포를 극단적으로 표현했다. 매력적인 남녀 주인공과 멋진 악당캐릭터를 등장시켜 스토리의 완성도를 더했다. 게임 곳곳에 설치된 함정과 퍼즐은 플레이어에게 깊이 있는 사고를 요구했다. 이렇게 완성된 게임은 제법 근사한 호러게임의 모습을 갖췄다. RPG와 어드벤처, 그리고 액션게임의 요소를 합쳐, 전에 없던 게임이 탄생됐다.


충격의 오프닝 논란
1996년 캡콤은 [바이오하자드]라는 이름의 호러 어드벤처게임을 발표했다. 크게 기대하는 타이틀이 아니라서 초반에는 소량으로 출시됐다. 개발사인 캡콤도 [바이오하자드]를 간판타이틀로 인정하진 않았다. [바이오하자드]는 출시되자마자 충격적인 오프닝 영상이 화제가 됐다. 무명배우를 기용해 찍은 오프닝 영상은(제작비 때문에) B급호러물의 느낌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좀비견들이 인육을 뜯어먹는 장면부터 절단된 신체부위, 피범벅이 된 화면은 웬만한 슬래셔 무비를 능가하는 잔혹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일부 국가 버전에선 잔혹한 부분이 삭제되거나 흑백 처리되어 출시되기도 했다. 오죽하면 일본에서조차 오프닝의 몇 장면이 삭제된 버전으로 출시됐을까. [바이오하자드] 오프닝은 사회적으로도 논란을 일으켰다. 플레이스테이션은 가정용 게임기다. 가족이 함께 하는 게임에 이런 잔인한 장면이 나온 다는 건 당시 시대관념에선 상상할 수 없었다. 착한 판타지 게임에 익숙한 유저들에게 [바이오하자드]의 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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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하자드]의 오프닝. 잔인한 장면 때문에 유럽에서는 화면을 흑백 처리하거나 문제 장면을 삭제한 버전이 유통되기도 했다.

몇몇 평론가들은 자극적인 비주얼로 조악한 게임성을 만회하려는 졸작이라는 평가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이러한 세인들의 호들갑을 비웃기라도 하듯 [바이오하자드]는 출시되자마자 입소문을 타더니 그 해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을 올려 밀리언셀러를 달성했다. 처음에 호기심으로 게임을 했던 사람들은 깊이 있는 게임성에 몰입됐다. B급 게임으로 치부되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뻔했던 게임이 개발자의 도전정신으로 최고의 걸작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바이오하자드]는 호러게임의 대명사로 확실히 각인됐고, 감독판까지 합쳐 880만장이 팔렸다. 여담이지만 [바이오하자드]는 미국에서 ‘레지던트 이블’이라는 생뚱맞은 제목으로 출시됐다. 동명의 록그룹 [바이오하자드]가 상표권을 등록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제목을 붙여야 했다. 하지만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레지던트 이블’은 영화로 제작됐다. 영화의 흥행으로 현재는 [바이오하자드]보다는 ‘레지던트 이블’이란 제목으로 더 알려져 있다.


좀비들의 파티, 화려한 전성기
1998년 출시된 [바이오하자드2]는 호러게임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2편부터는 조악한 B급 게임이 아니었다. 1편의 엄청난 성공으로 [바이오하자드]는 캡콤의 간판타이틀로 자리매김 했다. 특히 좀비영화의 원조 ‘조지 A 로메로’ 감독이 [바이오하자드2] CF 작업을 맡아 발매 전부터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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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하자드2]부터 시리즈의 전성기가 왔다. 2편은 ‘레온’과 ‘클레어’의 시점이 교차되는 재핑 시스템으로 인기를 끌었다.

게임은 전작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스케일이 커졌다. B급 호러의 분위기가 강했던 전작과는 달리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능가할 정도. 전작의 배경을 저택으로 한정 지었다면, 이번엔 라쿤시티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괴물과 사투를 벌여야 한다. 남녀 주인공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서로 교차되어 플레이하는 ‘캐릭터 재핑 시스템’으로 신선함을 더했다. 게임분위기도 더욱 사실적으로 변했고, 잔인한 표현은 여전히 논란이 됐다.

