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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1] 게임 화면. [울티마]는 CRPG를 대중화한 게임 중 하나로 꼽힌다.

1979년, 미국의 한 컴퓨터 상점 직원이 심심풀이로 애플2 컴퓨터를 이용해 컴퓨터 게임 하나를 개발했다. 프로그래밍에서 그래픽까지 게임 제작의 모든 과정을 홀로 맡아 뚝딱 해치웠다. 텍사스 대학에 합격한 후 컴퓨터 상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고등학생 리처드 게리엇, 그가 만든 게임은 바로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CRPG)의 역사를 연 [아칼라베스(Akalabeth)]였다.

리처드 게리엇은 대학에 들어간 후, [아칼라베스]의 게임 시스템과 세계관, 스토리를 진화시켜 [울티마]를 만들었다. 이견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울티마]를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울티마]는 [위저드리],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와 함께 CRPG를 대중화한 게임으로 평가받는다.


[반지의 제왕]과 [던전 앤 드래곤], 그리고 [울티마]
그렇다면, CRPG는 어떻게 시작되게 되었을까? CRPG의 탄생 스토리를 거슬러올라가면, J.R.R 톨킨의 환상소설 [반지의 제왕]이 있다. 소설 [반지의 제왕]은 RPG라는 장르의 탄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정설이다. [반지의 제왕]은 6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폭발적인 ‘톨킨 붐’을 일으키며 인기를 끌었다. 중세풍의 갑옷을 걸치고 불을 뿜는 드래곤과 싸우는 기사의 모습, 새 종족과 각 종족의 고유언어, 연대기 등 톨킨 사후 출간된 [실마릴리온]의 중간계는 더욱더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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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PG [던전 앤 드래곤] 게임 장면. <출처: (CC)Philip Mitchell at 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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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울티마] 탄생의 밑거름이 된 [아칼라베스] 게임화면.


1974년 등장한 보드게임 [던전 앤 드래곤](이하 D&D)은 소설 [반지의 제왕]의 세계를 게임으로 구현한 것으로([던전 앤 드래곤]의 제작자는 [반지의 제왕]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으나, 많은 부분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테이블 토크 RPG(TRPG) 열풍을 일으켰다. 이후 컴퓨터가 대중에 보급됨에 따라 톨킨의 판타지 세계와 [D&D]의 게임 시스템은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CRPG)으로 이어지게 된다.

[울티마]는 1981년 등장한다. 고교시절 [D&D] 프로젝트 게임 다수를 만들어본 리처드 게리엇의 손에 8비트 애플컴퓨터에서 탄생한 [울티마]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출시 1년 만에 2만 장이 판매되며 인기를 끌었고, 게임의 스토리와 플레이 방법을 설명하는 게임 공략집이 불티나게 팔렸다.


[울티마]의 세계, ‘로드 브리티시’와 ‘아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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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1] 인트로 화면.

[울티마]라는 이름은 영국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섬 이름 [울티마(Ultima Thule)]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또한, [울티마] 시리즈 1부터 게임의 배경이 된 ‘브리타니아’(혹은 소사리아, 아칼라베스)는 가상의 공간이다. 이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문게이트를 지나 갈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은 지구의 시간보다 빠르다.

한 젊은이가 문게이트를 통해 브리타니아로 가 왕이 된다. 이 젊은이가 ‘로드 브리티시’다. 바로 영국에서 태어나 평생 닉네임을 ‘로드 브리티시’로 쓴 리처드 게리엇이다. 로드 브리티시는 브리타니아를 통치하며 수많은 위험에 직면하는데 지구에서 온 이방인(아바타)의 도움을 받는다. 이 이방인은 [울티마]를 플레이하는 게이머 자신이 된다. 이처럼 리처드 게리엇은 [D&D]세대답게 장대한 스토리와 더욱 세밀하고 방대한 세계관을 구축해 하나의 ‘울티마 월드’를 만들어냈다.

전체 시리즈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게 요약된다. ‘암흑의 시대’는 먼데인이라는 사악한 마법사와 그의 후계자들을 차례로 물리쳐 나가는 것, ‘계몽의 시대’는 로드 브리티시가 통치 8개 미덕을 제시하고 아바타를 미덕의 화신으로 만드는 것, ‘아마게돈 시대’는 혼돈의 화신 가디언이 브리타니아를 수중에 장악하려는 음모를 막는 것.

