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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던 아타리의 [테트리스] 인트로 화면.



게임 [테트리스]의 첫 화면은 모스크바 크렘린궁 앞 유명한 성 바실리 성당의 모습이다. 이 게임이 개발된 것은 1984년. 미국과 소련이 지구촌 패권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던 ‘냉전시대’였다. 개발자는 소련 과학 아카데미 소속 스물아홉 살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개발 3년 후 [테트리스]는 플로피디스크로 복사돼 북미에 급속히 번졌다. 1989년에야 닌텐도 게임기 ‘게임보이’가 정식으로 독점 계약을 맺었다. 이후 30종의 게임 약 7억장이 팔렸고, 2005년 시작된 휴대폰 서비스는 다운로드 횟수가 10억 회(2010년)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에서 [테트리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소련 KGB 음모설’이라는 황당한 소문이 퍼졌다는 것. “소련 정보기관 KGB가 미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미국의 전산망을 마비시키기 위해 [테트리스]를 배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소문과는 정반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테트리스]가 서방으로 넘어가 전산망을 마비시킨 것이 아니라, [테트리스]가 전세계로 퍼져나갈 무렵인 1989년부터 ‘붉은 제국’ 소련의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스물아홉 러시아 청년, 수족관에서 영감

“어린이나 베이비붐 세대, 바쁘게 살아가는 부모 등 모든 사람에게 갑갑한 일상에서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심리적 감정을 얻는 경험을 주고 싶다”
-개발자 알렉스 파지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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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파지노프. <출처: (CC)Eunice Szpillman at Wikipedia.org>


누구나 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 [테트리스]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게임이다. 지금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와 함께 역대 인기게임 1, 2위에 오르내린다. 심지어 북한에서도 큰 인기를 모은 바 있다.

[테트리스]는 1984년 소련 과학 아카데미(현 러시아 과학원)의 알렉스 파지노프가 처음 만들었다. ‘테트리스(Tetris)’라는 이름은 그리스 숫자 접두어인 ‘Tetra’와 자신이 좋아하던 ‘테니스(Tennis)’를 결합한 것이다.

파지노프는 열다섯 살 되던 해부터 컴퓨터를 다루기 시작해 어린 시절부터 여러 단순한 컴퓨터 게임을 개발해 본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후에 과학 아카데미의 컴퓨터 센터에 들어가서 소련에서 개발한 컴퓨터인 ‘일렉트로니카60’ 연구에 열중했다. 그러다 아이들의 공간 지각능력을 키우기 위한 ‘일렉트로니카60’ 용 퍼즐게임을 개발했는데, 그것이 바로 [테트리스]였던 것이다.

[테트리스]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을까? 어느날 파지노프는 수족관에서 넙치가 춤추듯 내려온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고 한다. 넙치가 바닥과 일체가 되는 모습이나 모래 위를 헤엄칠 때 다른 넙치를 겹치지 않고 헤엄을 치는 모습을 보면서 게임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평소 즐기던 퍼즐게임인 ‘펜토미노(Pentomino)’를 응용해 [테트리스]를 착안했다.
알렉스 파지노프가 개발한 초기 테트리스 플레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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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도스 버전 [테트리스].



정사각형 5개를 4개로
펜토미노는 정해진 상자의 크기에 맞춰 여러 개의 조각들을 맞추는 간단한 놀이다. [테트리스]는 정사각형 5개로 이루어진 도형인 ‘펜토미노’를 보다 단순화시켜 4개의 도형 ‘테트리미노’로 바꾸고 조각의 모양을 모두 7개로 제한했다.

[테트리스]의 게임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붙어 있는 7개의 블록을 차곡차곡 쌓아서 한 줄을 채우면 없어진다. 블록은 모두 7개지만 회전하기 때문에 블록들의 변형은 더 많아진다. 블록들은 좌우이동과 회전이 가능하지만 위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규칙을 갖고 있다. 플레이어는 블록을 좌우로 움직여 아래부터 차곡차곡 쌓는다. 한 줄(가로)을 채우면 점수가 되며 그 채워진 가로줄이 사라진다.

이렇게 계속 쌓이는 블록들을 제거해서 게임 화면의 맨 위에 블록이 닿지 않도록 막는 것이 게임방법이다. 얼핏 보면 쉬워 보이지만 레벨이 오를수록 속도가 빨라지면서 상당히 어려워진다. 파지노프는 [테트리스]를 완성된 후 너무 단순한 구성이라고 생각해 다시 다양한 변형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론은 첫 모습 그대로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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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의 7 조각.



