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넥슨 특별법’이라 불리는 ‘초중등학생의 인터넷게임중독 예방 및 해소에 관한 특별법안’이 법률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되었다. 비록 당일 상정은 되지 못했으니 향후 소관 상임위 심사 통과는 거의 확실시되는 가운데, 사실상 본회의 심사만을 남겨두고 있다.

 

일단 상임위 심사를 통과한다면 본회의 심사 또한 별 문제 없이 통과될 전망이다. 원희룡(새누리, 서울양천갑), 이정희(통합진보, 비례대표) 의원 등 일각에서는 해당 법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으나 절대 다수의 국회 여론이 학교폭력의 근원으로 게임을 꼽고 있기 때문이다.

 

원 의원은 “2월 내에 처리되지 않으면 18대 국회를 넘길 것”이라고 언급했으나, 최근 ‘게임은 공해’라는 요지의 발언을 이명박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하는 등 정부측에서도 이 법안에 대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셧다운제에 이어 게임을 규제하는 족쇄가 하나 더 채워질 날이 머지 않은 것이다.

 

< 지금 넥슨 특별법은 17단계 쯤에 와 있다 >

 


학교 폭력, 공포감 조성인가 진실인가

이주호 장관은 지난 6일 담화를 통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1일 평균 게임이용시간은 핀란드의 4배가 넘는다”며 게임몰입은 학교폭력의 주범*임을 강조했다. 특별법을 발의한 박보환(새누리, 경기화성을) 의원 역시 “청소년들이 게임에 중독된 것이 학교폭력을 야기하는 주요 원인인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 한국 청소년의 생활시간 국제비교와 라이프스타일 분석,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09)

 

하지만 ‘Gaming Nation?*’ 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핀란드의 게임 관련 실태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2007년 핀란드 청소년들의 게임 플레이 시간은 1시간이 넘는다. 그 사이 스마트폰의 보급 등 다양한 플랫폼이 확충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 청소년의 게임 사용 시간(68.3~81.1분)과 큰 차이 없는 수준이다. 미국이나 중국은 한국보다 오히려 훨씬 더 높은 수준에 이른다.

 

< 2007년 핀란드 게임 현황 자료 중 일부 >


(*. Gaming Nation, Piloting the International Study of Games Cultures in Finland, UNIVERSITY OF TEMPERE, Kirsi Pauliina Kallio 외 2명, 2007)

 

학교 폭력 현황 역시 발표와는 크게 다르다. ‘키바 코울루’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핀란드는 큰 폭으로 피해자를 줄이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학교폭력 피해는 2008년 이후 소폭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 사용률 증가와는 반대 경향을 보이는 이 결과 는 교과부의 게임 규제에 대한 근거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게임을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 지목한 논리가 시작부터 한계점을 드러낸 것이다.

 

(*. 최근 3년간 학교 폭력 가/피해자 현황, 김형태, 서울시의회 교육의원, 2012)

 

 

학교 폭력의 진범, 교육 안에 있다

연구 결과만을 놓고 보면 학교폭력과 게임 간의 간극에 대해 설명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왜 게임을 학교 폭력의 주범인 양 공격하고 있는 걸까?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1972년 1월, 세간에서 정병섭군 자살사건이라 불리는 사건이 있었다. 그 원인으로 만화가 지목 받았고, 약 2만권 이상의 만화책이 압수, 불태워졌다.

 

이번 대구 덕원중 사건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게임이 진범인양 공격받고 있고, ‘쿨링오프제’라는 전무후무한 법안이 발의되고 있으며,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매체들은 게임을 마약에 비유하며 허황된 소설을 써 내려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정병섭군 자살사건을 다룬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의 논조는 4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변함 없이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 1972년 매일경제, 동심잡는 활극만화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의 연결고리는 여기서 연결된다. 두 사건 모두 학교나 가정 환경이 아닌 다른 곳에 초점이 맞추어 졌으며, 같은 매체들이 같은 논조로 비판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결론이 해당 매체에 대한 근절로 이어진다는 점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요는 학교 폭력이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용도로 미디어가 쓰였다는 것이다.

 

이 싸움에 끼어든 것은 정부와 보수 언론만이 아니다. 교육 사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기독교계 사학과 일부 극우 단체, 그리고 학생인권조례로 대표되는 진보적 교육 패러다임을 타파하기 위한 위한 보수 교육 세력까지 참전한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현행 교육 시스템의 약점이 노출되는 것은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 입시와 교육은 한국 내에서는 ‘불패신화’ >

 

입시로 이어지는 교육 산업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신규 미디어로 대표되는 학교 구성원의 변화에 대해 공포감을 가진 것은 바로 이들이었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과거부터 이어졌던 굴레 안에 학생들을 계속 묶어둔 채, 학교 폭력으로 대표되는 문제를 그냥 덮어둬서 해결하려고 한 진범은 바로 현행 교육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는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시간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온라인 게임 업계가 정부나 집권여당의 움직임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게임산업협회도 아직 체계적으로 힘을 모으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게임을 바라 봐야 할까?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잃어버리고, 영화와 대중가요의 손발이 잘려나가는 것을 지켜봤듯 게임 역시 거세당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리고 그 정답은 우리가 논박했던 보수 언론 속에 숨어 있다. 마치 트로이의 목마처럼 그들이 제시한 프레임 속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심는 것이다. 예전 넥슨이 서비스 했던 <택티컬 커맨더스>에서는 무려 삼대가 함께 게임을 즐기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 한때 부자간 관계를 이어줬던 게임 >

 

‘재믹스’라는 이름으로 팔렸던 MSX 앞에서 부자가 같이 조이패드를 잡고 있던 장면도 90년대를 살아온 누군가의 앨범에 고이 박혀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모습이다. 왕따와 단절이 아니라 친교와 화합의 장이 되는 공간으로서의 게임, 그리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로서의 이야기가 되도록 게임이라는 문화를 사회에 뿌리내리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싸우고 투쟁해야만 승리를 쟁취하고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이야말로 게임의 본질로 돌아가서 정말로 재미있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보여 줄 때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게임이 자신들이 구축한 질서를 무너트린다는 공격의 칼날이 무뎌질 수 밖에 없다. 게임은 보수의 것도, 진보의 것도 아니다. 게임은 본디 재미있는 것이다. 만화도, 애니메이션도, 영화도 모두 마찬가지다.

 

575*350 (+)

< 시작부터 ‘고렙’일 수는 없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은 그 재미를 알려주는 것이고 공유하는 것이다. 기성 세대의 벽을 넘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이미 우리는 게임에서 조그마한 노력들이 큰 역사를 세우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데스윙을 처치한 파괴의 종결자도 한때는 낡아빠진 구리단검을 쥐고 골드샤이어의 멧돼지를 잡았던 적이 있었다. 지금이 바로 게임의, 게이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때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