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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1]의 인트로 화면.

게임은 인간의 욕망을 담는 그릇이다. 사람들은 모니터 안 세상에서 현실의 실현 불가능한 욕망을 채운다. 액션게임에서 악당들과 17대 1로 붙어 이길 수 있고, 슈팅에선 비행기 한대로 거대 항공모함을 때려 부술 수 있다. 돈에 대한 욕망은 경영시뮬레이션에 녹아있고, 속도에 대한 갈망은 레이싱게임으로 충족시킨다. 예쁘고 착한 여친과 데이트 하고픈 솔로들의 소심한 꿈은 연애시뮬레이션이 채워준다. [삼국지]는 인간이 느끼는 여러 가지 욕망 중 ‘권력’에 대한 욕망을 형상화 했다.

“난세의 영웅이 되어 천하를 평정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 [삼국지]는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권력자가 갖춰야 할 리더십을 아울렀다. 자신의 결정으로 백성들이 도탄에 빠질 수 있고, 반대로 천하통일을 달성해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 게임은 영웅이 없는 우리시대에 영웅에 대한 대리만족을 충족시켜 준다. 수많은 사람들의 밤잠을 빼앗은 마력의 게임 삼국지. 그 이면에는 절망을 딛고 마침내 기회를 잡은 서른 살 늦깎이 개발자의 고군분투 성공기가 숨어 있다.


서른 살 늦깎이 개발자의 인생반전
사람에게 무엇이 불운이고, 무엇이 기회인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회가 언제 어떤 형태로 찾아오는지 미리 알 수는 없죠. 그런 점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코에이 에리카와 요이치 회장-

보통 세상을 바꾼 위대한 창조자들은 어릴 적부터 타고난 소질을 갖춘 천재들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필자가 알고 있는 위대한 게임 크리에이터들은 천재는커녕, 실패를 밥 먹듯이 하고, 사회서 인정받지 못한 괴짜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절망을 딛고 끝까지 노력해 기회를 잡았다는 점에서 그들의 삶은 비슷하다.

[삼국지]를 만든 코에이 ‘에리카와 요이치’ 회장이 그랬다. 그는 30세까지 게임은커녕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학창시절 그는 유독 역사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대학 졸업 후 아버지의 염료 도매상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역사를 좋아하는 문과생에게 염료회사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하기 싫은 사업이니 될 리가 없었다.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자신은 늘 빈털터리였다. 의미 없이 나이만 먹어갈 뿐이었다.

1980년, 에리카와의 아내는 의기소침한 남편을 위해 생일선물로 컴퓨터를 사주었다. 그의 나이 30세였다. 난생 처음 컴퓨터를 접한 에리카와는 그 길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빠져들었다. 일이 끝나면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독학으로 프로그램을 마스터했다. 처음엔 회사 제고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직접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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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코에이가 출시한 [노부나가의 야망]

재미를 붙인 에리카와는 게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냥 취미삼아 역사 시뮬레이션게임 [카와나카시마 전투]와 경제게임 [투자 게임]을 만들었다. 일본 대표 개발사 코에이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게임을 직접 팔아보기로 했다. 잡지에 광고가 나가자 사람들의 주문전화가 폭주했다. 에리카와는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고객으로부터 반응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건줄 몰랐습니다. 지금까지 존재의미가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때부터 일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하고 보람을 느꼈죠.”

그는 염료 도매업을 그만두고 게임회사를 차렸다. 게임을 만들고 포장하는 작업까지 사장인 그가 혼자 맡아 했다. 그래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기에 더욱 신이 나서 개발에 몰두했다. 운도 따랐다. 1983년 출시한 [노부나가의 야망]이 대박을 쳤다. 사업 부진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만든 게임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에리카와는 서른이 넘어서 기회를 잡은 것이다. 코에이는 일본에서 주가총액 2조의 일곱 번째 규모의 게임회사로 성장했다. 30년간 게임시장에 군림했던 [삼국지]는 그렇게 탄생했다.