2편은 시리즈 전체의 기틀을 닦은 게임이다. ‘엄브렐러의 음모’, ‘좀비바이러스의 비밀’, ‘라쿤시티의 종말’ 등 본격적인 스토리가 2편부터 시작된다. 2편의 이야기는 초보경찰 ‘레온’과 전작의 주인공 크리스의 여동생 ‘클레어’가 라쿤시티에 찾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외에도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다음 시리즈를 예고하는 복선과 암시를 깔아놓았다. 2편은 한국에서도 정식 출시되어 인기를 끌었다. 물론 보수적인 심의기준으로 인해 게임 곳곳이 가위질 당한 채 발매됐다. [바이오하자드2]는 전 세계적으로 1천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명실상부한 메가 히트 게임으로의 입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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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좌)이 나오기 전 1.5버전(우)이 개발됐었다. 1.5 버전에는 다른 주인공이 나온다.

1999년, 2편의 열기가 식기도 전에 [바이오하자드3]가 출시됐다. 1편에 나왔던 ‘질 발렌타인’이 단독 주인공으로 등장했고, 이야기상으로 2편과 같은 시간대를 다뤘다. 쉽게 말해 2편의 사건과 3편의 사건이 같은 시간대에 벌어지는 구조다. 때문에 게임의 그래픽 등 전체적인 분위기는 2편과 동일한 수준이다. 라쿤 시티를 탈출하는 목적 또한 전작과 같다. 물론 전작이 워낙 대작이어서, 3편은 상대적으로 볼륨감이 줄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런 평가를 의식했는지 캡콤은 게임에 ‘네미시스’라는 독특한 악당캐릭터를 추가해 차별화 했다. ‘네미시스’는 영화 ‘터미네이터’의 기계인간과 비슷한 캐릭터다. 기존의 느려빠진 좀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위력으로 플레이어를 압박한다. 흉포한 괴물이 주인공을 집요하게 따라 붙게 하면서 게임의 극적 긴장감을 살렸다. 주인공은 찰거머리처럼 쫓아다니는 ‘네미시스’의 추격을 따돌리고 도시를 탈출해야 한다. [바이오하자드3]는 2편의 아성에 힘입어 흥행에 무난히 성공했다. 국내에도 정식 출시됐는데, 피를 초록색으로 수정해 18세 이상 이용가로 나왔다. 이후 ‘초록 피’는 한국게임의 가위질 심의 행태를 비꼬는 의미로 사용되곤 했다. 한편 3편 이후 당분간 정식 넘버링 시리즈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게임의 사이드 스토리를 담은 외전과 리메이크 판이 빈자리를 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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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바이오하자드3]의 네미시스. 전편과 비슷하다는 지적을 만회하기 위해 투입한 비밀병기다.


외전, 리메이크, 프리퀼... 캡콤의 변덕
2000년 [바이오하자드]의 외전격 타이틀 ‘코드 베로니카’가 출시됐다. 이 작품은 정식 넘버링은 붙이지 않았지만, 내용상은 4편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바이오하자드] 정식 시리즈는 플레이스테이션에만 독점 발매하기로 했는데, 캡콤은 드림캐스트로 발매하기 위해 부득이 게임 제목을 바꾸는 꼼수를 쓴 것이다. 플랫폼을 바꾸면서 팬들의 희비가 교차됐다. 기존 플레이스테이션 유저들은 캡콤의 배신을 원망했고, 반대로 드림캐스트 유저는 환영했다.

CD 2장으로 구성된 이 게임은 배경까지 풀 3D로 표현되어 그래픽 적으로 진일보했다. 이번 시리즈도 [바이오하자드]의 전통적인 방식인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전반부는 동생 ‘클레어’의 시점에서, 후반부 오빠 ‘크리스’의 입장에서 게임이 진행된다. 주인공 ‘레드필드’ 남매와 악당 ‘에슈포드’ 남매, 이 두 남매간의 대결구도가 게임의 큰 축이다. 특히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여주는 에슈포드 남매의 가족사는 보기만 해도 섬뜩하다. ‘코드 베로니카’는 서사적으로 가장 완성도 높은 구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드림캐스트의 한계상 전작만큼 흥행을 거두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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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하자드: 코드베로니카], 스토리 적으로 가장 완성도가 높다.

