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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게임 산업에 드리운 또 다른 그림자가 있다. 바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 장애’의 국제질병분류 시도다. 지난 2017년부터 시작된 ‘게임 장애’ 질병분류 시도는 실제 등재를 앞두고 학자 사이에서도 찬반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게임을 즐기는, 혹은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정말로 ‘게임 중독’은 ‘도박 중독’과 같은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불편한 주제지만 피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전문가인 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 교수가 NDC 2018 ‘‘정신과전문의가 알려주는 게임이용장애’ 강연에서 그 실마리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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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덕현 교수


한덕현 교수는 먼저 ‘게임 중독’ 그리고 ‘게임 장애’ 분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인터넷 중독’의 역사부터 소개했다. 1996년 킴벌리 영의 보고서를 통해 인터넷에 중독된 43세 가정주부의 사례가 소개되었다. 당시 이 가정주부는 ‘인터넷 채팅방에 6개월 동안 매 일주일 마다 60시간 이상’을 머물러 있어 부부관계가 나빠지고 직업을 잃는 등 악영향을 받았다. 이전까지 정신질환이 없는 여성이었다.


이후 ‘인터넷 중독’에 대한 연구가 특히 환태평양 지역에서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문제는 다양한 연구가 진행이 되었지만, 연구자들조차 문제가 되는 기준을 각각 달리 잡았다는 점이다. 대체 일주일에 몇 시간 이상을 인터넷에 소비해야 ‘인터넷 중독’인가? 과연 개인이 겪는 불편이 전적으로 ‘인터넷 중독’에 빠진 결과일까? 일관성 없는 기준과 함께 다양한 의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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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터넷 중독’에 대한 혼란 때문에 연구자들은 이번에는 대상을 ‘게임’으로 좁혔다. 이 조차도 ‘가정용 게임기로 즐기는 게임에 중독될 수 있을까?’라는 반론 등 때문에 ‘인터넷 게이밍 중독’으로 용어를 바꿨다. 그러다 이제는 중독(Addiction) 조건을 충족하는지도 논란이 되니 그냥 장애(Disorder)라는 용어로 바꾼 상태다.


그 결과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최신 판인 DSM-5에는 정식 질환은 아니지만 ‘인터넷 게임 장애(Internet Gaming Disorder)’로 분류되어 있으며, WHO가 최근 이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를 국제 질병 분류에 추가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한 교수는 의학계가 게이밍과 겜블링(도박, Gambling)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만약 진단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을 어느 정도 넘어가야 환자인가에 대한 역치가 존재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 조차도 잘 모른다”는 것이 한 교수의 설명이다. 기준 없는 용어의 변천과 더불어 ‘현장’에서도 ‘게임 이용 장애’의 정확한 실체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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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한 교수는 “게임으로 문제가 된 아이들을 아마 지구에서 가장 많이 봤을 것이다. 그런데 게임 자체에 관련된 문제냐, 아니면 게임에 관련된 어떤 행동의 문제냐로 분류해 보면 후자가 훨씬 많다”고 이야기했다. 한 교수는 게임 플레이 자체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게임에 연관된 예를 들면 게임을 ‘보는’ 것 때문에 발생한 문제는 의학적으로 엄밀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DSM-5에서도 ‘인터넷 게임 장애’가 정식 질환으로 분류되어 있지는 않다. 정의 자체는 물질적 중독과 유사하게 했지만, 금단증상이나 내성, 갈망 등 많은 부분에서 물질적 중독과는 전혀 비슷하지 않은 양상이 나타난다. 모 방송국 뉴스에서의 소위 ‘폭력성 실험’처럼 멀쩡히 게임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을 일부러 방해했을 때 화를 낸다면 이것이 과연 금단증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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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연구자들이 인터넷 게임과 도박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한 교수는 지적했다. 분명 인터넷 게임과 도박은 확률이나 Salience 등 어느 정도는 유사점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게임과 도박은 같다고 바라보는 연구자들에게 어떻게 반박해야 할까? 한 교수가 스스로 연구해 내놓은 반박 중 하나는 바로 인지과학을 통한 분석이었다.


게임과 도박은 둘 다 확률에 기반하고 있고 보상이 주어진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실제 게임을 할 때와 도박을 할 때 뇌의 작동 양상은 명확히 다르다. 전반적인 인지회로의 활성화 양상이 차이를 보인다. 원인은 무엇일까? 한 교수가 보는 게임과 도박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즉각적인 결과만 나오면 그만인 도박하고 달리, 게임을 할 때에는 어떤 형태로든 스토리텔링에 자극을 받는다. 게이머는 어떻게든 게임에서 나름대로의 스토리를 파악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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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과 스토리를 파악하기 위해 뇌에서는 인지회로를 더 많이 활성화하고, 작업능력기억도 함께 활성화 시킨다. 스토리텔링은 바로 “게임이 게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한 교수는 ‘스토리텔링’이야말로 게임과 도박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연구자에게 반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런 의미에서 게임 개발자를 만날 때 마다 스토리텔링에 꼭 신경을 쓰라 권한다고도 덧붙였다.


