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 Form
img01.jpg
세계 게임시장 3D폴리곤 열풍을 일으킨 버추어파이터

1994년 서울의 한 오락실. 아침부터 수많은 갤러리들로 북적거렸다. 엄청난 괴물게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갤러리들의 시선은 한 곳에 꽂혀 있었다. 화면에 AM2라는 제작사 로고가 뜨고, 곧 게임이 시작됐다.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마치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생생한 캐릭터! 모니터 속 3D캐릭터는 스파2를 능가하는 엄청난 시각적 충격을 선사했다.

차고, 때리고, 꺾고, 넘어지고, 짓밟는 그야말로 진짜 싸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캐릭터가 맞으면, 진짜 고통이 느껴지는 것처럼 몸을 움찔거렸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캐릭터 동작 하나하나에 탄성을 질러댔다. 과격한 필살기는 폴리곤의 옷을 입고 더욱 실감나게 표현 됐다. 최초로 3D 입체영상을 선보인 [아바타] 보다 백배는 더한 충격이었다. 이제껏 사람들은 [스트리트파이터2]가 격투게임의 완성형인줄 알았다. 류의 승룡권이 지상에서 가장 멋있는 기술로 통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당시 개발자들도 이 게임을 보고 기겁을 했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게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지?”

1993년 12월 세상에 나온 [버추어파이터(이하 버파)]의 충격은 그만큼 대단했다. ‘버파’를 시작으로 세계 게임 산업은 또 한 번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3D폴리곤의 거대한 파도가 업계를 송두리째 집어삼켜 버린 것이다.


진짜 같은 ‘경험’을 제공하라!
1991년 세가는 [소닉]으로 거함 닌텐도의 [마리오]를 이겼다. [소닉]의 인기가 절정이었던 1993년, 세가는 또 한 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3D 폴리곤의 시대를 연 [버추어파이터]를 내놓은 것이다. ‘버파’의 창시자 ‘스즈키 유’는 세가를 대표하는 게임 크리에이터다. 어릴 적 그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대학시절 그는 게임엔 관심이 없고 기타리스트로 밴드 생활을 했었다.

그러던 그가 애플 컴퓨터를 접하고 인생의 반전을 맞는다. 컴퓨터의 매력에 빠진 스즈키 유는 음악을 접고 프로그래밍공부에 몰두했다. 그 시절 애플 컴퓨터는 천재들의 열정을 깨우는 묘한 매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1982년, 세가에 입사하면서 파란만장한 게임 크리에이터 인생이 시작됐다.

그의 철학은 게임으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도 최대한 사실적이고 그럴싸한 경험 말이다. 실제 바이크광인 그는 오토바이를 타는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는 게임을 만들었다. 그는 입사 2년 만에 오토바이게임 [행온]을 만들어 실력을 입증했다. 유저가 바이크 모양의 조작기에 앉아 화면 속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게임이다. 실제 오토바이를 모는 듯 한 극한의 속도감을 내세워 오락실 필수게임으로 인기를 누렸다. 이후 [스페이스헤리어], [애프터버너], [아웃런] 등 만드는 게임마다 흥행에 대박을 쳤다.

img02.jpg
스즈키 유가 세가에 입사한지 2년 만에 만든 [행온], 80년대 오락실 필수 게임이었다.

img03.jpg
80년대 오락실을 주름 잡았던 [아웃런] 게임기, 드라이빙의 판타지는 제대로 살렸다.

특히 레이싱 게임 [아웃런]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아웃런]은 남자의 드라이빙 판타지는 정확히 집어낸 명작 게임이다. 화려한 스포츠카에 금발의 여자 친구를 태우고 짜릿한 속도감을 즐기는 환상적인 경험. 오락실에 [아웃런]이 없으면 손님이 오지 않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웃런]까지 히트시키면서 세가는 일본 아케이드 시장 점유율 79%를 차지했다. 이때부터 세가의 전성기가 열렸다.


