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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스터(Remaster)와 리메이크의 개념은 다르다. 리메이크의 경우 원작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거라면, 리마스터는 원작을 바꾸지는 않고 보기 좋게 만드는 것이다. 게임의 때깔만 바꾸는 수준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게임사들은 어려운 리메이크보다 안전한 리마스터를 선호한다. 한마디로 게으른 선택이다.

 

불멸의 1세대 MMORPG 리니지 역시 20주년을 기념해 리마스터를 발표했다. 회사 주가는 폭등했고, 추억 팔이 광고는 왕년에 게임 좀 했던 아재들의 감성을 울렸다. 당장 달라진 건 그래픽이다. 1920 x 1080 해상도의 풀HD 그래픽이 눈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UI도 깔끔하게 개선됐다. UI가 화면을 가리지 않아 쾌적한 사냥을 할 수 있었다. 

 

화면이 탁 트였고 표시되는 몬스터의 수도 늘었다. 더 쉽게 사냥할 수 있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화려한 이펙트가 화면 가득 뿌려진다. 프레임이 2배 이상 증가해 기존 리니지에 비해 역동적이다. 마네킹 같은 캐릭터도 제법 사람답게 움직인다. 외적으로 발전된 모습은 리니지를 즐겼던 유저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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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서포트 시스템(PSS)의 아이러니 

그래픽의 변화와 더불어 확 달라진 부분은 플레이 서포트 시스템(PSS)이다. 영어로 포장했지만, 서포트란 게 별거 없다. 그냥 자동사냥이다. PSS를 사용하면 미리 설정해 놓은(마치 매크로처럼) 행동을 자동으로 수행한다. 설정된 몬스터를 잡는다든가 특정 지역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때에 따라 스킬이나 물약도 간간히 사용해준다. 모바일 게임에서 흔히 보는 오토시스템에서 한 걸음 더 나간 모습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리니지와 자동사냥의 궁합이 이렇게 잘 맞을 줄 몰랐다(참고로 필자는 리니지M을 안 해봤다). 정말 전투가 편하다. 모바일에 익숙한 유저들에겐 큰 진입장벽 하나가 없어진 셈이다. 캐릭터를 움직이려고 마우스를 미친 듯 눌렀던 내 손가락에게 미안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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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니지 리마스터 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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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니지 리마스터 화면 

 

리니지 골수 유저라면 자동사냥 도입은 낯선 반가움일 게다. 하지만 이 편안함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솔직히 리니지는 소신이 뚜렷한 게임이다. 특히 오토에 대한 대처만큼은 강경일변도의 정책을 유지했다. 오토를 불법으로 규정해 오토 프로그램을 돌리는 유저의 계정 압류하는 초강수를 뒀다. 현실로 치면 오토 쓰다 잡히면 사형이다. 이로 인해 유저들의 집단 소송 사태까지 벌어졌다. 리니지가 세운 원칙은 다른 게임에도 영향을 줬다. 모든 온라인게임들이 오토프로그램 사용을 근절했다. 불법 오토유저가 발견되면, 그 어떤 문제보다 엄중히 처리됐다.

 

그랬던 리니지가 공식적으로 자동사냥을 지원하겠다고 하니 세월이 변하긴 변한 모양이다. 물론 자동사냥 없이 출시되어도 유저들은 불법프로그램을 개발해 돌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똑같은 분쟁이 재탕될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타협했을 수도 있다. ‘리니지M’에서도 검증된 시스템이니, 별 탈이야 있겠냐는 생각에서 말이다. 유저의 성향 역시 모바일 게임에 익숙하니 슬쩍 편승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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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 서포트 시스템 설정 

 

하지만 다른 게임도 아닌, 리니지라는 점에서 더 고민했어야 했다. 자동사냥을 인정하게 된다면, 이는 과거 어뷰징 행위로 지정한 오토 플레이가 결국 어뷰징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시대에 편승했다고는 하나, 지금까지 지켜온 소신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건 반갑지 않은 변화다. PC는 모바일이 아니다. 

 

모바일 게임은 작은 화면과 제한된 조작이라는 하드웨어적 한계 때문에 자동사냥이 필요하다. 하지만 PC는 그렇지 않다. 굳이 PC게임에서까지 오토를 지원하겠다는 것은 조작의 즐거움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그냥 켜 놓고 감상만 하는 게임에서 그래픽 향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슬롯머신 같은 뽑기 게임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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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10년 전, 오토 판매사에 강경 대응했던 엔씨소프트 

 

리니지 하나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다른 PC 게임에서도 오토는 필수 고려대상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PC 게임도 모바일처럼 자동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 한물간 게임 다시 가져와 자동사냥 끼워 넣고 ‘리마스터’로 둔갑시키는 얄팍한 상술이 판을 칠 수도 있다. 리니지가 하는데 우리라고 안 할 이유가 없지! 게임 시장의 뿌리마저 흔들리는 문제다. 사업적으론 성공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같이 죽는 길이다. 자동사냥은 ‘리니지M’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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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복제는 달콤하지만 결국 독이 든 성배다

리니지 리마스터를 보면서(플레이하는 게 아닌) 드는 생각은 이것이 과연 리니지 20주년을 기념해 나온 게임인지, 또 다른 자기 복제의 산물인지 하는 의문이다. 이미 리니지는 시장에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고 있다. 리니지뿐만 아니라 ‘리니지 레드 나이츠’, ‘리니지M’에 이어 ‘리니지 리마스터’까지 차고 넘친다. 다른 작품들도 똑같다. ‘리니지2M’, ‘아이온2’, ‘블소M,’ ‘블소S’, ‘블소2’ 등 2019년 라인업도 기존 IP를 재활용한 자기복제 게임들이다. 

 

자기복제는 달콤하지만 결국 독이 든 성배다.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부담도 덜하다. 원작에 업혀 가면서, 유저들에게 선심 쓰듯이 조금만 바꿔주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양산된 게임들은 혁신과 발전을 가져올 수 없다. 안이함과 피로감만 키울 뿐이다. 

 

리니지가 한국 게임 시장에서 차지하는 무게를 생각하면 더 아쉽다. 지금도 모니터 한 켠에서 자기 혼자서 열일하고 있는 캐릭터를 보면 흡족함과 함께 어딘가 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게임 종료버튼을 누르며 문득 블소가 생각났다. 7년 전 우리 앞에 나타나 완전 다른 세계를 선보였던 블소의 패기가 그립다. 살아서 펄펄 뛰는 에너지 가득한 엔씨의 신작을 다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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