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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어바웃에서는 <CONSOLE WARS(콘솔 워즈)>의 일부를 연재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고,
길벗출판사를 통해 책으로 출간될 <CONSOLE WARS>도 잘부탁드립니다.

 


19 적의 적

 

1991년 10월 법정에 선 아라카와 미노루는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한 후 소닉 개발자를 마리오, 젤다 등 닌텐도의 고전 게임을 만든 미야모토 시게루와 같은 수준의 ‘천재’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법정 내부를 둘러보며 복잡한 심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받은 질문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보았다. 우선 이 재판이 골칫덩어리라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닌텐도와 텐겐 사이에 일어난 소송은 1988년 이래 계속 질질 끌고 있었다. 그 유명한 리버스 엔지니어링 사건 이후 닌텐도는 토이저러스, ‘브래드리스(Bradlees)’ 같은 소매업체에 닌텐도의 인증을 받지 않은 NES 호환 게임 카트리지를 판매하는 모든 업체를 고소하겠다는 위협이 담긴 서한을 보냈다. 텐겐은 셔먼 독점 금지법 제2조를 어기고 비디오게임 콘솔 시장을 독점하려 하면서 불공정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혐의로 닌텐도를 고소했다. 닌텐도는 특허권 침해, 계약 위반, 조직범죄 처벌법 위반 혐의로 텐겐을 맞고소했다. 닌텐도는 법원의 명령에 손해 배상뿐 아니라 미승인 게임을 소매업체에서 치우라는 내용이 포함되길 원했다. 3년이 지나도록 아직 결판이 나지는 않았지만 텐겐이 소송 때문에 심각한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아라카와를 힘들게 하는 건 소송만이 아니었다. 소송은 당연히 성가셨다. 특히 시간을 질질 끌면서 회사를 좀먹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슈퍼 닌텐도 문제가 훨씬 더 시급했다. 1991년 8월 23일 출시한 지 단 두 달 만에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는 벌써 50만 대를 팔았다. 숫자만 보면 꽤 잘나가는 듯했지만, 이들이 애초 예상한 숫자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자신의 사위가 최고의 결과를 내길 기대하는 데 익숙해진 야마우치는 그 때문에 화가 났다. 일본에서는 슈퍼 패미컴이 승승장구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했다.


미국에서 출시한 제품이 일본에서 거둔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첫째는 대중적 인식이었다.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도 하위 호환성 부족이 문제가 될 걸로 생각하긴 했지만, 그에 대한 반발이 어느 정도 수준일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전국의 부모들은 닌텐도가 전자제품으로 폰지 사기*1를 벌이기라도 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부모들, 닌텐도의 부정을 논하다 (캔자스 시티 스타)’, ‘닌텐도가 펼친 작전이 부모들의 공분을 사다 (애틀랜타 저널)’, ‘닌텐도의 맹공격에 절대 굴하지 않기로 한 부모들 (패트리엇 뉴스)’ 등 각종 신문에서 쏟아져 나온 표제 기사 덕분에 이러한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부모들은 닌텐도의 미국 출시에 큰 걸림돌인 세가가 호환성 문제를 해결할 변환 장치를 파는 데 반해 닌텐도에서는 이러한 장치마저 팔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욱 격분했다. 

*1 폰지 사기: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뒤에 유입된 투자금을 수익처럼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사기를 일컫는 말이다. 찰스 폰지(Charles Ponzi)라는 사기꾼이 처음 사용한 사기 방식이어서 '폰지 사기'라 불리게 되었다.


