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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시뮬레이션 장르를 개척한 [프린세스메이커2] 게임 화면.


“친구들 중 몇몇은 이미 결혼을 해 실제로 딸이 있다. 아마도 그들은 그 옛날 ‘프린세스 메이커 2’를 하며 해봤던 여러 걱정을 실제로 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의 경험이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또다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이를 키우고 있을 것이다. 실제 육성에서는 저장도 불가능하고 되돌리기도 불가능하다. 이게 진짜 인생이다.”
- 시인 오은(동아일보 칼럼)

‘딸바보’란 말이 유행이다. 자신의 딸을 각별히 아끼는 아버지를 일컫는 신조어다. 요즘 인터넷이나 SNS에 딸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올리면 바로 ‘딸바보 등극!’이란 말을 들을 수 있다. 사회가 점점 핵가족화 되면서 젊은 부모들의 자식사랑이 그만큼 각별해 졌다는 의미다. 해달라는 건 다 다해주고 싶고, 행여 잘못될까 노심초사하는 부모들의 심정이 ‘딸바보’란 신조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부모의 자식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데, 유독 요즘 젊은 아빠들에게 ‘딸바보’란 명칭을 붙이는 이유는? 필자는 그 답을 20년 전에 출시된 어느 게임에서 찾고자 한다. 지금 ‘딸바보’ 세대의 젊은 부모들이 한창 학창시절을 보냈을 90년대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게임. 바로 [프린세스메이커]다.


'에바' 이전에 '프메'가 있었다!
다시 무대를 일본으로 돌려보자. 전에 [심시티] 편에서 필자는 8~90년대 미국 게임시장을 ‘천재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리처드게리엇’, ‘윌라이트’, ‘시드마이어’, ‘존카맥’ 같은 천재들이 이끌던 시대였다. 그렇다면 동시대 미국만큼 쟁쟁한 크리에이터들이 있었던 일본은 어땠을까. 90년대 일본 게임시장은 한마디로 ‘혁명가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일본 게임 산업은 ‘혁명’ 그 자체 였다. 나오는 게임마다 ‘어떻게 저런 게임을 만들수 있지?’라며 감탄하게 했다. 그 상상력의 기반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나왔다. 헐리우드 영화가 미국게임에 영감을 준 것처럼 애니메이션은 일본게임에 큰 영향을 주었다. 8~90년대는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황금기였다. 많은 예술가와 기업가들이 애니메이션 산업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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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가이낙스의 첫 번째 극장판 애니메이션 [왕립 우주군]. 이 작품이 실패하면서 가이낙스는 게임사업에 진출한다.
(오른쪽)일본 애니메이션의 상징 [신세기 에반게리온]. [프린세스메이커의 성공을 발판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프린세스메이커]를 만든 가이낙스는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중심에 있는 회사다. 가이낙스는 세계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바꾼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만들었다. ‘건담’과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을 세계문화의 중심에 올린 ‘에반게리온’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만한 불후의 명작이다. 재미있는 건 [에반게리온]의 영광도 [프린세스메이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부도 위기의 가이낙스를 기사회생 시켜준 타이틀이 [프린세스메이커]이기 때문이다.


빚 갚기 위해 게임 만들던 시절

“작업실에는 온통 연필 깎다 남은 쓰레기들로 덮여있었죠. 이런 것을 보고 가이낙스 사람들이 얼마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곤조프로덕션 대표이사 무라하마 쇼지

가이낙스는 1984년 12월 24일 설립됐다. 창업자 ‘오카다 토시오’가 회사를 설립하고, 이후 ‘아카이 타카미(프린세스메이커 제작자)’, ‘안노 히데아키(에반게리온 총감독)’ 등 5명의 지인들이 모여 회사를 키웠다. 원래 이들은 학창 시절 ‘제네럴 프로덕션’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에서 함께 일해왔던 사이다. 오카다 토시오는 ‘왕립 우주군’이라는 애니메이션을 기획했고,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가이낙스란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들의 열정은 대단했다. 직원 중 대부분이 애니메이션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단순히 고용주와 직원의 입장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란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회사를 차린 동료였다. 직원이 곧 사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처음부터 열정적으로 일에 매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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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메이커를 만들기 전 돈을 벌기위해 만든 성인게임 [전뇌학원].