디지털 시대 도원결의!
[삼국지]는 일본은 물론 대한민국 게임 산업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시리즈마다 편차가 심했던 [파이널판타지]와는 달리 모든 시리즈들이 골고루 인기다. 역사와 게임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변화를 추구하는 시리즈 특유의 ‘혁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1985년 발매된 [삼국지]는 플로피디스크 2장짜리 용량의 게임으로 나왔다. 왼쪽에 중국지도가 있고 오른쪽엔 도시와 장수의 정보가 표시됐다. 이런 화면구성은 조금씩 변화는 있지만 시리즈 내내 이어지는 특징이다. 당시엔 컬러 모니터와 사운드 카드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유저들은 흑백화면에 ‘삑삑’ 거리는 PC스피커로 게임을 즐겼다(이 소리는 굉장히 시끄러웠다). 당시 학생들은 밤늦도록 게임하는 걸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PC스피커 선을 끊어버리고 ‘삼국지’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쉽게도 [삼국지] 1편은 한국에선 정식발매 되지 못하고, 대부분 불법 카피 본으로 즐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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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삼국지 시리즈, 왼쪽에 중국대륙을 나타내는 지도와 오른쪽에 도시와 장수의 정보들이 나열되어 있다.

[삼국지2]는 컬러모니터와 사운드카드가 보급이 한창이던 1989년 발매됐다. 삼국지의 특징인 장수들의 얼굴을 개성 있게 표현하고 게임 속 이벤트들을 그래픽으로 처리했다. 사운드카드로 연주되는 미디 음악은 지금 들어도 좋다. 게임내용도 대폭 업그레이드 됐다. 기존 장수 외에 자신이 마음에 드는 가상의 인물을 추가시키는 신군주 시스템이 추가됐다. 또, [삼국지]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인 일기토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장수가 일대일로 맞붙어 싸우는 일기토는 이후 삼국지 시리즈의 최고의 로망이었다. 1편과 2편은 전략시뮬레이션의 원형을 만들었다. 또, [삼국지] 시리즈의 ‘꽃’이라 평가받는 [삼국지3]가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삼국지2] 게임플레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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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2]부터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인 일기토가 추가됐다.


영웅들의 전성기! 삼국지3
아마 우리에게 기억되는 삼국지는 [삼국지3]부터가 아닌가 싶다. 1992년 [삼국지3]가 나오면서 국내유저들은 소위 ‘삼국지앓이’에 시달렸다. 당시 [삼국지3]의 인기는 대단했다. 256컬러로 제작된 [삼국지3]는 한국에서 전략게임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조립 PC에 [삼국지3]가 깔려 있지 않으면 팔리지도 않았다. 유저들은 [삼국지3]를 하기 위해 일본어판 도스를 따로 부팅해 즐겼다. 성격 급한 유저들은 일본어 원판을 직접 한글화하는 열의까지 보였다(물론 이런 행위도 불법이다). 게임이 워낙 인기여서, 오락실에서도 게임기 대신 PC를 설치해 두고 [삼국지3]를 틀어놓을 정도였다.

[삼국지3] 게임플레이 영상

[삼국지3]는 전략적으로 좀 더 짜임새 있게 바뀌었다. 전작이 지역을 중심으로 내정을 펼쳤다면 3편부터는 도시중심으로 바뀌었다. 도시와 도시는 도로로 연결되어 있고, 전쟁도 야전과 공성전, 해전으로 나뉘어 스케일 면에서 전작을 압도했다. 기마병, 보병, 궁병을 적절히 활용해 전술적인 플레이가 더 강화됐다. 적은 병력으로도 전술만 잘 쓰면 몇 배 넘는 상대편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삼국지3]은 시리즈 사상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받고 있다. 이후 [삼국지3]는 유통사 비스코가 한글화해 정식으로 국내 발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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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최고의 작품 [삼국지3], 지역 단위에서 도시 단위로 바뀌었다.