기술과 고집으로 뭉친 완벽주의자
그는 게임개발에 있어서 기술을 가장 중시했다. 좋은 게임을 만들려면 기술적인 면에서 가장 앞서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기술 개발에 대한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는 전투기 조종사의 훈련용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응용해 ‘모델1’이라는 아케이드 기판을 개발했다. 1600만 색에 초당 18만 폴리곤의 엄청난 스펙을 자랑하는 ‘모델1’ 기판으로 최초의 3D레이싱게임 [버추어레이싱]을 제작했다.

img04.jpg
버추어파이터 개발자 스즈키유. [행온], [아웃런], [애프터버너] 같은 오락실 메가 히트 게임을 개발해 왔다. <출처: 게임메카>

스즈키 유는 현실의 한계와 타협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개발자로 유명하다. 그의 프로젝트는 늘 제작비가 초과됐다. 작품마다 최신기술을 사용하다 보니 당연히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예산 초과를 지적하면 그는 자기 월급에서 깎으라고 오히려 큰소리 쳤다고 한다. 회사의 걱정은 아랑곳없이 늘 최고의 게임을 만들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큰소리 친 만큼 좋은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회사는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시대를 앞서감에도 불구하고 늘 대중적인 인기를 놓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세가 게임을 통해 근사한 경험을 대리 체험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광속으로 달리고, 스포츠카에 여친을 태우고 레이싱 실력을 뽐낼 수 있다. 영화 [탑건]의 톰 크루즈처럼 전투기를 몰고 적에게 미사일 세례를 퍼부을 수 있다. 그야말로 진짜 같은 경험을 제공했다. 80년대 세가의 게임은 나오는 족족 대박이었다. ‘진짜 같은 게임’에 대한 그의 신념은 [버추어파이터]에서 피날레를 장식한다.


아픔이 느껴지는 게임! [버추어파이터]의 탄생
스즈키 유는 세가의 핵심 개발자들만 모아 ‘AM2’라는 팀을 조직했다. AM2는 ‘사실적인’이라는 뜻의 ‘버추어(VIRTUAL)'에서 L을 빼고 'VIRTUA'라는 브랜드로 게임을 만들었다. ‘버추어’ 이름을 달고 나온 첫 작품은 [버추어레이싱]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3D 레이싱게임이다. [버추어레이싱]은 버파를 만들기 위한 준비단계였다.

쿵푸영화 마니아였던 스즈키 유는 다음 작품으로 격투게임을 기획했다. [스트리트파이터] 식의 과장된 액션이 아닌, 캐릭터가 맞을 때 아픔이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인 격투게임을 컨셉으로 잡았다. AM2 팀원은 격투가의 아픔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 단체로 격투기를 배우기도 했다. 스즈키 유 자신도 팀원들에게 두들겨 맞아(?) 싸울 때의 아픔을 몸소 체험했다고 한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최초의 3D 격투게임 [버추어파이터]가 세상에 나왔다.

img05 (1).jpg
[버추어파이터], 지금 보면 투박해 보이지만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그래픽.

1편은 3D게임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지금 보면 목각인형 같은 부자연스러운 캐릭터이지만, 당시만 해도 유저들이 느끼는 시각적 충격은 엄청났다. 마치 진짜 상대방과 싸우는 것처럼 실감나는 타격감을 선사했다. 게임방식도 간단해서 버튼 3개로 쉽게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버파는 아케이드 시장에 태풍을 몰고 왔다. 유저들은 이 낯선 게임에 처음엔 당황하는 듯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곧 익숙해졌다. 세가는 아케이드용 버파를 가정용 게임기 세가세턴으로 이식해 또 한 번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것은 혁명의 시작에 불과했다.

1994년, 1편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세가는 [버추어파이터 2]를 내놓았다. 사실 버파의 전성기는 2편부터다. ‘버파2’는 기존 ‘모델1’ 기판을 업그레이드 한 ‘모델2’로 제작됐다. 때문에 그래픽 적으로 눈에 띄게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전작의 캐릭터가 목각인형 같았다면, 2편부터 진짜 사람 같은 모습을 보였다. 2편은 숲, 사원, 해변 같은 다양한 배경이 등장한다. 캐릭터의 움직임도 자연스러워졌다. 1편은 30프레임인데, 2편은 60프레임으로 프레임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캐릭터들의 기술도 세밀해 졌다. 공격, 방어기술 외에 상대방의 공격을 맞받아치는 반격기와 공격을 무산 시키는 캔슬기가 추가됐다. 플레이어간의 세밀한 심리전이 가능해졌다. 취권 캐릭터와 당랑권 캐릭터가 추가되어 완성도를 높였다.

img06.jpg

[버추어파이터 2]. 버파 시리즈의 전성기를 가져온 작품


img07.jpg
아키라의 이문정주! 버파2는 보다 사실적인 격투의 맛을 선사했다.