그러나 회사운영은 열정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었다. 첫 작품인 극장판 애니메이션 ‘왕립 우주군’은 예상보다 너무 많은 제작비가 들었다. 작품이 완성될수록 회사의 빚은 늘었고, 나중엔 주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설상가상, 1987년 극장에서 개봉한 ‘왕립 우주군’도 흥행에 실패했다. 회사가 망할 수 있는 사면초가의 상황, 무엇보다 그들에겐 빚 갚을 돈이 필요했다. 가이낙스는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하청을 맡았다. 게임 사업도 그 중 하나였다. 다른 게임사처럼 뭔가 거창한 목적보다는 그냥 돈 벌 목적으로 시작했다. 훗날 초대 사장 오카다 토시오는 “빚을 변제하기 위해 팔릴만한 상품을 우선적으로 만들었다”고 당시를 소회했다.

돈이 되는 건 성인게임이었다. 가이낙스는 [전뇌학원], [배틀 스킨 패닉] 같은 성인 게임을 만들었다. 내용도 없이 여성 캐릭터의 옷 벗기기 게임,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도 가이낙스는 특유의 재치를 빼놓지 않았다. 예를 들어 [전뇌학원]을 진행하다보면 ‘가족에게 이 게임하다 들키면 HOME 키를 눌러라’라는 황당한 맨트가 나온다. 실제 눌러보면 건전한 화면으로 변하는데, 그 다음 나오는 문구가 허를 찌른다.

“엄마, 나는 야한게임 따윈 안 해요!”

만약 이 화면을 실제로 엄마와 함께 봤다면 어땠을까(ㅋㅋㅋ). 이런 장난스러운 발상은 이후 가이낙스의 전매특허로 자리 잡는다. 에반게리온의 엔딩 논란처럼 수많은 팬들을 멘붕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찻집에서 얻은 아이디어, 세상을 바꾸다

"도쿄의 한 찻집에서 이 게임의 제안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때 어린 소녀를 어른이 될 때까지 키워보고자 한 생각이 오늘날의 ‘프린세스메이커’와 육성 게임을 만들어 냈죠."
-프린세스메이커 총감독 아카이 타카미(프린세스메이커 온라인 발표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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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메이커를 만든 아카이 타카미 감독. 찻집에서 차를 마시다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가이낙스는 두 번째 야심작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제작했다. 이 애니메이션은 1990년 일본 NHK에서 방영되어 히트를 쳤다(국내에선 MBC에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당시 가이낙스는 정말 신들린 듯 창조에 매달렸다. 나오는 작품마다 독창적이고 기발한 것들이었다. 게임 쪽에서도 대형사고(?)를 쳤다. 가이낙스를 빚더미에서 벗어나게 작품, 바로 [프린세스메이커]가 나온 것이다.

가이낙스 창립 맴버 중 한 명인 ‘아카이 타카미’ 감독은 새로운 게임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는 도쿄의 한 찻집에서 게임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게이머가 아버지가 되어 딸을 키운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의도는 좋지만 이게 과연 게임이 될까? 예쁜 공주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악당을 때려잡는 것도 아니고,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는 내용도 아니고, 하다못해 캐릭터가 옷을 벗는 것도 아니다. 그냥 딸을 키워 엔딩을 보는 게임이다. 말초 신경을 자극할만한 흥행요소가 없었다.

자극적인 소재와 현란한 기술이 응집된 게임시장에 이런 감성코드가 통할 리 만무했다. 더구나 한 푼이 아쉬운 가이낙스 입장에선 순순히 시작할만한 게임도 아니었다. 잘못하면 프로젝트 하나로 회사가 끝장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아이디어로 똘똘 뭉친 그들에게 ‘딸 키우기 게임(?)’은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개발진들은 ‘아카이 타카미’ 감독의 결정을 믿어보기로 했다. 게임 개발은 원안 그대로 진행됐고, 1991년 [프린세스메이커]가 세상에 나왔다. 원화가 출신인 그는 프로젝트 감독과 캐릭터 디자인을 도맡아 진행했다.


