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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격투게임, 좋아하시나요? 저는 좋아합니다. 못해도 2~3일에 2시간 정도는 꾸준히 대전격투게임에 시간을 쏟고 있고, e스포츠 대회가 있기라도 하는 날이면 한 일주일은 그 이야기만으로도 즐거울 정도예요. 그런 대전격투게임 하면 생각나는 물건이 있는데요, 바로 '조이스틱'입니다. 오락실에서 볼 수 있는 조작계를 그대로 옮긴 컨트롤러라 '아케이드 스틱'이라고도 불리죠.
 
그런데 이 '조이스틱'. 좀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나요? 레버가 왼쪽에 있고, 버튼이 오른쪽에 나열된,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조이스틱의 배치, 저는 이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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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가성비로 유명한 QANBA의 Drone. 왼쪽에 레버가, 오른쪽에 버튼이 있습니다.(이미지 출처: qanbausa.com)

 

 

왜냐면 위키백과의 '왼손잡이' 항목을 보면 성인 전체의 7~10% 외에는 다 오른손잡이라고 하는데요, 그러면 세심한 조작이 필요한 레버가 오른쪽에 있는 게 더 편하지 않았을까 싶었거든요. 컴퓨터의 마우스, 키보드 자판의 이동키도 다 오른손으로 쓰기 편한 위치고요.

'대체 왜 그럴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국내 게임 커뮤니티에 올라온 어떤 게시글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 "원래 오른쪽에 있었지만 오락실의 매출을 위해 왼쪽으로 바뀌었다"?

DC인사이드 2D 격투게임 마이너 갤러리에 '테코반'이라는 유저는 [야 ㅋㅋㅋ 스틱이 왼쪽인 이유 어처구니 없는거네](링크)라는 글을 통해 조이스틱의 레버가 왜 왼쪽에 있을지 찾아봤고, 아래의 영상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Why Are Joysticks Always On The Left? | Fact Hunt Special

 

유튜버 'Larry Bundy Jr'는 [Why Are Joysticks Always On The Left? | Fact Hunt Special] 영상을 통해 레버가 왼쪽에 있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아케이드나 콘솔 게임기의 레버는 오른손이 메인이거나 양손잡이를 배려하는 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아타리 쇼크로 새로운 아케이드 게임이 들어오지 않았고, 플레이어들은 기존 게임을 점점 더 잘하게 돼 궁극적으로는 수익이 줄어들었죠.

 

오락실 주인은 고민했습니다만, 게임을 해킹할 노하우도 없었고 당시에는 게임 내용을 바꿀 수 있는 '딥스위치' 역시 겉으로 보이지 않는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간단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바로 레버의 위치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바꾸는 것이었죠. 어려운 지식도 필요 없고, 그저 목공을 활용해 아케이드 캐비넷만 조금 수정하면 됐거든요.

 

북미에서는 1982년 무렵부터 대대적인 수정이 이뤄졌고, 결국 이것은 세계로 퍼져 나가 하나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요약하면 오락실 주인이 수익을 늘리기 위해 레버의 위치를 바꿨다고 합니다. 굉장히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조금 더 찾아보면 '이건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오락실 주인의 사정은 당시 오락실 주인이었던 사람을 만나볼 수도 없고, 뭔가 기록도 없으니, 'Larry Bundy Jr'가 유일하게 정확한 시점을 언급한 '레버 위치를 왼쪽으로 수정하는 것이 1982년 무렵부터 퍼지기 시작했다'는 부분에 대해 좀 더 조사해봤습니다.
 