세가는 8비트 마스터 시스템용 게임을 16비트 제네시스에서 작동하게 해주는 파워 베이스 컨버터(Power Base Converter)라는 변환 장치를 35달러에 팔았다. 마스터 시스템이 있는 사람이 매우 적은 데다 파워 베이스 컨버터를 파는 가게도 찾기 어려웠기에 산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가는 자신들이 닌텐도보다 고객의 입장을 더 생각한다는 증거로 이런 장치의 존재를 자랑하곤 했다. 그 덕분에 이 제품은 곧 세가에서 가장 적게 팔린 동시에 가장 가치 있는 제품으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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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 베이스 컨버터(Power Base Converter)

 

하지만 변환 장치는 세가 관련 문제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소닉 더 헤지혹이라는 훨씬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세가 메가 드라이브용으로 나와서 가벼운 성과를 거둔 데 그친 이 캐릭터가 미국에서는 출시와 동시에 동경의 대상으로 우뚝 섰다. 마치 소닉의 빠른 속도와 태도 그리고 에너지가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과 조지 H. W. 부시(George H. W. Bush) 대통령의 재임 십여 년간 이어진 보수 정치 시절을 지나서 맞이한 1990년대의 새 희망을 상징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세가의 대표를 만날 생각조차 없는 아라카와 미노루가 자신이 한 말이 칼린스키의 귀에 들어갈 것을 아는 한 이러한 사실을 인정할 리 없었다. 아무리 진실을 말해야 하는 증인석에 섰다 하더라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스스로 자기 생각을 밝힐 리도 만무했다. “네, 그들은 슈퍼 마리오를 보고 그와 비슷한 제품을 만들기 원했습니다.” 이렇게 답한 후 그가 할 수 있는 건 앉아서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질문은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은 텐겐과의 전투처럼 말이다.

 

 

그 달 말 칼린스키는 닐슨, 도요다, 번스와 함께 뉴욕으로 날아갔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만 갔다. 하지만 이후 몇 시간 동안 이들은 오로지 텐겐 일에 집중할 예정이었다. 


네 사람은 JFK 공항에 도착한 후 짐을 위탁수하물로 부친 바보들을 비웃으며 기내에 휴대했던 짐을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공항에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밖으로 나와 심하게 찌그러진 택시 한 대를 불러 세웠다. 칼린스키가 조수석에 앉자 나머지 세 사람은 뒷좌석에 적응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면서 별 의미없는 생각들을 떠올렸다. “콜럼버스 서클에 있는 콜로세움 컨벤션 센터로 가주세요.” 칼린스키는 기사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닐슨, 도요다, 번스가 함께 뒷자리에 끼어 앉아 있는 모습을 사진 찍듯이 마음속에 새겼다. “영화 주인공이나 관광객이 할 법한 진부한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기사님, 세게 밟으셔도 좋습니다.”


 “너무 늦진 않을까요?” 도요다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이러다 망할 거 같은데요?” 번스가 답했다.


 “아니에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우리가 없으면 시작하지 않을 겁니다.” 칼린스키 특유의 경쾌한 말투였다. 


닐슨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고층 빌딩들을 눈에 담으며 말했다.


 “우린 최선을 다했어요. 우리의 운명은 트래피클리스(Trafficles) 님의 손에 달렸어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 것 같자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트래피클리스 몰라요? 교통 정체를 담당하는 그리스 신이잖아요.”


칼린스키, 도요다, 번스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 덕분에 긴장이 좀 풀렸다. 닐슨에게는 긴장이 감돌 때 이를 감지하고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방법으로 풀어주는 재능이 있었다. 세가가 잔잔하게 괜찮던 수준에서 혼란스러울 정도로 훌륭한 수준까지 성장한 지난 몇 달간 이 재능은 꽤 유용하게 쓰였다. 7월에는 세가에 관한 소문이 전국의 소비자와 기업체 간부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8월에는 16비트 게임기를 사려고 SNES를 기다리던 소비자들이 제네시스를 사기 시작했다. 9월에는 소매업체들이 주기적으로 재고 부족을 경험했다. 증가한 수요에 발맞추기 위해 회사는 빠르게 성장해야만 했다. 설비와 직원수만 늘린 게 아니라 직원들의 창의력과 사고방식도 그에 따라 성장해야 했다. 직원 수, 게임 수뿐 아니라 언론의 관심까지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 모든 것을 훌륭히 해내지 못했다면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었다.