10년간 한 푼도 받지 못한 저작권
파지노프가 처음으로 개발한 후 [테트리스]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세계에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정작 개발자 파지노프는 약 10년 동안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우선, 당시에는 저작권 개념도 희박하고 [테트리스] 복사판이 너무 많이 보급되어 무료게임으로 알려진 것도 한몫했다. 파지노프도 [테트리스]가 과연 얼마나 인기를 얻고 있는지 몰랐고, 라이선스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파지노프의 소련 정부 기관 소속 신분도 이유였다. 영국의 안드로메다에 PC 버전 판권을, 후에 일본 닌텐도에게 게임보이 독점 판권을 제공했지만, 소련 정부는 알렉세이 파지노프가 정부연구소에서 근무한다는 이유로 1985년부터 10년 간 [테트리스]의 실질적 저작권을 행사했다. 러시아에서 개인 저작권을 인정한 것은 소련 붕괴 이후인 1991년이다.

알렉스 파지노프도 1991년 미국으로 이민해 워싱턴에 정착했다. 1996년 [테트리스] 저작권이 만료된 이후 그는 미국인 헨크 로저스와 함께 [테트리스]에 대한 모든 독점적인 라이선스를 가진 회사를 설립했다. 이때부터 비로소 [테트리스] 로열티를 받게 되었다. 현재 [테트리스]의 판권은 미국의 블루플래닛(Blue Planet Software)사에 있다. 관련 회사인 더테트리스컴퍼니(TTC)가 관리한다.


복잡하게 ‘꼬이고 꼬인’ [테트리스] 저작권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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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게임보이 용 [테트리스].


[테트리스]의 저작권(라이선스) 분쟁은 게임사상 가장 복잡하게 ‘꼬이고 꼬인’ 것으로 유명하다.

먼저, 영국 사업가 로버트 스테인 안드로메다 사장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테트리스]를 발견(?)한다. 문제는 그가 파지노프와 PC버전 라이선스에 대한 협의를 마무리하기 전에 임의로 스펙트럼 홀로바이트란 회사에 라이선스를 팔았다는 점. 그리고 콘솔과 아케이드용 라이선스를 한 다리를 거쳐 아타리 자회사인 텐겐으로 넘겼다.

이 때문에 1989년 닌텐도가 정식 라이선스를 통해 출시를 하기 전에도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와 안드로메다 버전 등 PC용 [테트리스]는 1986년 미국에 유통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한편, 게임 퍼블리셔 헨크 로저스는 텐겐의 콘솔게임을 보고 텐겐에게서 라이선스를 얻는다. 닌텐도와 친분이 있던 그는 닌텐도가 ‘패미콤’ 용으로 [테트리스]를 발매할 수 있도록 중개해준다. 이때 만해도 어느 누구도 [테트리스] 라이선스가 ‘짝퉁’에서 ‘짝퉁’으로 재판매된 얼기 설기 꼬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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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리의 [테트리스] 게임 화면.


후에 헨크 로저스는 닌텐도 게임기 ‘게임보이’ 용 라이선스를 얻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해 “전세계 콘솔 라이선스를 사라”는 뜻밖의 제안을 받고 깜짝 놀란다. 파지노프를 직접 만난 그는 콘솔용 [테트리스]의 라이선스를 어느 회사에도 판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텐겐의 콘솔 라이선스가 불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 헨크 로저스는 닌텐도에게 이 같은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이 콘솔용 [테트리스] 정식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그리하여 닌텐도는 아타리와의 기나긴 법정싸움에 들어간다. 1차 1989년 11월 닌텐도는 아타리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불티나게 팔리던 아타리의 [테트리스] 카트리지는 급하게 회수됐다. 미처 나가지도 못한 25만 개의 카트리지는 폐기됐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타리와 닌텐도와의 [테트리스]에 대한 법정 싸움은 이후 수 년 동안 계속되어 1993년에야 마침표를 찍었다.


불법 ‘텐겐’ 버전이 가장 유명한 이유
로버트 스테인의 ‘짝퉁’ 라이선스를 사간 곳 중 하나가 미러소프트다. 미러소프트는 자신이 취득한 라이선스가 ‘짝퉁’인지도 모르고 아타리에 팔아버린다.

아타리가 자회사 텐겐에서 개발해 처음 발매한 아케이드 버전 [테트리스]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테트리스]를 떠올리는 사람은 텐겐 게임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이 게임이 ‘짝퉁’이라는 생각을 떠올린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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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겐의 [테트리스].