버파2는 세턴용으로 이식되어 170만장이 팔렸다. 역대 새턴용 게임 중 가장 높은 판매율이다. 하지만 아케이드버전에 비해 그래픽 퀄리티가 떨어져 팬들을 실망시켰다. 게임이 인기를 얻자, 세가는 ‘버파’를 이용한 다양한 시리즈물을 내놓았다. 심지어 캐릭터 CG와 음악 하나 달랑 넣고, [버추어파이터 CG 포트레이트]란 거창한 이름으로 포장해 팔아먹은 일도 있었다. 이밖에 1편의 우려먹기 버전인 [버추어파이터 리믹스], 저 연령층 대상의 [버추어파이터 키즈](일반적으로 버파 대두 버전으로 통한다) 등 의미 없는 시리즈들이 양산됐다. 물론 시리즈물이 나올 때마다 유저들의 실망은 쌓여갔다. 이런 과도한 상업성은 ‘버파’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마니아용 게임으로 전락한 ‘버파’
1996년 9월 [버추어파이터 3]가 발매됐다. 최신 모델3 기술을 사용해 그래픽 적으로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현실 자체를 게임에 가져온 것처럼 독보적인 리얼리티를 선사했다. 3편도 무난히 흥행에 성공했다. 3편 발매 즈음인 90년대 중반은 가정용 게임기 시장이 대세였다. 오락실에 가지 않고 집에서 게임을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닌텐도(닌텐도64), 세가(드림캐스트), 소니(플레이스테이션) 등 일본을 대표하는 게임사들이 가정용게임기 시장을 놓고 경합을 펼칠 때였다.

세가는 드림캐스트용 킬러타이틀로 ‘버파3’를 전면에 내세웠다. 원래 드림캐스트 출시에 맞춰 내놓으려 했으나 일정이 미뤄졌다. 실망스러운 건 발매일정뿐만이 아니다. 드림캐스트용 버파3는 오락실 버전과 똑같았다. 가정용 게임만의 추가요소가 없었다. 원 제작팀인 AM2가 [쉔무] 제작에 매달리느라 버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img08.jpg
시리즈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 받는 [버추어파이터 3]. 드림캐스트용으로 발매된 처음이자 마지막 버파 타이틀.

‘버파3’는 시리즈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이다. 반격기가 강화됐고 콤보 시스템이 도입됐다. 또, 캐릭터의 공간 활용과 거리조절이 승부에 영향을 미쳤다. 캐릭터의 몸무게에 따라 순발력과 파워가 달라지는 등 세세한 부분에서 실제 격투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사실성을 강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게임의 난이도가 높아졌다. 유저들의 반응도 극단으로 나뉘었다. 잘하는 유저들은 세밀한 게임성에 찬사를 보냈지만, 초보 유저들은 게임을 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복잡했다. 아쉽지만 기기 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국내에서 ‘버파3’를 들여놓는 오락실이 드물었다. 대신 ‘버파’의 자리를 [철권]이 차지했다. ‘버파3’는 역사적인 소프트웨어 발명품으로 인정받아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01년 발매된 [버추어파이터 4]는 나오미2 기판으로 제작됐다. 게임성은 더욱 정교해졌고, 카드시스템과 네트워크시스템이 처음으로 도입됐다. 4편은 세가 팬들에겐 애증의 게임이기도 하다. 게임기 사업을 포기한 세가는 ‘버파4’를 드림캐스트가 아닌 플레이스테이션2 전용으로 발매했다.

img09.jpg
[버추어파이터 4]. 세가의 드림캐스트 사업 중단으로 라이벌인 플레이스테이션2 전용으로 나온 비운의 타이틀.