작은 일 하나에도 이들이 성공했다는 증거가 나타나곤 했다. 우선 예전보다 전화나 팩스에 답이 빨리 왔다. 그리고 세가에서 일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얼굴에는 존중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꼭 말로 하지 않아도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또 슈퍼마켓이나 비디오 가게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노라면 크리스마스 선물로 꼭 제네시스를 사달라고 엄마 아빠에게 조르는 아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은 단순한 격려 이상으로 세가가 점점 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세가는 이제 그 현관에 첫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하지만 집주인은 여전히 닌텐도였다. 


칼린스키는 세가가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압제적인 현실에 저항해 다음 세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구현을 이끌 재미있고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회사라는 이미지를 입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이미지에서 빗나가지 않는 한 회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볼 의향이 있었다. 닌텐도의 적과 한 이불을 덮는다는 아이디어도 이러한 그의 목표에 꼭 들어맞았기에 도요다가 텐겐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을 때 전혀 놀라지 않았다.


도요다는 나카야마의 명을 받고 CEO 댄 밴 엘더렌(Dan Van Elderen)을 통해 텐겐의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얼핏 보기만 해도 세가와 텐겐이 손을 잡는 건 이치에 맞았다. 세가에는 더 많은 게임이 필요했고 텐겐은 좋은 게임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두 회사 관계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더욱 잘 들어맞는 면이 있었다. 사실 나카야마는 지난 수년간 은밀히 텐겐을 도와주었다. 칼린스키도 얼마 전에야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일반 대중에게는 당연히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였다. 나카야마는 닌텐도의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닌텐도와의 소송에 드는 비용을 대주었다. 칼린스키는 언제 시작된 일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텐겐이 애초에 NES를 리버스 엔지니어링한 것도 혹시 세가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확실히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나카야마에게 명확한 대답을 듣겠다는 건 마치 그림자를 붙잡은 뒤 건초 더미에서 찾아낸 바늘로 그림자의 이를 빼겠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칼린스키가 나카야마를 존경하긴 했지만 세가에 근무한 지 1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열어보는 문마다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에는 진저리가 났다.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에 집착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회사 일과 관련해 아직도 가끔 놀랄 일들이 있긴 했다. 그래도 칼린스키에게 세가 오브 아메리카를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이끌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고 한 약속은 어긴 적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교묘한 술수를 좋아하는 나카야마의 성향 덕분에 텐겐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혜택을 입었다. 


뉴욕 풍경이 택시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동안 칼린스키와 닐슨, 도요다, 번스까지 모두 서류를 뒤적이며 오늘 텐겐과 함께 진행할 합동 기자 회견의 주요 논점을 검토했다.


번스가 물었다. “어떤 쪽이 더 많게 들릴까요? ‘텐겐이 향후 2년 동안 세가를 위해 40편의 게임을 만들 겁니다.’와 ‘텐겐이 향후 2년 동안 1년에 20편씩 게임을 만들 겁니다.’, 둘 중에서요. 아, 아니에요. 후자는 쓸데없이 복잡하게 들리겠네요.”


 “범위는 어떻게 할까요?” 칼린스키가 서류를 휙휙 넘기며 물었다. “아시아 쪽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게 낫겠죠?”


 “맞습니다.” 도요다가 답했다. 그 부분은 머릿속에 철저히 정리해둔 내용이었기에 자료를 찾아볼 필요도 없는 듯했다. “미국과 유럽에만 적용됩니다.”


 “혹시 즉석에서 게임 이름을 언급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닐슨은 텐겐의 게임 목록 일부를 훑어보며 말을 이어갔다. “저라면 ‘R.B.I. 베이스볼’ 시리즈를 얘기하겠어요. 팩맨도 좋긴 하지만 좀 옛날 느낌이 나서요.” 


