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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어바웃에서는 <CONSOLE WARS(콘솔 워즈)>의 일부를 연재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고,
길벗출판사를 통해 책으로 출간될 <CONSOLE WARS>도 잘부탁드립니다.

 

 

20 기다릴 가치가 있다

 

갈색 이파리가 잔뜩 매달린 달린 굵은 나무, 노쇠한 도로, 또 다른 주차장. 칼린스키의 새 사무실에서 보는 전망은 몇 달 전 소니 임원들과 저녁을 먹었던 건물 꼭대기 층에서 보았던 웅장한 전망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칼린스키는 꽤 만족스러웠다. 새 전망은 자신과 동료들이 함께 직접 쟁취한 결과이자 뼈를 깎는 마음으로 상상하고 혁신하고 실험해서 얻어낸 보상이었다. 비상한 노력으로 연이은 성공을 경험한 덕분에 1991년 말 세가는 새 건물로 이사할 수 있었다.


레드우드 시티에 있는 2층짜리 건물이었다. 1층은 영업, 시장 조사, 인사 관련 업무를 진행하는 공간으로, 2층은 마케팅이나 법무 관련 업무를 진행하는 공간과 중역 사무실로 채워졌다. 이전에 썼던 사무실보다는 레드우드 시티 사무실이 조금 더 격식을 갖추긴 했지만 여전히 미완의 느낌이 드는 변변치 않은 공간 탓에 ‘더 제퍼슨스(The Jeffersons)’*1의 주제곡 ‘Movin’ On Up’ 같은 기분을 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시장 반응이 이제야 좀 뜨거워지고 있었으므로 서로 칭찬하고 즐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1 더 제퍼슨스(The Jeffersons): CBS에서 1975년부터 1985년까지 방영된 시트콤이다. 퀸즈에서 노동자 계급으로 살던 제퍼슨 가 사람들이 맨해튼의 고급 아파트로 이사 오며 벌어진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주제곡인 'Movin' On Up'은 고생 끝에 낙을 맞이한 주인공 가족의 즐거운 마음을 담은 경쾌한 가스펠 곡이다.


1991년 크리스마스 무렵 세가는 거의 기하급수적인 수준의 성장률을 보이며 시장의 약 25%를 장악했다. 제네시스의 잦은 품절 사태가 문제일 정도였다. 파티에서 인기가 높아 선망의 대상이 되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구혼자들이 좀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짝과 맺어지도록 내버려두고 싶진 않았다. 처음에는 게임기를 일본에서 항공운송으로 받아보려 했다. 비용이 많이 들긴 하지만 고객을 잃는 것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이 방법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서 수요가 더욱 급증하는 시점이 되자 접착력이 점점 약해지는 반창고처럼 실효성이 떨어졌다. 닐슨은 판매 가속도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어떤 경우에도 부모들이 닌텐도를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일이 없게 할 마케팅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사전에 예약 주문을 넣는 고객에게 특정 날짜까지 제네시스를 받게 해준다는 보장을 해주는 동시에 수집욕을 불러일으키는 티셔츠를 무료 사은품으로 제공한다는 게 기본적인 내용이었다. 하지만 곧 닥칠 크리스마스 시즌 전까지 소매업체를 준비시킬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이 아이디어는 나중을 기약하며 묵혀 두기로 했다. 당시에는 그 기획이 후일 세가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알지 못했다.