2006년 ‘버파5’는 플레이스테이션3와 엑스박스 360용으로 발매됐다. 향상된 게임성에서 불구하고 아쉬움이 많은 타이틀이다. 역대 최고의 화려한 영상에서 불구하고 이미 ‘버파’는 ‘철권’에게 격투게임의 주인자리를 내어준 상태였다. 5편은 전작에 비해 차별화된 재미를 보여주지 못했다. 공격이동과 방어이동이 추가되면서 더 정교한 조작을 구현했지만, 그럴수록 게임은 더 어려워졌다. 조작법을 완전 이해하지 못하면 게임을 즐길 수 없을 만큼 5편의 시스템은 복잡했다. 그 결과 버파5는 마니아들만 즐기는 ‘그들만의 게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img10.jpg
[버추어파이터 5]. 2006년 발매된 5편을 끝으로 후속작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일생의 라이벌 철권을 만나다
[버추어파이터 5]. 2006년 발매된 5편을 끝으로 후속작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일생의 라이벌 철권을 만나다 [버추어파이터]하면 떠오르는 게임이 [철권]이다. ‘버파’와 ‘철권’은 서로 라이벌관계를 유지하며 격투게임 시장을 양분해 왔다. 두 게임의 라이벌전 또한 흥미롭다. 1994년 12월, 남코는 3D격투게임 [철권]을 내놓았다. ‘버파’가 출시 된지 딱 1년만이다. 당시 [철권]에 대한 반응은 좋지 않았다. 그저 ‘버파’의 아류작 정도로 여겨졌다. 너무나 깔끔하고 완벽한 ‘버파’와는 달리 꼼수와 요행이 잘 통하는 [철권]은 격투게임 마니아들에겐 왠지 비급 게임처럼 보였다. 무협에서 ‘버파’가 정파라면, [철권]은 사파처럼 여겨졌다. 버파 팬들은 철권을 무시했고, 양쪽 유저들의 신경전도 심했다.

그러나 [철권]을 만든 남코는 영악한 개발사였다. 그들은 ‘버파’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정확히 짚어냈다. 그건 바로 ‘대중성’이다. ‘버파’는 완성도와 사실성에 집착한 나머지 초보가 즐기기엔 너무 어려운 게임으로 인식됐다. 게임성은 두말할 나위 없이 완벽했으나, 조작이 서툰 일반 유저들에게는 와 닿지 않는 재미였다.

img11.jpg
버파의 라이벌 [철권]. 초반엔 버파의 아류작 취급 받았지만, 차별화된 재미를 내세워 버파 이상의 인기를 얻고 있다.

img12.jpg
철권6에 캐릭터와 스토리를 추가한 [철권 블러드리벨리온].

그러나 [철권]은 달랐다. 버튼만 누를 줄 알면 누구나 멋진 기술을 구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버파는 엄선된 캐릭터만 등장하지만, 철권은 각양각색의 캐릭터들이 마구잡이로 난입한다. 스토리를 부각시킨 점도 철권의 특징이다. 각 캐릭터의 라이벌이나 협력관계를 설정하고, 화려한 영상으로 볼거리를 제공했다. 게임의 큰 축을 이루는 ‘미시마 가문’의 콩가루(?) 가족사는 유저들에게 충격과 함께 큰 재미를 선사했다. 따라서 유저들이 항상 기대감을 가지고 매 시리즈를 기다리게 했다.

다양한 캐릭터의 매력도 철권의 인기에 한몫 했다. 누구나 쉽게 철권 오락기에 동전을 넣을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춘 것이다. 또, 정식 시리즈를 포함해 캐릭터가 팀을 짜서 대결을 하는 ‘태그토너먼트’ 시리즈 등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버파는 마니아용 게임으로 좁혀진 반면, [철권]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 게임으로 자리를 굳혔다. 버파는 5편을 끝으로 오락실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철권은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게임으로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철권]의 대중성이 ‘버파’의 완벽함을 이긴 것이다.


한국 이스포츠의 위력을 최초로 알리다!
따지고 보면 [버추어파이터]는 국내 이스포츠의 원조 격 게임이다. 사실 [스타크래프트] 이전 ‘버파’부터 한국은 이스포츠 강국이었다. 1995년, 버파2는 국내 오락실 최고의 인기게임이었다. 단순한 인기로 그치지 않았다. 전국의 유명 오락실을 중심으로 버파2 마니아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자연스럽게 팀을 이뤄 자체 게임대회까지 열렸다. 비록 거창한 리그는 없지만 게이머들이 스스로 팀을 결성해 대회를 연다는 점에서 요즘 이스포츠와 비슷하다.

한편, 그 당시 일본에선 버파 게임대회 열풍이 한창이었다. 세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일본 선수들은 지금의 프로게이머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 특히, ‘4대 철인’이라 불리는 4명의 고수들은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 최강자로 명성을 떨쳤다. 당시 일본의 격투게임 대회는 한국의 스타리그만큼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1995년, 세가는 [버추어파이터 3] 세계 대회인 ‘맥시멈 배틀’을 개최했다. 사람들은 당연히 일본의 ‘4대 철인’이 우승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자 이변이 일어났다. 4명의 일본 고수들이 한국에서 건너온 무명의 선수에게 무참히 깨진 것이다. 당시 15살 소년이었던 신의욱 선수(닉네임: 꼬마아키라)는 한국에서도 이름난 고수였다. 그는 전국 오락실을 돌며 버파 고수들과 대결해 180연승을 달성한 괴물 선수였다. 한국에선 적수가 없자 격투게임의 본고장 일본을 제패하기 위해 대회에 출전했다.