2년 뒤, 1994년 발매된 [삼국지4]는 3편의 전통을 계승했다. 키보드 대신 마우스로 조작으로 바뀌었고, 전쟁에서 잡은 장수를 죽이지 않고 나중에 등용시킬 수 있는 ‘포로 시스템’이 추가됐다. 특히 4편부터 게임의 확장팩 개념인 ‘파워업키트’가 발매되기 시작했다. “상술이 너무 심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오리지널 게임과 파워업키트를 따로 발매하는 판매방식은 [삼국지] 시리즈의 전통이 된다.

[삼국지4] 게임플레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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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4 전투화면, 화공을 쓰고 바람의 방향을 움직이면 전투가 쉽게 끝난다.


윈도우 시대의 영웅들!
필자는 [삼국지5]의 오프닝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잇지 못한다. 영화 같은 화려한 영상,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웅장한 음악은 그 자체가 전율이었다. 1996년 발매된 [삼국지5]는 시리즈 최초로 윈도우 전용으로 나온 작품이다. 당시 90년 중반은 게임산업의 일대 격변기였다. 디스켓보다 수백 배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시디롬(CD-ROM)이 등장하면서 고용량 게임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삼국지5] 오프닝 영상

[삼국지5]는 새로운 PC환경에 맞춰 시디게임으로 발매됐다. 전작의 밋밋했던 미디 사운드를 버리고 실감나는 시디음악으로 유저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윈도우환경에서 구현된 그래픽은 이전 시리즈와는 차원이 달랐다. 외형적으로 완벽한 진화한 셈이다. 일기토 모드에선 최대 8명이 편을 짜서 단체전을 치를 수 있으며, 최강의 무장끼리 펼치는 토너먼트전은 게임의 백미였다. 장수들을 높은 관직에 오르게 하기 위해선 용명을 쌓아야 되는데, 이러한 시스템은 [삼국지7]에 영향을 준다. [삼국지5]는 국내에서도 10만장 이상 판매되며 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2]와 함께 한국 패키지게임의 양대산맥을 형성한다. 삼국지는 5편에 들어 완전한 ‘국민게임’으로 등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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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시리즈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삼국지5], 윈도우 환경으로 출시됐다.


‘스타크래프트’의 도전을 받다
1990년대 말, [삼국지]는 거대한 도전 앞에 직면했다. [커맨드앤컨커],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등 이른바 실시간전략게임(RTS)의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유저들도 느린 턴 방식보다 속도감 넘치는 실시간 게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턴제를 고집하던 [삼국지]는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RTS의 도전에 당황했다. 이런 위기감은 [삼국지]를 변하게 했다. 이때부터 [삼국지]는 시리즈마다 변화와 혁신의 연속이었다.

[삼국지6]부터 파격적이었다. 1998년 발매된 [삼국지6]는 턴제를 과감히 버리고 최초로 하프타임 전투방식을 도입했다. 전략은 턴제로, 전투는 실시간으로 진행됐다. [스타크래프트]와 다른 점은 유저가 원할 때 정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장수의 성향이 추가됐다. 기존 장수들은 능력치로 구분됐는데 6편부터는 ‘의협, 패권, 안전, 출세, 대의, 왕좌’ 등 인물의 성향이 추가됐다. 같은 성향끼리 친해지거나, 다른 성향끼리 적대관계가 맺어지면서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예를 들어 의협심이 강한 관우는 패권주의 성향의 조조와 가까워 질 수 없다. 성향이 추가되면서 장수 개개인의 개성이 좀 더 디테일하게 표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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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6], 당시 윈도우 환경에 맞추어 인터페이스를 윈도우 형식으로 바꾸었다

사실 [삼국지]의 기본적 시스템은 6편에서 모두 완성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 경제, 군사, 외교 같은 내정 시스템은 6편 이후 더 이상 손볼게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2000년, [삼국지7]이 나오자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이건 삼국지가 아니다!’ 그야말로 게임의 본질을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였다.