칼린스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발표문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짧고 굵되 예리하고 재치 있고 짜임새 있게 할 생각이었다. 발표문 작성은 제품 홍보에 손을 보태고 있는 엘런 베스 밴 버스커크가 조력했다. 그녀는 쇼핑몰 투어를 마친 후에도 세가에 남아서 회사 내부 통신 관련 업무를 돕기로 했다. 막바지에 다다른 쇼핑몰 투어를 통해 그녀를 영입하길 잘했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되었다. 세가 월드 투어에 참여한 사람은 이미 10만 명이 넘었고 그중 63% 이상이 아동과 십 대였다. 참여한 사람들 중 88%가 슈퍼 닌텐도를 제쳐두고 제네시스를 선택했다. 세가가 진행한 ‘취향 테스트’의 엄청난 결과 말고도 전국 주요 일간지와 지역 신문에 실린 ‘세가와 닌텐도의 대결’ 관련 기사를 접한 사람은 1,000만 명에 이르렀다. 밴 버스커크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칼린스키는 씩 웃으며 그녀의 도움을 받아서 완성한 발표문 앞부분을 다시 읽었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진짜 훌륭해.”


 “누구 말씀인가요?” 한마디도 놓치는 법이 없는 도요다가 물었다.


 “엘런 베스 얘기겠죠.” 칼린스키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한 닐슨이 답했다. “EBVB요.” 닐슨은 그녀가 세가 월드 투어에 대한 자신의 꿈을 영리하게 구현해내는 걸 본 때부터 그녀가 곧 스타가 될 거라는 걸 예감했다. 그녀는 세가 월드 투어에 대해 어느 방면에서 온 누구에게든 줄줄이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절대 건방진 투나 깔보는 투로 말하는 법도 없었다. “쇼핑몰 투어 때 정말 대단했어요. 원하는 게 뭔지 바로 알아듣더라고요. 진짜로요.”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죠. 다음 번에는 함께 와야겠습니다.” 칼린스키가 말했다.


 “그래야죠. 아, 혹시라도 세계적인 수준의 운동선수들과 어울리느라 바쁘지 않다면 말이죠.” 번스가 받아쳤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EB가 세가에 온 지 단 몇 달 만에 그렇게 훌륭한 업적을 남기자 SOJ는 그녀에게 중책을 맡겼다. 적어도 맡긴 이들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SOA가 유명해지자 SOJ에서 몇몇 이들이 ‘너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종의 게임을 시작했다. 이들은 SOA의 놀이터에 들어와서 눈에 확 띄는 마케팅 기회를 찾아다녔다. 이들은 자기들이 골프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PGA 투어*2 행사를 후원할 방법을 알아보았으나 너무 비싸고 어려워서 포기했다. 그 대신 애틀랜타에서 열릴 LPGA*3 행사를 후원하기로 했다. 칼린스키는 처음에 장난인 줄 알았다. 일반인들에게 LPGA의 인기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 데다 세가가 판매하는 게임 목록에는 여성 골프 게임은커녕 아예 골프 게임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SOA가 제지하려 했을 때는 이미 모든 일이 진행된 후였다. SOJ는 이 일의 책임자로 전직 운동선수이자 평범하지 않은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끈 EB를 낙점했다. 그래서 제1회 연례 세가 여성 챔피언십 대회가 1992년 4월 19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2 PGA 투어: 세계 최대 프로골프협회.

*3 LPGA: 미국의 여자프로골프협회.


 “조만간 LPGA 행사를 못 할 좋은 핑곗거리나 꼭 좀 생겼으면 좋겠군요.” 칼린스키가 말했다. 


동지들은 그의 말에 공감을 표한 뒤 다시 기자 회견 막바지 준비를 서둘렀다. 발표는 칼린스키가 맡았다. 하지만 언론 인터뷰는 최대한 많은 이들이 함께하길 원했다. 그래야 모두가 정보를 꼼꼼히 살펴보고 몇 가지 할 말을 준비해둘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콜로세움에 제시간에 도착했고 그러길 다행이었다. 화려하게 장식한 실내는 수많은 기자, 금융 전문가, 잠재적 투자자로 붐볐다. 투자자들은 아마도 텐겐이 다음 라운드 추가 투자금을 구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온 것일 터였다. 행사는 도요다가 지금까지 협상을 진행해오던 두 사람, 텐겐의 키 큰 CEO 댄 밴 엘더렌과 안경을 쓴 영업 및 마케팅 담당 전무 테드 호프(Ted Hoff)의 발표로 시작했다.