영상에서는 추가로 "1985년 나온 JAMMA의 캐비넷도 이런 형태를 따라갔다."라고 나옵니다. JAMMA는 일본 어뮤즈먼트머신 공업협회의 약자로, 일본의 업소용 게임기 등을 제조, 판매하는 기업의 업계단체체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1981년 1월 임시 단체 형태로 설립됐다가 1989년 6월 사단 법인이 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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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MA의 홈페이지

 

JAMMA의 홈페이지에는 '어뮤즈먼트 머신의 역사'라는 페이지를 통해 일본 내 아케이드 게임기의 변천사를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뮤즈먼트 머신의 역사'에 따르면, 1971년 미국의 [컴퓨터 스페이스]를 시작으로 비디오게임 시대가 열렸고, 1978년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시작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기기의 동전 박스가 넘쳐 하루에도 몇 번이나 회수해야 했다.', '100엔 동전의 품귀 현상' 등 사회적인 현상을 이끌어냈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게임입니다. 정식으로 만들어진 기기 외에 불법 복제 기기까지 약 30만대(일설에는 40만대)가 만들어졌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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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MA 홈페이지에 있는 일본 아케이드 게임기의 역사 중 '명기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탄생' 중에서.(출처: www.jamma.or.jp)

 

'Larry Bundy Jr'의 말이 맞다면 레버의 위치를 왼쪽으로 바꾸기 시작한 1982년 이전의 아케이드 게임기는 레버가 오른쪽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페이스 인베이더] 캐비넷의 레버 위치는 왼쪽이었습니다. 레버가 있어야 할 위치에 버튼이 있거나 레버가 정 가운데 있어서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편한 쪽으로 쥘 수 있는 캐비넷도 있었지만 수는 많지 않았죠.
 
즉, [원래의 레버 위치는 오른쪽이 정석이었지만, 뭔가를 계기로 왼쪽으로 바뀌었다.]라고 하기에는 뭔가 정해진 것조차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유행할 당시의 사진을 봐도 북미에서의 기준이 일본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기에도 무리가 있죠.

 

 

- 'Larry Bundy Jr'가 놓친 일본 아케이드 시장을 살펴보자

'Larry Bundy Jr' 주장의 가장 큰 맹점은 북미 시장만 고려했다는 점입니다. 'Larry Bundy Jr'는 "레버의 왼쪽 배치는 82년부터 퍼졌고, 85년 일본에도 영향을 줬다."라고 했지만, 이미 레버가 왼쪽이었던 78년작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캐비넷이 일본에서만 30만대 이상이 생산된 것을 생각하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 일본 시장도 살펴봅시다.
 
앞서 이야기했듯 일본에서는 이미 78년도 레버가 왼쪽인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출시됐고, 이내 일본에서 사회 현상이라고 할 정도의 붐을 일으켰습니다. 일본 내 아케이드 게임기의 규격을 만든 JAMMA가 82년도에 임시 발족했을 때는 이미 시장에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비슷한 형태의 캐비넷이 퍼져 있었고, JAMMA 역시 해당 캐비넷의 형태를 기반으로 규격을 정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후 JAMMA에 소속된 기업들 역시 그런 형태의 캐비넷을 만들었을 것이고, 일본에서는 이게 사실상 표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죠.
 
그리고 조이스틱의 레버 왼쪽 배치는 87년 [스트리트 파이터]를 시작으로 91년 [스트리트 파이터2]로 폭발한 대전격투게임 붐으로 인해 확실히 정립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대전격투게임의 경우, 다른 장르의 게임에서는 보기 힘든 캐비넷을 두 대 마주 붙여 둔 '대전대' 배치가 일반적이었으므로, 캐비넷 보급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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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대. 한국의 오락실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배치였죠.(출처: www.hobby-wave.com)

 

그렇다면 북미의 아케이드 시장에는 언제쯤 레버의 왼쪽 배치가 일반화됐을까요? 두 가지 시점을 들 수 있습니다. 하나는 1983년 무렵 터진 아타리 쇼크 이후, 또 하나는 87년 [스트리트 파이터]가 출시된 시점입니다.
 