장수들의 반란, 이건 삼국지가 아니다!
[삼국지7]의 테마는 한마디로 ‘장수들의 반란’이다. 등장하는 모든 장수를 플레이할 수 있게 됐다. 유비, 조조, 손권 같은 군주뿐만 아니라 조운, 관우, 하후돈 같은 휘하무장들로 직접 플레이할 수 있다. ‘군주’ 위주의 게임이 ‘장수’ 중심으로 넘어가면서 게임방식도 달라졌다. 예를 들어 ‘조운’을 선택하면 처음엔 재야장수로 시작했다가 일반장수, 태수, 군사, 군주로 신분이 상승한다. 장수 때는 재야에서 민심을 살피고 다른 사람과 친분을 맺을 수 있고, 태수에 오르면 도시의 내정을 담당할 수 있다. 또, 군주로 신분이 상승하면 대륙 전체를 놓고 다른 영웅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다. ‘개인의 성장’을 강조한 점에서 롤플레잉 요소도 가미됐다. 물론 ‘삼국지 시리즈의 이단아’는 비판도 많았다. 천하통일 같은 권력쟁취보다 개인의 성취가 더 중요해 졌다. 육군사관학교 이정엽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삼국지7]이 보여주는 개인적인 드라마의 가능성은 사실상 권력욕 추구 이전에 명예욕이 우선적으로 확보돼야 함을 보여준다”며 “권력이란 혼자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부단한 개발과 두터운 인간관계를 통해 형성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는 예”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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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7]은 기존 군주제에서 장수중심으로 게임방향을 바꾸었다. 유저들에겐 그야말로 혁신적인 게임으로 기억된다

[삼국지8]은 7편의 특징을 그대로 계승, 발전시켰다. 장수 중심의 게임방식은 전작보다 한층 강화됐다. 군주가 되어 천하통일을 이루기보다 장수 개인의 인생을 대리 체험하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무장들은 결혼을 할 수 있고 자식도 낳을 수 있다. ‘호적수’, ‘의형제’ 등 인물간의 인간관계도 복잡해졌다. 심지어 자식을 교육시켜 후세를 이를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삼국지8]은 전략게임보다 육성시뮬레이션에 가깝다는 평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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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8]은 7편의 게임방식을 더 발전시켰다. 새로 선보인 결혼시스템은 유저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혼돈의 역사, 혁신은 계속되고
2003년 발매된 [삼국지9]에선 또 한 번 놀라 자빠질 일이 벌어졌다. 다시 군주제로 회귀한 것이다. 전투도 [삼국지6]와 마찬가지로 하프타임 방식을 채택했다. 군주제로 돌아오다 보니 인물 하나하나의 소소한 재미는 감소된 반면, 큰 틀에서의 전략적인 재미가 강화됐다. 정통 삼국지의 재미를 복원한 것이다. 플레이에 따라 엔딩이 달라지는 ‘멀티엔딩’이 도입됐다. 애써 대륙을 통일했는데 난데없이 이민족이 쳐들어와 나라가 망했다는 엔딩은 허무함의 극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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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군주제로 회귀한 [삼국지9]. 논란이 많은 작품이었다.

2004년 발매된 [삼국지10]은 다시 무장중심으로 전환했다. 10편의 특징은 설전이다. 지금껏 삼국지는 한마디로 ‘무신시대’였다. 힘이 약한 문신들은 후방의 내정에만 사용될 뿐 전쟁에 써먹기에는 부족했다. 때문에 지력이 높은 ‘제갈량’이나 ‘순욱’보다 무력이 높은 ‘장비’, ‘하후돈’이 더 중요하게 쓰였다.

하지만 10편에선 문신들도 대우받는 시대가 열렸다. 설전시스템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설전은 서로의 지혜를 겨루어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일대일 대결방식이다. 원작소설에서 제갈량이 오나라를 설득해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사건을 게임에서 재현할 수 있다. 설전을 통해 장수도 등용할 수 있다.