이들이 세가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40편의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을 당당히 알린 후, 칼린스키가 연단에 올랐다. 그는 자신이 지금 얼마나 기쁜지 소감을 밝힌 후 세가의 판매량이 이미 닌텐도의 판매량을 앞섰다는 대담한 선언으로 장내를 술렁이게 했다. 하지만 이 발표 내용은 그날의 조연이었다. 주연은 닌텐도 경쟁사 두 곳의 대표가 악수하는 사진이었다. 칼린스키가 발표에서 한 말은 사실 여부를 떠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 말은 세가와 닌텐도 사이에 향후 몇 년 간 지속될 논란 많은 게임의 전조에 불과했다.


그 후 사진 촬영과 언론 인터뷰를 마친 칼린스키 일행은 밴 엘더렌과 테드 호프와 함께 축하주를 마시기 위해 나왔다. 잔이 부딪치고 알딸딸하게 취기가 오르자 칼린스키 일행은 재미있는 새 친구들과 함께 음모의 냄새가 짙은 거대하고 대담한 계획을 떠들어댔다. 닌텐도는 이미 그들의 레이더망 안에 들어왔고 결국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게 결론이었다.


 “그 끝없는 소송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칼린스키는 맥주를 마시다 말고 물었다.


 “그에 대한 뒷얘기라면 얼마든지 하고 싶죠.” 밴 엘더렌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송에 관한 이야기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라카와가 성경에 맹세한 후에 소닉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정말 웃겼다는 거예요.”


한 차례 웃음이 지나간 뒤 칼린스키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약속이 있으신가요?” 호프가 물었다.


칼린스키는 그가 어딜 가려는지 알고 있는 동료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호프에게 말했다. “중요한 약속이죠.” 그리고 작별을 고했다. 뉴욕을 떠나기 전에 닌텐도의 또 다른 적을 만나야 했다. 텐겐보다 조금 더 강력한 적, 소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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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닌텐도가 훌륭한 소프트웨어로 반격을 꿈꿀 때 칼린스키는 다음 세대 하드웨어 를 위해 소니 일렉트로닉 퍼블리싱의 대 표였던 올라프 올라프손과 협상을 맺는 데 집중했다. (사진 제공: 요한 팔 발디마 르손(Johann Pall Valdimarsson))


몇 달 전 칼린스키는 산타 모니카에 있는 소니 이미지소프트(Imagesoft)*4의 올라프 올라프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올라프손은 칼린스키를 만나고 싶어 했고 칼린스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점심 자리에서 두 사람은 솔직함과 참신성, 관습을 벗어난 새로운 아이디어를 좋아하는 비디오게임 업계의 아웃사이더라는 공통점 때문에 금세 친해졌다. 비슷한 성격 덕분에 서로 친구가 될 거라는 사실을 둘 다 금세 깨달았다. 이러한 우정이 사업에까지 이어질지가 유일한 미지수였다. 올라프손은 그가 다음에 뉴욕에 오게 되는 날, 자신의 상사 미키 슐호프와 함께 만나자고 제안했고 텐겐 기자 회견을 한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4 이미지소프트(Imagesoft): 1989년 소니가 세운 비디오게임 퍼블리셔로 1995년 SCEA(Sony Computer Entertainment of America)로 편입되기 전까지 별도로 운영되었다.


세 사람은 55번가와 매디슨 애비뉴가 만나는 곳에 자리 잡은 소니 사무실 꼭대기층에 있는 비공개 클럽에서 저녁을 함께하기로 했다. 칼린스키는 하얀 건물 내부로 들어서서 올라프손과 슐호프가 기다리고 있는 37층으로 직행하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시간 맞춰 오셨군요.” 올라프손이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톰, 이쪽이 미키 슐호프 씨입니다. 미키, 이쪽은 그 유명한 칼린스키 씨입니다. 인사 나누고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슐호프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슐호프는 깔끔한 가르마가 인상적인 잘생긴 남자였다. 그을린 피부에 웃으면 드러나는 하얀 치아가 돋보였다. 부드러운 악수로 보아서는 거만한 태도로 일관하는 흔해 빠진 임원급 인사인가 싶었지만 전체적인 풍모에서는 강력한 투지와 자신감이 배어났다. “올라프에게 당신 칭찬을 과할 정도로 많이 들었습니다. 전부 사실일 리는 없겠지요.”