아타리 쇼크 이후에는 'Larry Bundy Jr'의 말처럼 오락실 점주들이 새로운 게임을 들여놓기 부담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게임이 북미 개발 게임만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북미에서만 10만대가 넘는 캐비넷을 팔아 치운 [팩맨](1980), [레이더 스코프]의 캐비넷을 재활용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동키콩](1981) 등 이미 재미있는 일본 게임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아타리 쇼크를 기점으로 일본의 아케이드 게임이 북미 오락실을 사실상 점령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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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맨과 동키콩의 광고물.(출처: flyers.arcade-museum.com)

 

한편, [스트리트 파이터]는 북미 아케이드 시장에서 1:1 대전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게임입니다. 근거로는 캡콤의 벨트스크롤 액션 명작 [파이널 파이트]의 제작 비화를 들 수 있습니다. 캡콤의 미국지사 '캡콤 USA'는 [스트리트 파이터]가 인기있는 것을 보고 일본에 후속작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지만,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캡콤 본사에서 [파이널 파이트]를 그 후속작으로 만들어냈죠. 처음 제목이 [스트리트 파이터 '89]였던 것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91년, [스트리트 파이터]의 제대로 된 속편으로 만들어진 [스트리트 파이터2]는 북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일본과 북미, 그리고 전세계를 강타한 [스트리트 파이터2]를 시작으로 한 대전격투게임 열풍은 이후 약 10년은 넘게 이어집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만 해도 2008년 기준 50만대 정도의 캐비넷을 판매했을 정도죠.

그러므로 현재 대전격투게임 장르에서 주로 쓰이는 '조이스틱' 역시 이 당시 굳어진 '레버가 왼쪽'인 배치를 그대로 따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조이스틱은 '경로 의존성'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제 이야기도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이 역시 왜 조이스틱의 레버가 왼쪽에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누가, 왜 이렇게 배치했는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와중에 당시 게임 업계에서 레버가 왼쪽에 있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게임 & 워치], [게임보이]를 만든 '故 요코이 군페이'와 닌텐도의 거장 '미야모토 시게루'가 대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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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미야모토 시게루, 故 요코이 군페이(출처: (cc) Vincent Diamante at flickr.com, www.weblio.jp)

 

故 요코이 군페이는 자신의 자서전 [요코이 군페이 게임관]을 통해 "레버가 왼쪽에 있는 건 이상합니다. 사실 오른손으로 사용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패미컴 십자키도 처음부터 오른쪽에 있었다면 게임 실력이 빠르게 늘었겠지만, 지금의 게임은 버튼 조작이 더 중요하니까요. 이제 와서 클러치와 브레이크의 위치를 바꾸는 게 힘든 것처럼 말이죠."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미야모토 시게루는 [닌텐도의 법칙]에서 닌텐도 64의 아날로그 스틱과 관련해 "(아날로그 스틱을) 왼쪽에 붙일 것인지 오른쪽에 붙일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솔직히 오른쪽에 붙이는 게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우스를 오른손으로 잡는 것처럼, 세밀한 조작을 하는 스틱을 왼쪽에 붙이는 건 설계 미스일지도 모릅니다."라고 이야기했죠.
 
거장들도 이미 보편화된 것을 바꾸긴 어려웠나 봅니다. 故 요코이 군페이가 처음으로 십자키를 도입한 [게임 & 워치 동키콩]만 봐도 왼쪽에 붙어있는데, 이 때는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왼쪽 레버 배치가 일반적이었을 1982년이었거든요. 그 역시 당시 보편화된 배치를 섣불리 거스르기는 어려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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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 워치 동키콩. 십자키도 십자키인데 듀얼 스크린의 시초로 더 유명합니다. 닌텐도DS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출처: https://www.suruga-ya.jp)

 

여기서 떠오르는 게 '경로 의존성'입니다. '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성'을 뜻하는 말인데요, 대표적인 예로 QWERTY 키보드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편한 배치라고 여겨져 널리 보급됐지만, 나중에 실제로는 편한 것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는 게 알려졌죠. 그럼에도 이미 너무 많이 퍼져서 바뀌지 않고 지금에 이르고 있거든요.
 
그러니 조이스틱의 레버가 왼쪽에 있는 것도 '경로 의존성'의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다들 그렇게 쓰고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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