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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는 참 바빴던 것 같다. 할 게임도 많고 그래서 써야 할 글도 많았다. 기대작으로 손꼽는 대작들이 잇달아 출시되고 있었다. 실망도 많이 했지만 의외의 타이틀이 선전을 거두기도 했다. 그런 게임 중에는 단연 미소녀 캐릭터들을 위시한 화려한 비주얼을 내세우는 게임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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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외지만 이 정도로 매출차트가 확고하다는 건 반성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올해 차트에는 별달리 '새로운 미소녀'들은 보이지 않는다. 2D 캐릭터의 화려한 일러스트가 일품인 그런 게임들을 두고 '덕후 마케팅'이 무엇을 노려야 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참을 떠들었던 기억도 있는데, 고작 1년 새 이른바 미소녀게임들은 잘 보이지 않게 됐다.

 

물론 출시 직후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서비스를 잘 이어가고 있는 게임들도 많다. 하지만 이미 라이브 서비스를 1년 이상 이어가며 신입 아닌 현역이 된 타이틀들을 제외하면 신작은 손에 꼽을 정도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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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미소녀게임들은 줄줄이 출시되었다. 17년 여름에 출시된 '소녀전선'에 이어 '벽람항로', '영원한 7일의 도시', '신무월 Divine' 등이 있었고 장르를 넓혀 보면 '테이스티 사가'와 '요리차원'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나름의' 차별화된 콘텐츠와 시스템 등으로 어필했으며, 이들 중 '소녀전선'과 같은 타이틀은 대작이란 이름 하에 유저들의 지갑만을 노리는 것 같았던 게임들 사이에서 유저들에게 호평을 얻기도 했다.

 

가능성도 있었고, 매력요소는 충분히 있었다. '소녀전선'과 '벽람항로'가 혜자함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좀 더 폭넓은 유저층에게 어필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느낌의 신작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은 모습도 보인다. 방치형 RPG라는 이상한 장르를 주장하며 출시되기까지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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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땐 나름 참신했었지

 

미소녀게임 하면 사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부터 꼽아야 한다. 하지만 미연시의 시대는 90년대를 풍미하며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잠시 주춤했던 시대를 지나 2010년대에 화려하게 돌아온 미소녀들은 새로운 무기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바로 '모에화'다.

 

미소녀게임을 넓게 잡아 모에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모에화'가 시장의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잡은 것은 2010년대 초반이라 할 수 있다. 한명 혹은 한 파티에 한정하는 성장구조에서 벗어나 수집형 RPG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보다 다양한 캐릭터를 확보하기 위해 가장 편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미소녀가 아닌 것을 미소녀(혹은 미소년 등)로 둔갑시키는 이 모에화는 쉽고 간편하게 기존 사람들이 상식 선에서 잘 알고 있는 신화 속 주인공이나 인물을 가져올 수 있었을 테니까.

 

'확산성 밀리언 아서'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이런 모에화 개념은 음지에서 암암리에 소비되던 소재였지만, 무려 지하철 광고에서 “혼자서 외로우셨나요?” 따위의 카피를 내세우며 덕밍아웃을 부추기던(지금도 얼굴이 뜨거워진다) 그때 그 시절을 지나 이제 모에화는 보다 대중적인 소재로 자리잡은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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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미쿠를 놔줘

 

하지만 미소녀가 등장한다! 는 이유만으로 게임을 할 말랑카우 유저는 이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없다. 게임이라면 그에 걸맞은 게임성을 선보여야 하고 그건 당연한 문제다. 예쁜 미소녀가 등장하는 게임이라는 조건으로 검색을 한다면 당장 찾아도 수십 개는 쉽게 뽑아낼 수 있다. 그만큼 선택지는 많다. 하지만 할 만한 게임, 할 만한 신작, 기대되는 신작이 있나? 없다.

 

지난해 미소녀게임이 각광받았던 이유는 단순히 '미소녀가 등장해서'가 아니다. 예쁜 캐릭터들이 보고 싶으면 사실 애니를 보는 게 낫다. 일러스트를 보고 싶다면 텀블러를 뒤지는 게 백번 빠르다!

 

한 게임이 인기를 얻게 되었고 그 게임이 독특하고 새로운 뭔가를 가지고 있다면, 그 특징을 가지고 새롭게 만든 신작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게임들이 모여 새로운 장르가 된다. 아주 심도 있고 특별한 기술이 들어간 게임이 아니라면 대부분 그런 흐름이고, 그러는 도중에 이전의 장르가 발전하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템이 발견되기도 하는 법이다.

 

미소녀를 내세운 게임들은 다양한 형태를 띄고 있었고, 모에화로 범위를 넓힌다면 장르로 규격화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게임들의 경우 장르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 완벽한 상태로 나왔다기엔 발전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고, 다시 말해 그리 웰메이드한 게임이라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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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

 

한정된 개발비용으로 일러스트 외주와 개발 인력에 대한 인건비, 기타 비용 등을 감당하기에는 예산 구성이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기획요소는 반짝이는 부분이 있었고, 좀 더 나은 형태로 발전시켜 나갈 가능성은 충분히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게임은 새로 나오지 않고 있다.

 

비주얼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게임은 이제 없다고 봐도 좋다. VR과 AR 기능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지금 풀3D의 화려한 그래픽만으로는 승부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좁다. 하물며 2D 미소녀 일러스트가 비주얼적으로 승부하는 길은 얼마나 좁디 좁은가. 그렇기에 게임으로서 어떤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그 외의 요소들이 좋은 구성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비주얼 뿐이다. 거기에 시스템과 콘텐츠에 대한 고민은 오히려 역으로 과거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 실례로 '데일리판타지'는 판타지 아이돌의 RPG 데뷔 프로젝트라는 신기한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지만 과연 이 게임이 아이돌과 관련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부정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그냥 방치형 게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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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럴지도 모른다. 나올만한 콘텐츠는 이미 다 나왔을지도. 지금 모바일게임 시장은 확연히 콘텐츠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되어 버렸고, 뭔가를 더하는 작업보다는 빼는 작업이 더 실효성 있어 보인다. 하지만 '소녀전선'과 '벽람항로'가 갖고 있던 장점은 어디 가고, 미소녀 게임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최근의 타이틀들은 새로움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어떤 게임을 하건, 비단 미소녀 게임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퀄리티는 뒷받침되어야 한다. 유저들의 눈은 높아져 있고 그에 맞는 게임을 내놓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거,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타이틀들이 집중해 왔던 지점은 그저 비주얼일 뿐이다. 일러스트와 비주얼을 전부 빼고 생각한다면(물론 이러면 미소녀게임을 구분할 수 조차 없겠지만) 그들이 가진 특별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쁜 미소녀, 헐벗은 미소녀, 다양한 몸매의 미소녀들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건 유구한 팩트였다. 게임에는 그 이상이 있어야 하고 그 이상이 있기 위해서는 기획적 요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여러 번 언급하는 부분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뭔가를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다. 게임성과 게임의 퀄리티에 대한 고민한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고 싶을 뿐이다. 근래 신작이라고 나오는 타이틀들은 정말 일말의 기대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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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라리 회귀할 거라면 미연시를 만들자

 

 

글/ 김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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