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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게임에서 성립하는 콜라보레이션을 정말 좋아합니다. 서로 다른 작품에서 활약하던 캐릭터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으니까요. 특히, 대전격투게임은 그런 꿈의 경연이 자주 펼쳐지는 장르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나온 게임들만 해도 [철권7]의 고우키, 기스 하워드, 녹티스, 네간, [모탈컴뱃 X]의 닌자거북이, [밀리언아서 아르카나 블러드]의 야가미 이오리 등 '여기서 형이 왜 나와?'라고 할 만한 콜라보레이션이 가득했죠.
 
[슈퍼 스매시브라더스 얼티밋]처럼 꿈의 경연 그 자체가 주제인 게임도 있었는데요, 바로 2월 14일 반다이남코엔터테인먼트 코리아를 통해 정식 출시된 [점프 포스]입니다.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일본 슈에이샤(집영사)의 인기 만화 잡지 '점프'를 빛냈던 인기 만화 캐릭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싸우는 꿈의 대전격투게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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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 포스]의 메인 타이틀은 드래곤볼의 손오공, 원피스의 루피, 나루토의 나루토가 장식하고 있습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만화의 캐릭터들이죠.

 

만화 속 캐릭터들이 있는 점프 세계와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가 맞닿는 일이 일어났다는 설정을 살린 그래픽은 묘하게 호불호가 갈렸습니다만, 그래도 인기 만화 캐릭터들이 모인 것만으로도 꽤 많은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런데 출시 후 평가는 굉장히 박합니다. 리뷰 종합 사이트 메타크리틱을 보면 25일 기준 메타스코어가 58점, 유저 스코어가 4.7점이거든요. 그리고 점프의 만화들을 정말 좋아하는 필자의 평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체 게임이 어떻길래 이런 평가를 받은 걸까요?

 

 

전투 시 원작 재현은 수준급

먼저, 만족스러웠던 부분을 짚어보겠습니다. [점프 포스]를 작게 보면 대전격투게임이지만, 좀 더 큰 범주에서 보면 '캐릭터 게임'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캐릭터 게임은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내세운 캐릭터 중심의 게임으로, 기본적인 게임성 외에 해당 캐릭터가 등장하는 원작을 얼마나 잘 재현했는지도 게임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점프 포스]에 가장 기대한 건 원작 재현이었고요.
 
그런 의미에서 [점프 포스]는 전투에서의 원작 재현이라는 기본에는 충실합니다. 각 캐릭터의 주요 필살기는 물론, 공격 모션이나 회피 모션, 캐릭터 간 상호 관계 등 다양한 부분에서 재현된 원작을 볼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북두의 권의 주인공 '켄시로'는 기본 회피 동작은 '구르기'지만, 각성하면 북두신권 최종 오의 '무상전생'의 연출처럼 잔상을 남기며 회피합니다. 성능 상 큰 변화는 없지만, 원작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세심한 연출이죠. 또, 원피스의 주연 '상디'는 원작에서 여성에게는 절대 손을 대지 않는 기사도 정신을 재현, 여성 캐릭터 상대로는 공격 모션이 추파를 던지는 것처럼 바뀌고 대미지도 들어가지 않는 쓸데없는(...) 원작 재현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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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필살기 연출은 기본입니다. 오랜만에 타이의 '아방 스트랏슈'를 보니 괜히 뭉클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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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시 변신하는 캐릭터들은 각성 게이지의 양에 따라 변신 형태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프리저라면 각성 게이지를 모두 모은 상태에서 각성하면 골든 프리저(위쪽)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풀파워 프리저(아래쪽)가 되는 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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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디는 원작에서처럼 여성 캐릭터에게 전혀 대미지를 줄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대전격투게임이라면 있으면 곤란한 연출입니다만, 캐릭터 게임이니까 가능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전투 파트는 간단하면서도 나름 깊이가 있습니다. 러시(□), 헤비(△), 잡기(○), 필살기R2+□, △, ○) 등 공격은 버튼 연타나 간단한 버튼 조합으로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거나, 가드나 회피 외에 이스케이프(L1)처럼 이동 게이지만 있으면 적의 공격으로부터 간단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점프 캐릭터가 좋아서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도 원작의 다양한 필살기를 손쉽게 볼 수 있어요.
 
여기에 대전격투게임을 좋아한다면 가드 버튼을 누른 채로 하는 회피나 적의 공격에 타이밍을 맞춰 공격, 가드 버튼을 눌러 사용하는 '고속 회피', '고속 반격', 견제, 추가 공격처럼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 '서포트 공격' 등 은근히 파고들 요소도 많습니다. 그래서 고수들의 대전 영상을 보면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서 두근거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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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 반격. 공격당하는 와중에도 발동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회피할 수 있는 이스케이프도 좋지만, 고속 반격이나 고속 회피를 익혀두면 손쉽게 반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전투 외에 원작 재현은 좀...