텐겐의 [테트리스]하면 게임만큼 유명한 것이 배경 음악, 즉 BGM(background music)이다. 지금도 패러디되고 있는 [테트리스] 음악들은 텐겐용 [테트리스]가 원조다. 그래서 [테트리스]의 핵심이 이 배경음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러시아 민요를 바탕으로 한 배경음악인 [Karinka], [Loginska], [Bradinsky], [Troika]는 여러 가지로 변주되었고, [테트리스]가 리메이크될 때나 패러디될 때 등장한다. 이와 함께 한 레벨이 끝나 점수 정산이 할 때 초록과 파란 복장으로 등장해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러시아 병정 캐릭터도 게이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텐겐 [테트리스]는 아타리가 소송에서 지면서 불법이라는 오명을 쓰고 폐기되는 운명을 맞았다. 텐겐의 [테트리스]보다 더 작품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 받았던 세가의 [테트리스]도 정식 라이선스를 취득한 것이 아니었다. 이 게임도 텐겐으로부터 사들인 ‘짝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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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의 [테트리스]



한국 [테트리스] PC는 한게임 독점 독자개발
[테트리스]는 한국에서도 1980, 1990년대 오락실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후에는 온라인 게임과 무선 휴대폰 게임으로도 인기를 구가했다.

1990년대까지는 더 테트리스 컴퍼니와 계약 없이 서비스된 [테트리스]가 많았다. 하지만, 2003년에 판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여러 가지 [테트리스] 게임들은 한꺼번에 증발한다. 판권료 경쟁도 치열해져 대부분의 게임 회사들은 서비스를 포기했다. 2003년 3월 TTC는 NHN, 넷마블, 컴투스 등 한국 3개 업체와 서비스 계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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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게임에서 서비스한 [테트리스].


이후 PC용 [테트리스]는 한게임이 2008년 독점 계약을 맺었다. 한게임 [테트리스]는 판권료를 지불하고 2006년까지 서비스했으나 결제 모델이 없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잠시 접었다가, 하루 플레이 판수에 제한을 둔 부분유료화를 선택하고 저작권 문제를 해결해 다시 서비스를 했다.

“한게임 온라인 버전을 개발하기로 해 하와이 호놀룰루 TTC 본사로 날아가 PT를 하고 과금 등에 대해 독점 협상을 했다. TTC가 PC방 과금, 부분유료화에 대해 잘 몰라 반나절 동안 설명하고 설득했다”
-이동민 당시 NHN 한게임 소싱팀장

한게임 내부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한게임 테트리스]는 여성 유저들을 끌어들여 출시 한 달만에 이용자수 320만명, 7만 동시접속자수를 기록했다. 당시 김정호 한게임 대표가 “국민게임 축하파티”를 열기도 했다.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는 컴투스가 유일하게 정식 공급 계약을 통해 서비스해왔다. 하지만 2011년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테트리스] 저작권은 EA모바일코리아가 가져갔다.


초등학생부터 부모 모두 만족한 최초의 게임
“땡따라땡~땡따라 땡따라땡~” 성 바실리 성당 위로 축포가 터진다. 그리고 친숙한 러시아 민요 테마송이 퍼진다. 한 판 끝날 때마다 러시아 병정은 절도있게 춤을 춘다. [테트리스]는 오락실 세대에게는 유혹을 거부할 수 없는 영원한 추억의 아이콘이다.

선보인 지 30여 년이 흘러도 [테트리스]는 초등학생에서 직장인, 부모들 모두 세대에서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다른 게임처럼 그래픽이 탁월한 것도 아니고, 스케일이 크거나 다양한 시스템을 갖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왕 단순함’으로만 최초의 가족게임 자리를 꿰찼다. 특히 휴대용 게임, 오락실 아케이드 게임기, PC 등 거의 모든 게임 플랫폼에 이식된 [테트리스]는 “총을 쏘거나 전투기가 등장하지 않아도 게임이 재밌다”는 것을 입증했다.

2009년 3월 한게임 [테트리스] 서비스를 위해 한국을 찾은 개발자 알렉스 파지노프는 “[테트리스]는 만국 공통언어와 같은 게임이다. 전 세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성공했다.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 세계 평화에도 기여했다”라고 말했다.

한때 ‘소련 KGB 음모설’ 같은 황당한 소문에 휩싸였던 [테트리스]는 이제 시대를 초월한 글로벌 게임으로 우뚝 솟아 ‘세계 평화’에 기여한 특이한 게임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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