캡콤은 후속편에서 또 한 번 변덕을 부린다. 이번에는 닌텐도 ‘게임큐브’로 1편의 리메이크작인 ‘바이오하자드: 리버스’를 내놓았다. 게임큐브의 그래픽 구현 능력을 100% 활용해 입이 쩍 벌어질 만큼의 화려한 그래픽을 보여준다. 고풍스러운 저택과 광원묘사는 마치 게임화면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사실감을 연출했다. 리메이크 작의 한계상 그래픽만 보강되고 스토리는 추가된 게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폭탄을 안고 주인공에게 돌격하는 ‘폭주좀비’가 공포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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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하자드 리버스](좌)와 [바이오하자드 제로](우). 미카미 신지의 강력한 요구로 게임큐브 독점 발매 됐다.

‘바이오하자드 리버스’ 때문에 게임큐브를 따로 구매하는 사람도 많았다(필자가 그랬다). 리버스 이후 캡콤은 게임큐브 전용 타이틀을 하나 더 발매했다. 2002년 발매된 ‘바이오하자드 제로’는 1편의 이전 시간을 다룬 일종의 프리퀼 형태의 게임이다. 1편에서 조연으로 등장한 ‘레베카 챔버스’와 사형수 ‘빌리코헨’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또한 [바이오하자드]의 대재앙이 어떻게 일어나게 됐는지 그 원인이 밝혀진다. 하지만 그래픽 적으로 ‘리버스’와 달라진 점이 없고, 스토리 설정 상 전작과 맞지 않는 부분이 보여 단점으로 지적된다.

‘리버스’와 ‘제로’는 비주류 게임기였던 ‘게임큐브’의 한계로 인해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나온 4편부터는 플레이스테이션2용으로 회귀했다.


바이오하자드의 대변신, 얻은 것과 잃은 것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4편에 이르러 완전한 환골탈태를 이룬다. 그야말로 게임의 근본을 바꾸는 변화였다. 기존 어드벤처 방식을 버리고 순수 액션게임으로 탈바꿈했다. 게임조작도 1인칭 FPS와 3인칭 어드벤처를 조합한 TPS 방식이다. 캐릭터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문제를 해결하는 퍼즐형 어드벤처 방식보다, 상대방과의 전투에 초점을 두는 액션방식을 택했다. 달라진 게임성에 대해 논란도 많았다. 신규유저를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으나, 기존 방식을 원하는 골수팬들에게는 반발을 사기도 했다. 스토리도 엉망이었다. 강력한 악의 축이었던 ‘엄브렐러’ 기업이 갑자기 주식폭락으로 망했다는 어이없는 설정에 유저들은 황당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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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형 어드벤처에서 슈팅형 액션게임으로 바뀐 [바이오하자드4]. 그야말로 게임의 근간을 바꾼 대변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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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부터 좀비 대신, 인간들이 악당으로 나온다.

납치된 대통령의 딸을 구출하러 간다는 스토리 또한 게임의 흥미를 떨어뜨렸다. 게다가 시리즈의 진짜 주인공인 ‘좀비’를 빼버리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매력이 무엇인가! 매력적인 캐릭터와 개연성 있는 스토리 아닌가. ‘다음 편엔 누가 나올까?’, ‘다음에는 비밀이 밝혀질까?’ 같이 꼬리는 무는 복선과 암시는 [바이오하자드]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그러나 4편은 이런 것들은 모두 무시하고 그냥 평범한 액션게임이 되어 돌아왔다. 엄브렐러와 최후의 결전을 기대했던 유저들은 개연성 없는 스토리에 허탈감을 느꼈다. 설상가상 캡콤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게임큐브 독점발매 약속을 깨고, 4편을 플레이스테이션2용으로도 발매했다. 이런 일이 화근이 되어 경영진과 마찰을 빚은 ‘미카미 신지’는 4편을 끝으로 시리즈에서 손을 땐다.