‘짠~’한 감동, 육성시뮬레이션 전성기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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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메이커] 오프닝 중 한 장면. 이 장면을 보고 많은 게이머들이 짠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프린세스메이커]를 처음 접한 게이머들은 충격에 빠졌다. 당시 대부분 게이머들이 “이게 무슨 게임이냐”며 황당해 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보다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컸다. 사람들은 그래도 캐릭터 하나는 봐줄만 하다고 위안 삼았다. 그러나 [프린세스메이커]의 진면목은 게임발매 이후부터 시작됐다. 이건 뭔가 달랐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 가슴속을 ‘짠’하게 하는 어떤 울림이 있었다. 게임을 반복하며 엔딩을 수십 번 보는 게이머들도 있었다.

결혼도 안한 학생들이 모니터 속 딸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열광했다. 딸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이 이럴까. 게임을 하면서 부모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는 감상평도 많았다. [프린세스메이커]는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였다. 게임은 한글화 되어 국내 발매했다. 당시 일본 PC게임의 한글화 발매가 희박했던 점을 감안하면 게임의 인기를 짐작케 한다.

[프린세스메이커]는 시장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비슷한 방식의 육성게임이 쏟아졌다. 선생님이 되어 학생을 교육하는 [졸업], 판타지 세계의 요정을 키우는 [요정전설] 등이 인기를 끌었다. 최근엔 일본 아이돌 그룹을 육성하는 [아이돌 마스터]까지 나왔다. [프린세스메이커]는 한국에서도 육성게임 제작 붐을 일으켰다. 연애기획사 사장이 되어 스타를 키우는 [보아 인더 월드]와 사람 머리를 화분에 심어 키운다는 엽기적 설정의 [토막: 지구를 지켜라]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프린세스메이커]의 성공으로 가이낙스는 애니메이션의 적자를 해소할 수 있었다. 불후의 명작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프린세스메이커] 발매 4년 후에 나왔다.


아빠가 되는 건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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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메이커]의 하이라이트 미인대회. 재미있는 건 게임에서도 촌지개념이 있었다



[프린세스메이커]는 게임을 하게 만드는 ‘동기부여’가 탁월하다. 일단 스토리는 간단하다. 주인공은 악마의 침입으로부터 왕국을 구한 용사다. 그는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시골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갈 곳 없는 고아 여자아이를 키우며 여생을 보내기로 한다. 비범한 용사에서 평범한 아빠로서 주인공의 인생 2막이 시작된다. 이처럼 [프린세스메이커]는 시작부터 감성을 자극한다. 가장 강한 주인공이, 가장 약한 여자아이를 돌보면서 게임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를 제공한다. 또, 부모의 눈으로 딸의 성장을 지켜보는 설정 자체가 대단한 몰입을 유발한다. 이 게임은 남성보다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여성 특유의 모성애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사실 [프린세스메이커]는 난이도가 상당히 어려운 게임이다. 딸을 제대로 키우려면 복잡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게이머는 딸이 10세부터 18세까지 키워야 한다. 딸의 모든 상태는 수치로 표현되어 그 결과에 따라 엔딩이 결정된다. 학식이 높으면 과학자나, 선생님이 되고, 무술과 완력 수치가 높으면 아버지처럼 무사가 되는 엔딩을 볼 수 있다. 모든 조건을 완벽히 맞추면 궁극의 엔딩인 왕비를 만들 수 있다(에디터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정말 달성하기 힘든 극악의 난이도). 반대로 딸이 술집 여종업원이 되는 엔딩과 아버지와 결혼하는 엔딩은 충격 그 자체였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자식을 키우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을 벌려면 딸에게 아르바이트를 시켜야 한다. 너무 혹사시키면 딸이 병에 걸릴 수도 있다. 술집 같은 이상한 곳에 보내면 딸이 엇나갈 수도 있다. 교육과 아르바이트는 게임진행의 핵심이다. 꾸준한 관심도 필요하다. 딸과 대화를 하지 않으면 가출할 수도 있다. 반항심이 강한 딸은 주인공의 명령을 거부한다. 그런 딸을 볼수록 모니터 밖 게이머들은 애간장이 녹는다. 그 순간만큼은 진짜 부모가 된 기분이다. 깔끔한 캐릭터 이미지도 각광 받았다. 도스를 쓰던 시절 컴퓨터를 안전하게 끌 때 사용하는 프로그램(park.exe)의 이미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MSX용 프린세스메이커 플레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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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메이커] 이미지는 파킹 화면으로 가장 많이 쓰였다. 도스 써본 올드유저들은 저 장면 수없이 봤을 것이다.