스토리텔링은 많은 게이머가 소위 ‘기능성 게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인 ‘기능성 게임은 재미없다’와도 큰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기능성 게임에는 스토리가 없고, 스토리가 있어도 환상이 아닌 오히려 현실로 유저를 끌고 오는 식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돈과는 거리가 멀기에 개발자들도 의욕이 떨어지고, 전문가를 기능성 게임 개발에 참여하도록 하는 경우도 드물다.


한 교수는 “지스타에 연간 치매 관련 기능성 게임이 대략 30개 정도 나오는데, 매년 별로 바뀌는 것이 없고 대부분 기억력 테스트 정도에 불과하다”며 기능성 게임의 현실에 대해 지적했다. 기능성 게임이라며 내용이 그저 ‘암세포를 쏴 죽이는 게임’이라면 그것은 그냥 슈팅 게임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결국 대부분 그저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는 기능성 게임을 진짜 도움이 되는 기능성 게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목표 설정, 전문가의 참여, 강력한 피드백 시스템 등 다방면의 고민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한 교수의 진단이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좋은 기능에만 치중하지 말고 스토리도, 경쟁도 어느 정도 있어야 기능성 게임의 목적도 이루고 발전이 가능하다는 지적이었다.


끝으로 한 교수는 2017년부터 논란이 되고 있는 WHO의 ‘게이밍 장애’ 세계 진단분류 등재 시도에 대해 비판했다. WHO가 정의하고 있는 게이밍 장애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게임 사용시 통제력이 약화된 게임 행동 패턴’을 말하며, ‘일상 생활과 관련된 모든 활동보다 게이밍이 우선시 되며’,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지속적인 혹은 증가된 게이밍을 하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게임 장애가 진단되기 위해서는 행동 패턴이 개인, 가족, 사회, 교육, 직업 또는 기타 중요한 영역에 손상을 초래할 정도로 심각해야 하며 12개월 동안은 분명해야 한다’


한 교수는 이에 대해 반문했다. “게이머의 입장에서 과연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게이머가 있을까?”라는 점이다. WHO의 소위 ‘게이밍 장애’의 조건은 별로 엄격한 기준이 아니며, 심지어 정신과 전문의인 한 교수 스스로도 게임을 즐긴다는 면에서 보면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이 WHO의 ‘게이밍 장애’를 일으키지 않는 ‘올바른’ 게임이 과연 현실에서 가능할까?


바꿔 생각해 보면 ‘영화중독’이라는 질환을 가정하고, ‘딱 천 만 명 까지만 재미있어 하는 영화’를 만들라는 꼴이다. 직관적으로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한 교수는 WHO의 ‘게이밍 장애’는 결국 컨텐츠에 대한 이해가 없으며, 매체 자체의 문제인지 혹은 매체를 이용하는 유저의 문제인지에 대한 적절한 고민도 없기 때문에 나온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게이밍 장애’의 모호한 범주에 대해서도 한 교수의 비판이 이어졌다. 이 ‘게이밍 장애’를 게임을 즐기는 그 자체에 대해서만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게임에 관련된 행동을 포괄해서 말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모호한 부분이 있다. 유튜브나 아프리카 TV같은 매체에서 게임 관련 스트리밍이나 영상을 보는 것은 어떠한가? SNS에서 게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한 교수는 재미있는 사례를 하나 들었다. 그가 담당하던 환자 중에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하는, 사회공포증이 있는 고등학생이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이 환자의 어머니가 담당의인 한 교수에게 찾아와 울며 애가 없어졌다고 호소했다. 과장을 섞어 말하면 납치되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수준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집에서 나가버린 것이다.


물론 납치는 아니었다. 이 아이는 온라인 게임을 즐겼는데, 채팅을 하며 자신에게 가장 맞는 친구를 골라 만나러 갔던 것이었다. 사회공포증 환자는 보통 거절이 두려워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데, 온라인 게임에서 채팅을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특별한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덕분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혼자 KTX를 타고 부산까지 내려갔는데, 하도 집 밖에 안 나가다 보니 부모에게 말하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집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던 수준의 사회공포증 환자가 온라인 게임 덕분에 친구를 세 명이나 사귀고, KTX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혼자 다녀오고, 햄버거집에서 직접 햄버거까지 시켜 먹었다고 한다. 이런 활동은 ‘게이밍 장애’의 관점에서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나쁜 것일까? 한 교수는 “실로 혼돈의 시기다”며 씁쓸해 했다.


그는 WHO의 ‘게이밍 장애’ 등재 시도 이후 연구자 사이에서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해외에서는 ‘게이밍 장애’의 증거가 제한적이고, 심지어 일반인들까지 중독자 내지는 질환자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을 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게이밍 장애’에 대해 지적을 하는 학자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한덕현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 하며 게임 업계 관련자들에게 자부심을 가지라고 주문했다. ‘게이밍 장애’ 진단분류 등재 같은 움직임이 있어도 자존심을 잃지 말고, 계획을 세워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야 ‘게이밍 장애’ 진단분류 등재에 반대하고 있는 학자들에게도 큰 힘이 될 수 있으며, 이런 점을 NDC를 통해 게임 개발자들에게 꼭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말로 이 날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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