사실 그는 ‘플레이스테이션’ 하나에만 게임들이 집중되는 현상에 반대해 왔다. 그는 “다른 콘솔을 갖고 있는 유저들도 [바이오하자드]를 할 기회를 주고 싶다”며 드림캐스트나 게임큐브 같은 마이너 콘솔을 고집해 왔다. 그러나 캡콤 경영진이 ‘플레이스테이션2’ 용으로 4편을 발매하면서 그의 신념은 깨졌다. 미카미 신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게임에 반영시킬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다”며 캡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바이오하자드4]는 기존의 이름값에 힘입어 300만장 이상의 흥행을 거두었다. 하지만 엔딩을 본 유저들은 “이게 끝이야? 뭔가 빠진 느낌인데”라며 허탈해 했다. [바이오하자드]의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웨스커! 시리즈의 종언을 고하다
원작자가 손을 땐 [바이오하자드]는 5편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9년 출시된 [바이오하자드5]는 완전한 블록버스터 게임으로 출시됐다. 저예산 B급 호러게임의 모습은 더 이상 없었다. 5편은 아프리카가 배경이다. 흑인들을 괴물로 표현해 발매직전까지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흑인여성(쉐바 아로마)이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번 작품은 아예 어드벤처 요소를 줄이고 액션을 강조했다. 물론 기존 팬들에겐 실망스럽지만, 액션게임 자체로는 괜찮은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5편은 사실상 시리즈의 완결이라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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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바이오하자드5]. 주인공 투톱 체제는 그대로 유지하고 완전한 액션게임으로 나왔다.

5편에선 [바이오하자드] 최고의 악당 ‘웨스커’가 최후를 맞는다. 1편부터 등장한 웨스커는 [바이오하자드]의 모든 음모를 배후 조종한 인물이다. 스타일리시한 외모와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으로 주인공 이상의 인기를 구가했다. 그가 남긴 ‘웨스커리포트’는 [바이오하자드] 스토리의 근간을 이룰 만큼 흥미롭다. 불사의 생명력을 가진 웨스커는 [바이오하자드]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다. 그런데 주인공의 로켓런처 한방에 가루가 되어 버리는 그의 비참한 최후를 보고 유저들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짜 맞춘 것 같은 엉성한 이야기구조는 곳곳에서 누수가 생겨 흥미를 떨어뜨렸다.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웨스커’의 사망으로 [바이오하자드]는 진짜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무덤 속으로 들어간 이 시리즈는 마치 진짜 좀비가 된 것 마냥 기어이 6편을 내놓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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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악당 중 하나인 알버트 웨스커. 5편에서 마침내 죽음을 맞이한다. 많은 팬들이 그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B급 게임의 초심으로...
2012년 발매된 [바이오하자드6]은 미국, 유럽, 중국까지 배경을 넓혔다. 주인공만 해도 무려 7명이나 된다. 주인공들은 마치 이인삼각 달리기를 하듯 두 명이 짝을 이뤄 전 세계를 누빈다. 그러나 유저들의 반응은 예전만 같지 않았다. 어설픈 시점처리와 복잡한 조작성은 오히려 전작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선지 6편은 발매 전부터 혹평에 시달려 왔다. 무엇보다 이름만 같을 뿐 더 이상 과거의 [바이오하자드]가 아니라는데 유저들은 실망했다. 특별한 것 없는 6편은 쟁쟁한 최신작들을 상대하기엔 힘에 부쳐 보인다. 그나마 4편부터 사라진 ‘좀비’가 다시 되돌아온 것에 위안 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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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하자드6]. 주인공이 무려 7명. 중국, 미국, 유럽까지 전 세계를 누비며 좀비와 사투를 펼친다.

[바이오하자드]가 명작인 것은 전적으로 게임의 스토리 때문이다. 치밀한 이야기구조는 마치 얼개처럼 얽히고설켜 유저들의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다양한 캐릭터와 흥미로는 시나리오는 매번 게임을 기대하게 하는 동력이 됐다. 그러나 캡콤은 꼬아놓은 실타래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 캐릭터가 추가되고, 그래픽이 화려해지고, 게임의 규모가 커질수록 스토리는 산으로 갔다. 곳곳에서 누수가 생기고 엉성한 부분이 드러났다. 그 결과 사람들은 더 이상 [바이오하자드]에 환호하지 않았다. 이미 호러게임의 대권은 공포와 액션을 아우른 ‘데드스페이스’로 넘어간 상태다.

세계적인 명성의 게임들은 시리즈를 낼 때마다 늘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메탈기어솔리드]처럼 멋있게 끝내던지, [파이널판타지]처럼 시리즈마다 다른 게임을 만들던지, [툼레이더]처럼 과거를 뒤엎고 다시 시작하든지, 선택은 여러 가지다. 그러나 어떤 게임이든 처음 성공했던 ‘초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이오하자드]는 처음부터 화려한 게임은 아니었다. 저예산 B급 게임으로 시작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호러게임의 대명사가 됐다. [바이오하자드]의 영광을 다시 부활시키려면 과거 B급게임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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