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표정으로 대규모 물량을 쏟아내며 팬들의 환성을 자아냈던 프로게이머 박지호. 일단 공격! 마인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질럿들, 이런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은 일명 ‘박지호 스피릿’이라 불리며 어느새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좀 다듬을 필요가 있다’라는 의견도 있지만, 이렇게 거칠면서도 시원한 플레이 덕택에 수많은 남성팬을 보유한 몇 안되는 게이머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많은 팬들의 주목 속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박지호를 서울 사당동에 위치한 POS의 숙소에서 만났다. 당일 컨디션이 좋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지호는 인터뷰 내내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 스타크래프트는 내 인생의 전환점.

 

박지호에게 스타크래프트는 인생을 바꿔놓은 게임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며 이것을 직업으로 삼기까지 여러 프로게이머들이 그랬듯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잖아요. 게임을 하기 위해 이것저것 안대 본 핑계가 없을 정도였어요.” 

 

당연히 부모님의 반대는 극심했다. 단순히 취미로 만 생각했던 아들의 게임사랑이 점점 커지자 부모님은 더 이상 게임을 못하게 하셨고, 이에 박지호는 도서관, 학원에 간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게임에 더욱 매진했다. 더 이상 핑계거리가 없자 ‘절에 공부하러 들어간다’ 라며 PC방에 갔다니. 그 열정을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부모님과 전쟁을 치루는 동시에 베틀넷 상의 박지호는 차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유명 고수로 손꼽히며 웬만한 아마추어들을 이기고 나자 뭔가 새로운 도전거리가 필요해졌다. 이때 박지호가 속해 있었던 아마추어 길드의 마스터가 처음으로 박지호에게 프로게이머를 권했다고 한다. eSports협회 홈페이지를 살펴보다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이 바로 PLUS였다.

 

왜 하필 PLUS였는지를 물으니,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곳이 그 곳밖에 없었다.’며 웃어보인다. 과연 박지호답다. 이렇게 인연이 닿아 박지호가 생전 처음 찾아본 프로게임팀, PLUS 입단 이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고마움 반 그리고 미안함 반, PLUS. 

 

테스트를 거쳐 PLUS에 입단한 박지호에게 팀에 처음 합류하면 누구나 겪는 연습생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연습생 시절?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 타고난 대담함을 인정받아 팀에 입단한지 얼마 안되어 당시 같은 팀이었던 성학승과 중요한 경기에 출전, 승리를 거둔 후 꾸준히 방송무대에서 활동해 왔다고. 이후 박지호는 PLUS라는 이름을 달고 종횡무진 프로게임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게 된다.

 

그리고 2005년 3월, PLUS의 팬들로써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PLUS와의 계약기간 만료 이후 박지호는 POS로 이적, 선수로써 전환기를 맞게 된다. 이적 당시 ‘자세한 이야기는 하기 힘들다.’라고 밝힌 박지호는 몇 번이나 함께 생활하던 팀원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어느새 P.O.S에 입단한지 1년여. 이제 박지호에게 PLUS는 고마움 반, 미안함 반인 추억의 팀이 됐다고.

● 박지호, 그리고 신 3대 토스

 

“신 3대 토스요? 좋죠, 좋은데..”

 

친정팀 PLUS를 떠나 P.O.S로 이적한 박지호는 특유의 스타일을 살린 경기로 점점 더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비슷한 시기, 당시 약체팀으로 평가 받던 삼성전자 칸에서 눈에 띄는 프로토스 게이머가 나타나 화제가 되었다.

 

그가 바로 지금 삼성 칸의 에이스 송병구. 송병구가 신예답지 않은 침착한 플레이로 관심을 모을 무렵, 또 한명의 거물급 신인토스 오영종이 등장해 스타리그 진출 이후 우승까지 하면서 가을의 전설을 이어갔다.