그는 정해진 패턴의 일본 선수들과는 달리 능수능란한 변칙플레이로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더 놀라운 건 자신의 주력 캐릭터를 일부러 배제하고, 상대의 주력 캐릭터를 골라 이겨버린 것이다. 이를 테면 임요환이 테란이 아닌 저그를 골라, 저그 최강 홍진호를 이긴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 선수 입장에선 거의 멘붕에 가까운 굴욕이었다. 결국 한국선수들은 일본 홈그라운드에서 1, 2위(1등 신의욱, 2등 조학동)를 석권하며 전 세계 최강자임을 알렸다.

한국선수가 얼마나 두려웠으면 세가는 이후 세계대회를 더 이상 열지 않았다고 한다. 혈혈단신 일본에 건너가 일본 고수들을 차례로 꺾은 신의욱 선수의 일화는 지금도 국내 게이머들 사이에선 신화처럼 전해지고 있다. 결국 이러한 자부심이 거름이 되어 한국의 이스포츠가 화려하게 꽃피울 수 있었다.


버파의 RPG 버전 ‘쉔무’의 좌절

img13.jpg
세가에게는 가장 가슴 아픈 비운의 작품 [쉔무]. 버파를 RPG로 만들려는 세가의 계획은 [쉔무]의 실패로 좌절됐다.

‘버파’는 최고 흥행작이지만, [쉔무]는 최악의 실패작이다. 그런데 사실 이 두 게임은 같은 핏줄이다. ‘버파’의 RPG버전이 [쉔무]이기 때문이다. ‘버파’가 격투게임으로 입지를 굳힐 동안 스퀘어는 3D그래픽을 도입한 [파이널판타지 7]을 내놓았다. 파판7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플레이스테이션 판매까지 견인했다. 세가는 조바심이 났다. 액션게임 분야에선 적수가 없었는데, RPG 쪽은 한발 늦은 것이다.

img14.jpg
버파 시리즈의 메인캐릭터 아키라. 스트리트파이터의 류와 함께 격투게임의 상징적인 캐릭터로 남아있다.

스즈키 유는 버파 캐릭터를 이용한 RPG를 기획했다. 바로 [쉔무]라는 게임이다. [쉔무]는 당시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획기적인 게임이었다. 주인공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는 기본 스토리는 있지만, 게임 속에선 모든 것이 자유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형태의 오픈월드로 구현됐다.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가는 파판 시리즈와는 근본부터 달랐다.

캐릭터끼리 싸울 수도 있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거나, 심지어 캐릭터가 오락실에서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현실과 똑같은 가상 세계를 게임 속에 표현해 놓은 것이다. 콘텐츠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제작비도 덩달아 올랐다(세가는 700억 원을 [쉔무] 개발에 투입했다). 치솟는 제작비만큼 세가의 기대치도 높아졌다. 누구도 [쉔무]의 성공을 의심하는 이가 없었다. 스즈키 유의 게임은 위험부담은 있지만 항상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9년 드림캐스트용으로 출시된 [쉔무]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일본에서 40만장, 해외에서 60만장이라는 초라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게임 상에서 워낙 할 게 많아서 플레이어는 쉽게 피로감을 느꼈다. 사람들은 ‘재미’있는 게임을 원하지, ‘현실’ 같은 게임을 원하지 않았다.

[쉔무]의 실패로 재정난에 시달린 세가는 결국 게임기 사업에서 손을 땐다. ‘버파’를 RPG로 만들고자 하는 스즈키 유의 꿈은 결국 의욕만 앞선 꼴이 됐다. 총 3부작으로 기획된 [쉔무] 시리즈는 2편까지만 나오고 아직 미완의 시리즈로 남아있다. 참 아이러니 한 것은 [쉔무]가 선보인 오픈월드 방식은 이후 락스타의 ‘GTA3'에 도입되어 대박을 쳤다. 지금은 자유도 높은 오픈월드 게임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버파의 RPG버전 [쉔무]가 제시한 답은 옳았다.


댓글 0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