초기의 컴퓨터 게임은 액션이나 스포츠 장르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울티마]는 그들과는 다른 ‘이야기(서사)’로 게이머들을 사로잡았다. 게이머들은 [울티마] 주인공인 아바타를 자신의 분신으로 여길 정도로 몰입했다. [울티마] 등장을 계기로 RPG 장르가 대중화 장르로 독특한 입지를 차지했다.


[울티마] 주요 시리즈
1982년 전작보다 방대한 규모의 [울티마2]가 시에라 온라인을 통해 출시된다. 당시 시에라 온라인과 로열티 문제로 불화를 겪은 리처드 게리엇은 마침내 대학교를 그만두고, 형 로버트 게리엇의 도움을 받아 오리진 시스템즈를 창업, [울티마3]를 내놓는다. [울티마3]는 더욱 화려해진 그래픽을 선보였으며, 캐릭터를 한 명만 조종하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을 컨트롤할 수 있는 선구적인 파티 시스템을 구현해 약 12만 장이 판매되며 시장에서 크게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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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2] 게임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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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3] 게임 화면. [울티마3]에서는 파티 시스템을 구현했다.

이어 역대 게임 시리즈 중 최고 중 하나인 [울티마4]가 출시됐다. [울티마4]는 게임에 윤리적 색채를 가미한 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이른바 명성시스템을 도입해 플레이어가 얼마나 도덕적인 상태에서 적들을 쓰러뜨렸는지를 게임 내용에 반영했다. 게이머는 8개 미덕을 찾아다니고, ‘울티마’의 세계관을 완벽히 이해해야 클리어 가능할 수 있었는데, 이 때문에 게임은 게임 사상 가장 심오하면서 어려운 게임 중 하나로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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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4] 고모도어 64 버전 화면. [울티마4]는 게임에 윤리적 색채를 가미한 수작으로 평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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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4] 패미콤 버전 화면.

[울티마]는 5, 6 시리즈까지 매년 최고 게임으로 등극하며 RPG의 대명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대의 제작비가 든 [울티마7]이 버그 문제로 발매가 연기되면서, 팬들이 분노했고 오리진 시스템즈는 신뢰를 잃었다. 또한, [울티마7] 때문에 발생한 재정 문제로 오리진 시스템즈는 EA에 합병되고 EA 산하에서 발매된 [울티마7-2]부터는 하락세를 걷게 된다.

여기서 눈여겨볼만한 것은 [울티마]의 강점이었던 자유도가 [울티마7-2]을 기점으로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신 그래픽과 흥미도에 치중했지만, 모두 일본형 RPG에 미치지 못했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고 게이머들의 외면을 받았다. 결국 9편을 마지막으로 시리즈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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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6] 게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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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7] 게임화면.

[울티마] 시리즈는 여러 편이 제작되었다. 그 중 대표작 9편은 3부작으로 엮인다. 1~3편을 암흑의 시대, 4~6편을 계몽의 시대, 7-1,2, 8, 9편을 아마게돈 시대라고 부른다. 그외에 MMORPG장르를 대중화시켰다고 평가받는 [울티마 온라인] 역시 유명하며, 이밖에 외전격인 [울티마 언더월드]가 2편, [월드 오브 울티마] 시리즈가 2편이 있다.

[울티마] 시리즈의 판권은 오리진 시스템즈가 소유하고 있었으나, 1992년 EA에 합병되면서 현재 EA의 소유로 되어 있다. 시리즈의 창시자인 리처드 게리엇은 2000년 EA를 퇴사하여 현재는 시리즈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게임 내 몇몇 인물에 대한 권리를 보유하고 있어, 리처드 게리엇과 EA 모두의 동의 없이는 [울티마] 브랜드의 새 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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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도를 선호하는 미국 게이머 입맛
[울티마]나 [위저드리]와 같은 미국식 RPG는 [드래곤 퀘스트]와 [파이널 판타지] 등 일본 RPG의 모태가 되었다. 하지만 두 RPG는 노선이 다르다. 혹자는 서양의 개인주의적인 성향과 동양의 집단주의적인 성향 차이로 두 RPG의 서로 다른 특징을 설명하기도 한다. 우선, [울티마] 같은 미국형 RPG는 방대한 자유도 아래 넓은 배경을 만끽할 수 있다. 스토리에 집중하고 주인공이 만나는 ‘사건’에 집중한다. 반면 접근하기 어려운 느낌을 준다. 이에 비해 일본형 RPG는 인물에 초점이 맞춘다. 룰은 간략화되고 ‘주인공’이 만나는 사건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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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8] 게임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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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9] 게임 화면.