그 대신 칼린스키와 닐슨은 1년 전 버스터 더글러스 게임을 완성할 때 그랬듯이 인생은 원래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러한 딜레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가는 12월 9일부터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행사를 열었다. 이들은 제네시스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어서 손에 넣기 아무리 어렵더라도 포기하고 SNES를 구매해서는 안 된다고 고객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광고를 전국 TV 방송과 라디오를 통해 내보냈다. 인쇄 매체는 고객에게 닿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배제했다. 새 게임기를 매일 항공으로 배송해오고 있으니 주변 상점에 가서 계속 확인해보는 게 좋을 거라고 알리며 답답한 공급 부족을 신나는 보물찾기 놀이로 변신시켰다. 또한 공개한 수신자 부담 번호로 전화해서 불만을 이야기하여 이 불만 사항이 인정된 고객에게는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세가로부터 직접 4개의 게임 중 하나를 살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특별한 기회도 제공했다. 그 결과 세가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주도하며 적수를 서서히 몰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 칼린스키가 새 사무실 창문 밖을 내다보며 세가가 크리스마스를 차지했다는 확신에 잠겨 있는 동안 그보다 1,300km 북부에 있던 피터 메인 역시 커피를 마시면서 세가를 제대로 망가뜨렸다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닌텐도는 1991년 말까지 슈퍼 닌텐도를 210만대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닌텐도에서 게임기를 사간 소매업체들이 구매한 물량의 70%밖에 팔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 되면 팔지 못한 30%가 소매업체 창고에 재고로 남는다는 뜻이었다. 재고는 다시 팔거나 가격을 내리거나 아니면 반품해야 할 운명에 처했다. 반면 세가는 그해 말까지 총 160만대를 판매하면서 생산량의 95%나 되는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숫자가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세가의 160만 대는 닌텐도의 140만 대(210만 대의 70%)에 비해 명백히 높은 수치였다. 하지만 SNES 판매를 개시한 시점이 1년 중 단 ⅓만 남은 9월이었으므로 이러한 판매량 차이가 늦은 출발에서 왔다고 변명할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네’, ‘아니요’로만 답해주세요.” 스티브 레이스가 칼린스키 사무실에 게걸음으로 들어오며 물었다. “우리가 샌프란시스코 남부에서 레드우드 시티로 옮겨온 진짜 이유가 뭐죠? 이 동네 바람이 나카야마 씨의 대머리에 걸친 머리카락을 덜 망가뜨릴 거라 믿었기 때문일까요?”


 “저는 긍정도, 부정도 해줄 수 없군요.” 칼린스키가 대답하는 동안 레이스는 칼린스키의 책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한쪽을 꼭 선택해야 한다면 부정 쪽으로 기울진 않을 겁니다.”


 “역시 그렇군요. 저는 음모론 분야에서라면 걸출한 이력을 세우고 큰돈을 벌 자신이 있다고 생각해왔거든요.”


 “오호, 그래요? 하지만 당신에겐 세가에서도 걸출한 이력을 세울 기회가 있어요. 정식 직원으로 들어올 생각이 있기만 하다면요.”


 “그렇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실 건가요? 칼린스키 전매특허 잡담 시간도 그냥 건너뛰고요? 크리스마스는 어땠는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레이스가 말했다.


 “잡담을 하고 싶다?” 칼린스키는 즐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좋습니다. 그럼 주문하신 잡담, 나갑니다. 휴가 동안 캐런이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오더군요. 원래 캐런이 자주 짓는 표정이고 제가 아주 좋아하는 표정이기도 하죠. 그리고 알려줄 게 있다면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중 뭐부터 듣고 싶냐고 했습니다. 당연히 좋은 소식을 듣고 싶었죠. 그래서 그렇게 말했더니 다시 특유의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아들이래요.’라고요.”


 “오, 축하해요! 끝내주는 선물인데요?” 레이스가 큰 소리로 화답했다. 


 “그렇죠. 당신은요?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냈습니까?”


 “연말답게 진탕 놀았어요.” 레이스는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미친 듯이 놀았다고 보긴 어렵죠. 사실은 세가 생각으로 가득 찬 크리스마스였거든요. 휴대용 제품 시장을 제대로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왜요? 부하직원이 일을 안 하나요?”


 “오히려 그 반대예요. 여태까지 한 걸로 보면 그녀는 하늘이 내려주신 선물 같아요.” 다이앤 어데어(Diane Adair)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게임 기어 마케팅을 담당하던 밥 보치(Bob Botch)가 ‘US 골드(US Gold)’라는 소프트웨어 회사 대표로 가게 된 후 그 자리를 채울 인물로 11월 말 레이스가 뽑은 사람이 다이앤이었다. 보치와 닐슨이 소리지르며 싸울 때마다 말리는 것도 지긋지긋했기 때문에 보치가 나간다고 해서 레이스가 속상할 일은 없었다. 다만 세가가 소닉처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치가 나가면 업무 진행이 엉망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으므로 시기가 좋지 않았다. 다행히 딱 맞는 인물인 어데어가 와서 바로 잘 적응했다. 사슴 같은 눈망울에 느긋한 목소리를 지닌 어데어는 어려운 문제라도 주저 없이 돌진해서 해결하는 성격이었다. 닌텐도가 16비트 콘솔 사업에 뛰어든 후 세가의 임원급 직원들은 전선을 확장해 두 개의 전선에서 적과 맞붙길 원했다. 자연히 휴대용 게임 기어에 관심이 쏠렸다. 