 

오랜 시간 강민(KTF), 박정석(KTF), 박용욱(SK T1) 3대 토스로 불리며 프로토스를 이끌어왔던 것을 생각하면 이들은 스타계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박지호의 물량, 송병구의 운영, 오영종의 전략이 팬들의 관심을 모으며 이들은 함께 신 3대 토스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박지호의 경기가 있을 때면 꼭 ‘신 3대 토스’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 원조 3대 토스 못지않게 특색 있는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관심에 대해 박지호 본인의 생각은 어떨까.

 

“많은 프로토스 선수들 중 신 3대 토스 안에 들어 주목을 받는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죠.” 의외에 대답에 이유를 물었다. “사실 제가 신 3대 토스 중 가장 먼저 주목 받았는데도 뒤늦게 출발한 후배들과 함께 신 3대 토스로 불리는 건 그만큼 제가 게을리 해왔다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죠.”

 

“물론 그 두 선수가 개성도 있고, 경기력이 좋은 건 인정한다.”라는 박지호에게 신 3대 토스들의 강점에 대해 물었다. “송병구의 침착함, 오영종의 전략성과 우승경력...” 박지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아.. 정말 그거만 빼면 모두 내가 나은데.” 하며 유쾌하게 웃어보였다. 아무래도 더 높이 치고 올라갈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아닐까.

● 인간 박지호를 말하다.

 

“안티? 이젠 저도 같이 즐겨요.”

 

이처럼 팬들의 관심이 높은 만큼 안티도 같이 늘어가기 마련, 각종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에서 박지호의 게임 스타일은 동경과 동시에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는 비단 박지호만의 일이 아니다. 프로게이머로써 이름이 알려지는 동시에 수천의 안티팬들과의 전쟁도 함께 시작되는 게 요즘 풍토이기 때문이다.

 

털털하기로 소문난 박지호도 처음엔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것도 일종의 관심이라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안티들의 비난에 많이 익숙해 졌지만 아직도 너무 거친 제목의 글은 클릭하지 않는다며, 정도에 지나친 비난은 아직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선수로써 멋진 경기를 모두 보여주고, 그 후엔 후배 양성이 꿈.”

 

안티들의 비난과 불규칙한 생활의 연속. 이처럼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만큼 많은 보람을 느낀다는 박지호에게 만약 프로게이머를 그만 두게 되면 무슨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던졌다. 은퇴 이후에도 eSports와 관련해서 계속 활동하고 싶다는 그는 최대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며 팬들의 기억 속에 깊이 남을 경기를 펼친 후, 군대를 다녀와 프로게임팀 감독이나 코치로 일하며 후배를 양성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박지호는 주변에서 프로게이머를 하고자 하는 친구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며 열정을 보였다.

* POS 박용운 코치가 말하는 박지호.

 

P.O.S의 여러 선수들이 선보인 멋진 전략에는 선수들의 땀과 눈물이 함께하겠지만, 그 뒤엔 숨겨진 공로자가 있다. 바로 전략가 박용운 코치. 박용운 코치는 현역 선수의 그것과 못지않은 뛰어난 게임실력으로 선수들의 주옥같은 전략을 만들어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에게 박지호에 대해 물었다.

 

‘박지호의 최대 강점은 하드웨어에 대한 이해력이 굉장히 빠르고 정확하다는 것이다. 어떤 기기든 빠르게 적응하고 자신에 플레이에 맞춰나간다. 반대로 아쉬운 점은 주장으로써 팀을 잘 아우르고, 단체전에 함께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데 좀 더 앞장서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지호가 지금 P.O.S라는 팀의 주장이자 맏형으로 있지만 사실 지호도 이제 22살, 아직은 어린 나이인 만큼 많은 짐을 지기는 힘든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지호는 “2006년엔 박지호라는 이름 옆에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싶다.”며 ‘우승’이라는 두 글자를 강조했다. 프로토스는 어떤 맵에서든 불리한 종족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프로토스로 최강자의 자리에 서서 정말 완성된 박지호의 플레이를 선보이고 싶다며, 넘치는 자신감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이렇듯 박지호의 최대 강점은 꾸밈없는 자신감이 아닐까. 이런 자신감이라면 떠오르는 토스의 꿈 박지호, 그의 프로토스 신화가 큰 날개를 펼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 하다.



댓글 0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1 -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