 “기대치가 높으시다니 마음에 듭니다. 그렇지 않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칼린스키가 답했다.


칼린스키, 올라프손, 슐호프는 창밖으로 시내를 바라보며 고급 샤도네이 와인을 곁들인 품격 있는 해산물 요리를 즐겼다. 처음에는 뻔한 레퍼토리로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뒤에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생각나는 대로 꺼내놓는 쪽으로 대화가 흘러갔다. 주요리를 대여섯 입 정도 먹었을 무렵 대화의 주제가 사업 이야기로 바뀌었다. 슐호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올라프손에게서 당신이 비디오게임 업계를 뒤집을 계획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네, 계획은 그렇습니다.” 칼린스키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좋군요. 듣던 중 반가운 말입니다.” 슐호프가 말했다.


 “업계에 대해서는 강한 믿음이 있습니다. 게임 그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산업에 언젠가는 사람들이 달려드는 날이 올 거라고 봅니다.” 올라프손이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현상은 이미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칼린스키가 말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제가 소니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객관성이 조금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올라프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칼린스키는 자신을 초대한 두 사람을 조금 더 잘 바라보기 위해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그래서 소니를 위한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어떻게 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슐호프가 맡았다. “70년대 후반 소니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텔레비전과 스테레오를 팔아서 회사의 뼈대를 세웠습니다. 꽤 괜찮았죠. 현실을 외면하고 계속 돈을 끌어다 쓰면서 손을 놓고 있어도 회사가 잘 굴러갈 정도였어요. 고장 나지 않은 물건을 고칠 필요는 없잖습니까?”


세 사람은 잠시 말을 멈추고 와인 잔을 들어 느긋하게 한 모금 머금었다. 슐호프는 만족스럽다는 듯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1978년 키하라 노부토시(Kihara Nobutoshi)라는 오디오 엔지니어가 어디든 들고 다니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휴대용 소형 스테레오를 개발했습니다. 집 밖에서 음악을 듣는다니, 제정신이라면 누가 그런 걸 원하겠느냐고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소니는 그런 말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워크맨(Walkman)이라 이름 붙인 기기를 개발했습니다. 굳이 모험할 필요가 전혀 없었지만 가진 돈을 전부 걸었고 결국 전 세계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방식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첫 워크맨을 샀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칼린스키의 목소리가 향수에 젖어들었다. “당연히 그러시겠죠. 소니는 뭐든 했다 하면 기억에 남게 합니다. 제대로 하거나 아예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죠.” 슐호프가 말했다.


올라프손이 미소를 지었다. “흔히들 하는 말처럼 ‘모 아니면 도’라고 할 수 있죠.”


 “맞습니다.” 슐호프가 말했다. “콜롬비아 픽처스. 콤팩트디스크. CBS 레코드.”


 “이력서를 일일이 읊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소니가 한 일들은 이미 제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으니까요. 그보다는 세가가 그 그림 안에 어디로 들어갈지가 궁금합니다. 인수에 관심이 있으신 겁니까?” 칼린스키가 물었다.


 “전혀 없습니다. 저는 시너지 효과에 대해 깊은 믿음이 있습니다. 요즘 언론에서 그 용어를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데 그런 헛소리 버전에는 관심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 도움이 되는 지점을 찾아나간다는 현실적인 버전이라면 가치가 있죠.”


올라프손은 이렇게 덧붙였다. “세가에는 그간 쌓인 업계 경험과 신뢰가 있습니다. 소니에는 기술력과 재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진정한 공통점은 멀티미디어가 미래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이끌어나갈 주역이라는 것을 깨달을 만한 지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묻겠습니다. 세가가 이미 CD 기반 게임기를 만들고 있을 걸로 추정해도 무리가 없겠습니까?”