공주님의 전성기! 프린세스메이커 신드롬
1994년 발매된 [프린세스메이커2]는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국내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1편보다 그래픽이 더 세밀해졌고, 캐릭터 디자인도 아기자기해 졌다. 2편의 백미는 역시 사운드다. 사운드카드에서 연주되는 미디음악은 게임의 감동을 배가 시켰다. 한 가지 음악만 썼던 전작과는 달리, 사계절마다 다르게 연주되어 듣는 이의 귀를 즐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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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메이커2] 오프닝



2편에선 딸의 체형과 건강까지 챙겨야 한다. 또, 도우미 역할을 해주는 집사 ‘큐브’ 캐릭터가 추가됐다(딸이 큐브랑 결혼하는 엔딩도 있는데 필자는 그거 보고 미치는 줄 알았다. 큐브, 이 도둑놈!). 무도회, 요리대회 등 딸의 라이벌들과 대결하는 시스템을 넣어 스토리에 완성도를 더했다. 또, 무사수행 같은 재미있는 이벤트를 추가됐다. 또, 엔딩도 66개로 전작의 두 배 가까이 볼륨업 됐다. [프린세스메이커]는 2편에서 전성기를 맞는다.


‘아빠 직업이 뭐에요?’ 프메의 불편한 진실
1997년 출시된 3편은 전작을 무난히 계승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윈도우용으로 발매되어 그래픽과 사운드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순정만화처럼 화사하면서 깔끔한 3편 캐릭터는 특히 여성게이머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3편의 가장 큰 변화라면 아버지의 직업을 고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직업은 딸의 성장에 변수로 작용한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딸의 초기 설정치와 양육비가 달라진다.

재미있는 건 아빠의 직업에 따라 딸이 생활하는 집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전작처럼 사랑과 헌신만으로는 부족하다. 부모의 경제력이 받쳐줘야 된다는 현실의 ‘불편한 진실’이 게임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무엇보다 인기 콘텐츠였던 ‘무사수행’을 뺀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3편부터 아빠의 직업은 ‘무사’가 아니지 않는가. 재미있는 건 부모의 직업을 논했던 [프린세스메이커3]은 전작만큼 인기를 얻지 못했다. 무엇보다 2편이 워낙 뛰어난 명작이라 그 기대감을 채워주지 못한 점이 부진의 원인이다. 3편을 기점으로 [프린세스메이커]의 전성기는 서서히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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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프린세스메이커3] 엔딩 화면. 왕자님이 찾아와 프로포즈를 하기도 한다.

(오른쪽)[프린세스메이커3] 엔딩 화면. 집안 일만 시키면 무조건 공무원이다. (현실에선 공무원 되기 엄청 힘든데)


8년의 기다림, 나락에 빠진 공주님!
4편은 전작이 나온 지 8년 만인 2005년에 출시됐다. 개발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가이낙스는 4편에선 무사수행을 다시 넣고 2편으로 회귀 할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아카이 다카미’ 감독의 건강이 악화되어 개발이 무한정 연기됐다. 결국 8년 만에 돌아온 [프린스세메이커4]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오매불망 프메 후속작을 기다렸던 팬들을 경악시켰다. 기대했던 무사수행은커녕 전작을 제대로 살리지도 못했다. 그림체부터 낯설었다.

[프린세스메이커4]는 ‘아카이 타카미’가 빠지고, 대신 [시스터 프린세스]를 그린 ‘텐히로 나오토’ 작가가 원화를 맡았다. 기존 팬들은 “원작을 망친 작품”이라며 제작사를 비난했다. 물론 바뀐 작가의 그림도 훌륭하지만 게이머들은 여전히 ‘아카이 타카미’의 그림체를 원했다. 전체적인 스토리에도 논란이 많았다. 마왕이 주인공의 애인을 납치해가서,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을 키운다는 거의 막장 드라마 수준의 내용이었다. 3편에서 아쉬워했던 팬들은 4편의 설정을 보고 분노했다. 결국 4편은 시리즈 중 가장 많은 혹평에 시달렸다. 딸의 행동에 따라 스토리가 바뀌는 시나리오 시스템은 그나마 호평을 받았다. 딸이 성장하면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가는 장면은 극적 긴장감을 높였다.