당시는 게임 기어가 출시되어 가게에 입고된 지 6개월 이상 지난 시점이었고 꽤 잘 팔리는 편이긴 했지만 아주 훌륭한 실적을 낸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배터리 수명 문제가 계속 발목을 잡은 면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소프트웨어, 인지도, 브랜드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칼린스키는 닐슨이 제네시스로 했던 것처럼, 마술사가 빈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 듯 어데어도 게임 기어로 마술 같은 일을 해내 주길 바랐다. 그녀는 액세서리를 사서 배터리 수명을 늘릴 수 있게 하는 등 창의적인 방법으로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또 닌텐도 제품과 달리 컬러 화면이 있는 점에서 착안해 튜너를 달아 휴대용 TV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창조적으로 제품을 활용할 방법도 찾아냈다. 그녀는 입사한 지 2주 만에 레이스가 고용한 또 다른 핵심 인재인 EBVB와 금세 친구가 되었다. 두 여성은 MS&L에 있는 홍보 전문가 브렌다 린치(Brenda Lynch)가 진행하는 언론 관련 교육을 받기 위해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어데어는 EBVB가 촬영에 임하는 모습과 복잡한 주제도 이해하기 쉽게 방송에 적합한 수준으로 잘 정리해서 전달하는 재능에 감탄했다. EBVB도 어데어가 남들에게 모범이 될 정도로 효율적으로 일하는 모습에 반해버렸다. 어데어는 미래를 위해 늘 열 걸음 앞을 미리 계획했고 혹시 일이 잘못될 때를 대비해 지나온 다섯 걸음을 비축해두곤 했다. 서로에 대한 존경심 덕에 그들을 매일 아침 함께 달리기 하는 사이가 되었고, 이들의 우정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어데어는 만능선수예요.” 레이스는 80년대 후반 전화로 가정용품을 판매해보려다가 실패로 끝난 스타트업 ‘홈스타(Homestar)’에서 함께 일한 시절부터 그녀와 알고 지내 온 사이였다. “상황이 아주 좋을 때나 몹시 나쁠 때나 똑같이 훌륭하게 제 몫을 해내는 사람이거든요. 아무나 가진 자질이 아니죠. 그녀는 당신이 여기서 하는 일에 큰 역할을 할 거예요.”


 “저도 그 말에는 100% 공감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쩌고요?” 칼린스키가 물었다.


 “현재로서는 64,000달러짜리 질문*2이네요.” 레이스가 활짝 미소 지으며 답했다,

*2 64,000달러짜리 질문: ‘매우 중요하지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가리킨다. 1950년대 CBS의 ‘The ,000 Question’이라는 퀴즈쇼는 적은 금액의 상금이 달린 쉬운 문제에서 시작해서 문제가 점점 어려워질수록 상금 금액 또한 높아지는 형식으로 진행했는데 이때 마지막에 등장하는 가장 답하기 어렵지만 중요한 질문에 걸린 최종 상금이 64,000달러였고 여기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64,000달러 이상 쓸 용의가 있는데요.”


 “돈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무슨 일에나 돈 문제가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치기 마련입니다.”


레이스는 고개를 까딱이며 답했다. “맞죠. 근데 지금 그게 핵심은 아니에요.”


 “그럼 뭐가 핵심입니까? 예산이 너무 적습니까?” 칼린스키가 물었다.


 “아니요.” 레이스는 칼린스키의 말을 일축했다. “제가 적은 걸로 큰 성과 내길 좋아한다는 건 아시지 않나요?”


 “그럼 게임이 싫습니까?”


 “게임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 게임이 다른 회사 것보다는 낫죠.”


 “그럼 마케팅팀이 문제인가요? 당신이 원하는 정예요원들로 팀을 구성할 수 있게 해주지 않았습니까? 전부요. 앨만 빼고.” 칼린스키는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혹시 앨이 문제입니까?”


 “닐슨요?” 레이스는 껄껄 웃으며 답했다. “닐슨은 좀 특이해요. 꼭 어디 비밀 실험실에서 등에 숨겨둔 나비 날개라도 펼칠 것 같아요.”


칼린스키가 닐슨을 변호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특별한 아이디어들을 지금처럼 쏟아낸다면 저는 그가 나비라 해도 사왔을 겁니다.”


 “나비 장사꾼한테 전화라도 할 기세시네요. 그러실 건 없어요. 닐슨이 별나긴 해도 좋은 사람인 건 분명하니까요. 그리고 회사에 있는 쿨에이드도 잘 마시잖아요. 그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죠.”


 “다른 사람들도 마시잖아요. 저도 마십니다. 그 정도면 맛도 괜찮지 않습니까?” 칼린스키가 말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라벨을 보세요. 원재료명 바로 옆에 ‘메이드 인 재팬’이라고 적혀 있잖아요.”