한편 국내에선 [삼국지10]의 역사왜곡 해프닝도 있었다. [삼국지10] 한글판에서 낙랑이 중국영토로 표시되어 제작사가 해당지역의 명칭을 수정한 후에 발매 됐다. 또, 확장팩에서 신무장으로 추가된 충무공 이순신의 능력치가 턱없이 낮게 나와 한국 유저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여러모로 구설수가 많았던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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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10]에선 무신 외에 문신의 역할도 중요하다. 상대를 말로 설득하는 설전이 추가됐다


돌아오지 않는 영웅들
[삼국지11]은 패키지게임의 황혼기인 2006년에 발매됐다. 게임시장의 주도권이 온라인게임으로 넘어가던 시기다. 삼국지를 모르는 온라인세대 유저들에겐 삼국지 최신작은 관심권 밖이었다.

11편은 다시 군주제로 돌아왔다. 시리즈 최초로 3D 그래픽을 사용해 중국전토를 화려하게 묘사했다. 계절마다 분위기가 바뀌는 수려한 그래픽은 한편의 동양화를 연상시켰다. 무장 일러스트도 나이마다 다르게 표현됐다. 똑같은 제갈공명도 삼고초려 때의 풋풋한 꽃미남 공명과 오장원 전투 때 근엄한 노년의 공명이 각각 다르게 나온다. 장수의 대사도 중국어로 처리해 원작소설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아쉽지만 [삼국지11]은 국내에 정식발매 된 [삼국지]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삼국지11]은 그 인기에 비해 실제 판매량이 너무 저조했다. 가격이 비싼 이유도 있지만 그만큼 불법 복사가 게임의 수명을 단축시켰다. 게임을 하는 사람은 많은데, 팔린 물량은 적으니 개발자 입장에선 답답할 노릇이다. 11편을 마지막으로 코에이는 한국에서 철수했다. [삼국지11]은 파워업 키트가 발매되지 못한 채 반쪽짜리 게임으로 남아있다.
[삼국지11] 오프닝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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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그래픽을 사용해 시리즈 사상 최고의 비주얼을 보여주는 [삼국지11]. 그러나 국내에 정식 한글화 되어 출시된 마지막 작품이다.


2012년에 나온 [삼국지12]는 전작이 나온 지 6년 만의 작품이다. 그러나 [삼국지12]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 전작의 아기자기한 재미요소를 빼고 게임을 단순화 시킨 느낌이다. 2D로 회귀한 그래픽은 오히려 전작에 비해 퇴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삼국지12]는 해외에서만 즐길 수 있는 남의 나라 게임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삼국지]가 다시 한국서 정식으로 발매될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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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본에서 출시된 [삼국지] 시리즈 최신작 [삼국지12]


역사와 게임에 대한 철학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 말을 하지 말라는 말처럼, [삼국지]를 하다가 밤을 세워보지 않은 사람과는 게임을 논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다. 삼국지 외에 코에이는 다양한 역사게임들을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일본역사를 담은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가 있다. 이 게임은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일본 전국시대 일대기를 다룬 전략게임이다. 일본에선 삼국지와 쌍벽을 이루며 현재 13편까지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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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3]의 엔딩 장면.

이밖에 코에이는 세계 역사를 다양한 종류의 게임으로 기록해 왔다. 17세기 유럽의 식민지 개척사를 다룬 [대항해시대](대항해시대는 다음 기회에 따로 다룰 예정이다), 유방과 항우의 초한지를 다룬 [항유기], 일본 가마쿠라 막부시대를 그린 [원평합전], 몽골의 세계재패를 다룬 [칭기스칸], 미국 독립전쟁사를 다룬 [독립전쟁: 자유 아니면 죽음], 유럽의 나폴레옹 전쟁을 다룬 [랑펠로], 일본 메이지유신을 그린 [유신의 폭풍: 막말 지사전], 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을 다룬 [제독의 결단] 등 수많은 역사게임을 제작했다.

이중 잘못된 정보로 종종 역사왜곡 시비에 휘말린 적도 있지만, 역사와 게임을 접목시키려는 그들의 노력은 충분히 평가받아 마땅하다. 아마 80~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교과서가 아닌 코에이 역사게임을 통해 세계사를 더 많이 배웠을지 모른다. 지금도 누군가의 모니터 속에는 수많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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