프린세스메이커4 오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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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가장 많은 혹평을 받은 [프린세스메이커4] 커버. 원작을 망친 작품이라 비난 받았다. 4편은 원화가는 물론 게임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오른쪽)[프린세스메이커5] 게임 화면. 5편 에선 다시 ‘아카이 타카미’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 이 작품부터 엄마의 입장에서 플레이할 수 있게 됐다


2007년 발매된 5편은 컨셉은 원작으로의 회귀다. [프린세스메이커5]는 ‘아카이 타카미’가 다시 원화를 맡았고, 배경도 현대로 바뀌었다. 4편의 암울한 판타지에서 벗어나려는 제작자의 의지일 것이다. 5편에선 어머니가 등장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게이머는 주인공의 성별을 고를 수 있는데 여자를 선택하면 엄마 입장에서 딸을 키울 수 있다. 여성 유저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다. 배경이 현대다 보니 게임내용도 사실적으로 바뀌었다. 딸은 학교에서 의무교육을 받아야 하고 부모의 직업이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좋은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버그가 많아 원성을 사기도 했다.

프린세스메이커5 오프닝, 이전 시리즈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한국으로 넘어간 프린세스메이커

"프린세스메이커는 많은 게이머들이 추억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게임'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추억을 가지고 새로운 출발점에 섰습니다."
-엠게임 권이형 대표(프린세스메이커 온라인 발표회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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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메이커 소셜] 게임 화면. 한국 게임사가 만든 프린세스메이커 소셜. SNS로 즐길 수 있다



[프린세스메이커]는 2007년 출시된 5편을 끝으로 더 이상 후속작이 나오지 않고 있다. 대신 다양한 방식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게임사 엠게임이 프린세스메이커 판권을 획득하고 관련 소셜 게임이 출시했다.

[프린세스메이커 소셜]은 원작 게임의 세계관과 육성시뮬레이션이라는 플레이 방식을 그대로 유지한 웹기반 게임이다. 학습, 아르바이트 같은 육성 시스템과 무사수행 같은 전투시스템을 그대로 살렸다. 개발은 한국에서 했지만 원작자가 직접 감수를 맡아 진행했다. 엠게임 포털과 LG유플러스의 SNS ‘와글’을 통해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 엠게임은 올해 중으로 [프린세스메이커] 관련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을 내놓을 예정이다.


“아빠, 키워줘서 고마워요”
이번 [프린세스메이커] 편을 준비하면서 필자는 과거 그렇게 비난했던 4편을 다시 한번 해보았다. 내가 4편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점은 스토리다. 자신의 애인과 원수가 낳은 아이를 키워야 하다니. 싸구려 성인게임도 아니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막장이다.

그런데 오프닝을 보면서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수의 자식을 내 딸처럼 키워야 하는 주인공의 심정. 과연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게임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1편에서는 ‘남의 자식을 네 자식처럼 키울 수 있는가?’, 그리고 4편에서는 ‘원수의 자식도 네 자식처럼 사랑할 수 있는가’를 물어본다. 어쩌면 [프린세스메이커]는 우리에게 가혹하리만큼 힘든 사랑을 요구한다. 남의 자식, 원수의 자식까지도 보살펴야 하는 그런 일방적인 사랑 말이다. 아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바로 그런 것이리라.

아버지가 되어 딸을 키운다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독특한 아이디어로 시작한 [프린세스메이커]는 그래서 위대한 게임이다. 동시대의 게임들은 대부분 빛바랜 CD 속에서 게이머의 추억을 파먹고 있을 때 [프린세스메이커]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지금도 PC, 콘솔, 모바일, SNG로 이식되어 수많은 ‘딸바보’를 만들고 있다.

게임이 주는 감동의 무게는 이래서 대단하다. [프린세스메이커]부터 게임은 ‘창조’와 ‘파괴’의 고리에서 벗어나 가족의 사랑 같은 인간적인 패러다임을 담았다. 딸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와 “아빠, 키워줘서 고마워요”라며 눈물짓는 엔딩의 그 감동. 밤 세워 게임했던 피로를 말끔히 씻어버리기에 충분하다. 단순한 ‘재미’로 해석하기 힘든 [프린세스메이커]의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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