칼린스키는 애매하게 답해볼까 잠시 생각했다가 손에 들고 있는 패를 전부 열어 보이기로 마음먹었다. 함께할 기회를 얻었을 때 교묘한 속임수를 써서는 절대 소니와 함께할 수 없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네, 정확합니다. 세가는 제네시스에 CD를 넣을 계획이 있습니다.” 


 “얼마나 진행되었습니까?” 올라프손이 물었다.


 “거의 끝나갑니다. 92년 말에 출시할 계획입니다.”


 “베가스에서 열릴 다음 CES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할 예정입니까?”


 “그 정도면 타당한 추정이군요.”


올라프손은 잠시 입을 다물고 그 뒤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계산해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 정도면 세가가 하기에 딱 적당한 일들로 보입니다. 하드웨어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소프트웨어와 관련해서 우리가 어떤 조합을 이룰지 이야기해봅시다.”


 “돈은 소프트웨어가 벌어준다더군요.” 슐호프가 끼어들었다.


올라프손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엄청난 기세로 성장하고 있는 제네시스 지원에 모든 일손이 총동원되고 있을 테니 세가가 CD 기반 소프트웨어를 지원해줄 외부자를 점점 더 필요로 할 것으로 추정하더라도 무리가 없습니까?”


 “물론입니다. 알맞은 소프트웨어를 찾기 전에는 미국에서 CD 기반 게임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칼린스키가 답했다.


올라프손은 슐호프를 바라보며 바로 이 지점에서 세가와 소니 사이에 잠재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암시를 주었다. 이들은 대화를 잠시 멈추고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한두 입 먹었다. 그리고 올라프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뭔가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기엔 분명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걸 말하지 못할 이유는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칼린스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랬다. 


 “사랑에 빠진 한 쌍의 십 대 같군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갖다 바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만 제대로 만나보려면 부모님의 허락부터 받아야 하는 신세니까요.” 올라프의 말이었다.


 “일본 부모들은 엄격하기로 정평이 나있죠.” 칼린스키가 말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슐호프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안마를 좀 해드리면 세가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소니가 공급할 방법을 잘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올라프손이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겠습니다.” 칼린스키가 말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슐호프가 말했다.


 “좋군요.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소니와 세가가 손을 잡는다고 해서 언젠가 소니가 콘솔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까지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군요.” 올라프가 말했다.


칼린스키가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양측이 손을 잡았을 때 둘 다 얻는 이득이 많다고 봅니다. 나중에라면? 어쩌면 나중에도 함께하고 있을 수도, 아니면 각자 다른 길로 가게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어쩌면’ 정도만 알아도 괜찮습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슐호프가 말했다.


 “좋습니다.” 칼린스키가 잔을 높이 들자 올라프손과 슐호프도 따라 들었다. “‘어쩌면’을 위하여, 그리고 그 말이 만들어나갈 멋진 날들을 위하여!”


만족스러운 음식과 와인에 덕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이들은 잔을 부딪쳤다. 세 남자 모두 자신이 세상을 정복할 운명이라 믿으며 일생 대부분을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와인을 마시며 함께 제국을 건설해나갈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도 친구와 적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걸 잊은 이는 없었다.
 

 

블레이크 J. 해리스 지음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겸 영화제작자다. 그는 현재 책을 바탕으로 스콧 루딘(Scott Rudin), 세스 로건(Seth Rogen), 에번 골드버그(Evan Goldberg)가 공동 제작하는 다큐멘터리의 공동 감독으로 있다. 그는 소니와 작업 중인 장편 영화 <Console Wars>의 제작 책임자이기도 하다.
   
이미령 옮김
가치 있는 콘텐츠를 우리말로 공유하려고 자원봉사로 시작한 일이 번역가의 길까지 이어졌다. 모든 일을 재미있게 하는 비결은 아이 같은 호기심을 잃지 않는 데 있다고 믿고 있으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컴퓨터 간의 연결 분야에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는 『소프트 스킬』, 『사용자를 생각하게 하지 마!』, 『멀티 디바이스 UX 디자인』, 『생각하는 냉장고 뉴스 읽는 장난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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