이 같은 두 노선의 차이에 대한 또다른 해석도 있다. [울티마]가 처음 개발되었을 때 애플을 통해 플레이할 수 있게 프로그래밍된 것이 이유라는 것. 당시 애플 컴퓨터 기종이 그래픽 연산 능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 그래픽 보다는 스토리에 집중하게 되면서 자유도를 선호하는 미국들의 성격과 맞물려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일본식 RPG가 대두될 무렵 일본의 컴퓨터들은 MSX라는 기종이 주를 이루었다. 이 MSX는 애플에 비해 그래픽 능력이 굉장히 좋았다.

[울티마]는 1편부터 5편까지는 애플2 컴퓨터용으로 개발되어 출시되었다. 6편부터는 IBM 호환컴퓨터용으로 개발되었다. 이후 1편부터 4편까지는 8비트 아타리, 2~6편까지는 아타리ST, 1편에서 6편까지 코모도어64, 3편부터 7편 파트1까지 코모도어 아미가, 그리고 1~5편까지 IBM으로 컨버전되어 발표되었다. 현재 [알카라베스]를 개발한 컴퓨터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MMORPG 뼈대를 만든 ‘울티마 온라인’
1997년 9월 25일에 발표된 [울티마 온라인]은 대표적인 샌드박스형 MMORPG다. 현재 한국의 송재경이 개발한 [바람의 나라]와 최초의 MMORPG 타이틀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찌되었건 MMORPG의 뼈대를 만든 게임이라는 평가는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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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마 온라인]

[울티마 온라인]을 개발할 때만 해도 EA측에서는 기존의 성공모델이 없다면서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상대적으로 열악한 인터넷 환경과 결제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작품 발매 6개월 만에 유료회원 10만 명을 돌파하고, 25만 유저들이 플레이하는 등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울티마 온라인]은 싱글플레이로만 하던 [울티마]를 수많은 사용자들이 함께 하는 멀티플레이를 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MMORPG 장르를(MMORPG라는 이름까지도) 대중화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온라인은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계보로 분류되는 8, 9시리즈가 아니라 주로 6, 7시리즈를 계승했다. 싱글 플레이에서 버그가 생기는 NPC 등의 한계를 인공지능으로 구현해 비로소 버그해방을 이뤘다.

[울티마 온라인]의 성공은 이후 1999년 [에버퀘스트]와 [애쉬론즈 콜], 2001년 [다크에이지 오브 카멜롯], 2004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같은 MMORPG의 탄생에 영향을 줬다. 온라인은 베타테스트, 퍼스트에이지에 이어, 세컨드 에이지, 르네상스 등을 거쳐 다양하게 변신했다. 그러나 리처드 게리엇 사단이 EA를 떠나며 게임은 사실상 ‘암흑기’를 맞는다.


“울티마 자유도는 아직도 넘사벽”
[울티마] 브랜드 아래 등장한 타이틀만도 25개. 이 정도면 CPRG로는 가장 오래된 RPG 프랜차이즈다. 2012년 11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역대 최고의 게임 100선을 발표했다. 1위로 [팩맨]이 선정된 가운데 온라인게임으로는 많은 게이머의 추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울티마 온라인]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이름을 올렸다.

[울티마]가 게임사에서 그 명성을 떨친 것은 CRPG의 시작을 열었다는 점과 MMORPG를 통해 최고 게임으로 재탄생했다는 점 때문이라고 본다. 당시 인기를 누렸던 경쟁 RPG [위저드리] 시리즈와 [마이트 앤 매직] 등이 패키지 게임에 머물러 있는 동안 빠르게 온라인으로 말을 갈아 탔고, [울티마]의 우수한 게임성은 MMORPG라는 새로운 세계로 전해져, 진화, 발전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개발자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도 [울티마] 같은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리니지]를 개발했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요즘 개발자 중에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영향으로 게임 개발자의 길에 들어섰다고 말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왕년에 게임 좀 했다"는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울티마]를 안 해본 사람은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여전히 많은 유저들은 “We Create World!(우리는 세계를 만들었다!)”라는 [울티마 온라인]의 슬로건을 회상하며 “30가지 스킬조합으로 만드는 자신만의 캐릭터, 직업 선택 무제한, 집 설계하는 하우징 시스템 등 현재 나와 있는 어떤 온라인 게임도 [울티마 온라인]의 자유도를 능가하지 못한다. 넘사벽”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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