원작 재현이 좋으면 그냥 좋다고 하면 되는데 왜 전투 시라는 조건을 붙였을까요? 그야 전투 외의 원작 재현은 아쉬움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실망했던 건 캐릭터의 표정 변화가 없다는 점입니다. [점프 포스]의 모든 캐릭터는 이른바 '전투용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손오공으로 따지면 드래곤볼Z 프리저 편에서 크리링이 프리저에게 죽은 뒤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전투에서는 괜찮은데 전투가 아닌 때에도 그런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게 상당히 거슬립니다.
 
예를 들어, 스토리 모드 초반에 손오공 특유의 배가 고프다면서 풀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원작 팬이라면 둥글어진 눈매에 헤실헤실 바보같이 웃는 손오공의 모습을 상상하겠지만, [점프 포스]에서는 배가 고파서 화가 났는지 전투용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또, 전투 개막 시의 표정, 전투 종료 후의 표정도 캐릭터가 하는 대사와 맞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대사는 이겼다고 웃고 있는데 캐릭터 표정은 정색한 채로 입만 뻐끔대고 있는 걸 보면 좀 무섭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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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고마운 거 같지 않은 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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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High!하지 않는 DIO... 본문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별도의 승리 모션도 없습니다. 원작에서 DIO가 저 대사를 하면서 보여준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건 원작 재현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입니다.

 

단순히 표정 변화뿐만 아니라 스토리 모드에서의 캐릭터 해석도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거슬렸던 부분은 베지터가 베놈들과 처음 대면하다가 타락한 코즈믹 큐브에 의해 그들과 한 편이 되는 연출인데요, 여기서 베지터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게 너무나도 이상했습니다.
 
드래곤볼에서의 베지터는 그렇게 과묵한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잡병들이라도 '큿 쓰레기들이'라고 한 마디 던져주는 캐릭터였죠. 또, 당할 때 당하더라도 '큿 쓰레기들이 감히'라고 한 마디 더 해주는 자존심 강한 캐릭터구요. 근데 [점프 포스]에서는 그냥 가만히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당하는 순간에도 아무 말도 없이 당해버리는 그 모습은... 제가 알던 베지터와는 다른 모습이라 어색했습니다.

단 한 장면 만을 가지고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는 법이지만, 플레이어는 단 한 장면 만으로도 게임에 등을 돌릴 수 있습니다. 특히, 게임 초반부터 볼 수 있는 장면이 이런 식이면 뒤에 나올 장면도 기대할 수 없게 되죠. 스팀판이었다면 벌써 환불했을 겁니다.

 

▶6분 24초부터. 저는 드래곤볼 팬이라 그런지 이런 부분이 너무나도 신경 쓰였습니다.(PS4에서는 스토리 부분의 촬영이 막혀 있어 부득이 유튜브에 올라온 다른 플레이어의 영상으로 대체합니다. 출처: Jump Force Saving Corrupted Vegeta Arc Full Game Story Cutscenes Part 2)

 

 

업데이트를 통한 개선을 기대해본다

[점프 포스]의 전투는 확실히 화려합니다. 점프 캐릭터들이 펼치는 만화 속 전투를 자신의 손으로 펼치고 싶다는 분이라면 [점프 포스]는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현실 세계로 나온 만화 캐릭터들의 그래픽은 조금 어색하기도 하지만, 영국 런던의 상징인 빅 벤이 놓여 있는 나뭇잎 마을, 프리저의 우주선이 불시착한 마터호른의 분위기는 꽤 괜찮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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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부터 나뭇잎 마을과 마터호른. 꽤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그 외의 부분은 좋은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왜 이런 좋은 IP를 가지고 이런 게임을 만드는 걸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을 자꾸 하게 만들어요. 다른 건 다 제쳐두고라도 캐릭터의 매력을 보여줘야 하는 캐릭터 게임에서 표정을 하나만 만들었다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어째 점프 캐릭터들의 콜라보레이션이 주가 되는 게임은 몇몇 게임을 제외하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 냉정하게 보면 '그 강력한 IP 파워에 기대 게임은 대충 만든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IP 파워가 워낙 강해 이게 개발 과정에도 영향을 주고 있으리라는 추측은 할 수 있겠습니다만, 솔직히 이게 한두 번이어야 좋게 생각하죠.


 그래도 과거와는 달리 [점프 포스]는 출시 이후로 계속 게임을 개선해 나가고 있습니다. '로딩 포스'라는 오명을 만든 기나긴 로딩 시간도 조금은 줄고 있는 게 느껴질 정도예요. 요즘에는 초반 평가는 별로였어도 업데이트로 게임을 개선하고 나중에는 재평가 받는 게임도 적지 않은데요, [점프 포스]도 그런 게임 중 하나가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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