 “진심이에요? 또 일본 얘기로 귀결되는 겁니까?”


 “피부색이나 눈 모양에 대한 편견은 요만큼도 없어요. 오로지 일이 문제예요. 일본에 있는 우리 친구들은 우리가 하는 일마다 망쳐놓으려고 작정한 것 같다니까요.”


칼린스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똑같이 답답한 경험을 많이 해보았기 때문이다. 레이스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사실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뒤에서 그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욕하는 SOJ의 몇몇 직원과 그가 대립해왔다는 걸 칼린스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가 레이스로 하여금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쳐버리게 할 만큼 커졌다는 건 깨닫지 못했었다. “당신 입장을 이해합니다. 진짜예요. 저도 그런 일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은 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나카야마는 늘 제게 공평한 결정을 내려줬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LPGA 투어처럼요?” 레이스가 물었다.


 “네, 물론 그런 예외도 있었죠. 하지만 그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제가 당신을 보호해줄 수 있습니다.” 칼린스키는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답했다.


 “진짜 해주실 수 있나요? 그게 사실이라 해도 언제까지요? 진짜 끝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건 아니겠죠?”


 “아니요.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당신에게 평생을 보장해 줄 입장이 아니라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전에 없이 도전적인 마케팅을 해볼 기회는 줄 수 있습니다.”


 “일단 계속해보세요.” 레이스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한 1년 전 일본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나카야마는 새 광고 대행사를 고용해서 대대적인 광고를 해도 좋다고 허락해주었습니다. 전 적당한 때를 기다려왔습니다. 그리고 그게 제대로 신년을 맞이할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시작해보고 싶지만 그전에 대행사를 고르는 내내 당신이 함께해줄 수 있는지부터 확실히 해두고 싶습니다. 우리를 이끌어줄 인물이 필요하니까요. 당신이 그 역할을 해줄 거라 믿어도 되겠습니까?”


레이스는 기분이 좋아지긴 했지만 바로 답하지 않았다. “잘 모르겠어요.” 레이스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긍정의 답을 주지 못하고 주춤할 때는 결국 그렇게 주춤하게 했던 문제가 다시 돌아와서 우리를 괴롭힐 거라는 걸 경험상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맞는 말입니다. 잊지 않게 해 준 건 고맙습니다. 그럼 계속 프리랜서로 우리 일을 도와줄 생각은 있습니까?”


 “그냥 깨끗이 일을 마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가능하다면 몇 주 더 머물 생각은 있어요. 후임자를 교육하고 CES를 보여주고 적절한 곳에 분란의 씨앗을 심어놓을 수 있도록요.”


 “왜 아니겠어요. 뭐, 제가 바랐던 결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게 당신은 기다릴 가치가 있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칼린스키가 말했다. 


 “고마워요. 톰. 아마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겠지만 그래도 당신이 저를 높이 평가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저도 똑같이 당신을 높이 평가한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군요.” 레이스가 말했다.


칼린스키는 울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감상적인 이야기를 끝내고 레이스는 의자에 편하게 깊숙이 기대어 앉았다. “이제 조금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보죠. CES 생각하면 신나시나요?”


 “당연하죠! 처음으로 선망의 대상이 된 제품을 들고 가는데요. 기다리기 힘들 정도예요. 당신은요?”


 “아 물론 그렇죠.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주인님께서 파티의 흥을 돋우기 위해 빅뱅 비트(Big Bang Beat) 밴드를 불렀다는 사실 때문에 더 신나는군요!” 

 


블레이크 J. 해리스 지음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겸 영화제작자다. 그는 현재 책을 바탕으로 스콧 루딘(Scott Rudin), 세스 로건(Seth Rogen), 에번 골드버그(Evan Goldberg)가 공동 제작하는 다큐멘터리의 공동 감독으로 있다. 그는 소니와 작업 중인 장편 영화 <Console Wars>의 제작 책임자이기도 하다.
   
이미령 옮김
가치 있는 콘텐츠를 우리말로 공유하려고 자원봉사로 시작한 일이 번역가의 길까지 이어졌다. 모든 일을 재미있게 하는 비결은 아이 같은 호기심을 잃지 않는 데 있다고 믿고 있으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컴퓨터 간의 연결 분야에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는 『소프트 스킬』, 『사용자를 생각하게 하지 마!』, 『멀티 디바이스 UX 디자인』, 『생각하는 냉장고 뉴스 읽는 장난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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